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놈의 연기가 뭐라고

거구의 역도산이 되어 살과 욕심과 분노를 덕지덕지 다 붙였던 설경구가 이젠 <그놈 목소리>에서 아이를 유괴당한 남자가 되어 에너지고 살이고 목소리까지 다 뺏겼다. 그놈의 연기가 뭐라고.

화이트 셔츠는 질 샌더, 블랙 팬츠는 닐 바렛, 스터드 벨트는 제너럴 아이디어, 시계는 루이 비통.
화이트 셔츠는 질 샌더, 블랙 팬츠는 닐 바렛, 스터드 벨트는 제너럴 아이디어, 시계는 루이 비통.

설경구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 하나. 한 영화지에서 녹음기의 ‘rec’버튼을 누르는 순간 설경구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아유, 인터뷰는 무슨 인터뷰. 그냥 신들린 연기 했다고 써요.” 어쩌면 모든 인터뷰는 설경구 연기의 본질을 캐내려는 수작,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마는 수작일지도 모른다. 괴물 설경구에게는 아이 같은 구석이 있었다. 스튜디오에 있던 개는 그의 천진함을 알아본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움츠러들었다.

개가 무섭나? <열혈남아>에서는 개한테 소변도 봐놓고선. 그래서 묶어 놓고 촬영했다.

실신하는 건 겁내지 않나 보다. <그놈 목소리>도 난리가 났던데. 뭐요? 4일 굶은 얘기?

4일 굶고 실신할 정도로 열연했다는 얘기. 아, 쪽팔려. 리얼리티를 위해서 유괴범이 달라는 1억과 최대한 비슷하게 가방에 넣고 촬영해서 그렇다. 그날 밥도 굶고 핼쑥하게 보이게 한다고 테니스를 1시간 반 치고 양재천을 한 시간 뛰고 촬영장에 왔다. 그랬더니 막 경련이 일어났다. 그날…암튼 밤새 뛰었다. 밤새~도록. 근데 쓰러지진 않았는데?

마지막 촬영 끝나고 나서 엉엉 우는 모습 봤다. 감정이 제어가 안 되었나 보다. 그건 어디서 나온 거야? 에이, 쪽팔려. 속이 상해서 그랬다. 컷이고 나발이고 제어가 안 되는거다. 정말 서글프더라. 많이 울었다. 현장 분위기가 숙연해졌으니까. 컷 하는 순간 벌떡 일어나서 ‘네!’ 하고 모니터 확인하는 게 난 더 이상하던데. <그놈 목소리>는 기계적으로 찍을 수가 없는 영화였다. <박하사탕> 이후 그런 영화가 없었던 것 같다. <박하사탕> 때 몇 번 그랬다. 그때 엄청 울었다. (김)여진이가 무서운지 뒤에서 막 울고 있더라.

우리가 가장 궁금해하는 연기의 순간이 바로 그런 거다. 캐릭터가 실제 배우의 삶에 영향을 아직도 미치는 그 순간. 그럴 땐 정말 무섭다는 생각 안 드나? 지친다. 그래도 거기서 감독이 한 번만 더 가자, 그러면 바로 ‘네!’(웃음). 주기도문 외우는 신은 시작부터 눈물이 막 쏟아졌다. 갈 때까지 가보자 했다. 나도 갈 때까지 가보는 건 좋아해서. 여러모로 나한테 새로운 영화였다. 나도 모르게 나태해지고 게을러져 있는 상황이었다.

스모 선수를 던져버리는 등 항상 징글징글하게 연기해 놓고 어떻게 나태했다고 말하나? 속으로 생각에. <역도산> 끝나고 사실 좀 힘들었다. <공공의 적 2> 때문에 한 달 만에 수십 킬로 빼고 나니 더 힘들었다. 씨, 무슨. 혼자 쉬면서 재충전하지 외국 나가야 충전되냐? 미친 것들 아냐? 이랬는데. 근데 너무 힘들어가지고 내가 외국엘 갔다. 혼자서. 일본이랑 미국도 갔다 오고 홍콩이랑 사이판도 갔다 오고. 나가는 이유를 알겠더라.

뭐가 좋던가?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좋더라. 그때 너무 힘들어서 솔직히 얘기하면 ‘아, 이젠 좀 쉽게 가보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몸도 좀 안 쓰고.

