CULTURE

옛날 이정재 <1>

2013.01.24GQ

그의 얼굴에서 <인터뷰>의 은석이 보였다. 미간을 찌푸리니 <태양은 없다>의 홍기가 스쳤다. 활짝 웃으니 <오! 브라더스>의 봉구같았다. 이정재가 물었다. “지금은 어때요?”

잿빛 수트와 회색 셔츠 모두 톰 포드, 시계는 오데마 피게 by 장성원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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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셔츠는 장광효 카루소, 남색 바지는 랑방, 화이트 골드 팔찌는 까르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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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한 사진 봤나? 촬영 내내 사진을 보지 않던데?
슬쩍슬쩍 봤다. 마음에 든다.

십여 년 전, <시월애>, <오버 더 레인보우>, <인터뷰>등 한창 멜로영화를 몰아 찍을 때의 이정재가 떠올랐다. 웃을 땐, <오! 브라더스>도 생각나고.
많은 분이 멜로영화나 코미디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 최근엔 연속해서 센 영화를 찍었지만.

지지난 주에 <도둑들> 보너스가 나오지 않았나?
하하. 어떻게 알았나? 스태프만 나오고 배우는 아직이다. 보너스가 지급될 정도로 잘될 줄은 몰랐다. 한 7, 8백만 명 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너무 잘됐다.

작년 <도둑들>을 최종 편집 중일 때, 최동훈 감독을 만났다. 그가 당신의 연기를 가장 기대하라고 말했다. 그 말을 떠올리며 어제 <도둑들>을 다시 봤다.
어땠나?

좀 아쉬웠다. 이를테면, 뽀빠이가 마카오 박에게 격하게 화를 내는 장면은 왜 그렇게 표현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편으론 마카오 박에 비해 뽀빠이의 존재감이 부족해 보였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뽀빠이랑 마카오 박의 관계 설정에서, 설명이 좀 없었다. 두 캐릭터 간의 갈등하는 설정만 있었지 관계 설정 장면이 부족했다. 영화에 나온 그 정도의 대사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냐는 거였는데, 사실 조금 모자랐던 것 같다. 마카오 박과 펩시의 로맨스가 더 확실했으면 뽀빠이의 질투도 명확해지고 좋았을 텐데, 둘의 베드신도 삭제되었다. 서사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캐릭터가 많고, 제한된 시간 안에 풀어야 하는 감독의 딜레마 아닐까? 그래서 톤이 좀 맞지 않은 것 같다. 배우가 자신의 감정만 가지고 연기를 하고, 관객은 볼 수 없다면 결국 배우와 연출자의 잘못이다.

한창 <도둑들>을 촬영할 때는 그 작품이 당신의 대표작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당신의 연기는 움직임이 좋다는 평이 많았다.
아쉽다고 생각하면 너무 많다. <태양은 없다>도 원이 없을 것 같지만, 그것마저도 아쉽다. <도둑들>에서 중요한 건 플롯이었다. 그러니 개인 캐릭터를 부각시키기보단 앙상블에 중점을 뒀다. 소리를 내기보단 화음을 맞춘달까? 이런 이유도 있다. 배우 얼굴이 화면에서와 실물이 다르듯이 배우의 연기도 실제 연기와 편집된 상태의 연기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어떤 배우는 현장에선 부족해 보이지만 스크린 안에선 꽉 찰 때가 있다. 에너지가 폭발한다고나 할까? 의외로 이정재에게서 그런 폭발을 보기가 어렵다. 성격이 극단적이지 않아서일까?
아니, 내 성격은 중간이 없다. 성격이 센 편이다. 좋으면 굉장히 좋고, 싫으면 완전히 싫고. 아직 한 번도 어떤 영화에서 내 성격만큼 표현을 못한 것 같다. 아쉽지만 그만큼 또 해먹을 게 있다는 뜻 아닌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감독들이 아직도 이정재가 제대로 발견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당신도 자신을 온전히 끌어낼 수 있는 감독을 기다린다고.
뽀빠이가 그나마 좀 센 표현을 한 역할이었다. 한데 감독님이 그런 것들을 없앴다. 뽀빠이가 세게 나오면 밸런스가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카오 박이 제일 묵직하게 나와야 하고, 게다가 후반부에서 뽀빠이와 마카오 박의 갈등이 중심이 아니라 마카오 박의 복수가 중요하니까. 그래도 뽀빠이를 연기하면서 아직은 내가 에너지가 좀 있는 배우라는 걸 알게 됐다. 사실, 뽀빠이가 시나리오에선 죽었는데, 영화가 잘되면 2편도 생각해야 해서 결국 죽진 않았다. 하하.

만약 <도둑들 2>가 제작되면 뽀빠이를 볼 수 있는 건가? 지금까지 두 편 이상 영화를 함께한 감독이 드물다.
최동훈 감독과 <범죄의 재구성> 때 못 만난 것이 아쉬웠다. 지금까지 놓친 작품 중 가장 아쉽다. 이재용 감독과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를 못한 것도 아쉽고, 김용화 감독과 <미녀는 괴로워>를 못한 것도 많이 아쉽다. 당시 나이에 비해 좀 성숙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사람들과 더 좋은 관계를 유지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배우한테 남는 건 역시 작품이지만, 인생에서 남는 건 사실 사람이다. 배우로 생활하지만 몇몇 작품으로만 살아갈 순 없다.

최근엔 작품을 아주 촘촘하게 찍는다.
예전엔 작품이 많으면 기자들이 다작 배우라고 폄하하기도 하고, 선배들도 이미지가 소비된다며 작품을 많이 하는 걸 말렸다. 하지만 요즘 후배들 보면 굉장히 많이 찍지 않나? 나도 자유롭게 연기생활이 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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