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한국영화에 나온 그곳을 알 수 없는 이유

2013.05.07GQ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 대부분이 영화 속 배경과 실제 촬영지가 다르다.

우디 앨런의 신작 <로마 위드 러브>의 또 다른 주인공은 도시 로마다. 트레비 분수 같은 유명한 관광지는 그 자체로 빛났으며, 로마 어딘가에 있는 골목 구석구석은 영화의 주인공 알렉 볼드윈이나 페넬로페 크루즈 못지않은 연기력을 선보였다. 그게 가능했던 건 로마시의 전폭적인 로케이션 지원 서비스 덕분이다. 결국 로마시는 ‘우디 앨런표 로마 홍보 영상’을 얻을 수 있었다.

<로마 위드 러브>처럼 특정 도시가 전폭적인 로케이션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조건하에 그 도시를 배경으로 찍은 한국영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 대부분이 영화 속 배경과 실제 촬영지가 달랐다. 김천예고에서 있었던 실화를 영화화한 <파파로티>는 경상북도 문경시에 있는 문경여고에서 상당 부분을 촬영했고, 지난해 개봉한 <범죄와의 전쟁>은 1980년대 부산이 배경이지만 영화지만 촬영은 전라도의 여러 곳에서 진행했다. <신세계> 역시 서울이 배경이지만 실제 촬영지는 부산이 많았다. 사실, 한국영화는 <로마 위드 러브> 같이 실제 공간을 소재로 한 영화에 큰 관심이 없는 편이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제작진이 공간을 헌팅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이야기의 리얼리티다. 시나리오가 묘사하고 있는 공간과 실제 공간이 부합해야 한다는 얘기다. <범죄와의 전쟁>의 한재덕 프로듀서는 “몇몇 장면은 구 전북도청의 느낌과 정서가 훨씬 좋았다. 윤종빈 감독도 그곳의 그림을 마음에 들어했다”고 상당 부분을 전주에서 찍은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 공간이 시나리오에 부합하는 공간의 정서보다 사실적일 거라는 가정은 그래서 더욱 위험하다.

극의 리얼리티만큼 영상위원회의 로케이션 지원 서비스도 촬영지를 선택하는 데 중요한 고려 요소다. 현재 프리프러덕션 과정 중인 곽경택 감독의 신작 <친구 2>는 부산과 울산에서 반반씩 촬영할 예정이다. <친구 2>의 김병인 프로듀서는 “울산시의 로케이션 지원 서비스가 적극적이었고 도로 통제 같은 서비스도 지원해주기로 했다. 그래서 울산을 영화의 주요 공간으로 선택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로마 위드 러브> 같은 사례가 한국의 영화 투자, 제작 환경에 매력 있는 아이템이 아니라는 반응이다. 상업영화에서 중요한 건 시나리오와 배우지 공간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다. 한재덕 프로듀서는 “우리가 제작하는 영화는 관광용이 아니니까, 시나리오에 맞는 공간을 찾는 게 우선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는 그들의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제작 독려에 여전히 적극적이다. 전국의 여러 시도 영상위원회 중 부산영상위원회에서 올해 시행하는 시나리오 창작 공간 지원사업과 영화 기획개발 팸 투어 사업이 눈에 띈다. 시나리오 창작 공간 지원 사업은 말 그대로 장편 극영화 제작이나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영화감독, 프로듀서에게 영화 기획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 사업에 선정된 창작자들은 해운대 씨클라우드 호텔에서 최대 10일간 묶으며 시나리오를 쓸 수 있다. 단, 조건이 있다. 부산이 배경인 이야기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부산영상위원회가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 촬영 유치에 적극적인 이유는 2년 전 이 사업들을 시범적으로 운영해 효과를 보았기 때문이다. 최동훈 감독이 해운대 씨클라우드 호텔에서 <도둑들>을 기획한 뒤 부산의 주요 공간에서 <도둑들>을 찍은 사례가 있다. 어디에서 찍었는지 알기 어려운 다른 영화와 달리 <도둑들>은 부산이 배경임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래서 이 창작 공간 지원사업에서 나온 시나리오가 영화화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부산을 배경으로 한 지역 영화가 다시 나오는 건 시간문제로 보인다.

이런 지원사업이 아니더라도 감독들 역시 선호하는 도시가 분명 있다. 곽경택, 박찬욱, 최동훈감독 들은 부산에서 찍기를 선호하고, 강우석 감독은 전주에서 촬영하는 것을 좋아한다. 선호하는 이유도 제각각이다. 곽경택 감독이 부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고향이기 때문이고 박찬욱, 최동훈 감독은 부산에서 한번 찍고 나서 부산에 익숙해졌다. 강우석 감독은 과거 제작부에 전주 출신이 많아 제작부가 전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자료를 올렸고, 강우석 감독도 마음에 들어 촬영 장소로 전주를 편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언제가 박찬욱 감독이 만든 부산 영화를 보고 촬영 장소를 둘러보기 위해 부산에 놀러갈 일이 생길까? 확실한 건 매력적인 영화에 출현한 지역은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영화 안에서 어떤 배우보다 인상적인 연기를 한다는 것이다. 관객은 그 연기에 반할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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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LLUSTRATION / Lee Eun Ho
    기타
    글/ 김성훈(<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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