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디제이로 산다는 것

DJ라는 놀이에도, 룰과 배경지식이 갖춰져야 한다. 그래야 DJ라는 놀이가 훨씬 더 재밌어지니까.

“어떻게 디제이가 되셨어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1984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그랜드믹서 디. 에스티가 보여준 기념비적인 디제잉 퍼포먼스 때문이다. 그랜드믹서 디 에스티는 번쩍거리는 안테나가 달린 헤드폰을 쓰고 무대로 나와 관객들에게 카운트다운을 주문했다. 그는 관객들이 숫자를 세는 동안 옆에서 손수건으로 유유히 손을 닦았다. 그 뒤에 벌어진 광경은 그야말로 놀라웠다. 그는 턴테이블과 그 위에 놓인 레코드를 손으로 밀고 당기며 형언하기 어려운 소리를 만들어냈다.

요즘은 대형 클럽이나 페스티벌에서 디제이들이 노트북으로 음악을 틀고 있는 건지 채팅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지만, 그 당시엔 모든 것이 명료했다. 왼쪽 턴테이블을 돌리면 왼쪽에서 소리가 나는 것임을 알 수 있었고, 오른쪽 턴테이블을 돌리면 소리가 그쪽으로 옮겨가는 것이었다. 레코드를 앞으로 밀면 앞으로 돌리는 소리가 나고, 뒤로 당기면 그 소리가 거꾸로 난다는 건 턴테이블 문외한인 초등학생이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랜드믹스 디 에스티는 퍼포먼스 내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시간과 소리를 지배했다. 그를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기운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이 묘사가 다소 과장스러울 순 있지만, 채 열 살도 되기 전에 맞은 디제이에 대한 첫인상이 이러했으니 내가 페스티벌에서 10만 관객이 운집하든, 현란한 영상과 조명이 동원되든, UFO를 띄우든 그것이 본질과 핵심을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디제잉은 적어도 나와 동세대에서만큼은 직관의 예술로 출발한 셈이다.

두 번째로 많이 듣는 질문은 “왜 항상 바이닐 레코드를 고집하나요?”다. 그리고 대부분은 아날로그에 대한 찬양, 예스러운 방법의 아름다운, 장인정신 같은 대답을 기대하는 것 같다. 잠깐. 난 아날로그 순수주의자도 아니며, 기술 혐오주의자는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왜? 전 세계에 500장밖에 없는 내 레코드가 루이 비통 백보다 비싸다는 걸 자랑하고 싶어서? 힙합 디제이의 전통을 계승하고 싶어서? 둘 다 아니다. 2백만원짜리 레코드는 디제이 가방에 넣고 다니는 순간 닳고 헐어서 ‘소리 나는 쓰레기’로 변하고 만다. 힙합은 항상 새로운 기술과 개념의 발전을 가장 빨리 받아들이는 예술 형식이다. 대답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 바이닐 레코드가 편하고, 손에 익숙하며, 그 방법으로 더 할 것(혹은 배울 것)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모든 음악을 아날로그 레코드로 트는 ‘Strictly Vinyl’이란 파티를 열고 있지만, 이것은 순수주의자들의 모임이 아니다. 오히려 어린 세대들에겐 새로운 경험이며, 가장 원론적이고 직관적인 방법을 보여주는 시간에 가깝다. 디제잉를 막 시작하려는 친구들이 부스 앞에 옹기종기 모여 디제이를 구경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 또한 이 파티를 여는 하나의 즐거움인 셈이다. 결국 특별히 고집하지는 않았으나 이젠 고집이 됐다. 뭔가를 자신만의 방식대로 지켜나가는 일은 가치 있지만, 그런 모습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보다 고집스러운 모습으로 비춰진다. 기술의 발전을 신속하게 받아들이고 최대 다수의 공감을 이끌어내 한류에 이바지하는 것이 당대 문화사업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히는 시대니까.

생각해보면 나는 굉장히 운이 좋은 디제이라 할 수 있다. 올드 스쿨 힙합의 전설적인 디제이 쿨 헉Kool Herc은 “나는 (클럽에) 고용되는 디제이가 아니라 누군가를 고용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나의 모토이기도 하다. 단 한 번도 클럽에서 일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 결코 자랑은 아니지만, 이것은 선택이라기보다 내 취향에 맞는 음악을 틀 수 있는 클럽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비슷한 뜻을 가진 디제이들이나 친구들이 모여서 함께 움직임을 만들어나가고, 칭찬과 질책을 해주어 쉬지 않고 해낼 수 있었다.

클럽의 많은 디제이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고, 가끔은 좌절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좋아하는 음악이 아닌 차트 Top 40을 틀어야만 하고, 제발 입을 다물어줬으면 하는 사람들이 음악에 간섭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거시적으로 볼 때, 그런 갈등도 어느 정도는 건강한 신의 구성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믿는다. 순행과 역행의 반복을 통해 신은 성장하기 마련이다. 뉴욕의 파라다이스 개러지나 터널같은 클럽 역시 지금이야 신성한 EDM(Electronic Dance Music)의 발상지로 인정받지만, 그곳의 디제이들에게도 분명 지금과 비슷한 희로애락이 있었다. 오히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디제이들의 아이디어와 능력이라 말한다면, 내가 너무 이상적인 걸까?

오늘날의 대형 페스티벌이나 유튜브, 팟캐스트 등은 클럽의 명성과 권력을 디제이에게로 이동시켰다. 과거 어느 때보다 개인의 홍보 수단은 강력해졌다. 디제이들이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만들어나갈 수 있는 새로운 활동 기회가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디제이로서 세 번째로 많이 받는 질문, “어느 클럽에서 음악 트세요?” 에 대해 그저 “(일하는 클럽은) 없어요”라고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만의 방법을 선택하고 밀어붙일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클럽과 파티는 분명 소비를 통한 놀이이고 유흥이지만, 한편으로는 거기가 아니면 느끼기 어려운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다. 집에서 느낄 수 없는 음압, 조명과 영상, 각기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 등 그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이런 경험을 만끽하기 위한 하드웨어적 구성은 이미 완료되었다. 한국의 대형 클럽, 페스티벌의 하드웨어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반면 소비 이면에서 동작해야만 할 창작, 생산과 그것을 다루는 ‘아카이빙’이나 ‘메타 크리틱’에 대해선 여전히 물음표가 남는다. 일례로 클럽과 파티 문화를 다룬다는 매체들을 살펴보면, 음악 기사의 비중이 턱없이 적다. 모 매거진의 1월호엔 음악 관련 기사가 전체 117페이지 중 17페이지 실렸는데, 그마저도 화보를 포함한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었다. 대다수의 잡지엔 음악 전문 기자도 없다. 외고 청탁 전화를 받으면서 “Salsoul이나 West End, Strictly Rhythm, Cold Chillin 같은 클럽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레이블들의 리뷰를 해보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하면, “죄송한데 너무 딱딱한 건 싫고요, 저희가 주로 클럽 패션이나 파티 리뷰를 다루고 있어서…”라고 일축당하기 일쑤다.

당연히 모든 사람이 음악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원점으로 돌아와서 생각해보면, 이 신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어쨌든 대부분 놀이에 가깝다. 놀이를 즐길 땐 룰과 배경지식을 잘 아는 편이 훨씬 더 재미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삶을 흥미롭게 만들어준다면, 어느 정도 시간과 정성을 투자할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나를 포함한 디제이들을 위해 이집션 러버가 이런 질문을 남겼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스크래치도 못하면 그게 무슨 디제이지? What is a DJ if he can’t scra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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