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의 즐거움

낯은 익지만 배우는 아니다. 송해성 감독은 잘 먹고 잘살기 위해 영화를 찍는다.

연한 하늘색 셔츠는 미카엘큐, 청바지는 빈폴.
연한 하늘색 셔츠는 미카엘큐, 청바지는 빈폴.

 

“이번 영화는 상처받은 영혼들이 엄마 집으로 돌아와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치유하는 내용이에요. 나 또한 이 영화를 통해 전작에서 받은 고통을 치유할 수 있었고요.” 모래색 트렌치코트는 솔리드 옴므.
“이번 영화는 상처받은 영혼들이 엄마 집으로 돌아와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치유하는 내용이에요. 나 또한 이 영화를 통해 전작에서 받은 고통을 치유할 수 있었고요.” 모래색 트렌치코트는 솔리드 옴므.

사진 찍는 거 너무 걱정 안 해도 된다. 사진 잘 나오는 얼굴 아닌가? 최동훈 감독도 처음엔 꽤 싫어했지만 잘했다. 하하. 최동훈 감독은 원래 그런 거 좋아한다. 막 웃어야 하나?

안 웃어도 된다. 웃는 거 싫어하나? 이번 영화 <고령화 가족>에서는 처음으로 코미디를 섞었는데, <파이란>, <역도산>,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무적자>처럼 또 주인공이 죽을까? 아니, 이번엔 아무도 안 죽였다. 천명관 작가의 원작 소설에선 엄마가 죽는다. 그 죽은 엄마의 살점을 먹으면서 살아가는 자식들의 어떤 동물 같은 습성이 중요한 내용이다. 하지만 요새 영화계의 분위기를 보니 그런 식으로 시나리오에 접근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최근 영화판의 흐름이 너무 꿀꿀한 걸 받아주는 분위기가 아닌 것 같다. 관객도 안 들고.

어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봤다. 관객의 반응도 좋고 흥행도 했지만 비평은 좀 엇갈렸다. 하지만 나는 영화의 여러 면에 동의할 수 있었다. 평가가 좀 박했을까? 비평이 안 좋았던 이유가 있다. 청춘 남녀가 주인공이고, 강동원, 이나영 두 배우의 얼굴이 비효율적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판타지에 가까운 얼굴을 지니고 있다는 말인데, 그러다보니 현실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비평하는 사람들은 영화가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것에만 집중하지 않나? 비평이 좀 더 깊은 것을 봐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사실 내겐 어느 비평보다, 다른 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어떤 모르는 분이 “이 가을에 용서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문자를 보냈다. 그런 걸 원해서 그 영화를 만들었던 거다. 그리고 영화라는 게 나중에 보면 또 다른 느낌일 수 있다. 예전 작품인 <역도산>의 경우 차승재 대표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최고라고 말한다. 나 또한 그 영화가 최고라고 자부하고.

아쉽게도 <역도산>은 흥행에 실패한 편이고 비평도 엇갈렸다. 영화를 너무 감성적으로 만들었다. 그런 부분들을 많이 반성했다. 각본은 내가 쓰고 또 배우가 겪어왔던 어떤 끊임없는 노력, 이를테면 몸무게를 20킬로그램이나 늘리면서 작업한 고통의 순간을 알다 보니까 어느새 역도산의 편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찍어도 멋있고, 저렇게 찍어도 멋있게 느껴졌다. 배우가 150킬로그램이 넘는 거구를 진짜로 메다꽂고 일본어도 완벽하게 구사하니 안 좋아할 수가 있나. 게다가 개봉하고 나서 실수했다고 생각하는 게, <마이 웨이>도 그렇고, <청연>도 마찬가지고, 뭔가 일본이 개입되거나, 한국영화인데도 불구하고 관객이 자막을 통해 영화를 봐야 하는 불편에 대해선 생각을 못했다.

영화가 시작되고 1시간이 넘도록 역도산이 프로 레슬링에 입문하기까지의 이야기였다. 전개가 느슨해서 긴장이 좀 풀어질 만했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건 따로 있다. 감독들은 마케팅에 상처를 굉장히 받는다. <역도산>이 ‘초대형 블록버스터’라는 이름으로 마케팅 되었는데, 실제론 그런 블록버스터 같은 장면이 없다. 관객들에게 스펙터클한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은 게 아니었다. 우린 예전 역도산이 경기한 것을 똑같이 재연하는 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그것과는 같을 수 없다. 하지만 관객들은 WWE 같은 미국적인 쇼를 기대하고 왔다. <무적자>도 실제에 비해 너무 과대 포장되었다.

<무적자>의 경우 1백억이란 제작비를 도대체 어디다 썼나? 다시 봐도 그 돈을 어디다 썼는지 모르겠다. 실제로는 한 60억 정도 된다. 예산을 부풀려서 마케팅했다. 한쪽에선 돈을 많이 썼다고 하는데, 반대로 돈이 없어서 촬영을 진행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억울한 면도 없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내 작품 아닌가. 그 작품으로 얻은 것도 분명 있다.

<무적자>를 보다 보면 감독이 이 영화를 찍기 싫어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결국 그런 식으로 관객들에게 보이는 거다. 새삼 깨닫는 건 영화 현장 분위기의 중요성이다. <무적자>의 경우 분위기가 안 좋았다. 매번 돈 걱정하기 급급했으니까. <파이란>이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현장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하지만 감독이 본인이 해놓고 하고 싶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면 정말 나쁜 놈이다.

