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 열두 개의 질문

<지큐> 에디터들이 마감 중에 편집장에게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았다. 편집장은 저 나름대로 충실한 답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E.L.

에디터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수용하고 선별해 독자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좋은 에디터가 되려면 개인적인 취향을 지워야 할까요? 오충환
객관이란 게 있나? 어떤 객관적인 사실조차 주관을 떠날 수 없어. 세상에 ‘표준시간’이란 개념은 없듯이. 받아들인다는 것만이 문화에 대한 의무가 아니야. 그건 가치, 원칙에 관한 거야. 넌 네 취향을 단호하게 확신해도 돼. 그럴 만하니까.

저희를 예뻐하시는 거 알지만, 뭐라도 잡히는 대로 비틀어버리고 싶으실 때도 있을 거라는 것도 알아요. 그럴 때 어떻게 마음을 추스르세요? 정우성
인간 다 그렇지, 머리털 검은 짐승은 거두지 말라고 했지, 이러면서 금강경을 마구 읊어. 사실 진심은, 너희가 나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들이란 걸 알아. 그래서 너희가 나를 마구 화나게 해도, 성자도 실수할 때가 있는 거라고 믿고 싶…은데… 잘 안 돼. 확실히 주먹만큼 빠른 약은 없더라. 아직 당신들을 본격적으로 팬 적은 없지만. 쳇!

잡지가 유명인을 다루는 문제는 언제나 예민합니다. 눈만 뜨면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시시콜콜 드러나는 세상에, 지금 잡지가 유명인을 다루는 일이 여전히 독점 기사로서의 가치가 있을까요? 장우철
명성은 바이럴 비디오 시대에 결정적인 자극이자 절대적인 힘이지. 그래서 이젠 모두가 유명인이 되었잖아. 동시에 망상에 찬 스토커도 되었어. 그런 마당에 독점이란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현대의 명성 형성 공식은 두 가지야. 시장이 증명하는가, 존재감 자체가 드러나는가. 나는 옳은 가치를 아직도 팔아치우지 않은 사람의 긍지를 존중해. 삶을 흥미롭게 만드는 건 작은 문화적 저항이니까. 물론 잡지는 유명한 이들을 집중적으로 수집하고 전시해. 근데 나는 누가 아무리 결벽하다 해도 별로 궁금하지 않아. 인간은 알수록 실망하게 되니까. 난 떠들썩한 라이프스타일은 싫어. 그냥 사물의 본질을 밝히고, 독자를 웃게 만들고 싶어.

벤츠 G350 한 대와 각각 색깔이 다른 롤렉스 서브마리너 열 개 중에서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뭘 고르시겠어요? 박태일
서브마리너. 왜냐하면 몸은 하나니까 한 번에 차 한 대에만 탈 수 있지만, 시계는 중공군처럼 한 팔 가득 찰 수 있잖아. 그런데 왜 하필 서브마리너지? 난 딥 시드웰러가 좋아. 3900미터 해저까지 내려갈 일이 있겠냐마는. 그래도 그거 줘.

일은 잘하지만 말 안 듣는 후배, 일은 못해도 말 잘 듣는 후배. 누가 좋아요? 박나나
단연코 후자. 상사의 말을 안 듣는다는 건, 나는 당신과 일할 생각이 없다는 사인을 보내는 거야. 그럼 <지큐>를 떠나 밖에서 자기만의 왕국을 차리면 끝. 참 쉽지?

트위터를 하시는 게 의외라면 의외인데요, 트위터는 사용자마다 개개인의 뚜렷한 용도가 있다고 봅니다. 편집장에게 트위터란 어떤 도구인가요? 유지성
청중들이 지배하는 세상은 너무나 많은 ‘참여’로 포화상태가 되었어. 한꺼번에 백 만개의 목소리가 들리니, 차라리 바깥 트렌드를 못 좇아 안달인 감옥 안 죄수가 된 기분이야. 단기간의 응답과, 판단을 가속화시키는 기술과, 짧은 만족과, 대중적 비웃음과의 부정적인 상호작용이랄까. 하지만 나에게 트위터는 순간의 일기일 뿐이야. 어렸을 때 매일 공책에 적다가 이젠 그만둔 일기 대신이야. 그게 다야.

