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의 향연

삭히고, 썩히고, 띄우고,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모았다. 봉지를 한꺼번에 뜯으면 향의 향연이 시작된다.

1 가자미식해 가자미에 조밥, 무채를 섞어 삭힌 함경도의 토속 젓갈. 밥 위에 올려 한 숟가락 먹으면 매콤하고 쿰쿰한 맛이 혀에서 몸으로 쫙 퍼진다. 뜨거운 목욕탕에 들어가는데 몸이 시원해지는 것처럼…. 술 안주로도 좋지만, 역시 젓갈은 곰삭은 맛으로 먹는 흰 밥의 친구다. 종류는 서양의 샐러드 드레싱보다 다채롭고 향도 허브보다도 강렬하다. 어리굴젓, 갈치속젓, 숭어속젓, 밴댕이젓, 창란젓, 황석어젓, 돔배젓, 세하젓, 오젓, 육젓, 추젓, 동백젓, 토하젓, 자하젓, 곤쟁이젓, 고록젓(꼴뚜기젓), 대합젓, 연어알젓, 방게젓, 전복속젓, 도미젓, 민어부레젓, 대구아가미젓, 고지젓(명태이리젓), 석화젓, 그리고 뛰엄젓(개구리젓)도 있다.

2 송화단 피단이라고도 부르는 이 알은 삭힌 오리알이다. 볏집이나 깻묵에 싸서 삭히는데, 껍질 냄새만 맡아도 쿡쿡 쏘는 냄새가 코 안을 다 들어낼 기세로 파고든다. 주로 중국집에서, 몰캉몰캉한 식감을 살려 냉채 요리에 쓴다.

3 안초비 안초비 생선을 소금에 절여두었다가 올리브 오일에 보관하는 일종의 멸치 절임이다. 절이는 과정에 향신료를 넣어 갖가지 맛의 안초비를 만들기도 하고, 갈아서 버터처럼 굳히기도 한다. 안초비를 즐기는 가장 자신만만한 방법 중 하나는 으깨서 잘 구운 토스트에 잼처럼 발라 먹는 것. 비릿한 향이 와인을 마구마구 부른다. 그런가 하면 호주엔 야채를 삭힌 잼, 베지마이트를 빵에 발라 먹는다. 머리를 관통하는 듯한 퀴퀴한 냄새에 미로 같은 중독성이 있다.

4 과메기 바닷물에 생선을 졸인 것 같은 비린 향이 꾸덕꾸덕 말라붙어 있어야 제대로 된 과메기다. 그 중책은 바람이 맡는다. 바다를 건너온 차가운 바람이 생선을 얼렸다가 녹기를 반복하면 향이 깊게 스민다. 손으로 과메기 껍질을 까본 적이 있다면 그 향이 얼마나 농축된 것인지 알 수 있을 테다. 과메기는 1960년대 이전엔 청어로 만들었지만 지금은 꽁치로 만든다. 늘 먹는 익숙한 꽁치인데, 바람에 따라 이렇게 향이 달라지니 자연의 힘만큼 위대한 게 또 있냔 말이다.

5 피시소스 태국 요리에 피시소스가 빠지면 일본 요리에 간장이 빠지는 것과 같다. 생선이나 오징어를 소금에 절였다가 발효시키는 어간장과 비슷한데, 멸치액젓보다는 덜 지독하고 좀 들큰하다. 팟타이의 맛은 피시소스에서 시작되고, 월남쌈은 피시소스가 빠지면 무너진다. 태국식 볶음밥을 만들 때도 슬쩍 넣는다.

6 청국장 청국장을 발 냄새에 비교하는 건 좀 너무하다. 발 냄새는 시간이 지나도 역겨운 반면, 청국장은 구리구리한 냄새에 금방 익숙해지고 어느 순간엔 구수한 향만 남게 되기에. 음식은 코로도 먹는다는 걸, 그리고 향은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이라는 걸, 청국장을 통해 배운다.

7 두리안 지옥의 향, 천국의 맛이라는 열대 과일. 삭히지 않은 신선한 과일에서 양파 썩는 내가 난다. 두리안을 보고 처음으로 입에 넣어볼 생각을 한 사람이 어떤 의미에서 선구자가 아닐까? 두리안의 향은 흉측해도 속살은 곱다. 치즈 덩어리처럼 단단해서 숟가락으로 퍼먹어야 한다. 좀 싱거운 아이스크림 같은 맛이 나는데, 그게 두리안의 앙큼한 양면성이다. 오죽하면 인위적으로 두리안 향을 첨가한 비스킷을 다 팔까?

8 낫토 낫토는 청국장보단 향이 온순하다. 열을 가하지 않아 유산균이 살아 있고, 실처럼 끈적거린다. 먹을 땐 낫토에 간장과 겨자를 조금 넣고 진득진득한 거품이 일 때까지 젓가락으로 휘휘 돌린다. 일본인들은 끈적이는 감촉을 ‘네바네바’라고 부르는데, 어떤 이들에겐 냄새보단 이 식감이 더 높은 장벽이다.

9 블루 치즈 처음 블루 치즈를 먹을 때 코를 훅 치고 들어오는 고린내에 온몸을 움찔거렸던 기억이 난다. 꿀에 찍어 먹고, 와인에 곁들어 먹는 타협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 고린내가 향기롭게 느껴지면서 미처 몰랐던 매콤한 맛과 혀가 아릿한 맛까지 풍긴다. 곰팡이마저 대리석 바닥처럼 아름답게 보였다고나 할까?

10 삭힌 두부 중국와 태국, 대만 등지에서 먹는 고난도의 삭힌 음식이다. 판매하는 사람도, 요리하는 사람도, 먹어본 적이 없는 이에겐 권하지도 않는 식재료다. 달걀 썩은 냄새가 올라오고 화학약품을 뒤섞은 것 같기도 한 냄새가 나니까. 그런데 이 고비만 넘기면 치즈처럼 부드러운 맛에 푹 빠지고 만다는 게 즐기는 사람들의 증언이다. 따뜻한 밥에 비벼 먹거나 튀긴 뒤 핫소스를 뿌려 먹는다.

11 나라스케 우리식 발음으로 바꿔 나나스케라고도 부르는 울외장아찌다. 호박도 아니고 참외도 아니고 오이도 아닌 울외를 사케 지게미에 박아 발효시킨다. 이걸 깍뚝 썰면 보기엔 그냥 단무지 같지만, 막걸리가 부글부글 발효하는 듯한 술 냄새가 정체를 확실히 구별 짓는다.

12 삭힌 깻잎장아찌 깻잎을 소금물에 담가 2~3일 삭히면 뻣뻣했던 깻잎 향이 나른하게 퍼지고, 시큼털털한 향이 확 살아난다. 이걸 양념해 밥 위에 올리면 시골 밥상을 받은 기분이 든다. 푹푹 삭은 노란 콩잎에 멸치젓갈 양념을 한 장 한 장 바르면 경상도, 거기서도 시골에서만 먹는 밥반찬이다. 젖어 뭉개진 낙엽을 먹는 것 같은 희한한 맛이 매력이다.

13 삭힌 홍어 영상 18도에서 일주일 삭힌 홍어를 먹을 땐 냄새가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정갈하게 펼쳐진 홍어 위로 탄산처럼 암모니아 향이 피어오르는 장면. 홍어를 초고추장에 찍어 입에 넣으면 코로 그 향기가 스프레이처럼 뿜어져 나오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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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피처 에디터] Eat, Drink,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