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홍상수를 기다리는 마음

2013.03.02GQ

238GQK-critiques(본지)-8

류승완 감독에게 사석에서 들은 말이다. 그가 < 베를린 >을 촬영할 때 하도 상황이 꼬여 하소연하려고 박찬욱 , 봉준호, 김지운 감독에게 문자를 보냈다고 했다. 박찬욱 감독에게서는 왜 너까지 징징대냐는 쿨한 답장이, 김지운 감독에게서는 동병상련의 위로 답장이, 봉준호 감독에게서는 예술적 성찰을 담은 엄살을 피운 답장이 왔다고 했다. 결론은 믿을 사람 하나 없다고, 하지만 모두 잘하고 있는 것 같다고 류승완은 선배들을 평했다. 류승완의 우스개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그들의 십수 년 전 모습을 생각했다. 박찬욱은 < 공동경비구역 JSA >를 만들 때까지 충무로의 계륵이었다. 이론엔 박식하나 연출현장에선 산으로 가는 지식인형 책상물림이라는 대접을 받았다. 봉준호는 데뷔작 < 플란다스의 개 >가 완전히 망해서 마니아 취향의 영화를 만드는 전도 무망한 감독으로 분류되었다. 김지운은 충무로 경험이 전혀 없이 시나리오 당선작을 데뷔작으로 연출해 어디로 튈지 모르지만 그래도 괜찮은 코미디 감독은 되지 않을까, 다들 짐작했다.

2000년대 중반에 이들은 한국영화의 수준을 대표하는 주류감독으로 올라섰다. 그들의 예술적 취향과 대중적 감각의 균형 짓기를 통해 한국의 주류 영화는 활력을 얻었다. 적당히 모험을 감수하면서 작가연하고 싶은 수많은 청년 감독은 그들을 모범으로 삼았지만, 그들이 점점 더 과감하게 모험을 할수록 대중은 조금씩 그들의 영화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는 듯 보였다. 박찬욱은 가는 곳마다 열렬한 상찬을 받고 처음 가는 식당이나 술집에서도 늘 주인장이나 셰프가 준비한 특별요리를 서비스로 맛볼 만큼 귀빈 대접을 받지만 사석에서 박찬욱의 영화는 왜 그리 변태스럽냐고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평범한 사람들도 많다. 봉준호는 < 괴물 >의 기념비적인 성공 이후 그가 가장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밀어붙여 < 마더 >를 세상에 내놓았으나 한국적 모성의 실체를 음울하게 해부하는 이 영화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당혹해하는 사람도 많았다. 김지운은 어떤 영화를 만들어도 때깔 좋은 스타일로 관객을 압도하지만 < 악마를 보았다 >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그의 자기도취적 스타성의 나른한 노출과 불편한 물리적 진실을 폭로하려는 야심 사이에서 관객은 어딘가 모르게 이물감을 느낀다.

그들의 영화를 곁에서 지켜보며 대체로 지속적으로 우호적인 평을 써온 입장에서 그들의 영화가 대중에게 혹시 피로감을 준다면, 그리고 그들의 영화를 잇는 상업적 작가영화의 전통이 탈색돼버린다면, 평자로서 느끼는 직업적 보람과 재미도 줄어들 것이라는 사적인 우려도 없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은 옹졸하게 대한민국에 갇혀 사는 필자의 처지와는 달리 세계로 뻗어나가, 적어도 매체 활자를 통해 가늠하기로는 국위선양의 기치를 높이 세운 스포츠 스타들만큼이나 해외에서 주목할 만한 활약을 선보였다. 박찬욱은 니콜 키드만 등을 데리고 폭스 서치라이트에서 중간 제작비 규모의 미국식 예술영화를 찍었으며 김지운은 할아버지가 된 마초맨 아널드 슈워제네거를 데리고 박찬욱의 영화보다는 조금 규모가 큰 활극영화를 찍었다. 오우삼이나 서극 등이 할리우드에 진출하면서 장 클로드 반담급의 스타를 데리고 찍었던 B 액션 무비보다는 여러 모로 형편이 나은 할리우드 데뷔작이었다. 봉준호는 한국의 자본으로 체코에서 다국적 배우와 스태프들을 거느리고 송강호가 주연하는, 프랑스 만화를 원작으로 새 영화를 찍었다.

