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공연기획자 혹은 흥행업자

2013.03.20GQ

‘누구’의 공연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공연을 진행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슈퍼컬러슈퍼는 ‘우리’의 공연임을 강조했지만, 공연의 주인공들, 공연을 함께 만드는 사람들, 심지어 관객들의 만족도에 대해서도 늘 자의적으로 판단했다.

‘공연기획자’라는 단어를 영어로 바꾸면 ‘Planner’ 내지는 ‘Creator’일 것 같지만 대체로 ‘Promoter’가 맞다. ‘플래너’와 ‘크리에이터’도 틀린 것은 아닌데, 실제 ‘공연기획자’라고 불리는 대다수 사람들의 역할은 공연을 주최하고 마케팅 및 홍보하는 일이다. ‘프로모터’라는 단어대로, ‘기획자’보다는 ‘흥행업자’라는 단어가 어쩌면 더 본연의 의미에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 특히 틀이 짜인 공연을 해외로 내보내는 경우, 그러니까 한국 사람들에게 내한공연이 되는 경우라면 창작/기획보다는 주최/홍보에 밑줄을 그을 수밖에 없다. 대다수 월드 투어의 경우 제작과 진행에 관한 거의 모든 사항이 철두철미하게 문서로 만들어진다. 공연의 규모가 커질수록 이 문항은 더욱 복잡하다. 대기실의 상세한 인테리어까지 신경 쓰는 유명 여자 가수라면 문서는 책 한 권에 가깝다. 내한공연의 기획자, 즉 ‘프로모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계약한 상대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계약 당사자들은 공연의 주역인 아티스트, 혹은 그들을 대표하는 매니지먼트 회사, 혹은 그들의 투어를 대리해주는 에이전시다. 프로모터가 그들에게 공연에 관련된 비용을 지불하기에, 공연을 통한 이익을 위해, 혹은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마케팅과 홍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려는 건 당연하다.

“프로모터는 자아가 강하면 안 된다.” 얼마 전에 만난, 뉴욕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한 외국인 프로모터의 말이다. 상대적으로 조건이 까다롭지 않은 신인이나 사람들이 곧잘 ‘인디’라고 부르는 독립 음악가라도, 공연을 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이 있다. 공연을 앞둔 음악가들은 예민하다. 그들의 요구와 의견을 잘 청취해 만족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해야 하는 프로모터는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프로모터는 음악가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상대해야 한다. 관객들도 공연장에서는 날카롭다. 그들이 만족감을 얻을 수 있도록 원만한 관람 조건을 제공해야 한다. 강력한 자아의 아티스트와 언제든 불평불만을 늘어놓을 수 있는 유료 관람객들 사이에서, 프로모터가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틈은 적다. 해외 인디 음악가나 내한공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한 번은 들어봤을, ‘슈퍼컬러슈퍼’라는 기획사가 있다. 한국에서 생활하는 한 외국인이 주도해서 만든 이 기획사는 그동안 만나기 어려웠던 해외 인디 밴드들이나 음악가들의 공연을 주선해왔다. 주로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상대로 SNS 홍보를 했고, 지방에 있는 외국인 음악 애호가들을 대상으로 서울 외 지방에서의 내한공연을 추진했다. 그런데 이 제한적이었던 운신의 폭을 넓히기 시작하자 서서히 잡음이 들려왔다.

내용은 다양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로 수렴할 수 있었다. 프로모터임에도 불구하고 에이전시나 아티스트처럼 일한다는 것. 음악가들이 공연하는 데 필요한 기본 요건들은 프로모터가 추구하는 자아실현 혹은 집단의 가치 앞에서 곧잘 무시되었다. 그들은 때때로 한국 시장에 새로운 개념 혹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한 창시자임을 자처했는데, 그것은 밴드들이 (암묵적으로) 자신들의 규칙이나 가치를 따라야 한다는 의미였다. 밴드들과 주변 관계자들 사이에서 떠돌던 얘기는 출연한 음악가들이 속한 몇몇 레이블이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면서 불거졌고, 급기야 슈퍼컬러슈퍼의 대표자 명의로 사과문을 발표하는 상황에 까지 이르렀다. 문제 제기 과정에서 드러난 기획사 대표(문제의 사건 이후 에이전트 역할만 하는 걸로 역할이 강등되었다고 밝힌)의 이메일에 담긴 표현 “나는 글로벌 인디 비즈니스의 모든 사람을 안다 I know everyone in the global indie business”는 SNS상에서 숱한 패러디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프로모터가 자아를 버리고 단순히 음악가나 관객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일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흥행을 위해서는 기획사의 브랜드 가치를 정립하는 일도 필요하다. 슈퍼컬러슈퍼의 경우, 어떤 면에서는 성공적으로 자신들을 ‘브랜드’로 만든 기획팀이었다. 주한 외국인이라는 틈새를 공략했고, 개런티가 저렴하고 조건이 상대적으로 까다롭지 않은, 새로운 시장을 맞이할 준비가 된 인디 밴드/음악가들을 선택했다. 뉴욕 타임스 블로그에 실린 문구를 끊임없이 인용하며, 자신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새로운 기획사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내에서 프로모터가 자기 자신과 자사의 브랜드를 표명해온 전례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들은 브랜드를 만들고 공연을 성사시키는 일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프로모터의 가장 중요한 역할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그리고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해서 문제가 생겼을 때, 음악가와 관객들로부터 강력한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 같다. 많은 프로모터가 선뜻 앞에 나서지 않는다. 종국에 흥행을 좌우하는 것은 공연을 하는 음악가이고, 프로모터들은 함께 일한 신인 음악가들이 성장하면 거기서 더 나은 수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음악가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프로모터로 성공하는 것은 중장거리 달리기에서 이기는 것과 비슷하다. 프로모터가 브랜드를 만들려고 할 때 필요한 핵심 역량은 개별 공연에 대한 음악가와 관객들의 만족도를 높이고 유지하는 것이다. ‘누구’의 공연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공연을 진행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슈퍼컬러슈퍼는 ‘우리’의 공연임을 강조했지만, 공연의 주인공들, 공연을 함께 만드는 사람들, 심지어 관객들의 만족도에 대해서도 늘 자의적으로 판단했다.

