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을 받을 다섯 대의 자동차

지금, 구석구석 정확한 조명을 받아 마땅한 다섯 대의 자동차를 샅샅이 관찰하고 대담하게 운전해 봤다.

엔진 1,998cc 수평대항 4기통 가솔린최고출력 203마력최대토크 20.9kg.m공인연비 리터당 11.6킬로미터0->100km/h N/A가격 4천6백90만원


토요타 86


온전히 취미의 영역에서 마음껏 갖고 놀 수 있는 자동차를 찾는다면 토요타 86이 정답이다. 만화 <이니셜 D>의 주인공으로부터 기인한 아우라, 일반도로에서 법을 외면하고 펼치는 레이싱, 상상하기에 따라 끝도 없이 펼칠 수 있는 튜닝의 가능성, 그에 따라 연마할 수 있는 운전 기술…. 자동차에 덧씌워진 온갖 인문, 사회적 의미 중 온전히 재미에만 집중할 수 있는 차가 토요타 86이다. 제안하건대, 트렁크에 삼각뿔을 두 개 정도 싣고 다니는 건 어떨까? 그러다 아무도 없는 어느날 새벽, 몰래 봐둔 공터에서 나는 타이어 파찰음은 무슨 뜻일까? 뒷바퀴를 마음먹은 대로 미끄러뜨릴 수 있게 되는 순간의 독창적인 희열은? 모든 가능성이 토요타 86 안에 있다.

TIP! 86을 타는 사람
쉽지 않은 선택이라는 걸 인정한다. 편안하고 조용한 차, 연비가 높은 차, 크고 웅장한 차, 검거나 흰 차…. 한국이 자동차를 고르는 기준이다. 이 기준들을 하나로 엮어서 뭉치면 그저 무난한 차가 된다. 86은 이 모든 기준의 대척점에 있다. 디자인은 튀고, 배기음은 자극적이면서, 여러 사람이 타기에 편한 차도 아니다. 하지만 재미만은 독보적이다. 86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다른 차에선 느낄 수 없다는 뜻이다. 확신하건대, 그 재미를 명확히 아는 사람만이 86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엔진 1,984cc 직렬 4기통 가솔린최고출력 265마력최대토크 35.7kg.m공인연비 리터당 11.2킬로미터0->100km/h 5.8초가격 4천9백60만원


폭스바겐 시로코 R 2.0 TSI


시로코 R을 운전하는 건 독특한 경험이다. 폭스바겐의 모범적인 이미지가 뿌리부터 흔들린다. 소위 ‘잘 달리는 폭스바겐’이라면 골프 GTI와 GTD를 꼽는다. 골프의 차체로부터 예측하기 어려운 실력에서 오는 재미다. 시로코 R의 달리기는 디자인과 일맥상통한다. 한남대교를 건널 땐 좌우에서 불어오는 강바람, 정면에서 불어닥치는 공기저항을 낮은 포복으로 피하듯 달렸다. 그럴 땐 다른 어떤 차보다 날것에 가까운 배기음이 났다. 배기구가 내 뒷통수 바로 뒤에 달려 있는 건 아닐까? 엔진이 심장에서 돌고 있는 건 아닐까? 그걸 느끼면서 감상에 빠지는 쪽이라기보다, 이 낮고 효율적인 차체를 어떤 방식으로 갖고 놀아야 더 즐거울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차가 시로코 R이다.

TIP! 시로코와 바람의 이름
시로코는 사하라 사막지대에서 지중해 주변으로 부는 바람의 이름이다. 사막지대의 따뜻하고 축축한 기운을 머금고, 모래와 먼지를 동반한다. 지역에 따라 며칠에 걸쳐 강하게 분다. 스페인 남동부에서는 ‘레베체’라는 이름으로, 카탈로니아에서는 ‘샬록’이라고 불린다. 그 외 지역에서도 각각의 이름으로 불린다. 사하라 사막의 모래를 그대로 싣고 와서 폭풍우로 쏟아내거나, 먼지 자체로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봄, 가을에 특히 심하게 부는데, 그때 시로코의 속도는 시속 100킬로미터에 이른다.

