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한국 음식 문화와 씁쓸한 찬양

2013.03.14GQ

238GQK-critiques(본지)-6

모든 동물은 개체나 집단으로 지배 지역을 가진다. 인간도 다르지 않다. 좁게는 내 방, 집 안에서 비롯하여 마을, 도시, 국가 단위로 조금씩 더 넓은 지배 지역을 상정한다. 그 지배 의지를 강고하게 하기 위해 문화적 자부심을 덧붙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니 한국인이 한반도의 문화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나아가, 한국인으로서의 집단 지배 의지를 공유하자는 여러 일에는 대부분의 한국인이 덮어놓고 환호한다. 여기에 ‘딴지’를 걸겠다면 반국가, 반민족이란 올가미가 씌워질 수 있다는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한국인으로서의 집단 지배 의지를 공유하는 데 가장 흔히 동원되는 문화가 음식이다. 특히 이명박 정권에서 한식 세계화란 이름으로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실행 주체와 절차상의 문제에 대한 지적들은 있었으나, 한식 세계화 사업 대상에 대한 문화적 접근이 올바른 시각이었느냐 하는 근본적인 지적은 없었다. 짧게나마, 또 늦게나마, 한식 세계화란 이름으로 포장되었던 한국 음식문화의 거짓 신화들을 밝혀두고자 한다.

 

한식은 슬로푸드다?

슬로푸드는 유럽에서 생성된 개념이다. 산업화 사회를 사는 노동자의 음식이 산업화 이전을 살던 농민들의 음식과 달라졌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산업화 사회 이전의 음식을 두고 슬로푸드라 이름 지은 것이다. ‘패스트’푸드에 대응하는 개념어를 만들자니 ‘슬로’푸드라 한 거지‘천천히’라는 원래의 뜻이 슬로푸드안에 그대로 박혀있는 것은 아니다. ‘생산과 관련한 정보를 알 수있는 음식재료를 이용해 전통적인 방식으로 조리한 음식’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 한국에서는 이 슬로푸드를 ‘천천히 조리하는 음식’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 음식에는 김치, 장류, 장아찌, 젓갈 등 발효음식이 많은데, 이는 장기간의 발효숙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한국 음식은 슬로푸드다’는 주장을 하기에 이른다. 나아가 ‘한국의 모든 음식은 슬로푸드 그 자체’인 듯이 말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 음식 대부분은 유럽식 개념을 그대로 적용하면 패스트푸드다. 한국인의 밥상에 오르는 음식 재료 중, 그게 한국산이라 하여도, 어느 지역의 누구의 손에서 어떻게 생산된 것인지 알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가. 식당에서는 또 어떤가. 겨우 쌀과 김치, 그리고 일부의 육류와 생선 정도에 생산 국가를 표시하는 실정임에도 슬로푸드 운운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한국 음식이 슬로푸드니 곧 웰빙 음식이라고도 주장한다. 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유럽의 슬로푸드 운동은 ‘건강을 지키자’는 뜻이 강하지 않다. ‘맛있는 음식’에 오히려 방점이 찍혀 있다. 슬로푸드가 웰빙 음식이라고 백보 양보한다 하여도 한국 음식이 곧 웰빙 음식이라는 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OECD 국가 중 한국이 위장병 발생률 1위라는데, 웰빙의 한국 음식을 먹고도 왜 이럴까? 한국 음식은 아직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은 비근대적인 음식은 아닐까?

 

김치는 한민족의 위대한 발명품이다?

지구상에 겨울이 있는 지역의 사람들은 으레 채소절임을 먹는다. 겨울이면 푸성귀가 죽게 되는데, 이를 겨우내 먹기 위한 전략으로 절임을 한다. 소금에 절이는 것이 가장 흔한 방법이고, 식초, 설탕, 술 같은 부패 방지의 재료에 절여 보관한다. 이때 맛을 돋우기 위해 각종 향신 채소나 쌀겨 같은 발효 보조 재료를 넣기도 한다. 김치는, 넓게 보면 지구상의 이 수많은 채소절임 중 하나다.

지구상의 수많은 채소절임 중에서 김치가 특별나다고 한국인들은 생각한다. ‘한민족의 위대한 발명품’으로 여긴다. 지구상의 그 수많은 채소절임을 생각하면, 또 김치만큼 유산균 발효가 왕성히 일어나는 채소절임류 역시 있음을 생각하면, 김치에 민족적 자부심을 과도하게 부여하는 것은 쇼비니즘적 발상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먹는 모든 음식에는, 인간이 그렇듯, 동등한 품격과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김치 맛을 본 후에는 귀국할 생각조차 업서진다니 더 말할 것도 업고 서양 사람들도 대개는 맛만 보면 미치는 것이 나는 서양 음식을 먹고 그러케 미처보지 못한 것에 비하면 아마도 세계 어느 나라 음식 가운데에든지 우리나라 김치는 조곰도 손색이 업슬뿐 안이오 나의게 물을 것 가트면 세게 뎨일이라고 하겟슴니다.” 1926년 < 별건곤 >이란 잡지에 실린 ‘조선 김치 예찬’이라는 글이다.