내한공연은 지속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전 세계 곳곳에 지사가 있고 제작과 마케팅까지 겸하는 라이브네이션 같은 대형 회사 소속이 아니라면, 투어를 하는 대부분의 음악가들은 대륙별로 공연을 담당해줄 에이전트와 계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본만 들렀다 가거나 일본-한국 같은 2~3개 국가에서 공연하는 게 일반적이었던 아시아 시장에서는, 지금까지 지역 기반 에이전트가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동남아시아의 페스티벌 시장이 확대되면서 아시아 투어도 시장에서 하나의 존재감이 생겼다. 아시아를 전문으로 하는 투어 에이전시가 등장했다. 에이전시는 고객들에게 보다 많은 공연 횟수를 제공할 때 수익률이 높다. 머나먼 아시아에 오는 음악가라면, 가는 김에 공연을 좀 더 할 수 있다면 좋다. 아시아가 아직 대형 공연을 연속적으로 할 수 있는 탄탄한 시장은 아니지만, 인디 밴드/음악가들의 소규모 공연이라면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는 공연을 하고 싶다고 먼저 연락을 하는 경우였다면, 이제는 에이전트에서 연락이 오는 경우가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난 글로벌 인디 비즈니스의 모두를 안다”고 어깨를 으쓱할 수준은 아니다.

확실히 서구의 공연 시장은 큰 규모의 페스티벌을 중심으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 흐름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늘어난 공연의 공급이, 늘어난 내한공연이나 페스티벌의 숫자가 한국 시장의 지형도를 바꾸지는 못했다. 장기불황의 조짐까지 있어, 당분간 그 미래를 밝게 보기도 어렵다. 그러니까 먼저 연락해오는 에이전트가 늘었다고, 소화할 수 있는 공연이 많아졌다고, 내한공연을 하는 프로모터들이 좋아할 상황은 아니다. 관객들이 쉽사리 모험을 하지 않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는 내한공연의 주인공들은 여전히 정해져 있고, 그를 둘러싼 프로모터 사이의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져 가고 있다. 공연을 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물가상승과 함께 점점 높아져 가고, 부담해야 할 세금은 여전히 많고, 쓸 만한 공연장은 많지 않고, 케이-팝의 성공신화에 취해 있는 매체 틈바구니에서 해외 가수의 공연을 홍보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 와중에 유력 티켓 판매 사이트나 인기 공연장들의 힘은 상대적으로 더욱 커질 수밖에 없고, 음악팬들의 눈높이는 대형 페스티벌 덕에 점점 더 높아져 간다. 음악가들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고, 관객들의 입맛에도 맞춰야 하고, 그리고 투자 유치는 물론 흥행을 통한 수익까지 만들어내야 한다. 한국에서의 ‘프로모션’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일을 열심히 하고도 수익을 못 챙기는 공연이 점점 늘어나, 버티기도 쉽지 않다. 공연을 주최하고 홍보하는 프로모터, 즉 흥행업자의 기본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지상 과제는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성공한 프로모터가 나오기에는 아직 우리 시장이 협소하고 열악하다. 투자를 하는 회사는 물론이고 문화를 지원하겠다는 회사들조차 여전히 큰 공연에만 돈을 대거나 이름을 올리려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글로벌 인디 비즈니스의 모든 사람들을 아는” 것도, “ 자신의 얼굴이 <뉴욕 타임스> 블로그에 실린” 것도 중요하지 않다. 명성과 명예는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어갈 때 자연스럽게 쌓일 것이다. 아직 내한공연이 풍부해졌다고, 혹은 시장이 커졌다고 말하기엔 이른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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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김영혁(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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