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침묵

국토에 흩어진 석불을 찾아갔다. 어떤 것은 천 년이 지났다고 했다. 잠자코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으나 뭔가를 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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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대조사 석조 미륵보살입상, 오후 6시 앞으로는 먼 산이다. 시선은 산보다 멀리 간다. 고려, 보물 2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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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 황낙리 미륵불, 오후 2시 꽃밭인 얼굴은 누구의 기쁨이려는지. 연대 미상, 문인석이나 선돌이라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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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 약사여래좌상, 오후 5시 큰 바위 하나를 놓고 사면에 불상을 새겼다. 동쪽에 부조된 약사여래좌상은 언제나 지는 해를 등진다. 통일신라, 보물1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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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불곡 마애여래좌상, 오전 8시 굴 밖에서 조심스레 여쭤야 할 것 같다. “부처님, 안에 계세요?” 신라, 보물 1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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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마애삼존불, 오후 2시 정오가 지나자, 듣던 대로 표정이 달라진다. 구름이 제 모습을 바꾸듯이. 미소는 둥글어지다 점점 사라지려 한다. 백제, 국보 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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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운주사 광배석불좌상, 오전 11시 방금 전 까지 머리에 새가 있었다. 고려로 추정, 전남 유형문화재 2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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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중원 봉황리 마애불상군 본존불, 오후 3시 절벽 밑으로 강이 흐른다. 사람들은 거기서 손을 씻고 여기로 왔을 것이다. (고구려의 영향이 있는) 신라, 보물 14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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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운주사 석불, 오전 11시 고려로 추정

교는 여행과 가깝다. 절이나 불상을 대하는 마음도 종교적이기보다는 역사와 아름다움에 적을 두기 쉽다. 서산 마애삼존불 앞에 서서 정오를 지나치며, 그 오묘한 표정을 이루던 선들이 하나둘 둥글게 사라지려는 때, 눈앞의 불상은 부처의 형상인 동시에, 계속 쳐다보게 만드는 긴 풍경이 된다. 실외에 있다면, 금속이 아니라 돌에 새긴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거기엔 어쩔 수 없이 시간의 흔적이 여실하고, 그 흔적의 둥굶으로부터 우리는 다만 편안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햇빛과 바람이 벌인 일, 비와 눈으로부터 생긴 일. 석불은 눈매가 흐려지기도 콧날이 뭉개지기도 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시간을 증명한다. 소리는 없다. 주장하지 않으니까. 어쩌면 우리도 그 앞에서 점점 표정을 지우게 되는 게 아닐까?

서산 마애삼존불엔 으레 ‘백제의 미소’라는 수식이 붙는다. 1958년 세상에 알려지면서부터, 아니 훨씬 이전부터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다다르면 미소에 호젓해지기보다 의문에 휩싸이고 만다. 저 표정은 뭐지? 그저 미소라기엔 어딘지 가려운 데가 있다. 가만 보면 꽤나 익살스럽다. 마치 누군가에게 농담을 건넨 뒤, 당황하는 상대를 보며 웃는 것도 같다. 여기서 ‘백제의 미소’를 ‘충청도의 미소’로 바꾸면 어떨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든다. 꾸물댄다며 뒤차가 경적을 울렸더니, 태연히 창을 내리고 “그렇게 급하면 어제 오지 그랬슈?” 묻는다는 충청도 말이다. 그런데 정오가 지나자 석불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한다. 익살스럽던 눈웃음은 스미듯이 연해진다. 이윽고 오후 빛이 가득할 때, 불상은 짐짓 고요하다.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 가까이서 봐도 모호하다. 의뭉스럽던 ‘충청도의 미소’는 그렇게 다시 백제라는 시간 속으로 되돌아가는 걸까?

거기서 지척인 해미에는 동네 사람들이 미륵이라 부르는 석상이 있다. 황락리 마을회관 뒤편, 겨우 채소나 몇 고랑 일궈 먹을 밭에 미륵불은 우뚝 서 있다. 지난겨울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봄바람 일렁이는 4월엔 얼굴이 온통 얼룩이었다. 그러나 닦아내야 할 무엇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건 마치 무늬 같아서 꽃밭이라 불러도 그만일 듯했다. 모자를 썼는지 네모지게 생긴 두상은 강건한데 눈매와 입매는 유난히 얇다. 사람이라면 어떤 목소리를 냈을까? 짐작해보려는데 “어제 오지 그랬슈”가 스친다. 그 유머는 개그맨 최양락이 했다.

부여 대조사 주차장엔 사슴이 있었다. 사슴이 있네, 한마디 하려는데 저 위로 고개만 불쑥 내민 석불이 보인다. 사슴이 올라간 계단을 따라가면 조붓한 경내를 지나 그 앞에 닿는다. 후덕하게 늘어진 볼, 부푼 눈두덩, 낮은 콧대, 중간에 홈이 파인 아랫입술, 무엇보다 가늘게 뜬 눈과 그 속에 박힌 검은 눈동자. 해가 지고 있다. 석불의 등이 환하고 따뜻할 것이다. 내일 아침 다시 떠오르는 해를 마주하면 어떨까. 동쪽으로는 낮고 먼 산이다. 미륵의 시선은 그보다 멀리 간다. 과연 그 표정엔 관조라는 말이 정확할 듯했다.

