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음악 사이

섹스에 대해 공공연하게 노래하는 건 국내에선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재범이 얼마 전 발표한 ‘Welcome’을 들으면 생각이 좀 달라진다.

간혹 “섹스할 때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은 무엇인가?”란 주제로 설문이 열린다. 설문 대상에 따라 결과가 바뀌긴 하지만, 마빈 게이의 ‘Let’s Get It On’은 결코 순위권에서 빠지지 않는다. 제목만으론 무슨 내용인지 짐작이 잘 가지 않는다면, 동명의 음반 <Let’s Get It On> 커버에 인용된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의 한 부분을 참조하면 좋다. “삶과 성교, 그리고 죽음.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것뿐.”

좀 더 직설적인 노래가 필요하다면, ‘Sexual Healing’이 있다. 토닥이고, 펑펑 울고, 고백하는 것만이 힐링일까? “난 섹슈얼 힐링을 원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마빈 게이의 말이 그저 분위기나 잡는 말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어쩌면 섹스야말로 감정의 영역과 밀접하다는, 그래서 이 노래를 부른다는 선언에 가깝게 들린다.

영국인의 공중파 채널 ITV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1만 명의 응답자 중 51퍼센트가 섹스 중 음악을 틀어놓는다고 한다. 포르노를 보며 섹스하거나,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 예능 프로그램이나 뉴스 따위를 틀어놓고 섹스를 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지만, 대단히 특이한 취향이 아니고서야 쉽사리 선택할 방법은 아닌 듯하다. 확실히 그보단 음악이 섹스에 가깝다. 애인을 위해 좀 더 좋은 사운드 시스템을 준비하고, 섹스와 잘 어울리는 음반을 수집한다는 남자들도 있다. LP로 음악을 듣는다면 20분 정도마다 한 번씩 판을 뒤집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긴 하지만, 그것이 종종 쉼표로서 긍정적인 기능을 하기도 한다. 타닥타닥 먼지가 바늘에 긁히는 소리가 벽난로 때는 소리처럼 들려, 통속적인 섹스신이 떠오르는 재미까지.

많은 음악이 섹스와 얽혀 있고, 그보다 더 많은 음악가들이 섹스를 말해왔다. 심지어 재즈란 장르 자체의 어원이 Gism 또는 Jasm이라는 말에서 기원했다는 설도 있다. 둘 다 정액을 뜻하는 속어다. 재즈Jazz가 단어 ‘Jass’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Jass 역시 당시 “흥분시키다”는 의미가 있었다고 한다. ‘Parental Advisory’는 우리말로 하면 부모님의 지도하에 청취 가능합니다, 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해외 음반 중 비속어나 외설적인 내용이 포함된 음반에 붙어 있는 글귀다. 특히 가장 날것으로서의 목소리를 내는 힙합, 때때로 끈적하고 뜨거운 알앤비 음반에서 자주 발견된다.

‘Let’s Get It On’과 ‘Sexual Healing’ 역시 넓은 의미에선 알앤비에 포함시킬 수 있다. ‘Let’s Get It On’의 쥐어짜는 보컬, ‘Sexual Healing’의 농밀한 가사를 들으면 그것이 어떤 내용인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을지라고, 자연스럽게 섹스를 떠올리게 된달까? 지금 발표되었다면 응당 ‘Parental Advisory’ 감이다.

반면 섹스에 대해 공공연하게 노래하는 건 국내에선 드문 일이었다. 특히나 알앤비는 달콤한 사랑 노래로 구분될 뿐이었다. 알앤비가 리듬 앤 발라드의 약자라는 우스갯소리도 생겼다. 하지만 재범이 얼마 전 발표한 ‘Welcome’을 들으면 생각이 좀 달라진다. 그가 <SNL 코리아>에서 하는 농담의 수위만큼이나 세다. “니 음악성을 보여줘/ 오늘 밤은 삼단 고음 올라가게 해줄게”라니, 웃음이 나는 쪽이든 참신해서 박수를 치는 쪽이든 다시 한 번 가사를 살펴보게 된다. 섹스의 본질이 즐거움이라면, 재범이야말로 그 즐거움을 확실하게 탐닉하고 있다. 사실 ‘리듬 앤 발라드’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보이즈 투 멘의 ‘I’ll Make Love to You’의 노랫말 역시 “눈을 감고 소원을 빈 뒤에 촛불을 꺼요”라는 첫 구절부터 끝까지 주야장천 섹스 얘기뿐이다. 장르에 대한 굉장한 오해였던 것이다.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듯, 섹스를 하면서도 눈을 감는다. 못된 남자들은 다른 여자를 상상하기도 할 테지만, 보통은 촉각과 청각을 더 곤두세우기 위함이다. 그런데 노래 때문에 눈을 번쩍 뜨는 경우도 있다. 70~80년대에 활동하며 디스코, 트로트-고고 계열의 음악을 연주한 들고양이들의 1981년작 ‘애들은 몰라’ 같은 노래가 그렇다. 아이들이 화자인 노랫말은 짓궂고 아슬아슬하다. “형님하고 누나 무슨 얘긴지/ 하루 종일 도란도란 몰라, 몰라/ 형님누나 어서 나와 놀아요(중략)/ 들은 척도 않네 심술만 나네(중략)/ 애들은 몰라, 애들은 몰라.” 뮤지션들이 음반 마지막에 의무적으로 건전가요를 넣던 시절. 지금도 쉬쉬하는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그 당시에 시원하게 꺼낼 수 없었음은 당연한 일일 텐데, 가사에 깔린 확실한 저의를 파악하긴 어렵지만 ‘뉘앙스’만으로도 시대를 기만하는 묘한 쾌감이 생긴다. 게다가 작사가는 다름 아닌 윤형주다. 선하디선한 얼굴로 꼭 그 얼굴 같은 포크를 했던 음악가. 일 년 뒤 곡을 쓴 송창식은 자기 음반에 이 곡을 다시 싣는다. 그리고 거기선 한 술 더 떠 “애들은 몰라”를 “애들은 가라, 너희끼리 저만치 가서 놀아라”고 바꿔 부른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신중현 사단의 여러 음악도 섹스를 떠오르게 한다. 김추자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성적인 도발이 있다. 윤복희의 미니스커트가 상징적이라면, 김추자의 보컬은 즉물적이다. 이어지는 김정미의 콧소리는 악기마저 숨죽이게 만들며, 노래를 지배한다. 사이키델릭의 몽환과 전율이 전자기타만의 몫이 아니라는 것을 목소리 하나로 증명해낸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차를 세우고 찍었다는 <NOW>의 커버에서마저 야릇한 상상을 한다면, 누군가에게는 실례가 될까? 불을 끄면 눈에 담을 수 없는 것들이 소리로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과연, 태초부터 음악이란 원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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