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게 위대하게

재즈 보컬리스트 박성연. 재즈클럽 야누스의 운영자. 도통 못 들어본 이름일 수도 있겠다. 세상의 위대한 것들은 대개 숨겨져 있다.

코트는 모그, 나머지는 모두 본인의 것.
코트는 모그, 나머지는 모두 본인의 것.

평상시에 바지를 많이 입으시죠?
네. 왜냐하면 치마를 입으면 모든 게 다 달라야 하거든요. 구두부터 걸음걸이까지.

괜히 자전거를 준비한 게 아닙니다.
하하, 그래요? 내가 옛날에 자전거를 많이 탔어요. 테니스를 쳤거든요. 테니스 가방 메고 자전거 타고 다녔어요. 촬영하면서 그때 생각을 했죠. 그런 게 표정에 나오려나요? 사실 저는 뭘 하더라도, 뭔가를 상상하면서 해요.

지금까지, 바지 입은 사진 말고는 못 본 것 같아서요.
스테이지에선 꼭 드레스를 입어요. 오늘은 안경을 써서 수트를 입은 거고요. 지난 ‘땡큐, 박성연’ 공연 때 바지 입은 게 처음이에요. 아마 99퍼센트일걸요?

어제 공연을 보니, 다른 연주가들은 다 캐주얼하게 입고 당신만 옷을 갖춰 입었던데요.
캐주얼하게 입는 걸 내가 좋아하진 않아요. 캐주얼 하게 입더라도 꼭 자기 코디를 해야 돼요. 함부로 입는 게 싫거든요. 왜냐하면 스테이지라는 건 나한테 굉장히 소중하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스테이지에 서는 날이면, 제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러 나갈 때처럼 옷을 입고 나가요. 또 무대에 서려면, 배우처럼 성의를 가져야 된다고 후배들한테 말해요. 반바지 입고 나오는 거 내가 정말 싫어해요.

재즈의 황금시대 땐 전부 수트를 입었죠. 이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은 걸까요?
미국의 재즈클럽은 여전히 코디를 해서 입어요. 예를 들어, 마일스 데이비스. 내가 그 사람 공연을 두 번인가 봤거든요. 근데 그 사람은 캐주얼하게 입어도 그게 다 계산된 거예요. 어느 날엔 분홍색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무대를 보니까 분홍색 폴이 서 있더라고. 그 사람 음악만 잘 한 게 아니라 완전 멋쟁이였어요. 야누스에서는 캐주얼하게 입어도, 특히나 나름대로 코디를 해요. 그게 음악을 소중히 여기는 하나의 이유가 되거든요.

당신이 35년간 운영한 재즈클럽 야누스가 2007년에 서초동으로 이사했죠. 아마도 다섯 번짼가요? 자의로 이사한 적이 있던가요?
없어요. 근데 경제적인 얘기는 안 했으면 좋겠어요. 거지 같잖아요. 재즈한다고 불쌍하게 보는 게 싫어요. 난 집도 절도 없고 빚만 있는 사람이지만, 굉장히 부자예요. 누구보다도 행복하다고 느끼고 살거든요.

당신 옷에서 기쁨이 보여요.
그래요? 하하하. 집세 낼 때, 연주자들 거마비 못 챙겨줄 때는 내가 가난하다는 게 안타깝지만, 그 외에는 모든 것에 감사하고,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야누스를 시작하면서, 재즈만 연주할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나요?
그런 생각 안 했어요. 안 짤리고 자유롭게 노래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 카바레 같은 데서 낮에 무료로 공연해준다 그러면 주인이 고맙다고 막 주스도 주고 그랬는데, 얼마 지나면 손님들이 너무 연습만 하지 말고 연주 좀 해달라고 그런다고요. 그리고 좀 더 지나면 주인이 미안하지만 그만두라고 해요. 마음 놓고 노래 부를 수 있는 곳. 그것만 생각했어요. 카메라니 뭐니 다 팔고, 돈 좀 빌려서 그냥 했죠. 어차피 내 PA 시스템이랑 앨범이랑 피아노 가져오면 되니까, 재즈를 연주할 수 있는 장소만 있으면 됐으니까.

지금까지 그 마음인가요?
야누스가 없으면 전 아무것도 할 게 없어요.

경영만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순 없었나요?
몇십 년 전부터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은 했는데, 그런 사람이 없죠. 또 재즈 이외의 것이 들어오는 건 싫으니까. 2년 전인가, 동생 부부가 걱정된다고 자기네들 집에 들어오라고 그랬어요. 거기서 먹고 자면서, 가끔가다 공연하면 되지 않겠느냐. 저도 참 힘들고 지쳤을 때라, 알았다고 그렇게 하겠다고 했죠. 근데 딱 일주일 살고는, 야누스 없이는 못살 것 같다고, 그냥 계속하겠다고 나왔어요.