이 무렵 세계는 민족자결주의라는 정치적 흐름 안에 놓여 있었다. 1919년의 기미독립만세운동도 이 세계사적 흐름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독립은 어려운 일이나, 김치로라도 민족자결의 숨결을 퍼뜨리고자 하는 당시 지식인의 고달픈 노력이 이 글에 담겨 있다. 놀랍게도 2013년을 사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1926년 식민시대의 한 지식인의 시각에서 한 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광복을 하고, 분단은 되어 있지만 독립된 국가를 가지고 있는 민족이,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인이 모두 놀라는 경제 발전을 이루고도 아직 식민시대의 정치적 흐름에 휘몰리고 있다. 스스로 독립을 이루지 못한 탓인가?

 

비빔밥은 세계적 웰빙 음식이다?

한식 세계화의 가장 ‘핫’한 음식이 비빔밥이다. 한식 세계화의 선두주자로 내세우고 있고, 국내 최대 식품회사는 비빔밥 전문점을 국내외에 열심히 개점한다. 비빔밥을 한식 세계화의 주연으로 꾸미자니 ‘스토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조선의 왕이 먹는 끼니에 골동반이라는 비빔밥이 있다며 비빔밥을 궁중음식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옛 문헌에 골동반이 나오기는 하지만 왕이 상시의 끼니로 먹었다는 근거는 없으며, 또 조리법으로 보아 굳이 현재의 음식과 연결하자면 솥밥이라 해야 한다. 오방색을 맞춘 ‘우주의 음식’이라는 설도 만들었다. 재료의 색깔을 맞추어 밥 위에 빙 둘리는 이 오방색 비빔밥은 전주의 한 식당에서 개발해 외식업체에 번진 ‘외식 스타일’일 뿐이다. 한국인의 기본 상차림은 밥과 반찬, 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찬기 부족 등 여러 사정으로 인해 밥+반찬, 밥+국으로 상을 차릴 수 있다. 밥+반찬은 비빔밥이고, 밥+국은 국밥이다. 서양에서 빵, 고기, 채소의 기본 상차림을 햄버거라는 간편식으로 개발한 것과 같은 일이다. 그래서 시장에 가면 비빔밥과 국밥이 꼭 있는 것이다.

일본의 상차림도 밥과 반찬, 국의 구성이 한국과 똑같다. 일본에서도 밥 위에 반찬을 올리는 음식이 있다. 돈부리다. 일본 돈부리에 올리는 반찬의 종류는 실로 다양하다. 육류와 생선, 채소 등으로 온갖 요리를 하여 올린다. 여기에 비해 한국의 비빔밥은 어떤가. 오방색의 때깔을 맞추느라고 사시사철 똑같은 음식 재료로 조리한다. 식당마다 똑같은 이 비빔밥을 볼 때 대한민국이 하나의 거대한 급식소처럼 느껴진다.

 

천일염은 세계 최고 품질의 한국 전통 소금이다?

지난 정권은 한국 천일염을 세계 명품으로 만들 수 있다며 온갖 매체를 동원해 홍보했다. 세계에서 제일 비싸게 팔린다는 프랑스 게랑드 천일염보다 미네랄이 월등히 많아 세계 최고 품질의 소금이라는 것이다. 정부에서 떠드니 식품기업들도 여기에 동조하며 천일염 제품을 만들었다. 그중 최대 걸작이 ‘5천년의 신비’라는 브랜드다. 한민족 5천 년의 역사에 갯벌이라는 자연이 연상되도록 ‘신비’라는 단어를 결합한 것이다. 천일염이 전통의 소금이라는 것부터 거짓이다. 한반도의 전통 소금은 자염이다. 바닷물을 개흙에서 농축해 솥에다 끓이는 소금이다. 서해안의 천일염은 식민시대에 일제가 이식한 것이다. 일제가 가져온 것이라 천일염은 한때 왜염이라 불렸다. 여기에 ‘5천 년’이라 이름 붙이는 것이야 기업의 일이니 그렇다 쳐도, 정부에서 나서서 전통 조작을 일삼는 것은 바르지 않다.

다 양보하여 천일염을 근대유산이라 하자. 그 유산이 이어받을 만한 것인지 따져야 하는데, 박정희 정권 때 이미 천일염은 폐기 대상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비위생적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산업화는 서해의 오염을 가져왔고, 그 바다에서 소금을 얻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박정희는 생각했다. 또 그때도 염판에 농약을 뿌리는 일이 종종 발생해 국민 위생에 심각한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만든 것이 동해의 정제염 공장이다. 박정희 정권 때의 천일염이 지금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지원사업을 한다고 했지만 그 바다며 갯벌은 여전하다. 비닐장판도 그대로다. 염판에 농약을 친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게다가, 게랑드보다 월등히 많다는 그 미네랄이란 것이 쓴맛을 제거하기 위해 제거되어야 하는 간수의 주요 성분이라는 것도 의도적으로 말하지 않고 있다. 한국인은 애국이라는 단어 앞에서 이성을 마비시킨다. 그래서 정치인은 ‘백성’을 부리기가 참 쉽다. 거짓말을 하면서도 애국으로 포장만 하면 되는 걸까?

    에디터
    글/ 황교익(맛 칼럼니스트)
    일러스트레이션
    김상민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