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애 소설 이후

238GQK-critiques(본지)-11‘엄마들의 포르노’는 어디까지 물들일까. 이전의 ‘빨강’이 음지에 머물렀다면, 선진국이자 성진국의 인증을 받은 ‘회색’은 지하 문학을 양성화하다 못해 활성화할 기세 다. <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이하 < 그레이 >) 얘기다. 물론 이 땅에서 ‘엄마들의 포르노’는 은근슬쩍 ‘언니들의 포르노’로 초점을 옮긴다. 시장을 잡고 있는 30대 여성을 겨냥한 별칭 추가는 당연한 계산이다.

< 그레이 >는 어떻게 출현했을까. 로맨스를 읽지 않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로맨스 소설은 두꺼운 향유 층을 유지한채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서점판매대를 벗어나 이제는 이-북 시장으로 확장하고 있는 로맨스 소설은 인터넷 특성에 부합하며 그야말로 만개했다. 로맨스소설이 이-북이 성공하는데 커다란 동력이 된 것은 분명하다. 바야흐로 지하철에서, 손안에 펼쳐진 로맨스 소설이나 에로틱 로맨스를 읽는 시대가 도래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빨간’ 표지나 내용을 애써 가릴 필요가 없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남의 눈을 의식할 필요없이, 로맨스소설을 다운로드 할 수 있게 되었다. 로맨스 독자들이 사생활을 보장받게 된 덕에, 출판사들도 위험을 감수하고 더 과감해졌다. 섹스 장면을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대세’로, 점점 더 파격적인 섹스 장면들이 등장했다.

이런 로맨스 소설을 가리켜 ‘에로틱 로맨스’라고 부른다. 에로틱 로맨스 작가들은 로맨스 소설의 본질적인 요소를 유지한 채, 추가적으로 변태적인 섹스 장면을 자세하게 묘사한다. 여성 에로 문학의 경계를 확장시킨 에로틱 로맨스에 등장하는 섹스 장면이 더 변태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했더라도, 여전히 이런 책들에서 여주인공이 경험하는 감정적 교감은 매우 중요하다. < 그레이 >도 로맨스 요소에 변태적인 BDSM(결박-훈육-가학-피학)이 충분히 뒤섞여 있다. < 그레이 >가 호응과 공감을 얻는 이유에 대해서라면 비교적 매끈한 대답이 있다. 남자와 여자의 성적 욕망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는 위험이 있지만, 이런 손쉬운 이분법에서 시작하는건 꽤 쓸만한 도입부다. 남자는 포르노, 여자는 로맨스.

포르노 소비층은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포르노는 시각적 자극에 흥분하는 남자의 욕망을 활성화시키는 신호로 가득하다. 남자는 이런 신호 ‘하나면’ 충분하다. 성적 신호이기만 하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가슴이든 엉덩이든 얼굴이든 몸매든 신호가 단 하나만 있어도 남자는 흥분한다. 반면, 로맨스 소설의 독자는 여자가 대다수다. 여자는 심리적 신호에 더 흥분한다. 그래서 로맨스 소설은 인물의 감정과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춘다. 로맨스 소설은 여자의 욕망을 활성화시키는 심리적 신호를 모아 독자를 매혹한다. 그것들이 이미지보다 이야기나 대화를 통해 더 잘 전달되는 이유는 여자는 ‘하나로는’ 부족 하기 때문이다. 남자보다 훨씬 많은 신호들에 만족해야 심리적 흥분을 한다. 로맨스 소설을 두고 ‘여자들을 위한 포르노’라고 하는 이유다.

로맨스 소설에서 여자는 무엇을 욕망할까? 마담 드 스탈의 저 유명한 말을 떠올려도 좋겠다. “남자의 욕망은 여자를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여자의 욕망은 남자의 욕망을 대상으로 한다.” 여자들에게 작동하는 기본적인 욕망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저항할 수 없는 성적 매력을 갖는 것이다. 사랑스러운 여자가 되고 싶고, 치명적인 성적 매력을 갖고 싶고, 멋진 남자가 자기만의 특별함을 사랑해주길 바라는 욕망. (더 풍부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 낭만전사 >와 < 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 >에서 읽을 수 있다. 이 부분은 이책들의 요약에 불과하다.)

