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감독의 생애

2013년, 박찬욱, 김지운, 봉준호 감독이 할리우드에 진출한다. 한국 감독의 할리우드 생애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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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을 기다려온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박찬욱, 김지운, 봉준호 감독의 귀환이다. 흥미로운 것은 할리우드에 진출한 세 감독이 각기 다른 유형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인데, 영국이나 호주 등 영어권 국가가 아닌 나라의 감독들이 이처럼 다양한 유형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한 사례는 일찍이 없었다. 1990년대 후반 홍콩 감독들이 연이어 할리우드로 진출했던 상황과 얼핏 유사해 보이지만, 그들이 ‘액션’장르에만 치우쳐 있었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

이 모든 시작은 10년 전 타란티노가 심사위원장으로 있던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의 < 올드보이 >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먼저 관심의 초점이 됐던 그는 할리우드 진출작으로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원작의 < 액스 >(The Axe)를 영화화하려 했지만, 투자 논의가 지지부진해지면서 리들리 스콧이 이끄는 ‘스콧 프리’ 와 ‘폭스 서치라이트’의 < 스토커 > 제의를 받고는 곧장 선회했다. 그는 메이저 영화사에서 더 큰 규모로 ‘기성품’ 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10년간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비영어권 감독이 만족스레 성공한 케이스는 <원티드>의 카자흐스탄 출신 러시아 영화감독 티무르 베크맘베토브 감독정도다. 하지만 그 역시 지난해 만든 두 번째 할리우드 작품 <링컨: 뱀파이어 헌터>로 갖은 혹평에 시달려야 했다. 그만큼 할리우드는 청운의 꿈을 안고 바다를 건넌 비영어권 감독들의 무덤이나 다름없다.

그런 점에서 감독의 스타일을 지키며 중급 예산의 영화들을 많이 만들어온, 20세기 폭스의 자회사인 폭스 서치라이트와 제작비 1백20억원 규모로 작업한 것은 너무나 현명한 선택이다. 언제나 파트너십을 이뤄온 정정훈 촬영감독과 함께한 것 역시 그의 위상을 일러주는 대목이다. 김지운 감독도 줄곧 할리우드 진출 제의가 있었다. 클로드 소테 감독의 1971년작 < 맥스 앤드 정크맨 >을 리메이크할 계획이었지만, 제작이 지연되면서 < 악마를 보았다 >를 먼저 연출하게 됐고, < 라스트 스탠드 >라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주인공 보안관 역으로 물망에 오르던 리암 니슨이 <테이큰 2>로 떠나며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가 아놀드 슈워츠제네거가 합류하면서 기사회생했다.“아놀드가 합류하면서 보다 밝고 유쾌해졌다”는 감독의 얘기처럼, 이것은 오히려 기성품 같은 영화에 김지운 특유의 유머를 가미하는 결과를 낳았다. 개성 넘치는 제작사 ‘라이온스 게이트’와 작업한 것도 좋은 첫 단추다. 폭스 서치라이트나 라이온스 게이트 모두 북미 지역의 많은 영화팬이 ‘믿고 보는’회사들이다. 더구나 김지운 감독은 지난 10월 북미 영화인조합 주최로 열린 제15회 비전페스트(VisionFest)에서 동양인 최초로 ‘차세대 감독상(Vision Award)’을 수상했다. 수많은 비영어권 감독들을 소모품처럼 다뤄온 할리우드에서, 적어도 그가 이전 홍콩 출신 감독들의 선례를 밟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실제로 그 역시 오랜 친구들인 김지용 촬영감독, 모그 음악감독과 그대로 작업하는 흔치 않은 권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더구나 포레스트 휘태커는 현장에서 한국식 현장 편집의 신속함에 혀를 내두르며 양진모 편집기사를 자신의 다음 영화에 스카우트했다.

< 설국열차 >는 박찬욱 감독이 대표로 있는 모호필름이 제작하고 CJ엔터테인먼트가 제작 전반을 관할하는, 제작비4백억규모의 한국영화라 보는 것이 정확하다. 하지만 송강호와 고아성 외 90퍼센트 이상이 영어권 배우이고 로케이션부터 세트 촬영까지 거의 모든 작업이 해외에서 이뤄진 해외프로젝트라 봐도 무방하다. 촬영은 홍경표 촬영감독이 맡는 가운데 음악감독은 < 헬보이 >, < 아이, 로봇 >등을 맡았던 마르코 벨트라미가 참여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캐스팅이다. < 어벤져스 >의 크리스 에반스와 대배우 틸다 스윈턴과 존 허트가 주·조연급으로 나서고, 옥타비아 스펜서는 < 헬프 >로 지난해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한창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게다가 제이미 벨, 이완 브렘너 같은 여타 배우들이 매 장면 뿜어낼 신 스틸링 경쟁에 대한 기대는 여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기다리는 마음이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향한 광적인 집착을 버리지 못한, 아니 좋게 말하자면 외로운 선구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CJ 엔터테인먼트로서는 ‘글로벌’ 패러다임의 도전이다. 그것은 봉준호여서 가능한 배팅이기도 하다. 이미 와인스타인 컴퍼니와 배급 계약을 체결해 올여름 북미에서 와이드 릴리즈로 개봉할 예정이다. < 디 워 >의 반쪽짜리 기억을 넘어, 국내메인 자본의 영화가 북미에서 와이드 릴리즈하고 흥행에도 성공하는 순간이 과연 찾아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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