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헬스장의 거울

2013.01.31GQ

어느 정도의 자아도취는 운동에 꼭 필요하다. 거울과 바벨은 멀리 있지 않다.

피트니스센터엔 거울이 많다. 거울은 운동하며 올바른 자세를 잡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종종 운동기구보다 거울 앞에서 자신의 근육을 감상하는 데 여념이 없는 남자들이 있다. 정작 운동에 몰두하는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피트니스센터에 머무르는 시간은 각기 다르겠지만, 평균 한 시간 남짓일 뿐이다. 게다가 운동기구는 제한적이고, 인기 있는 기구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때도 있는데…. 물론 거울을 보며 좌우로 걷거나 간단히 덤벨을 들기도 하지만 과연 자세를 관찰하고 있는 건지, 그저 운동하는 모습에 취해 있는 것인지는 다소 의문스럽다. 이렇게 피트니스센터의 나르시시스트들은 진담이든 농담이든 ‘헬스장 꼴불견’ 순위를 매길 때마다 빠지지 않는다. ‘호크 아이’란 썩 유쾌하지 않은 별칭도 생겼다.

하지만 이런 나르시시즘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과하지만 않다면 오히려 운동을 위한 긍정적인 에너지원이 될 수도 있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운동을 시작하겠지만 “운동이 꼭 필요하다”는 명제만으론 당장 터져버릴 것 같은 심장과 타들어가는 허벅지 근육의 고통을 납득하기 어렵다. 집에서 평온한 시간을 보내는 대신 땀 냄새 나는 체육관을 선택할 만한 좀 더 확실하고 완벽한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몸은, 비명을 쥐어짜며 온 힘을 다해야 비로소 변한다. 그리고 그 변화를 목격하는 건 스스로의 몫이다. “어깨에 매일 휴지 한 장씩 붙인다고 생각하며 운동하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변화의 폭은 매우 작고, 그런 변화는 거울을 보며 몸에 집중하지 않으면 눈치채기 어렵다. 적당한 나르시시즘이 몸의 변화를 관찰하는 재미를 일깨워줄 수 있는 것이다.

보통 운동할 땐 장기계획과 단기계획을 함께 세운다. 장기계획은 체중 감량, 체성분 변화, 체력 증진처럼 시간이 오래 걸리는 목표들이다. 자세 변화, 순간적인 ‘펌핑’, 기분 전환 같은 효과는 단기계획에 해당한다. 운동할 땐 장기계획만큼이나 단기계획을 수립하고 만끽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단기계획은 말 그대로 운동한 즉시 몸에 나타나는 변화다. 30분 정도만 열심히 운동해도 분명한 변화가 생긴다. 자극을 받은 근육이 팽창하면 몸의 실루엣이 달라 보이고, 엉덩이가 ‘업’될 땐 몸이 살짝 뜬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상당히 기분 좋은 일이다. 이런 변화는 거울 앞에 가까이 섰을 때야 비로소 면밀히 확인할 수 있다. 자신감이 샘솟고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순간이다.

자연히 운동을 더 많이 반복할 수 있는 훌륭한 동기가 된다. “일단 몇 주만 버티면 그 뒤엔 속도가 붙는다”는 트레이너들의 말은 자세한 설명이 부족할 뿐, 괜한 소리가 아니다. 여기서 몇 주란 자신의 몸을 궁지에 몰아넣을수록 더욱 더 큰 변화가 생긴다는 사실을 눈으로 체득하는 시간이다. 본격적인 운동은 몸의 변화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고, 거기에 익숙해지는 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실제로 미국의 한 대학 운동부에서 체육관의 거울을 모두 치운 뒤 운동을 실시했더니, 거울이 있을 때보다 효과가 떨어졌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자신의 몸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데는 남의 몸을 면밀히 살펴보는 습관도 큰 도움이 된다. 사실 몸을 만드는 과정은 조각이나 조소와 성격이 비슷하다. 과학적 설명과 데이터를 필요로 하면서, 결과물이 비평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피트니스센터에 모인 남자들 사이엔 근육 사이즈에 집착하는 묘한 분위기가 있다. 처음엔 적당한 정도의 근육을 만들러 갔다가도,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근육의 질보단 크기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론 큰 근육이 과연 정말 아름답기나 한 건지에 대해서 고민할 여유조차 없이 이미 커져버린 사이즈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만 남는다. 그저 남의 말만 들었을 뿐, 그들의 몸이 정말로 아름다운지는 살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몸을 평가하는 작업을 자동차를 구매하는 과정에 비유해보면 어떨까?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자동차를 보며 자라지만, 곧바로 소유할 순 없다. 원한다고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어서다. 대신 여러 차를 보며 취향을 가다듬는 과정을 거쳐 자신만의 ‘드림카’를 맘속에 품게 된다. 마침내 차를 살 때가 되면, 불필요한 비용을 낭비하거나 고민하는 시간을 최소화하며 차를 살 수 있다.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차의 조건에 대해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근육도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다. 다양한 몸을 보고 평가하는 과정을 통해 구체적인 지향점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 어떤 패션 디자이너는 “몸을 재평가해서 목표를 뚜렷이 형상화시키는 일은 마치 패션 디자이너가 수많은 옷을 보며 불가능할 것 같았던 디자인의 초안을 떠올리는 과정과 유사하다”고도 말했다. 차를 한 번 잘못 사면 되돌리기 힘든 것처럼, 잘못 만든 몸은 서글프게도 안 만든 것만 못할 때가 있는 것이다.

언젠가 한 60대 영국 신사에게 “몸이 좋아 보이는데 근육 좀 보여줘!”라고 농담을 던진 적이 있다. 그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나 상의를 벗어 제쳤다. 몸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모습은 때로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다 중도에 멈춘다.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분명 몸이 변하고 있는데도 그 변화를 알아채지 못해서 도태되는 경우도 많다. 자세가 바뀌고, 부기가 빠지고, 알통이 좀 커지는 것 같은 미세한 변화는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대신 잘 빠지지 않는 옆구리 살이나 체중 같은 데만 집착해 비관하기 바쁘다. 가끔은 거울조차 보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다. 피트니스센터가 온몸 꽁꽁 싸매고 있는 장소도 아닌데, 민폐 좀 끼치면 어때? 운동을 효과적으로 하려면 자신의 변화를 집요하게 묻고, 뽐내고, 그 기쁨을 누리는 나르시시즘이 가장 필요한 것을.

    에디터
    글/ 김태수( 대표, 트레이너)
    아트 디자이너
    ILLUSTRATION/ SOPH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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