< 그레이 > ‘현상’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억압된 욕망이 뒤틀린 채 추구되는 이곳의 현실을 떠올려보면, < 그레이> 현상이 더 널리 퍼지는 것 자체가 어떤 가능성을 촉발할 지도 모른다. < 그레이 >는 분명 50가지 이상의 방식으로 이 곳을 조금씩 바꿀 것이다. 그 변화가 좋은 방향일지 나쁜 방향일지 알 수는 없겠지만, 욕망에 더 개방된 세상을 사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 세상에서 < 그레이 >는 누구에게는 안전한 교본으로, 누구에게는 오글거리는 코미디로, 누구에게는 누려보지 못한 젊음에 대한 질투로, 소란스럽지않게 여럿에 맞는 여럿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욕망에 솔직해질때 얻을 수 있는 부가 소득이 있다. 자신의 기준과 다른 가치에도 너그러워지는 것이다. 가치에 위계를 두는 것이 뒤집어진 금욕에서 비롯된 편견의 결과에 불과하다는 깨달음. 이미 알려졌듯이 < 그레이 >는 < 트와일 라잇 >의 ‘팬픽’으로 출발했다. 판타지 로맨스에서 에로틱 로맨스로 변형된 셈이다. 아마추어들이 스스로 웹에서 팬픽을 창작하는 일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로맨스 소설이 인터넷과 결부되어 진화한 형태의 하나인 팬픽 덕분에 여자들도 변태적인 성향을 더 과감하게 표현하게 됐다. 분명 인터넷은 로맨스 소설에 획기적인 기여를 했다. 수많은 사람이 읽고 호응하고 공감한 책이 다름 아닌 (유사) 팬픽 장르라는 점에서, 불필요하게 성을 쌓던 장르 간의 위계 하나가 흔들릴지, 아니면 새로운 허위와 위선이 생길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최근 출간된 김혜나의 < 정크 >에 순문학이라는 억지 꼬리표를 붙이려는 노력은 조금 우스꽝스럽다. < 그레이 > ‘현상’이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면, 이런 소설들이 자신의 기원과 가문에 더 당당해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한국에서 < 그레이 >를 구매한 수십만의 독자에게 성적 욕망이라는 범주만 작용한 것은 아니다. 그 외의 다른 욕망도 이곳의 < 그레이 > ‘현상’에 뒤섞여 있다. 예를 들어, < 그레이 >를 한국어 번역 판본이 아니라 영문판으로 소비하는 독자. 외국어 판본의 에로틱 로맨스를 이-북으로 다운로드 받아 읽는 것은 두 겹의 사생활 보호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실질적으로는 야설을 즐기면서도, 동시에 ‘원서’를 읽는 독자로서의 표식을 잃지 않게 되었다. 물론 ‘원서’로 에로틱 로맨스를 읽는 독자 일반을 향한 시선은 아니다. < 그레이 > ‘현상’의 부수적인 효과일 테고 그 효과는 누리는 자의 몫이다. 또, 팬픽을 보는 자식은 용납할 수 없지만 ‘원서’ < 그레이 >는 미성년자인 자녀 대신 구매해주는 부모의 욕망도 생각할 수 있다. 자식이 섹스를 일찍 아는 건 두렵지만, 영어를 못하는 건 더욱 두려운 한국 부모에겐 가능할 욕망. 다른 욕망에 충실하려는 시도가 금기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기도 한다.

막상 먹어보니 별것 없더라는 소문이 떠돌아도, 백화점에서 독일과자 ‘슈니발렌’을 사려는 줄은 여전히 길다. 굳이 긴시간 줄을 서서 ‘줄까지 서가며 먹을 맛은 아닌’ 슈니발렌을 사려는 욕망은 뭘까? < 그레이 >를 읽고 이런 장르에 흠뻑 빠졌거나, 아직 읽진 않았지만 자꾸 고개가 돌아간다면, 기왕에 생긴 관심을 내수시장에도 돌려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욕망이 이 욕망으로 전이될 수 있을까. 국내 팬픽 동네에선 < 그레이 >쯤은 우습다는 반응도 있다. 가까운 팬픽 카페에 가입해서 ‘칙릿’이든 ‘꼴릿’이든 살펴보고, 숨어 있던 욕망을 키보드로 직접 풀어내도 좋겠다. < 그레이 >의 효과가 ‘50가지 쓰는 자’까지 가 닿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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