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책은 죽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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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하나. 움베르토 에코는 킨들을 바닥으로 내던졌다. 2012년 7월 2일 루브르박물관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의 책 < 장미의 이름 >과 함께 2층에서 1층으로 떨어진 킨들은, 부서져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반면 종이책은 다소 구겨졌지만 멀쩡했다. 스스로 아이패드 이용자라고 인정하면서도, 에코는 인쇄된 종이를 특정한 방식으로 묶어내는 ‘책’ 이라는 매체에 대한 믿음을 힘주어 반복해서 말했다.

장면 둘. 닉은 사교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개츠비에 대한 의혹을 거두지 못했다. 스스로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전쟁 영웅이고, ‘새로운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었고, 옛사랑인 데이지를 만나고 싶어서 매일 밤 성대한 파티를 연다고 했다. 어느 날 개츠비의 파티에 초대된 닉은 주인 몰래 서재로 숨어든다. 그리고 꽂혀 있는 책을 면밀히 관찰하다 가 파안대소하고 만다. 개츠비의 서재는 ‘진짜’였기 때문이다. 하드커버 껍데기만 있는 게 아니라 진짜 알맹이인 책이 들어 있었다.

두 장면으로부터 가깝고도 먼 지금은 2013년이고, 많은 사람이 책의 죽음을 얘기하고 있다. 책의 판매량이 뚝 떨어지고, 그에 따라 글을 쓰거나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예전에 비해 적은 소득을 감수하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한 시절을 풍미했던 매체가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은 결코 간과할 만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책의 죽음을 애도하기 앞서, 그 ‘죽었다’는 책이 어떤 것인지 먼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앞서 말한 두 번째 장면으로부터 책의 연대기를 잠시 살펴보자. 피츠제럴드의 소설 < 위대한 개츠비 >는 1922년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아직 대공황이 시작되기 전이고, 유럽에서는 1차 세계대전이 갓 끝난 시점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보들리헤드 출판사에서 펭귄북스를 통해 페이퍼백 혁명을 시작하려면 13년이나 남은 때다. 담배 한 갑 정도의 가격으로, 기차역을 포함해 전국 어디서나 책을 살 수 있는 시대, 그리하여 대중들이 신문이나 잡지가 아니라 단행본을 통해 소설이나 논픽션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기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팽귄북스에서 시작된 대중 출판의 시대는 개인용 컴퓨터의 출현과 함께 정점에 도달했다. 1980년대부터 이른바 ‘탁상출판’이 본격화된 것이다. 그것은 활자가 아니라 옵셋으로 인쇄하는 새로운 기술과 맞물려, 더 이상 식자공의 손 놀림에 의지하지 않고도 책을 편집하고 찍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또한 탁상출판은 책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시켰다. 활판 인쇄 시절, 새로운 글꼴을 도입하는 것은 막대한 설비 투자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글꼴을 구입해서 다운로드하면 그만이다. 우리가 서점에서 각양각색의 디자인을 구경할 수 있는 것은 인쇄 문명보다는 오히려 디지털 문명의 결과물에 더 가깝다.

지금 우리가 읽는 대부분의 책이 바로 그렇게 만들어진다. 저자는 개인용 컴퓨터를 이용해 글을 쓰고, 편집자는 관련 프로그램이 깔린 컴퓨터를 이용해 편집한다. 그 정보를 받은 디자이너는, 아마도 어도비 사에서 만들어냈을 몇몇 프로그램을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 인덱스 카드에 참고문헌 목록을 기록하고 타자기로 < 장미의 이름 >을 썼던 움베르토 에코 또한, 이제는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고 컴퓨터로 글을 쓴다. 활자 문명과 디지털 문명은 함께 성장하다가 따로 퇴락하고 있는 중이다.

정리해보자.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성경을 처음 찍은 그때부터 산업혁명으로 인해 인류의 생산력이 급증하기 전까지, 책은 쇠사슬로 묶어서라도 도난을 막아야 할 보물이고 재산이었다. 가장 귀중한 신의 말씀을 적어두기 위해 수도사들은 어린양을 잡아서 그 가죽위에 값비싼 안료를 동원해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썼다. 그 책들은 지금도 수집 가의 보관소나 박물관에 있다. 그러니 전자책의 출현으로 그런 책이 죽는다고 말하는 것은,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했기 때문에 모나리자의 가치가 떨어졌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어불성설이다.

집 주인의 지성을 웅변하기위해 꽂혀있는 용도의, 어떤 인테리어 소품에 가까운 그런 책 또한, 전자책의 출현으로 인해 스스로의 지위를 위협받지 않는다. 킨들이나 아이패드 속에 저장된 전자책이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츠비의 시대에 그랬듯이,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조차 그것의 겉모습 만큼은 기꺼이 원한다. 독서의 대상이 아닌 장식의 수단으로서 책은, 비록 시장은 좁아지겠지만 불멸의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현실을 개탄하며 전자책 시대에 저주를 퍼붓는 쪽을 택하는 것은 당신의 자유다. 그러나 앞서 우리가 살펴봤듯이, 묵직한 분량의 텍스트를 저장하고 전달하는 매체인 책을 수도사나 특권계층 바깥의 사람들이 구입할 수 있게 된 역사는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 짧은 세월 속에 책의 출현과 책의 죽음이 함께 있다. 여기에 바로 책의 죽음에 관한 역설 이 있다. 텍스트를 운반하는 책은, 죽어가고 있다는 지금 이 순간에도 대중을 위한 상품으로서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들을 구입할 수 있다.

대부분의 책은 종이 뭉치다. 모든 분야의 9할이 쓰레기라는 말은 책에도 유효하다. 하지만 보석이 숨어있다. 잘 만들어 아름다우며 가난한 살림에도 소장할 수 있는 책들이 있다. 여느 수집과 마찬가지로 꾸준히 사고, 들춰보고, 음미함으로써 취향은 형성된다. 그 가능성을 누리지 않으면서 책의 죽음을 슬퍼할 것 없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언젠가 죽을 걸 알면서도 사랑하고, 그보다 내가 먼저 죽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사랑받기를 원한다. 책에 대해서는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가 단 하나라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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