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어 백서

12월의 대관령. 쌓인 눈이 다져진 채 녹고 얼기를 이미 반복한 언덕이었다. 다섯 대의 자동차를 몰고 해발 1천 미터 언덕을 올라야 했다. 다섯 대 모두 걸출한 항시사륜구동이었다. 성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보다 험한 길을 이미 여러 번 달려봤다. 그 중 몇 대는 튼튼한 줄만 있으면 견인차로 써도 손색없었다. 하지만 다섯 대 중 두 대가 밀렸다. 속수무책이었다. 언덕을 10미터 정도 언덕을 올랐을 때 바퀴 네 개가 다 헛돌았다. 앞 혹은 뒤가 돌아가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대로 뒤로 미끄러졌다. 언덕은 구불구불했다. 도로 양쪽은 깊이 파인 하수구였다. 백미러와 사이드미러를 번갈아 보면서 핸들을 휙휙 돌렸다. 5미터 정도 밀렸을 때, 마른 땅이 그나마 드러난 곳에서 핸들이 말을 듣기 시작했다. 하수구를 아찔하게 피해, 평지 모래밭까지 내려갈 수 있었다.

타이어가 문제였다. 새 차에 끼운 새 타이어였지만 살펴보니 주름이 별로 없었다. 주름과 주름 사이 간격도 넓었다. 쌓인 눈과 얼어 있는 지면 위에서 접지력을 찾을 수 있는 윈터 타이어가 아니라 반질반질한 기본 타이어였다. 아이스 링크에 구두를 신고 들어간 격이었다. 타이어를 다루는 기술은 극도로 섬세하고 복잡하다.‘고무안에 공기가 들어 있고, 여름과 겨울 타이어로 나뉘며, 연비를 높일 수 있는 친환경 타이어도 있다’는 정도는 마케팅을 통해서도 안다. 하지만 겨울을 대비해 윈터 타이어를 끼우고, 운전 습관에 맞는 타이어를 골라서 그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운전자가 얼마나 될까? 영상 3도만 돼도 아스팔트는 얼어 있다고 보는 게 맞다. 타이어를 이루는 각 면의 고무 재질이 각각 다르고, 그 안에 금속과 천이 들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할까? 승차감, 무게 지탱, 소음, 효율, 가속과 제동 성능을 궁극적으로 제어하는 게 타이어라는 건?

한국타이어 상품기획팀 김승현과장은 이렇게 말한다.“일반소비자는 타이어를 봐도 제대로 알기가 힘들어요. 거기 쓰여있는 숫자의 의미, 바퀴 표면에 새겨져 있는 주름의 효용 같은 것들. 알면 재밌지만, 보통은 차 살 때 끼워진 타이어가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타는 경우가 많죠.” 타이어가 낡으면 위험하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새 타이어를 생각하게 된다. 무심할 수밖에 없다. 타이어와 안전은 직결돼 있지만 사고가 일어나는 상황은 항상 예측할 수 없는, 어떤 극한이라서. 한국타이어 상품기획팀 조성준 대리가 말했다.“타이어의 효과를 경험해보지 않은분들은 잘 몰라요.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다가 마모된 타이어 때문에 몇 미터 혹은 수십 센티미터가 더 밀려서 사고를 경험했던 분들은 명백히 알게 되죠. 그걸 방지하려고 끊임없이 기술 개발을 하는 거거든요.” “자동차가 한계를 만날 때, 타이어의 능력은 시작된다”는 한국타이어의 광고카피는 그대로 사실인 셈이다. 타이어 기술의 진보는 단 몇 센티미터에 판가름 나기도 한다. 조금 더 빨리, 확실하게 정지하는 일. 코너를 조금 더 빨리 탈출할 수 있도록 돕는 일. 연비를 최대한 아끼면서 오래오래 탈 수 있도록 돕는 일…. 승용차와 트럭이 다르고 버스와 SUV가 다르다. F1이나 오프로드 전용 타이어로 가면 또 다른 차원이다.

