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궁금한 네 대의 자동차

지금 가장 궁금한 네 대의 자동차를 샅샅이 관찰하고, 대담하게 운전해봤다.

엔진 5,461cc V8 가솔린최고출력 537마력최대토크 81.6kg.m공인연비 리터당 7.8킬로미터0->100km/h 4.3초가격 2억 8백90만원

<메르세데스 벤츠 SL63AMG>

시야에 두는 순간부터 운전석에서 내릴 때까지, 자동차에서 체험할 수 있는 극상의 감각을 약속한다. AMG가 튜닝한 메르세데스 벤츠는 사실상 가장 넓고 다양한 운전 감각을 포괄한다. 낭만과 공포, 졸음과 소름의 극단을 무표정하게 오간다. 손바닥이 느끼는 핸들의 감촉, 가속페달을 유린할 때 배기관에서 뭔가 펑펑 터지는 소리, 지붕을 열었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 정수리를 쓸고 가는 봄바람 같은 것들. 3월 어느 날은 봄이 완연했으되 미처 밤까지 그렇진 않았다. 그래도 지붕을 열었다. 소월길에 있던 차들을 모조리, 다만 의연하게 따돌렸을 때 혼자 지르는 소리. 그럴 때 해소되는 것들. 벤츠이고, AMG라서 약속할 수 있는 것들.

TIP!
AMG의 책임감
갑자기 지나가는 저 벤츠가 AMG인지 아닌지는 그냥 감각으로 알 수 있다. 공기가 드나들 수 있는 구멍이 큼직하고, 보닛의 굴곡도 심상치 않으니까. 게다가 그 맹렬한 배기음…. AMG의 존재감은 그렇게 명백하다. 보닛을 열면 그 존재감에 느낌표 하나가 단정하게 더해진다. 그 엔진을 손수 만든 엔지니어의 서명이 새겨져 있다. 한 명이 하나의 엔진을 책임지고 만든다는 약속. 보닛을 열고, 아직 열기가 식지 않았을 때, 음각으로 새긴 그 이름을 손으로 만져보기도 했다.

엔진 2,979cc, 직렬 6기통 가솔린최고출력 320마력최대토크 45.9kg.m공인연비 리터당 10.4킬로미터0->100km/h 5.4초가격 1억 9백만~1억 3천6백10만원

<BMW 640i 그란쿠페>

봄의 온기에서 여름을 상상하긴 해도, 가을이 완연할 때 겨울 생각은 잘 안 한다. 이 풍성함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거라는 걸 경험으로 알아도, 마냥 영원할 것처럼 즐겨야 해서 그렇다. 바람이 찰 때야 겨울이 문턱에 온 걸 안다. BMW 640i 그란쿠페는 가을 같은 차다. 풍족하고 완숙하다. 계절이 바뀌는 데 민감하기보다 그냥 자기 흐름대로 살아서 성취한 사람이야말로 640i와 어울리지 않을까? 나긋하고 편안하면서도 단호하게 몰아칠 줄 안다. 아끼는 사람과 같이 탈 때와, 혼자서 극단을 경험하고 싶을 때의 운전은 그렇게 다를 것이다. 그런 마음을 640i가 다 끌어안는다.

TIP!
GRAN+COUPE?
‘그란’은 그란투리스모에서 비롯된 말이다. 장거리 여행을 편하고 빠르게 소화할 수 있는 성격의 자동차에 붙는 단어다. 게다가 편하고 피로가 덜해야 한다. 짐을 넣을 공간도, 함께 여행할 사람이 불편하지 않을 공간도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 쿠페COUPE는 세단의 지붕을 예리한 각도로 깎아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는 뜻이다. 공기역학을 따지자면 이야기는 물리학적으로 풍부해질 테지만…. 그란쿠페는 쿠페여서 아름답고, 그란투리스모여서 멀리 갈 수 있다. 아무에게도, 어떤 일로부터도 쫓기지 않고.

엔진 4,806cc V8 가솔린최고출력 550마력최대토크 76.5kg.m공인연비 N/A0->100km/h 4.5초가격 1억 8천3백70만원

<포르쉐 카이엔 터보 S>

포르쉐의 고민과 고집, 성취야말로 그 가치가 명백하다는 사실을 카이엔 터보 S의 운전석에서 새삼스럽게 확인했다. 성격이 분명한 자동차 회사의 고민은 그런 것이다. 시장은 확장을 요구한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거기서 위태로운 자동차를 여럿 봤다. 믿음은 그럴 때 박살난다. 회복은 요원하다. 하지만 포르쉐의 역사는 증명의 연속이었고, 카이엔 터보 S는 가장 최근의 증거다. 빠르게 달리고, 민첩하게 꺾고, 듬직하게 멈추는 다른 SUV는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포르쉐 DNA를 그대로 가졌으면서 여느 포르쉐를 운전할 때의 감각을 그대로 이식한 SUV는 카이엔 터보 S가 유일하다.

TIP!
포르쉐의 검정
가족과 주말, 품격과 쾌락을 모조리 포괄하는 SUV는 카이엔 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무려 8가지 카이엔이 출시됐다. 운전석으로부터의 섬세한 감각과 효율이 제각각 달라도 겉으로는 구분하기 쉽지 않다. 카이엔 터보 S는 그중 출중하고, 헤드램프로 구분하는 게 가장 쉽다. 카이엔 터보 S의 헤드램프는 고광택 검정으로 코팅돼 있다. 구분할 줄 안다 해서 아쉬움이 해소되는 건 아니지만…. 이 공격적인 검정색이 얼마나 풍부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지는 운전자만 안다.

엔진 2,776cc 직렬 4기통 디젤최고출력 200마력최대토크 46.9kg.m공인연비 리터당 9.2킬로미터0->100km/h N/A가격 4천9백60만원

<지프 랭글러 2.8 디젤 루비콘 4도어>

엔진의 크기, 마력, 토크 같은 수치가 성능과 직결되는 정보는 아니다. 새로운 디자인이 늘 최선인 것도 아니다. 능란한 전자 장비가 자동차를 운전하는 재미와 직결되는 것도 아니다. 지프 랭글러가 증명하는 것들. 랭글러의 지붕은 전용 공구를 써서 손으로 떼어내야 한다. 그럴 땐 ‘누군가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 혼자 생각한다. 지붕의 무게가 만만치 않고, 딱 떼서 바닥에 놓으면 그대로 식탁 같기도 해서. 보닛을 고정하는 건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든 일종의 잠금쇠다. 이런 식으로 운전자의 손과 가장 가깝고, 길을 가리지 않고 멀리 갈 수 있는 차가 랭글러다.

TIP!
봄이니까
모든 자동차는 응당 밖에서 달리지만, 지프처럼 명료하게 야외를 지향하는 차는 없다. 봄에는 누구나 집을 나서니까 지프를 타고 나간다면 좀 더 외진 곳, 사람의 손길이 아직 닿지 않은 곳, 길이 아닌 곳, 나만 아는 곳이면 좋을 것이다. 범퍼와 펜더, 지붕을 듬직하게 싸고 있는 강화 플라스틱은 그 강성만큼이나 부담이 없다. 철컥철컥, 2륜과 4륜을 기계적으로 바꿔가면서 달리는 재미도 감칠맛이 있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속도와 관계없이, 우리 둘이, 아무도 없는 곳에 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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