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연예의 끝판왕

2013.03.14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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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1일, < 디스패치 >가 새해 첫 커플의 사랑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D-1입니다.” 온라인 연예 매체 < 디스패치 >는 자신만만했다. 비와 김태희의 데이트 장면을 찍었으니, 그만하면 게임 끝이라 생각할 법했다. 하지만 뉴스가 나온 후, 대중은 둘의 데이트 자체보다 그 사진에 찍힌 비의 차림에 더 주목했다. 금세 이슈는 둘의 연애에서 비의 군생활로 바뀌었다. 새해 벽두의 이 이상한 풍경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일종의 예언처럼 보인다. 매체는 특종을 위해 파파라치 같은 행동까지 하지만, 대중은 아예 새로운 특종을 스스로 만들어낸다. 대중은 미디어의 한계 밖에서, 더 예상할 수 없는, 더 극단적인 것을 찾고 만들어내는 시대다.

m.net < 슈퍼스타 K >는 ‘시즌 2’ 시절, 이른바 ‘악마의 편집’으로 사회적 현상이 됐다. 하지만 ‘ 시즌 4 ’ 에서는 식상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대중에게 지속적으로 놀라움을 주기는 어렵다. SBS < 정글의 법칙 >은 연예인을 정글에 보내고, KBS < 인간의 조건 >은 개그맨의 스마트폰과 TV를 빼앗고, ‘리얼’ 을 위해 연예인에게 요구하는 강도는 과거보다 더 세졌지만, 이 프로그램들은 < 무한도전 >과 ‘1박 2일’이 막 치고 올라가던 때만큼의 반응은 아니다. 예능은 더욱 ‘리얼해’졌지만, 대중은 그 이상의 무엇을 원한다.

지난해 음원시장에서 아이돌은 몇몇 대형 그룹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반면 악동뮤지션은 SBS < 일요일이 좋다 > ‘K팝스타’에서 단 한 번 부른 노래로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했다. 그 후 악동뮤지션의 인기가 급상승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대중이 원하는 것은 예상치 못한 새로움 자체다. 패턴이 읽히는 리얼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리얼, 비의 군복무 문제처럼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그런

예능 프로그램이 리얼을 내세우며 몇 년간 연예 산업의 이슈가 되는 사이, 드라마가 점점 침체기에 빠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과거처럼 열광적인 마니아를 만들어내거나, 미니시리즈 시청률이 30퍼센트를 넘기는 일은 더욱 줄어들었다. 뛰어난 작품은 계속 나오겠지만, 대본이 있는 창작물은 과거보다 좁아진 입지 위에서 싸워야 한다.

대중이 만족할 만한 새로움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안정적으로 검증된 것에 기댄다. MBC < 해를 품은 달 >, tvN < 응답하라 1997 >, 영화 < 건축학개론 >과 < 늑대소년 >은 모두 과거의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 < 광해 >와 < 범죄와의 전쟁 >은 과거사를 다룬다.

예능 프로그램은 < 슈퍼스타 K >를 시작으로 ‘K팝스타’, MBC < 위대한 탄생 > 등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시즌만 바뀌며 같은 형식을 반복하고, < 정글의 법칙 >과 < 정글의 법칙 W >처럼 같은 포맷의 스핀오프를 만들어낸다. 지난해 MBC는 박명수, KBS는 신동엽이 < 연예대상 >을 수상했다. 박명수는 주요 MC들 중 MBC에서 가장 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신동엽은 인기 토크쇼 < 안녕하세요 >를 이끌었다. 많이 출연하거나, 안정적으로 흥행을 이끌거나. 뭘 해도 대중을 쉽게 만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검증된 것들을 반복해서라도 어떻게든 버티는 것이 전부다. 한국만이 아니다. 미국도 < 아메리칸 아이돌 >은 이미 지겨워졌고, < CSI >나 < 빅뱅이론 >에 열광하던 시절도 지났다. 반면 메이저리그 LA다저스 TV 중계권료는 최소 20년간 70억 달러를 받았다. 지금 스포츠만큼 예측 불가능하고 리얼한 장르는 없다. 반면 할리우드는 < 호빗 >, < 라이프 오브 파이 > 등의 3D 영화로 영화 속에서만 볼 수 있는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시도도 아직 성공은 미지수다. 모두가 더 리얼한, 또는 리얼이 무의미한 새로운 엔터테인먼트를 만들지 못 하고있다. 새로운 장르가 나올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이 스크린과 TV 안에 있는 기존의 콘텐츠라는 보장은 절대 없다.

지난해 한국에서 가장 성장한 장르 중 하나는 웹툰이었다. 웹툰이란 오프라인 만화를 온라인에 옮긴 것에 불과하지만 웹툰 작가들은 매주 작품에 대한 반응을 댓글은 물론 SNS를 통해서도 쉴 새 없이 받는다. 그 과정에서 웹툰 작가들은 독자들의 의견을 반영하거나, 아예 독자의 반응을 만화의 소재로 삼는다. < 마음의 소리 >의 조석은 700회 특집에서 독자들이 궁금해했던 요소들을 한꺼번에 몰아서 개그의 소재로 사용했다. 모든 웹툰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웹툰들은 작품을 중심으로 그에 대한 독자와 작가의 반응 전체가 엔터테인먼트가 되고 있는 셈이다. 스마트폰을 보면 24시간 내내 이슈가 만들어지고, 미디어는 이슈를 증폭시키면서 수많은 사람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낸다. ‘강남스타일’의 전 세계적인 흥행은 인터넷을 통해 모두가 같이 노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엔터테인먼트, 게임, 미디어의 이슈와 가십이 모두 하나로 합쳐지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는 또 다른 의미의 조이스틱이 됐다.

이런 시대에 TV나 스크린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기존의 엔터테인먼트는 지금의 자리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리얼리티 쇼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끝판왕이라면, 리얼타임으로 리얼 그 자체가 오락이 되는 것이야말로 전혀 새로운 엔터테인먼트의 시작일는지도 모른다. 지난 20여 년 동안 온다 온다 했던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지금 시작되려는 걸까?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인가. 이 판에서 나는 아직 은퇴할 때가 안 됐는데.

    에디터
    글/ 강명석('10아시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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