남도로 내달려 화순 운주사에 가면 곧잘 이런 말이 불거진다. “여기 이상해.” “그렇지? 좀 다르지?” 운주사에 있는 수많은 탑과 불상엔 확인된 정보가 없다. 온통 추정하는 것뿐이다. 만들어진 시대부터 이유나 의미, 양식과 배경과 해석까지 모두 미스터리다. 탑을 장식한 무늬만 해도 전혀 본 적이 없는 것들이다. 구름무늬니 조개껍데기무늬니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도리어 클로버나 로마 숫자가 더 어울린다. 제멋대로 만들어 툭툭 던져놓은 듯한 불상들도 마찬가지. 본래 천 개의 탑과 천 개의 불상이 있었다는 설은 접어두더라도, ‘불교’는 물론, 어떤 테두리로도 낯선 생김이다. 그런 채 봄이다. 불상의 머리맡에는 스르르 벚꽃이 내려왔고, 석가탄신일 연등을 매달기 위해 탑 주변에는 줄을 걸고 있다. 부처님은 운주사에 오셔서 무슨 생각을 하실까. 행여, ‘여기는 참 내가 생각해도 희한하게 생겼구나’ 하시진 않을까? 운주사 석불 중 유일하게 광배가 있는 좌상에 새가 앉았다 간다.

경주 남산은 빽빽하지 않고 촘촘하다. 소나무들, 얼기설기 겹쳐진 임도, 그리고 이정표처럼 나타나는 석불들. 누구에게나 품을 열지만 쉽사리 꺼내 보이진 않으니 그건 숲의 안간힘일까? 북동쪽 바위지대 감실에 있는 마애여래상이 꼭 그렇다. 나무 하나 없이 맨살처럼 드러나는 곳에, 작은 굴을 파고서야 부처를 모셨다. 현존하는 석불 중 가장 ‘여성적인’ 모습이라는 점에서 흥미를 끄는 이 석불은 선덕여왕 시대에 만들었고 선덕여왕을 모델로 했다는 설도 전해온다. 마침 동쪽으로 흐르는 남천을 건너면 바로 선덕여왕릉이니, 그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지는 남산이 품은 또 다른 비밀일 테다. 유홍준 선생은 이 석불을 두고 ‘인자한 하숙집 아주머니’를 연상시킨다고도 했는데, 살며시 숙인 고개를 보면 도무지 밀린 하숙비를 재촉할 성싶진 않다.

경주엔 인파로 붐비는 관광지가 많지만 발길이 뜸한 유적지도 못지않다. 가령 절터가 그렇다. 봄에 감은사지나 황룡사지에 서면, 다보탑 석가탑 청운교 백운교는 없어도 때로 더 많은 것을 보는 듯 아지랑이가 피어나기도 하는 것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굴불사지도 지금은 그 터만 남았다. 그곳에는 덩그러니 집채만 한 바위가 놓여 있는데, 사면에 불상을 새겼다. 동서남북 사면에 불상을 조각하는 것은 사방정토를 상징하는 것인데, 이는 대승불교의 발달과 더불어 성행한 사방불 신앙의 한 형태라고 한다. 서쪽으로 아미타삼존불이 있고, 동쪽으로는 약사여래좌상이 있다. 또한 남쪽으로는 석가 삼존불이, 북쪽으로는 관음보살상이 있다. 합장한 사람들이 연신 주위를 돌면서 고개를 숙인다. 멋쩍기에 한 걸음 떨어져서 그 순한 회전을 보고 있자니, 아침저녁 해가 뜨고 지는 이치가 또한 저런 걸까 생각하게 된다.

신라의 도시 경주를 등지고 좀 더 북쪽으로 가면 고구려를 만날 수 있다. 충주다. 충주는 삼국시대 중원이라 불렸으니, 남하정책을 폈던 고구려가 ‘중원고구려비’를 세운 곳이다. 과연 가금면 봉황리 햇골산 마애불상군에서는 고구려의 영향이 감지된다. 본존 곁으로 5구의 입불이 더 있는데, 그 중 반가상을 받치고 있는 대좌가 원추형이라는 점에서 고구려의 영향을 유추하는 것이다. 경주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두 시간 만에 도착한 곳에서, 이 땅에 불교가 전래되고 전파되며 또한 번성하고 억압받았던 기나긴 시간이 뭉텅뭉텅 거칠게 스쳤다. 하지만 그건 셈하기에 따라 시간의 단위가 아닌 것도 같았다. 마침내 바위의 결락이 석불의 얼굴을 반으로 나누었어도, 그 표정만은 여전히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석불을 뒤로한 채 어질어질 가파른 계단을 내려오며 숫자를 세었다. 서른 셋… 쉰 일곱… 일흔 둘…. 그러면서 이 계단을 올랐을 이들의 기나긴 연대기를 다시 생각했다. 점점 길어지려는 생각과 달리 사실은 아주 단순했다. 거기에 있는 석불이 앞으로도 내내 거기에 있을 거라는 사실.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