살도 내버려두고? 살 내비두고. <열혈남아>까진 내비두고 살았다. 액션 안 배우고. 내가 몇 년 동안 액션 스쿨을 다녔더라. 촬영 끝나면 ‘쫑파티’ 한 다음날 액션스쿨로 바로 갔다. 액션스쿨 친구들이 내가 가면 ‘요번에 찍는 건 빼는 거? 찌는 거?’ 이랬다. 그게 너무너무 지겨웠다. 너무 너무 너무! 아무것도 배우지 말자고 한 게 <열혈남아>였다. <그놈 목소리> 하면서는 많이 굶었다. 아들이 유괴됐는데 토실토실하면 안되지 않나.

살이랑 원수졌나 보다. 예수도 그렇겐 못하겠다. 뭔가 의욕이 안 생길라치면 옆에서 막 펌프질 해주니 안 할 도리가 없다. 감독에게 “이거 어떻게 해?” 이러면 “몰라, 네가 알지 내가 아냐?” 이랬다. 그게 참 고마웠다. 앵글 안에 배우를 쑤셔 넣는 감독님들도 있는데, 박진표 감독님은 안 그랬다. 박진표 감독님은 스태프들에게 마이크가 여기 있으니 배우에게 고개 좀 들고 얘기해주라는 주문 같은 것조차 못하게 했다. “어디로 튈지 나도 모른다. 쟤(배우)만 안다. 쟤도 모른다”라고 말하셨다.

이스트반 자보 감독이 영화는 배우의 예술이기 때문에 카메라는 배우를 무조건 따라가야 한다고 했다. 박진표 감독도 그런 것 같다. 이창동 감독님과 비슷하다. “난 배우랑만 얘기할래, 다른 건 몰라” 그랬다. 행복하게 즐겁게, 그리고 자학하면서 찍었다.

행복했다면서 자학은 또 왜? 응. 안되면 자학하니까. 유괴된 부모의 심정을 내가 어떻게 알겠나. 나도 애가 있지만 모른다. 그러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뻔하다. 분장으로 피폐해져 보이게 하는 건 배우로서 ‘존나’ 쪽팔린 일이다. 그래서 밥을 굶고 그러는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몸상태를 만들려고 애써보는 거다. (그분들에게) 죄송스러운 거다.

쉽게 가자는 마음도 있었다지만 당신은 모든 걸 쏟아 붓지 않으면 못 견뎌하는 스타일 아닌가? <오아시스>도 다시 보니 정말 징하던데. 아니다. <오아시스>는 진짜 편하게 찍은 거다. 그냥 홍종두처럼 살았으니까.

어쩐지! 좀 비슷해 보인다. 아니, 아니, 영화 들어가면서. 그 잠바 입고 다니면서 살았다. 모르겠더라. 그래서 의상팀에 옷 달라고 해가지고 그냥 그렇게 살았다.

그 홍종두 잠바 하나로 버텼다는 얘긴가? 예! 빡빡 머리로. 전에 살던 아파트 주민들 좀 놀래켰지. 그때도 살 때문에 안 먹고 그랬다. 새벽에 촬영 끝나고 집에 들어가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주유소에서 과자 부스래기 준 걸 들고 엘리베이터 기다리며 다리 떨고 있었다. 행동을 안 놓치기 위해 계속 그러고 다녔거든. 사람들이 새벽에 일찍 나가대. 6시에. 엘리베이터 문이 딱 열리는데‘ 어머!’ 그런다. 얼마나 놀랬겠나. 날 보고. 하하.

사람들이 거지인 줄 알았나? 배우인 줄 몰라봤나? 못 알아본 거다. 그때 회식 가면 감독님이랑 (콧물을 손으로 막는 홍종두의 습관을 보여주면서) 이러고 노래 불렀다.

미치겠다. 내가 (감독님더러) 원조 홍종두라고 그랬다. 스태프들은 좋다고 웃고. 참, 그 옷 입고 결혼식도 갔다. 내가 미쳤지. 서부이촌동에서 촬영했는데 용산에서 후배가 결혼을 하는 거다. 가깝잖나. 점심 시간에 그 잠바 입고 빡빡 머리로. 에휴 내 참. 개념을 잊고 살았다. 내가 나태해지고 게을러졌다는 건 암튼 그런 뭔가가 있다는 거다. 아,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놈 목소리>는 사는 것에 대해서 많이 배운 영화였다.

항상 영화는 사람에 대해 배우는 거라고 말해왔다. 이번 영화는 사람에 대해 뭘 배운건가? 이상한 질문이네. 아! 그래, 배웠다. 내가 되게 소중하다고 느꼈다.