들려오는 얘기는 흉흉한 사건 사고가 섞인 일종의 영웅담이었다. 박찬욱과 김지운의 작업을 통해서 한국의 영화인들은 말로만 듣던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통제 시스템이 얼마나 살벌하고 물샐 틈 없이 진행되는지를 입을 벌리고 들어야 했다. 현장의 조감독과 프로듀서부터 스튜디오의 고위 중역들까지 크로스체크하는 할리우드 시스템은 화면의 크기, 조명의 감도에 이르기까지 감독 혼자 마음껏 결정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우리 대한의 건아들은 책에서 배운 존 포드 등의 할리우드 거장들이 얼마나 교활하게 자신들의 개성을 지켜냈기에 할리우드의 통제와 억압 시스템도 이토록 체계적이고 저인망식으로 꼼꼼해진 것인지 두려움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 색깔을 기어코 지켜내고 말았다는 대반전의 서사를 만들어 지인들에게 공급했다.

봉준호의 경우는 좀 다르다. 봉준호가 찍은 새 영화 < 설국열차 >에 참여한 외국의 유명 배우들이 몇몇 영화 잡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어찌나 봉준호를 침이 마르게 칭찬했는지, 그게 관행적인 자기 영화 홍보 마케팅 차원에서 이뤄지는 사탕발림 말이 아니라는 게 그 잡지들을 읽은 사람들의 전언이었다. 봉준호는 현장에서 이뤄지는 모든 촬영의 쇼트들을 머릿속에 완전히 저장해놓고 있어서 영화를 찍을 때 이미 편집이 완성된 것이나 진배없다는, 위대한 히치콕 감독의 전설에서나 들을 수 있는 극단적 칭찬이 나돌고 있었던 것인데, 그런 소문을 들은 박찬욱이나 김지운, 심지어 류승완에 이르기까지 봉준호와 친한 감독들은 모두 마음속으로는 그건 우리도 다 갖추고 있는 스킬 아니냐고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한국의 영화계도 할리우드를 벤치마킹하여 날로 각박해지고 있다곤 하지만, 잘나가는 감독들의 경우 여전히 모든 걸 감독이 결정할 수 있는 우리 현실에서 그들은 바다 건너 다른 나라에서 영화를 찍으며 돈과 예술의 화해할 수 없는 이중주를 알아서 연주해야 함을 경험했다.

홍상수의 경우는 그들과 다르다. 새 영화를 만들 때마다 칸, 베를린, 베니스 어디서도 스케줄만 맞으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이 거장은 굳이 해외에 나갈 필요 없이 자신이 일하는 대학 연구실에서 배우들과 미팅하고 옆에서 지켜보기에는 도깨비 방망이 휘두르듯 며칠 만에 뚝딱 장편영화를 촬영해서 적당한 시기에 세상에 공개한다. 올해 베를린 영화제 경쟁 부문에 <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을 출품한 홍상수는 이미 한 편의 영화를 더 완성해놓았고, 소문에는 한 편 더 촬영했거나 할 거라는 얘기도 들린다. 그는 화가가 소묘 스케치를 하듯 영화 제작에 관한 기왕의 통념을 사뿐하게 넘어서서 산업과는 상관없이 크게 힘들이지 않고 자기 영화세계를 왕성하게 구축하고 있다. 그의 영화에 출연하는 유명 배우들은 노개런티로 일하는데도 별다른 불만이 없다. 아마 그들에게 홍상수의 영화에 출연하는 것은 정신적인 마사지를 세게 받는 것과 비슷하게 후련한 쾌감의 뒤끝을 안겨주는 모양이다.

