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안에 답이 있다

건축학 교수 김성홍은 네덜란드가 홍대 일대를 주목하고 있다고 말한다. 암스테르담이 홍대를 주목하는 이유를 찬찬히 듣다 보니 서울의 문제 또한 서울 안에 답이 있었다.

당신과 함께 1년간 서울시립대에서 지낸 네덜란드 교수 바트 호이서가 모국으로 돌아가 <서울해법(Seoulution)>이라는 책을 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들었다. 우리가 유럽을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이 서울을 주목하는 건 의외인데 어떤 이유에서 그럴까? 김성홍(건축학 교수) 암스테르담의 경우 굉장히 보존이 잘된 도시다. 하지만 건축의 형태와 용도를 엄격히 규제하기 때문에 창의적인 접근 자체가 어렵다. 오히려 보존만을 거듭 강조한 암스테르담에서 우리같이 규제를 잘 이용하는 융통성이 필요한 것이다. 보존만 하고 창의적인 발전을 막는 엄격한 규제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규제를 잘 이용한다는 건 어떤 면에선 규제가 허술하다는 뜻으로 들린다. 건축 규제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한국이나 미국처럼 하나의 필지에 건물을 지었을 때 가상의 ‘볼륨’인 용적률을 규제하는 방식이고, 또 다른 하나는 네덜란드를 비롯한 독일과 프랑스같이 층수와 겉모습, 지붕의 각도, 건물이 나열되는 기준선까지 규제하는 엄격한 방식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건물을 규제하는 건폐율과 층수 제한, 사선 제한 등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볼륨을 규제하는 용적률이 가장 강력하다. 우리나라의 규제가 허술하다기보다는 대부분의 유럽과 규제 방식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바트 호이서 교수는 다양한 시도가 가능한 느슨한 규제 속에서도 충분히 문화적, 미학적, 기능적인 건축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홍대의 사례를 통해 네덜란드에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홍대의 어떤 부분이 훌륭하다고 생각할까? 홍대엔 출판회사가 많으면서 클럽도 많고, 거리 공연도 열리면서 여러 교육시설이 있는 굉장히 독특한 지역이다. 홍대 안에는 다양한 문화적 퇴적물이 쌓여 있고, 그걸 밑거름으로 건물이 만들어진다. 다가구, 다세대 주택의 1층을 채운 카페나 상점과 사무실 위에 텃밭을 올린 복합 건물들은 일상적이면서도 ‘기지’를 발휘한 방법이다. 이렇게 주거와 상업 공간을 잘 섞은 건축은 어디서도 볼 수 없다. 기존의 건축물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미학적인 부분도 굉장히 독창적이다. 굉장히 빠르게 변하고 진화의 속도도 빨라서 예측 불가능하다. 서울은 본래 이런 역동적인 모습이 특징이다.

바뀌는 모습을 역동적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서울이 너무 자주 바뀐다는 목소리도 있다. 도시는 산업에 의해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하나의 유기체다. 우리나라는 근린생활시설이란 이름으로 음식점을 비롯한 아주 다양한 용도로 개업할 수 있다. 그런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제도가 민간 측면, 이를테면 자영업자들에게 활력을 준다. 서울은 기본적으로 많이 바뀌고 자주 바뀔 수밖에 없는 도시의 성향이 있다. 유럽은 19세기에 도시에 필요한 밀도를 채우고 도시의 골격을 갖췄지만, 서울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1960년대부터 대부분의 건물을 새로 지었다. 유럽처럼 보존할 만한 건물이 그렇게 많지 않고, 여전히 새로운 시도가 진행 중인 도시다. 변화가 서울의 가장 큰 특징이다. 발전 속도도 엄청나서 인구밀도도 급격하게 늘어났고, 그러니 아파트도 많아졌다.

아파트는 서울을 점령했다.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까? 서울의 면적 605제곱킬로미터 중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손을 댄 곳이 70퍼센트다. 산업화를 겪으면서 집을 엄청나게 지어야 했고 그 상황에서 아파트는 가장 적절한 선택이었다. 압축 성장을 한 도시에서 아파트만큼 효율적인 주거 공간은 없다.

