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대잔치를 잊자

NBA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최근 3년 연속 미국 내 NBA 파이널 시청률은 10퍼센트를 돌파했다. 2002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프로농구 최고의 스타는 김승현이다.

지난 1월 26일, 프로농구 올스타전을 하루 앞두고 ‘레전드 올스타전’이 열렸다. 경기의 이름처럼 농구대잔치 시절의 스타들이 총출동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응당 반가워야 할 일이지만, 팬들은 물론 농구계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KBL은 아직까지도 농구대잔치 시절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농구대잔치가 최고의 인기를 누린 게 벌써 20년여 전 일인데도 그렇다. 일종의 ‘감성팔이’랄까? 음악이나 영화가 아닌 스포츠에서 과거를 재현하는 일, 그러니까 리뷰는 식상하다. 이미 승패가 결정된 이야기를 들고 이러쿵저러쿵해봤자 별 흥미가 없다. 필요한 건 프리뷰다. 설령 결과가 빗나가더라도, 논리적인 분석을 수반한 미리보기라면 팬들은 기꺼이 대가를 지불한다.

요즘 재기에 완벽하게 성공한 NBA도 잠시 리뷰에 집착한 적이 있다. 역시 KBL과 마찬가지로 무대는 올스타전(올스타 주간)이었다. 새롭게 NBA 총재로 부임한 데이비드 스턴은 1984년 은퇴한 스타들을 불러 모아 ‘레전드 게임’을 주최했다. 1993년까지 모두 10번의 레전드 게임이 열렸다. 하지만 부상자가 속출하고 선수 명단도 매년 크게 바뀌지 않자 팬들은 흥미를 잃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경기장에 빈 좌석이 늘었다. 결국 NBA는 고집을 꺾었다. 레전드 게임을 없애는 대신 신인들이 출전하는 ‘루키 올스타 게임’을 도입했다. 팬들은 열광했다. 리그의 미래를 짊어질 유망주들을 한자리에서 미리 보여준다는 기획은 신선했다. 매년 선수들의 면면이 바뀌는 것도 흥미로웠다. 현재 라이징 스타 챌린지로 이름을 바꾼 이 이벤트는 올스타전 본 게임만큼이나 인기가 좋다.

KBL의 행보는 NBA와 완전히 반대다. KBL은 한때 1년 차와 2년 차 선수들이 맞붙는 ‘루키 챌린지’를 도입하기도 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폐지했다. 그나마 지난해 열린 레전드 올스타전엔 KBL 창립 15주년이라는 명분이 있었지만, 올해는 아니었다. 지난해보다 1천8백여 명이 줄어든 5천4백21명이 경기장을 찾았다.

물론 이런 제자리걸음에 대해 KBL 사무국만 탓할 수도 없다. 결국 승부는 경기장에서 벌어지고, 경기를 뛰고 전략을 짜는 건 선수와 감독의 몫이다. 팬들의 “요즘 프로농구가 예전보다 재미없어졌다”는 말이 그저 화려한 시절에 대한 향수로 들리지만은 않는다. 현재 대부분의 팀들은 수비 위주의 전술을 채택하고 있다. 대인방어보단 지역방어를 선호하고, 공격할 땐 공격 제한시간을 충분히 다 사용한다. 수비농구를 펼치는 팀의 성적이 잘 나오다 보니 모든 팀이 똑같은 방식을 모방하고 있는 것이다. 화끈한 공격 농구나 포지션 파괴를 통한 반전을 꾀하는 팀은 거의 없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파리 목숨’인 감독들의 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이렇게 모두가 비슷한 전략을 구성한다면, 결국은 어떤 선수를 보유하느냐가 승패를 가르는 기준이 되고 만다. 자충수를 두고 있는 것이다. 반면 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 시즌 NBA 구단들이 지역방어를 사용한 비중은 전체 경기의 11퍼센트에 불과하다. 덕분에 선수들은 충분히 개인기량을 발휘할 수 있고, 팬들은 그런 광경을 즐긴다.

NBA 구단과 감독들은 스스로 새로운 흐름을 제시한다. 지난 2012년 NBA 파이널에서 우승한 마이애미 히트의 전술은 독창적이고 새로웠다. 그동안 주로 스몰포워드로 뛰던 르브론 제임스를 파워포워드로 돌리고 슛이 좋은 네 명의 선수를 3점 라인 바깥에 배치시키는 스몰라인업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결승 상대였던 오클라호마시티 역시 키가 크지만 민첩한 케빈 듀란트를 파워포워드로 배치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유효하던 빅맨 중심의 농구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다고 모두가 마이애미나 오클라호마시티를 모방하진 않는다. 덴버 너게츠는 올해 리그에서 공격 속도가 가장 빠른 팀이다. 이와 반대로 중거리 점프슛 시도 횟수는 최하위다. 공격의 상당량을 속공으로 해결했기 때문이다. 포인트가드인 안드레 밀러, 타이 로슨은 덩크와 3점 슛을 이끌어낸 어시스트 부문에서 나란히 리그 1, 2위에 올라 있다. 대부분의 덴버 선수들은 수비에 썩 흥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덴버는 그 치열하다는 서부 지구 4위다. 홈구장 펩시 센터는 연일 매진이다. 리그 사무국 역시 공격을 장려하는 규정을 만들며 공격적인 전술을 지지한다. 수비수의 할리우드 액션을 금지시키고, 공격수의 몸에 손을 대는 행위를 강력하게 규제하는 식이다.

KBL의 소극적인 마케팅 역시 프로농구를 아직까지 농구대잔치 시대에 머무르게 하는 주요한 원인이다. 지난 2월 10일, KCC의 강병현이 전역 후 대학 후배 김선형과 첫 맞대결을 벌였다. 두 젊은 스타의 프로 첫 만남이었지만, 여느 경기와 다를 바 없이 조용히 넘어갔다. 학연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가뜩이나 프로농구엔 이야깃거리와 스타가 부족하지만, KBL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1993년 마이클 조던이 돌연 은퇴를 발표했을 때, NBA 사무국은 곧바로 제2의 마이클 조던 찾기에 돌입했다. 제리 스택하우스, 페니 하더웨이, 그랜트 힐 등 잘생기고 실력 좋은 선수들은 좋든 싫든 모두 ‘포스트 조던’의 꼬리표를 달아야 했다. 이런 마케팅은 효과적이었고, 리그는 조던을 대체할 만한 흐름이 등장하기 전까지, 조던의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던이 완전히 떠난 뒤, NBA는 ‘빅3’의 세대로 접어들었다. 슈퍼스타 세 명이 한 팀에 모이는 것이 선수와 구단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졌다. 더 이상 포스트 조던은 필요하지 않았고, NBA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최근 3년 연속 미국 내 NBA 파이널 시청률은 10퍼센트를 돌파했다. 2002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프로농구 최고의 스타는 김승현이다. 김승현은 서른여섯 살이다. 이제 과거 농구대잔치나 2002년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마케팅에 활용하기엔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KBL과 구단 모두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NBA의 인기가 다시 되살아나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PC, 모바일로 NBA 경기를 시청할 수 있는 리그 패스 가입자 수가 전 세계를 통틀어 8번째로 많다. TV 시청률도 KBL과 별반 차이가 없다. 반면 프로농구의 안팎 사정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시청률만 놓고 보면 배구에도 철저히 밀리는 실정이다. 그 와중에도 KBL과 구단은 “겨울 스포츠의 꽃은 농구”라며 팔짱만 끼고 있다. 농구대잔치가 스포츠계를 지배했던 1990년대의 추억을 덮어야 한다. 길어도 너무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