엔진 1,997cc 직렬 4기통 디젤최고출력 163마력최대토크 34.7kg.m공인연비 리터당 17킬로미터0->100km/h N/A가격 3천90만원


포드 포커스 2.0 디젤 스포츠


한국 수입차 시장의 주도권은 독일차가 쥐고 있다. 독일차의 특성이 자연스레 좋은 차의 기준이 되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역설적인 측면도 있다. 한국적 특성에 가장 잘 맞는 자동차의 국적은 오랫동안 미국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독일차의 단단하고 견고한 특성을 영리하게 흡수하고 연비와 성능, 디자인까지 꼼꼼하게 챙긴 차가 포드 포커스다. 핸들은 ‘가볍다’와 ‘기민하다’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았다. 승차감도 ‘가볍다’와 ‘민첩하다’ 사이에서 줄타기 한다. 이 균형을 마음껏 깨뜨릴 수 있는 건 운전자뿐이다. 일단 편하다는 얘기고, 욕심껏 몰아세울 수 있는 여지도 있다는 뜻이다.

TIP! 합리의 기준
포드 포커스를 사고 싶은 사람의 구매 리스트에 폭스바겐 골프가 빠졌을 리 없다. 해치백이라는 장르적 공통점, 합리적인 연비를 달성한 경제성, 소박하지만 기능적인 내장과 매력적인 외관을 겸비했다는 점에서 둘은 숙명에 가까운 상대다. 골프 1.6 TDI 모델의 가격은 3천1백10만원, 2.0TDI는 3천3백10만원이다. 하반기엔 7세대 골프가 출시된다. 골프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미국차의 장점을 설득하면서 미국차의 정체성 또한 극복해야 한다는 역설 사이에, 포드 포커스가 있다.

엔진 1,984cc 직렬 5기통 가솔린최고출력 213마력최대토크 30.6kg.m공인연비 리터당 10.4킬로미터0->100km/h 6.9초가격 3천6백90만~4천1백90만원


2013 볼보 V40 T5 2.0


볼보는 영원한 아웃복서 같다. 시장을 뒤흔들 정도의 파괴력을 과시하거나 흐름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의 차 만들기가 수준급이라는 믿음은 견고하고, 한 번도 배신한 적 없다. V40은 좋은 차다. ‘당신을 참 좋아합니다’ 말하는 심정이 이럴까? 운전대를 잡은 마음이 편안하고, 어떤 상황에서 다른 누군가에게 운전을 맡겨도 마음이 놓인다. 조수석이나 뒷좌석에 앉은 소중한 사람을 생각해도 역시 따뜻하다. 그래서 오래 타고 싶고, 서두르고 싶은 마음도 가신다. 시트의 감촉, 버튼을 누르는 심정, 타이어와 서스펜션을 거쳐 시트까지 올라오는 진동에서까지 이런 감각을 전하는 차는 흔치 않다.

TIP! 당신은 누구시기에
V40에는 세게 최초로 보행자 에어백을 장착했다. 사고가 나면 보닛이 살짝 들리면서 에어백이 앞유리의 일부를 감싸는 식이다. 따라서 V40과 맨몸의 보행자가 충돌했을 때, 보닛을 타고 앞유리에 부딪쳐서 입게 되는 보행자의 2차 부상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됐다. 차 밖에 있는 불특정 다수까지 배려하는, 이토록 속 깊은 당신은 누구시기에.

엔진 1,995cc 직렬 4기통 디젤최고출력 143마력최대토크 32.7kg.m공인연비 리터당 18.7킬로미터0->100km/h 8.6초가격 3천3백90만~4천90만원


BMW 118d (어반 라인)


3천만원대에 BMW를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 후련해지는 가슴을 어쩌면 좋을까? BMW의 운전감각은 특별하다. 몸에 익은 중력가속도와 관성을 무시하고 꺾었는데 그대로 뒤따라오는 꽁무니, 흔들림 없는 몸짓, 핸들을 감고 돌릴 때의 손맛…. BMW의 모든 세그먼트가 이렇게 차진 감각을 공유한다. 1시리즈에도 고스란히 살아 있다. 그러니 작은 체구라서 물러설 이유도 없고 고민할 여지도 적다. 옆에서 보는 두 바퀴의 간격, 보닛의 길이, 헤드램프와 리어램프를 잇는 의연한 수평선. 고급함은 크기와 화려함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렇게 당당하고 옹골진 차도 없다.

TIP! 어반라인? 스포츠 라인?
BMW 코리아는 118d는 어반라인, 120d는 스포츠 라인이라 명명했다. 120d의 최고출력과 최대토크가 각각 41마력, 6.1kg.m 높다. 가격은 3천9백80만 ~ 4천6백80만원이다. 최대 1천만원 이상 차이 난다. ‘기왕 사는 거…’ 생각하다 보면 갈등이 시작된다. 그 고민이 친구의 것이라면 이런 말을 하고 싶다. 반드시 두 대 다 타보라고, 수치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면 118d도 넘치도록 출중하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게 합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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