2000년대 중반 아직 홍상수가 주류 한국영화산업에서 영화를 찍을 당시, <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 개봉 무렵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혹 한국영화계가 당신의 영화에 투자하지 않는 상황이 오면 디지털 저예산 영화를 찍을 것이냐고 무례하게 물은 적이 있다. 그때 홍상수는 이미 마음속으로 대비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반신반의했다. 과연 유럽에서 환영받는 이 세련된 예술가가 저예산의 제작조건을 이겨낼 수 있을지 걱정했다. 내 우려는 기우였고, 그는 이전보다 훨씬 왕성한 속도로 새 영화를 만들어낸다. 일각에서 모든 홍상수의 영화는 똑같다고 비난해도 그는 개의치 않는다. 세잔이 동일인물의 그림을 연거푸 그렸던 것처럼, 그는 남녀가 만나 소소한 관계를 엮다가 헤어지는 얘기를 공간을 바꿔가며 계속 변주한다. 홍상수의 이전 영화에서 본 듯한 상황이 되풀이되더라도 인물과 공간이 바뀌는 가운데 등장인물들의 사소한 삶의 편린들에 대한 감독의 시선은 수평적인 연민에서 형이나 오빠가 귀엽게 관찰하고 긍정하는 듯한 공감으로 변하고 있다.

나는 이들 감독이 데뷔작을 만들 때부터 옆에서 지켜봐온 평자다. 그들의 영화가 있었기 때문에 흥분되는 순간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 중 가장 선배인 홍상수는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 이후 한때 2000년대 초반까지 영화과 졸업반 학생들이 추앙하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젊은이들은 그들의 하찮은 일상이 심오한 미학적 성찰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홍상수의 영화를 통해 확인하고 용기를 얻었다. 그러나 홍상수가 결국 주류산업에서 퇴각해 자기만의 영역에서 굳세게 버티고 가는 길을 택하자 홍상수의 이후 세대에 대한 영향력은 현저히 줄었다. 대신 작가적 명성을 잃지 않으면서 텔레비전 CF에도 출연하는 세속적 명예를 누리는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을 벤치마킹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났다.

여하튼 그들 모두 이제 한국영화계의 어른이 됐다. 영원한 액션 키드일 것 같았던 류승완 감독마저도 이제 애가 셋 딸린 중년 남자다. 그들이 닦아놓은 길 위로 후배 감독들이 보여주는 전통이 연속성이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닌 듯하다. 한국영화는 점점 경쾌해지고 있고 숱한 흥행작 가운데 감독들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영화들도 부지기수다. 산업이 그런것 아니겠느냐고 하면 할 말 없지만, 그래도 영화가 예술적 동력을 잃지 않는 것은 돈의 맛을 추구하는 영화판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비전을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비범함과 총기와 배짱을 부리기 때문이다. 그 누군가의 역할은 곧잘 감독의 역할과 동일시된다. 영화는 결국 감독이 만드는 것이라는 작가주의가 표방된 지 반세기가 훨씬 지났음에도 여전히 영향력이 있는 것은 그만큼 감독의 예술적 역할이 영화산업에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 짐작과 기대로는 박찬욱과 봉준호는 그들의 고유성을 새 영화에서도 잃지 않았을 것이고, 김지운은 영리하게 할리우드 시스템에 자기 색깔을 입혀 적응한 오락영화를 만들었으며, 홍상수는 앞으로도 돈을 포기한 채 굳건하게 자기만의 작은 캔버스에 새 그림을 그릴 것이다. 나는 이십 년이 지나도 그들의 작품세계에 지속적으로 우호적인 평을 기고한 내 심미안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받고 싶다.

    에디터
    글/ 김영진(영화 평론가)
    일러스트레이션
    김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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