작년에는 아끼던 레코드 1천 장을 처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 얘기도 하고 싶지 않은데…. 야누스를 그만두느니, 판을 파는 게 낫잖아요. 야누스를 갖고 있어야 노래도 하고, 연주자들한테 무대도 주고.

더 많이 듣고 싶어서, 음반을 팔고 음반을 샀던 기억이 있습니다. 뭘 남기고, 뭘 팔아야 할지 많이 고민했죠. 어떤 레코드를 남기셨을지 궁금한데요?
다 팔았어요. 골라서 이건 팔고, 저건 안 팔면 사가는 사람한테 미안할 것 같아서.

맙소사.
고르고 있으면 반밖에 못 팔아요. 내가 아끼고, 역사가 있는 판이 얼마나 많은데. 하지만 집세를 내야죠.

철모르는 소리를 했습니다. 이 얘긴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할게요. 야누스는 어느 재즈 클럽보다 집중해서 공연을 보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죠. 그건 술집 분위기가 없다는 뜻이기도 해요. 평상시엔 술집으로 운영하다가, 주말만 재즈 공연을 여는 건 어떤가요?
일단 재즈클럽이라면, 라이브가 문제가 아니에요. 가요를 틀어야 사람들이 술도 마시고 좋아하죠. 그렇다고 재즈만 트는 것도 문제예요. 재즈 애호가밖에 안 오잖아요. 그나마 라이브가 있어야 사람들이 더 들으려고 해요. 또 라이브와 CD는 차이가 크거든요. 라이브를 들어야지, 진짜 그 사람의 연주를 듣는 거예요. 전 뉴욕 가면 하루에 세 탕씩 뛰어요. 론 카터를 만나서, 베이스 좀 만져봐도 되냐고 물어본 적도 있죠. 하하.

못 말리는 애호가네요.
하하. 디지 길레스피를 공연장에서 만났는데 그가 당뇨가 있대서, 인삼 뿌리 보내준 적도 있어요. 그 사람한테 쓴 카드는 안 보내고, 인삼 뿌리만 보냈지 뭐예요. 누가 세계 유명 재즈클럽이 담긴 책을 선물해줘서, 그 책 가지고 구라파도 다 돌았죠. 우범지구고 뭐고. 나폴리에 있는 재즈클럽에서는 잼 세션하다가 앵콜도 받고요.

요즘도 그렇게 활발하게 다니시나요?
외국엔 꾸준히 다녀요. 작년에도 디트로이트에 다녀왔죠. 노동절에 하는 재즈 페스티벌이 있거든요. 어렸을 때 가정교사 해줬던 조카가 디트로이트에 살고, 재즈도 좋아해서 같이 갔어요. 몇 년 전에 찰리 파커 페스티벌 처음 할 때도 구경 갔고요. 아무튼 뉴욕 가면, <빌리지 보이스> 사가지고 열심히 다녀요.

재즈 보컬리스트가 아니라 재즈 애호가, 야누스의 사장으로 불리는 건 좀 섭섭한 일인가요?
난 사장이란 소리가 싫어요. 제가 맨날 야누스를 적자 내는 이유가 있어요. 술 마시는 사람들은 나를 마담으로 보고 싶어 하는데, 나는 보컬리스트로서 그 사람들을 대하거든요 그러니까 안 맞는 거죠. 사람들이 친근감을 못 느끼는 거고요.

소위 ‘술 단골’이 안 생기는군요.
그렇죠. 평일에도 공연을 하니까 기본은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아요. 사람들이 경제적인 부분도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맥주 한 잔 마시는 건 내 가치를 사람들이 그렇게 여기는 것 같아서 섭섭해요. 무엇보다 걱정돼요. 야누스를 계속 운영할 수 있을까?, 내게, 또 후배들의 미래에 꼭 필요한데. 후배 말로는 벌써 몇 년이 됐어도 한 번도 거마비를 받아간 적이 없어요. 그래도 와서 노래 불러줘요.

국내 재즈 청중이 워낙 적은 탓이 더 크긴 해요.
재즈가 좀 대중적이지 못하죠. 하지만 후배들한테 대중적인 재즈를 해달라고 하고 싶진 않아요. 재즈를 발전시키는 곳이 돼야지, 그냥 데리고 있는 건 아니에요. 후배들이 와서 거마비 없이 해주는 이유도 자기들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기 때문이죠. 내 심정을 이해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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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피처 에디터] 책, 음반, IT를 담당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