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언제든 전화하세요

2013.05.13GQ

독창적인 제품 디자이너 아릭 레비는 언제든 전화하라고 말했다.

시계가 멋있다.
이 시계 말인가? 벨앤로스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브랜드다.

이유가 있나?
오너와 디자이너 둘 다 내가 프랑스에서 가르치고 있는 학교에서 공부했었다. 디메뉴어demineur 모델을 정말 좋아한다. 잃어버렸는데 그에게 졸랐다. 어떤 시계를 좋아하나?

매번 고민하지만 결국 로렉스다. 데이저스트 주빌레와 서브마리너.
하하, 좋은 시계다.

당신이 어렸을 때 다리미를 가지고 놀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30년 동안 쓰신 다리미를 가지고 왔다. 아주 좋다. 제네럴 일렉트로닉의 다리미라니, 완벽한 빈티지다.

그런데 난독증이 있다고도 들었다.
난독증이 있어서 내게 언어는 장난감 같다. 단어가 어떻게 쓰이는지 모르지만, 내가 어떻게 쓰는지는 안다. 이번 ‘2013 세계 경제·금융 컨퍼런스’ 강연에서 나는 ‘economy’를 ‘eco/nomy’로 썼다. 내 뇌는 체계적이지 않고 유기적으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한글을 작업의 주체로 사용해보는 건 어떤가? 한글은 정말 흥미로운 언어다.
한국인 친구가 몇 명 있는데, 그들이 가진 시집 한 페이지를 무작위로 스캔해 붙여놓고 친구들에게 번역해달라고 했다. 물론 시는 이미지로 감상할 수 있지만, 나는 그것을 듣고 언어로 향유하는 것이 좋다. 내 최근 저서의 서문도 그러한 이유 때문에 시인이 쓰게 했다. 내 책의 서문을 꼭 시인이 써줬으면 좋겠다.

그래서인지 당신의 디자인에서 함축이나 비유를 느낄 때가 많다.
물론이다. LG에서 제품을 디자인할 때는 기계/기술에 시를 넣어서 또 다른 무대를 만들고자 했다.

LG에서는 휴대전화 디자인을 했다. 삼성과 LG를 비교해 평가하자면 어떤가?
삼성이나 LG의 휴대전화를 사용해본 적이 없다. 노키아, 지멘스, 애플 것만 사용해봤다. LG와 일했을 때도 LG 휴대전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항상 질문받았다. 그럴 때마다 LG 휴대전화를 하나 주면 사용해보고 말하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주진 않던데. 하하.

디자이너로서 여러 한국 회사와 일했는데 혹시 문제라고 느낀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아시아 회사들은 비전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하다고 봤다. 비판이라기보다는 유럽적인 시각에서 관찰했을 때, 중국, 일본, 한국, 대만 등의 아시아 국가가 거진 비슷하다. 혁신은 별로 없는데 반복은 굉장히 많다. 그 이유는 자유의 결핍에서 비롯된 일종의 ‘무능한 상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행에 옮기는 용기보다 환경적인 여건이 중요할 수도 있다.
나는 성공적인 사업을 위해서는 좋은 변호사와 좋은 회계사, 자본, 비전 그리고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하곤 한다. 변호사는 친구들의 소개를 통해 고용할 수 있다. 회계사도 마찬가지다. 자본을 구할 때는, 당신이 프로젝트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은행, 벤처캐피탈, 혹은 대통령에게 가서 “내 아이디어는 이렇다. 내가 이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돈을 지원해달라”고 하면 된다. 만약 비전이 없다면, 당신이나 나 같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살 수가 있다. 하지만 비전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용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이것이 꼭 기억해야 할,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스템이 경제적으로 더 강력할수록, 로비 활동이 많을수록, 자유는 더 줄어든다. 이런 사례들을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한국처럼 강력하게 계층화된 사회에서는 더 그렇다.

당신은 정말 많은 분야의 것들을 디자인해 왔다. 앞으로 한 분야에서만 일할 수 있다면 어떤 걸 선택하겠나?
매우 심술궂은 질문이다. 나는 과학을 택하겠다. 과학은 심층적으로 파고들 뿐만 아니라, 확장시킬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내게 과학은 창의적인 일이며 예술이다. 50년대인가 60년대에 화학 공학자들과 생명 공학자들이 처음 DNA의 나선 형태를 발견했을 때, 그것은 몇 개의 공식으로 존재할 뿐이었다. 3D 이미지 같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 당신이 구글에 DNA를 검색한다면 거의 이미지만이 결과로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혈구 혹은 암세포 등의 과학용어를 인터넷에 검색하면 믿을 수 없는 수준의 이미지들이 결과로 나온다. 거의 SF수준이다.

최근에 당신의 삶을 가장 풍요롭게 했던 물건이 있나?
펜과 나사다. 펜은 내 생각을 표현하는 시끄러운 스피커와 같다. 나사는 정말 흥미로운 물체다. 만약 우리 주위의 모든 나사가 사라진다면, 모든 것이 무너져버릴 것이다. 7년인가 10년 전쯤, 어떤 사람이 직결나사라는 것을 발명했다. 그전까지는 드릴로 먼저 구멍을 뚫고 나사를 죄어야 했는데, 직결나사를 통해 나사를 바로 죌 수 있게 되었다. 그 나사에는 드릴에 맞는 홈이 파여 있기 때문이다. 정말 기발한 발상이다.

일주일 이상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들었다. 항공 마일리지는 어떻게 다 쓰나?
나는 온 가족의 휴가를 위해 내 마일리지를 사용한다. 이렇게 여행을 다닌 지 15년이 되었다. 하지만 내게는 친구들 그리고 당신처럼 낯선 이와의 만남에서 쌓이는 우정의 마일리지가 더 중요하다. 오늘 밤에 내가 만날 사람들도 6년 전에 처음 만나 친구가 되었다. 이런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파리에 왔는데 연락을 주지 않으면, 화가 날 것 같다.

전화를 받을 건가?
언제든지. 점심 먹고 이것저것 보여주겠다.

    포토그래퍼
    CHUNG WOO YOUNG
    스탭
    어시스턴트/ 서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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