배우는 누구나 자기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존재들 아닌가? 아니, 그 전엔 촬영 딱 끝나면 ‘에이씨, 이제 안해, 나 ‘존나’ 먹을 거야. 나 이태까지 하나도 못 먹었어.’ 그런 식이었다. <공공의 적> 때 감독님이 쪘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맛있는 거 먹겠네’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 다음 영화가 <오아시스>. 감독님이 “갈비뼈가 드러났으면 좋겠는데” 그러신다. 67kg까지 뺐다. 학대했다. 예전엔 촬영 끝나면 한 달 내내 술을 퍼 마셨다. 촬영 있으면 못 먹으니까. 지금은 안 그러려고 노력 중이다.

배우는 스크린에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존재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굉장히 개인적이고 자기를 위한 삶을 산다고 생각하는데 어떤가? 주변도 잘 못 보고. 맞다. 맞는데, 나는 글쎄, 근데 배려도 하는데. 촬영할 때 상대 배우 배려도 하는데.

상대 배우말고 실제 생활에선 어떤가? 어, 그렇다. 연락 다 씹는다. 촬영할 때는 하나도 안보인다. 요즘엔 친구들이 알아서 “이 새끼 촬영 들어가면 연락 안되잖아” 그런다.

사람들이 계속 옆에 있어주던가? 그러니까 몰아서 술 먹는다. 그렇게 사는 거지, 뭐. 어우, 다 생각하다가는 못한다. 술 먹으면 다음날 일 못한다. 화면에서 쪽 파는 직업이라.

<꽃잎>부터 치면 이번 영화가 벌써 19번째다. 어느 순간부터 감독이나 관객이 설경구에게 요구하는 게 비슷해진 것 같은데, 안 지겹나? 내가 한 가지 일을 오래한 적이 없다. 우리 엄마가 굉장히 한심하게 생각했던 부분인데. 연극할 때도 엄청 반대했었다. 우리 엄마가 그랬다. 저 녀석 분명 하다가 그만둘 거다. 근데 오래하니까 희한하다고 하신다. 현장이 재밌다. 항상 새롭다. 같은 컷이라도 다음날 다른 이야기하는 게 영화다. 박진표 감독님, 이창동 감독님 하루에 한 신이나 두 신 찍는다. 다 완성되면 ‘아, 저걸 만들려고 우리가 좆뺑이 깠구나’ 그렇게 자학하면서. 영화는 지겹지가 않다.

소위 설경구식 연기 스타일이라는 게 만들어졌다. 시대나 가치 체계에서 무너진 역할을 많이 하면서 분노하는 연기를 주로 했다. 거기에서 사람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다. 본인은 어떤가. 주변인이지. 힘 못 쓰고. 이번에 중심 역할을 한다. 9시 뉴스 앵커. 제대로 중심이지. 나도 카타르시스가 있다. 질펀하게 울거나 질펀하게 욕하거나 질펀하게 때려부수면 느껴지는 게 있다.

아마 당대에 가장 욕을 많이 한 배우로 기억될 거다. 뭐 공식적으로 하는 거니깐. 누가 그러더라. 그 형만 그럴지도 모르겠는데(웃음). 내가 진짜 서럽게 운다고 하더라.

맺힌 게 많나? 아닌데. 할 말 다 하고 사는데. 전생에 맺힌 게 많았나? <오아시스> 끝나고 나서 이창동 감독님이 그러셨다. <박하사탕> 때 내가 연기한 거 보고 우셨다고. 자기도 진짜 안 우는데 내가 여고생 죽이는 신 찍을 때 울었다고.

솔직히, 당신도 스크린에서 자기 모습 보고 우나? 난 내 모습 잘 못 본다. 아, 나도 <박하사탕> 때 울었구나. 그 영화를 사실 한 번도 제대로 못봤다. 부산영화제 개막작이었는데, 사람들이 술을 엄청 먹대. 나도 술이 떡이 돼가지고 “갈래요” 하는데 감독님이 들어가자고 해서 잠깐 <박하사탕> 상영하는데 들어갔다. 거기서 10분 동안 펑펑 울고 나왔다. 내가 “장화에 물이 들어갔어요” 하는 장면을 보고. 어찌나 마음이 슬프던지. 내가 <박하사탕>에서 잘 헤어나오지를 못했다.

