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와 남자와 수다

남자들은 야구라는 자랑스런 소재 앞에 대놓고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점심시간, ‘텔레비전 큰 식당’에서 류현진이 공을 던지자 한 남자가 곧장 선언하듯이 외친다. “공 좋다!” 시간 때우는 얘기로, 야구와 축구와 권투 중 무엇을 좋아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어떤 성향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축구를 좋아하면 음악적인 사람, 권투를 좋아하면 영화적인 사람, 야구를 좋아하면 문학적인 사람이라나? 그런데 야구를 좋아하면 문학적인 사람이라는 말을 야구 중계를 보는 남자들과 겹치면 통하는 데가있긴 있다. 야구는 듬성듬성 빈 곳 투성이고 그 시간을 채우는 것이 바로 문학, 즉 언어, 말이며 수다라는 식이 어물쩍 성립하려 든다.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야구는 지루해서 못 보겠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야구는 경기의 반 이상이 ‘인저리 타임’ 같다. 투수가 모자챙을 만지는 시간, 타자가 공연히 방망이를 휘둘러 보는 시간, 공수를 바꾸느라 뛰어오는 시간, 높게 뜬 공이 공중에 머무는 시간…. 대부분의 스포츠가 어떤 맹렬한 흐름을 따라가는 속도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야구는 이례적일 만큼 정적이다. 반대로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그 ‘정적인’ 시간이야말로 꿀이다. 그들은 지루해하는 대신 그 시간을 채울 수많은 얘기로 이미 벅차다. 어느 야구 해설가의 말버릇처럼 “저 선수는 말이죠…” 슬슬 변죽이나 울려도 시간은 충분하다. 장면을 놓칠까 노심초사 빨리 말할 필요도 없다. 저 공이 왜 나쁜지, 왜 저 공을 쳤어야 하는지, 어떨 때 도루를 하고 어떨 때 번트를 대는지, 저런 타구 폼이 어디서 나온건지, 심판은 왜 저러고, 사직 관중들은 왜 저러는지, 다 말해도 경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오프사이드만 제때 지적해도 축구 좀 아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달리, 야구는 시시콜콜 얘깃거리를 망라해야 야구 좀 아는 사람 취급을 받는다. 말하자면 야구는 ‘멀티 채널’을 열어놓고 끊임없이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내기까지 한다.(이 얼마나 문학적인가.) 그런 야구 얘기의 대부분이 숫자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구속이며, 타율에, 방어율, 출루율 같은 단순 수치부터 일대일 대차대조표까지 빽빽하다. 이 지점에 오면 왜 유난히 야구와 남자의 수다가 톱니가 맞는지 짐작할 수 있다. 숫자로 된 데이터라는 더 이상 정교할 수 없는 논거가 버티고 있고, 그걸 바탕으로 말하는 방식은 다분히 남자들의 과시욕을 자극한다. 수다라고 에둘러 말했지만, 사실 야구 중계를 둘러싼 남자들의 말이란, ‘내가 야구를 이만큼 안다’는 식의 과시가 아닌가. 얼마 전엔 강예빈과 클라라의 시구를 비교하면서 그녀들이 어떤 속옷을 입고 시구를 했는지 클로즈업 촬영으로 비교하는 ‘남성용’ 기사도 버젓이 나왔다. (문학적인) 남자들은 야구라는 자랑스런 소재 앞에 대놓고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