오늘 아침 엄마에게 한 첫 번째 말은 무엇인가요?손기은
“어? 일어나셨네? 오늘은 기분 좀 어때?”

계획 없이 사들인 책이 온 집 안을 무너뜨리기 직전이에요. 꼭 책의 집에 얹혀사는 기분이 들어요. 책 애호가로서 책을 보관하는 비법도 있겠죠? 살려주세요! 강지영
그럼 우선 태평양처럼 넓은 집으로 이사 가서 방마다 서재로 꾸며. 그렇지만 돈이 없겠지? 그래서 난 우리 집 천장을 뜯었잖아. 방의 3.5면에 책장을 짜 천장 끝까지 책을 쌓았어. 너도 얼른 뜯어. 하지만 책을 읽음 뭐하겠니? 다 까먹을 건데.

매일 레몬을 드시잖아요. 도대체 편집장에게 레몬이란 무엇인가요? 그리고 왜 진은 좋아하면서 스키니 진은 입지 않으세요? 김경민
레몬은, 없이 지내면 못 살 것 같은, 아주 속 좁은 친구야. 스키니 진을 안 입는 건, 바지가 스키니하다고 해서 내가 스키니해지는 건 아니니까. 닥터마틴을 신은 나이든 어른 남자는 뭔가 부정하는 것처럼 보여. 나한텐 스키니 진이 꼭 그래.

GQ KOREA는 만드는 사람이나 잡지 성격이나, ‘보수성’에 대한 상식적인 합의가 잘 돼 있지요. 한국에서 통용되는 ‘보수’완 다르지만요. 만약 그 합의를 무시할 수 있다 해도, 지금 같은 잡지를 만드실까요? 아님 더 급진적일까요? 정우영
난 도대체 보수니 급진이니 하는 논의 자체가 싫어!

라이선스 잡지란 말은 가끔 공허하게 들립니다. 그 말은 얼마나 우리를 얽매게 할까요? 우리가 세상의 중심이 되는 걸 꿈꾸기도 하니까요. 양승철
잡지는 한 편의 작은 희곡이야. 종잡을 수 없는 세대의 아우성을 해석해야 돼. 하지만 때로 라이선스 잡지가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얼마나 현안에 무심한지, 기절 일보 직전이야. 장황한 기사, 역겨운 과시, 미친 영어, 에디터의 1인칭 화법…. 그런 걸로는 열정적인 정박아들이나 가르치겠지. 잡지가, 묘기 같은 콘텐츠로 사람을 끌어 모은 뒤, 그들의 시선을 ‘광고주'(아, 이 말 진짜 맘에 안 든다) 에게 넘겨 일용할 양식을 받는 패턴을 답습하며, 존재감과 생존의 경계를 헤매는 시대라면, 잡지 만드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꿈꿀 수 있을까? 이 새로운 홀림 상태는 어디로 향할까? 나도 궁금해. 그래서 매일이 자존심을 지키는 전장이 되고 말았어.

편집장은 12년의 견습 기간을 거친 완성된 지큐맨으로서, 이렇게 생각도 깊고 완전 훌륭한 에디터들을 여전히 사랑하시겠지요? 이충걸
내 생각에, 지큐맨의 표식은 지도에 나온 모든 곳을 다니고, 4가지 와인과 15가지 식기가 구비된 저녁 식사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알고, 신발 브랜드에 그의 이름을 딴 라인이 있고, 속박하기 어려우며,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역사를 이해하는 단계로 인식하며, 어떤 일로 그와 거리를 두었을 때 그걸 너무나 후회스럽게 만드는 사람이야. 내가 그래 보여? 딱 봐도 아니잖아? 난 갈 길이 멀고, 철도 없으니까, 에디터들이 하는 걸 봐서 정할 거야. 사랑할지 자를지. 이게 나야.

SIGNATURE

SHARE
[GQ KOREA 편집장] 2001년부터 GQ KOREA 편집장을 맡고 있음. 잡지를 통해 문화와 스타일을 다루어온 그 시간 동안, 정작 자신이 얼마나 세속적인지 허무하게 깨닫게 됨. 그래도 잡지 만드는 일을 너무 좋아해서 해보지 않은 ‘여타의 것’들에 대한 어떤 아쉬움도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