그는 외쳤다농담처럼, 섹시하고거친 남자가 촬영컨셉트라고 하자 그는“섹시는 무슨! 절대그렇게 쓰면안돼요!”라고 외쳤다. 화이트 셔츠는 질 샌더, 넥타이는 루이 비통, 블랙 수트는 엠포리오 아르마니
그는 외쳤다
농담처럼, 섹시하고
거친 남자가 촬영
컨셉트라고 하자 그는
“섹시는 무슨! 절대
그렇게 쓰면
안돼요!”라고 외쳤다.
화이트 셔츠는 질 샌더, 넥타이는 루이 비통, 블랙 수트는 엠포리오 아르마니

당신이 연기하는 캐릭터들은 감정이 굉장히 세서 그런지 헤어나오기 힘들어 보인다. 근데 그걸 어떻게 조절해야 하나? 계산적으로 못한다. 울면 난 그냥 펑펑 울어야 한다. 세다고 느끼는 건 감독이 해야 할 몫이다. 난 그냥 할 만큼 다 해야 한다. 남기긴 뭘 남기남. 필름을 남기남? 필름을 남겨서 남기남 감독이라 하더라.

지금 유머한 건가? (질문에 아랑곳없이) 필름을 남기남? 그래서 남기남 감독이라더라.

남김없이 다 소진한다는 건, 겁이 안 나기 때문인가? 뭘 겁을 안내나. ‘존나’ 겁난다.

카메라도, 아무도, 자기 자신도 겁내지 않는 것 같은데. 앵글에 날 가두려고 하면 겁낸다. 날 풀어주면 겁이 없고. 감독에 따라 많이 바뀐다. 박진표 감독님이 했던 얘기가 있는데, 배우를 진짜로 사랑해야 한다는 거다. 영화 하면서 사랑하는 척하면서 챙겨주고 그런 게 아니라 진심으로 대하면 배우는 마음의 문을 연다. 감독과 배우는 진짜 애정을 가지고 서로 사랑해야 한다. 사람을 믿는 거거든. 어떻게 앵글을 바꾸든 말든 내가 뭘 알아. 감독이 배우를 많이 이뻐해주고 그러면 그만큼 나온다.

배우는 사람을 잘 안 믿지 않나? 왜 안 믿나?

항상 의심하는 존재 아닌가? 배우를 잘 안 믿지. 사람들이. 얼굴에 분칠하고 다니는 사람 믿으면 안 된다는 말도 있지 않나. 옛날에 진짜 그런 말 있었다.

분칠 안 하지 않나. 한 거다, 이거.

그래서, 사람 잘 믿는다고? 사람은 안 믿는다. 믿는 사람만 믿는다.

<그놈 목소리>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당신도 그런 적 있나? 글쎄. 떠나가면 떠나가는 거지. 이유가 있겠지. 아. 몰라.

배신당하거나 배신한 적은? 사람에 대해 섭섭한 거지 배신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뭘 잃어버려. 자기 갈 길 가는 거지.

영화 찍으면서 아이 생각 났을 것 같은데. (생각) 안 했다. 유괴라는 상황에 대입시키기 싫었다. <열혈남아>를 엄마 생각하면서 찍었냐라는 질문 많이 받았는데, 절대로!

하긴, 실제로 그 삶을 산다고 그 연기를 잘하는 건 아니니까. <마라톤맨> 찍을 때 더스틴 호프먼이 실제로 마라톤을 열심히 하자 로렌스 올리비에가 혀를 끌끌 찼다는 유명한 일화처럼. 당연하다. 연기 처음 하는 친구들이 연기 왜 하냐고 하면 여러가지 인생 살고 싶어서요, 그런다. 뻥 까고 있네. 여러가지 인생 못 산다. 지가 하는 건데. <그놈 목소리>에서 한경배 역할을 했다고 내가 그 사람 삶을 살았나? 아니다. 내가 하면 그게 그냥 한경배인 거다. 그럼 뭐, 엄기영 앵커처럼 해야 하나? 아니다. 어떤 특별한 직업 맡으면 직접 만나보고 그런 분들도 있지만, 난 좀 다르다. 나 같은 앵커 있어, 그러면 된다. 난 그런 건 연구 안 한다.

당신이 가장 싫어하는 연기 분석에 관한 질문을 해야겠다. <열혈남아> 보기 전까지 솔직히 <박하사탕>이나 <역도산>에서 이미 보여줄 건 다 보여주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그 캐릭터는 기존의 설경구와 좀 달랐다. 으아! 난 모른다. 뭔 얘긴지 난 모른다.

평소에는 그럼 연기 생각도 안 하나? 뭐 하러 하나. 공부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영화는 보나? (소리를 지르며) 봐요!

최근에 본 건 뭐였나?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내 시대 이야기더라. 극장에서 금방 내릴 줄 알았다. 그런 영화는 요즘 환영 못 받는다. 나도 찍어 봐서 안다.