같은 장르의 자동차를 타더라도 취향에 따라 다르게 고를 수 있고, 그래야 하는 게 타이어다. 농구화를 신고 테니스 코트에 들어갈 순 없고, 육상 선수가 스파이크를 신는 것처럼. 타이어는 복합적이고 미묘하며, 기능적이고 아름다운 오브제다. 그 복잡한 속내를 다 아는 일이 불가능에 가깝다 해도, 마주 앉은 여자의 표정을 읽는 것처럼, 겉에서 읽어낼 수 있는 분명한 코드는 있다. 일단 지금 소개하는 몇 개의 타이어를 유심히 보는 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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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타이어 S1 에보2 UHP(Ultra High Performance) 초고성능 타이어다. 기본 성능은 다 갖추고 있다. 가운데 있는 네 개의 굵은 주름은 기본적으로 물이 잘 빠지도록 설계됐다. 물이 고인 도로를 달릴 때 타이어가 수막을 뚫고 도로에 닿을 수 있도록. 다른 타이어들의 주름도 같은 기능을 한다. 얇은 브이자 모양으로 꺾인 선이 있는 방향이 차체 바깥쪽, 상대적으로 굵고 단순한 선으로 마무리된 쪽이 안쪽이다. 바깥쪽과 안쪽의 디자인이 다른 이유는 고속 코너 구간에서 찾아야 한다. 자동차가 한쪽 방향으로 급선회할 때, 차체는 바깥쪽으로 기운다. 타이어는 코너 바깥쪽으로 실리는 하중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동시에 접지력을 유지해야 한다. 선이 얇은 것은 그 때문이다. 타이어에 파인 선이 얇으면 얇을수록 도로와 타이어가 닿는 면적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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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스 F200 본격적인 레이싱 타이어다. 어떤 홈도 파여 있지 않다. 그야말로 도로와 타이어가 딱 붙어서 달리고 멈추고 꺾일 수 있도록 설계했다. F1 경주에 쓰이는 모든 타이어는 이렇게 생겼다. 타이어와 자동차가 도전할 수 있는 가장 극한의 상황, 마른 트랙에서 최상의 성능을 낼 수 있는 타이어. 달릴 때 생기는 마찰열에 고무가 녹으면 더 강하게 트랙을 움켜쥐고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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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스 R-S3 가운데의 얇은 세로줄 두 개, 그 양옆으로 더 얇은 세로줄 한 개씩. 그걸 다시 가로지르는 날카로운 사선. 벤투스 R-S3은 벤투스 S1 에보2와 벤투스 F200 사이라고 생각하면 맞다. 기본적인 배수 성능을 생각하되, 레이싱 타이어 수준의 접지력을 확보한 타이어. 취미와 취향의 끝, 기본적으로 훌륭한 성능의 자동차를 다시 극단까지 끌어올리는 합리적인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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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스 Z207 F200처럼, 본격적인 레이싱 타이어다. 하지만 F200은 트레드 패턴이 없고, Z207은 있다. 마른 노면 타이어와 젖은 노면 타이어로 구분한다. F200은 마른땅에서 쓰고, Z207은 비가 올 때 쓰는 것이다. 트랙에서 경주가 한창일 때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선수들은 재빨리 피트인으로 들어가서 타이어를 교체한다. 그때 끼우는 타이어가 이런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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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 아이셉트 에보 표면에 잔주름이 무수하다. 더 부드럽게 넓은 면적으로 도로에 닿기 위해서다. 삼겹살에 칼집을 내면 연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언 땅에서는 부드러운 운동화, 연한 타이어가 더 끈끈하게 붙는다.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맹수가 할퀸 것 같은 트레드 역시 기본적으로는 같은 역할, 북극곰의 발톱을 형상화한 미적 요소다. 한국에서는 11월 정도부터 준비해두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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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기입 타이어 한국타이어의 콘셉트 타이어, 공기가 필요 없는 타이어다. 실질적으로 미래를 지향하고, 첨단 기술의 현재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이기도 하다. 원래 공기로 채워야 하는 부분을 각진 구조의 플라스틱으로 설계했다. 공기압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사고를 예방할 수 있고, 주기적으로 공기압을 확인해야 하는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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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나프로 AT-m 프리미엄 SUV 타이어다. 돌, 자갈, 진흙, 눈길 등 오프로드 성능을 극대화하기 위한 설계다. 단단한 고무를 안팎으로 써서 날카로운 돌로부터 상처를 막고, 혹시 돌이 박힐 수 있는 가능성도 최소화했다. 트레드 패턴의 세세하고 저돌적인 각도와 덩어리의 크기는, 이 모든 상황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정밀하게 조정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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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22 두껍고 거대하다. 웬만한 성인 남자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높이, 어딜 달려도 흠집 하나 안 날 것같이 단단한 고무. AH22는 트럭, 버스에 쓰는 타이어다. 열 발생을 최소화해서 내구성을 높이고, 더 오래, 더 적은 연료를 소비하도록 만들었다. 트럭, 버스, 트레일러용 타이어가 다르고, 같은 트레일러 타이어라도 앞바퀴, 중간 바퀴, 뒷바퀴에 쓰는 타이어가 또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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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프랑 에코 고유가, 친환경 시대를 정조준하는, 한국 최초로 에너지 소비 효율 1등급을 획득한 타이어다. 현대 아반테가 5등급 타이어로 리터당 16.5킬로미터를 달릴 때, 이 타이어로는 18.1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다. 타이어도 꼭 그렇게 생겼다. 둥글고 선하게. 트레드 패턴도 둥글둥글, 원만하다. 주행성능과 정숙성을 챙기면서 나뭇잎 그림까지 새겨놓은 귀엽고 영특한 타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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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스 에어로 콘셉트 타이어다. 하지만 트랙 테스트 결과, 벤투스 에어로를 장착한 자동차의 랩타임이 조금 더 빠른 것으로 판명 났다. 비결은 타이어의 옆모습, 사이드월에 있다. 바람길이 지나가는 것 같은 여섯 개의 유려한 날개가 도드라진다. 타이어 자체가 조금 더 트랙에 붙을 수 있도록 돕는다. 고성능 자동차의 디자인이 기본적으로 공기 저항을 최소화기 위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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