<고령화 가족> 제작비는 얼만가? 굉장히 적다. 순수 제작비만 28억이다.

“내가 굉장히 상업적이지 못 한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상업영화를 하고 있다는 게 고맙죠. 전 완전히 무거운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남색 수트는 반하트 디알바자, 하얀색 셔츠는 미카엘큐.
“내가 굉장히 상업적이지 못 한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상업영화를 하고 있다는 게 고맙죠. 전 완전히 무거운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남색 수트는 반하트 디알바자, 하얀색 셔츠는 미카엘큐.

배우 개런티와 인건비가 절반은 넘겠다. 절반 넘는다. 게다가 밤 한 번 안 새우고 촬영했다.

<무적자>가 후회스럽진 않나? 그렇게 생각하면 옛날에 찍은 <카라>도 마찬가지다. 남이 진행하던 걸 받아서 찍었는데, 12월 24일 하루 동안 벌어지는 내용을 한여름인 7월에 촬영했다. 당시는 CG도 안 될 때라 나뭇잎이 보일까 봐 클로즈업만 찍었다. 하지만 그 영화를 했기에 다음 작품인 <파이란> 찍어서 밥 먹고 살 수 있었다. 그래도 <무적자>가 좀 힘들긴 했다. 작품 끝나면 항상 배우와 사이가 좋은 편인데, 이 영화에 참여한 누구와 다시 작품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해봤다. 그래도 <무적자> 덕분에 절치부심해서 <고령화 가족>을 찍었다.

<고령화 가족>은 캐스팅부터가 만만치 않다. 윤여정, 박해일, 공효진, 윤제문이다. 덕분에 전작에서 못했던 모든 것을 원없이 해봤다. 이번 영화엔 클로즈업 쇼트가 별로 없다. 배우들이 뛰어나니까 얼굴을 가까이 비추지 않아도 충분히 감정이 살아서 거의 미디엄 쇼트로 찍었다. 이 영화 찍기를 진짜 잘한 것 같다. 처음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망한 영화 감독의 이야기라서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나 또한 주인공처럼 치유되었다.

감독으로서 고집스럽게 욕심낸 것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영화는 하나의 카메라에 배우의 모든 것이 담겨야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요즘은 카메라 두세 대로 여기저기서 찍는다. 액션영화가 아닌데도 그렇다. 무조건 다양하게 찍고 본다. 관객의 호흡이 빨라진 것도 이유겠지만, 방송인지 영화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고령화 가족>은 그렇게 안 찍었다. 카메라 한 대로 전부 찍었다. 여러 카메라로 찍지 않으니까 배우들도 굉장히 좋아하고 에너지도 한 번에 쏟아 부을 수 있었다. 몰입을 위해 영화도 순서대로 찍었다. 아직 기술시사도 안 한 상태라 이런 말이 좀 부끄럽지만, 참 좋은 영화가 나온 것 같다. 하하.

보통 감독이 자신 있어 하는 영화는 완전히 망했거나, 진짜 괜찮거나 둘 중 하나다. 아까도 홍경표 촬영감독하고 둘이서 편집본을 봤는데, “이렇게 대사가 없어도 좋은 영화가 드물지 않았나?” 하고 좋아했다. 이 영화가 어마어마하게 자신 있는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내가 해온 여섯 편의 영화 중 두 손가락 안에 드는 영화 같다.

자신감이 대단하다. 비주얼적인 측면에선 어떤가? 그동안 당신의 영화는 캐릭터를 살려내는 힘에 비해 확실한 ‘스타일’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스타일 있는데? 하하. 내 스타일은 사람을 담아내는 방식이다. 내가 만드는 영화는 최소한 가볍진 않구나, 하는 진정성으로 무거운 영화를 만들었다. 드라마를 잘 만드는 것도 내 장점일 수 있을 것 같다.

예전 인터뷰마다 상업영화를 만드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그런가? 무거운 영화를 좋아한다. 예전엔 사람 마음속에 침전된 걸 끌어 올리는 걸 좋아했다면, 요즘은 꼭 그렇게 찍을 필요가 있을까 한다. 웃으면서 영화를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도 산업자본주의에서는 하기 어려운 얘기들이 깔려 있다.

전작 영화의 핵심은 국가가 한 개인이나 가족을 망가뜨리는 내용을 다뤄왔다. <고령화 가족>은 어떤가? 꼭 그렇지는 않은데, 대선 끝나고 개봉했으면 잘됐을 것 같다.

그땐 <레미제라블>이 성공했다. 이 영화는 상처받은 영혼들이 엄마 집으로 들어와서 엄마 밥을 먹고 치유를 통해 다시 나가 어떤 일을 해도 포기 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그렇게 살다 보면 안철수도 문재인도 나타날 수 있는 세상이 온다는 건데, 하하 좀 아깝다.

안경 쓰고 입을 다물면 문재인과 닮았다. 내가? 말도 안 된다. 내 턱은 제임스 딘 닮았지.

아니 뭘 또 그렇게까지…. 배우 할 생각은 없나? 감독 해야지. 먹고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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