하지만 똑같은 모양의 아파트들 때문에 서울은 개성을 잃었다. 현재 많은 아파트가 재건축 혹은 리모델링을 앞두고 있는데 어떤 모습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나? 사실 판상형 아파트는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모든 집을 남향으로 지을 수 있기 때문에 훌륭한 해법이다. 아파트의 문제는 그 생김새보다 아파트 단지를 이루는 방식이다. 최근 생긴 아파트 단지는 섬처럼 존재한다. 고급 아파트일수록 주변 지역과의 단절이 심하다. 도시는 수평적인 소통이 중요한데 그것이 잘 되지 않을 경우 사람 몸으로 생각하면 심근경색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도시도 소통이 단절되면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진다. 아파트도 결국 도시의 일부로 여러 사람이 다닐 수 있게 유지되어야 한다. 아파트 단지 내의 도로를 강제로 개방할 순 없겠지만 아파트 내의 소통할 수 있는 도로를 재건축을 하면서 없애는 건 지양해야 한다.

그런 단절이 안전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아파트에서 사는 경우가 많다. 그건 맞는 말이지만 도시라는 것은 공공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도로를 다닐 권리가 사람들에게 있다.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도 하나의 골목으로 생각하는 인식이 필요하다.

최근엔 걸어 다닐 수 있는 공간을 중심으로 새롭게 상권이 형성되고 있다. 상수동 일대와 가로수길, 삼청동을 지나 경리단길, 부암동이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런 점은 서울이 여전히 완성되지 않고 발전 중인 도시라는 증거일 수 있다. 1930년대 뉴욕은 도심이 공동화되면서 사람들이 외곽으로 빠져나갔다. 교외가 훨씬 더 안전하고 넓은 주거공간을 제공했기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리니치빌리지와 같은 도심의 임대료가 내려갔다. 덕분에 가난하고 젊은 아티스트들이 작업하기도 좋고 임대료도 싼 도심으로 모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다시 도심에도 활력이 생기면서 서서히 그 지역 자체가 탈바꿈하고 그리니치빌리지 자체가 부촌이 될 수 있었다. 서울에서도 이런 ‘젠트리피케이션’(도심 고급화)이 일어나고 있다. 예전에는 주상 복합 아파트나 새로운 건물을 지으면서 도심 고급화가 일어났지만, 부암동, 서촌 같은 지역은 과거의 모습을 간직한 채 고급화를 하고 있다는 것이 꽤 값진 일이다. 기존의 것을 보존하면서도 경제적인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몇몇 지역은 처음엔 주거 공간과 상업 공간이 적절히 섞이는 듯했지만 점점 더 상업 쪽으로만 치우쳐 결국 관광지로 변했다. 결국 ‘임대료의 서열화’다. 처음에는 임대료가 저렴했지만 많은 사람이 모이면서 올라간 임대료를 잘 사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변했다. 하지만 서울은 여전히 발전의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건 골목길로 사람들이 지나 다닐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강남의 변화도 골목길에 주목하며 재개발되어야 한다. 강남이 의외로 근생주택, 단독주택, 다가구, 다세대가 공존하는 다양한 모습을 지녔고,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많이 주기 때문이다.

강남엔 여전히 낡고 낮은 건물이 많다. 어떤 식으로 변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나? 강남엔 4미터, 6미터의 기다란 블록들이 있는데 그런 블록 하나를 통째로 재생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실제로 법제화가 되어 있다. ‘가로주택정비법’이라는 이름으로 최근에 새로 법이 생겼다. 이 법은 격자형 블록에 적합한데, 강남은 과거 토지구획 사업을 통해 반듯한 블록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삐뚤빼뚤한 강북의 블록보다 유리하다. 하지만 아직 큰 건설사에서 하기엔 별 이득이 없어 활성화가 안 되고 있다. 하지만 중소 건설업체나 서울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주택조합이 안정화되면 지금과 같은 저성장 시대에 맞는 새로운 부동산 개발 방식이 될 것이다.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