관객을 놓친 영화 <사랑을 놓치다>? <사랑을 놓치다>와 <열혈남아>. 씨팔, 그러려면 터뜨리는 영화 해야 하나? 짜증 난다. 앞으로는 사람에 대해서 얘기하면 안될 것 같다. 관심 없나 보다. 소중한 영화들인데. 관객이 없으면 영화가 또 의미가 없으니.

그래도 영화를 찾아본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있겠지. 근데 욕심이라는 거다. 몇 달 동안 뺑이 까면서 고생했으니까.

아, 영화도 보는구나. 에이, 정말. 나 <타짜>도 봤다. … 하여간 본다.

요즘 재밌나? 삶이? 그냥 산다. 재밌나? 하하. 근데 왜 묻나?

재미없으니까. 남들은 좀 재밌나 해서다. 남들도 똑같더라.

한 번도 남의 뜻대로 살아본 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맞나? 아니. 항상 감독 뜻대로. 나 말 드럽게 안 들을 것 같은데 의외로 잘 듣는다. 나, 안하무인 아니다. 승질을 좀 부리지. 미친 거 아닌가, 이 나라 씨팔. 이러다가 씨팔 연말이구나 이런다. 다 참아야지. 다 잊고.

지난해는 잊을 게 많은 해였나? 영화 두 개 개봉했고, 두 개 찍었다. 어! 많이 했다. 지난해 너무 싫었다. <역도산> 끝나고서부터 진짜 싫었다. 진짜 진짜.

뭐가 그렇게 싫었나? 다 싫었다. 지난해 개년이었지 않나. 개년.

지난해 벽두에 ‘개 같은 년 되지 마십시오’하고 친한 사람들에게 문자를 보냈다면서? ‘개 같은 년’은 안 됐겠지? 올해부터 날 사랑하기로 했다. 학대 그만하고. 짜내서 뭐 하러 연기해.

그럼 여기서 객관식 질문 하나 해보자. 만약 다음 영화 중 한 편을 찍어야 한다면 뭘 하겠나? 이창동 감독 신작, <역도산> 속편…. (말을 가로막으며) 어, <역도산>은 절대 안 한다. 살 찌는 거 안 할 거다. 좋은 작품이다, 물론. 불성실한 면도 있었지만 우린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다. 진짜 이러다 뒤질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까지 했으니까. 레슬링 장면을 찍는데 한 컷도 안 나누고 찍었다. 시합 하나를 다 한 거다. 이제 뭐 아쉬워하지도 않는다. 울부짖고 이러면서 내가 살아있다고 느꼈는데, 이젠 즐겼으면 좋겠다. 근데 이창동 감독님과 하면 그 맛이 또 있다. 할 때는 다신 안 해, 이러지만 헤어지고 나면 생각이 난다.

설경구에 대해서 우리가 앞으로 뭘 기대하면 좋을까?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라. 그냥 혼자 놀 테니까, 지켜봐라. 감사히 봐주시면 저는 그 힘을 받아서 열심히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볼펜 한 자루 팔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인터뷰 그만해야겠다. 그래도 당신이 죽은 후에 사람들이 설경구라는 배우를 기억해주길 바라겠지? 기억이나 해줄라나? 아씨, 연기 하나는 열심히 하고 살았다, 한눈 안 팔고 살았다, 그러면 만족 아닌가? 그러면 죽어도 여한이 없사옵니다. 배우는 욕심이 많아서 죽어도 여한이 없사옵니다, 라는 말은 잘 안 쓰지만. 한 작품만, 한 작품만 더하겠다는 생각뿐이다. 죽은 다음은 생각도 안 하고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일이 꾸준히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현장에서 계속 살면 좋겠다.

그럼 벽에 똥 칠하면서 몸을 가누기 힘든 상황에서도 연기를 할 건가? 몸을 가누기 힘든 역할을 연기할 거다. 탁아소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해! 애 맡기고 극장 오라고.

애 맡기고 <그놈 목소리> 보러 가면 진짜 아이러니하겠다. 아, 이 영화는 애들 데리고 나와서 봐야 한다. 진짜로. 그리고 감상문 쓰게 해야 한다. 교육적으로 굉장히 훌륭한 영화다. 이 영화는, 영화로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사회 참여의 형태를 띠고 있다.

아니, 인터뷰 끝내려고 하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영화 홍보를 하나. 하하. 그러게.

인터뷰 싫어한다더니 영화 홍보도 하고. 귀찮아서 그렇지. 막상 시키는 건 잘한다니까.

자발적으로 뭔가를 하겠단 생각은 절대 안 하나?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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