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쁘게 봐 주세요, 씨엘 <1>

2NE1이 “난 예쁘지 않아, 아름답지 않아”라고 할 때 우습지 않았다. 2NE1의 리더 씨엘이 “난 나쁜 기집애”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탄산음료가 몸에 좀 나쁘긴 하지만.

의상협찬/ 톱과 팬츠는 아메리칸 어패럴. 시계는 롤렉스.
의상협찬/ 톱과 팬츠는 아메리칸 어패럴. 시계는 롤렉스.

 

“일단 콜라를 한 번뿜어볼까요? 근데흘려도 괜찮아요?입에서 콜라가 크게쫙 흘러내리면 예쁠것 같은데. 콜라 좀더 따라주세요.”

태닝했어요?
제 피부가 굉장히 하얘요. 잘 안 타는 스타일이라서 메이크업이나, 요즘에는 스프레이 태닝도 괜찮아서 해요. 실제 태닝도 하고요. ‘나쁜 기집애’엔 까무잡잡한 게 잘 어울리는 거 같아서 해봤어요.

가수 정훈희의 인터뷰를 보면, 한국의 70년대 고고 밴드들이 솔 음악을 연주하면서 흑인처럼 보이려고 얼굴에 까만 칠을 하고 무대에 섰다는 얘기가 나와요.
아무래도 까만 피부가 이번 곡과 좀 더 잘 어울리긴 해요. 근데 꼭 그런 것보다는, 노출이 많았잖아요. 까만 피부가 날씬해 보이는 게 있으니까.

그런가요?
훨씬 날씬해 보여요. 여자들만 알지도 모르는데….

보이는 건 어떨지 몰라도 흑인 여성이 ‘팻’하다는 인상이 있어서 그럴 것 같진 않은데요?
하지만 딱히 흑인 여성을 표현하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태닝, 그릴, 아이 패치를 하고, 음악엔 과격한 덥스텝 형식까지 넣었는데 1위를 했어요. 스스로 자랑스러웠어요?
기뻤죠. 이렇게 좋아해주실 줄은 몰랐어요. 이런 것도 있네, 할 줄 알았지.

점점 더 세게 보이고 싶나요?
아니요. 전 평소에 정말 심플하게 입고 다녀요. 세야한다기보단 제가 그때그때 좋아하는 걸 해요. 오늘 촬영도 그래요. 뮤직비디오나 무대의 씨엘 말고, 채린과 씨엘이 믹스된 모습을 꼭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대개 저한테는 과한 옷만 입혀서….

‘배드 걸’이 잘 맞아요?
제가 생각하는 배드 걸은 악당이 아니에요. 미국에서는 ‘배드’를 멋있다고 표현할 때 쓰잖아요. 멋진 여성, 그런 의미죠. 씨엘이 그런 여자였으면 좋겠어요. 채린이는 몰라도.

하지만 이젠 사람들도 씨엘과 채린을 겹쳐서 보지 않을까요? 도 있었고요. 무대를 보면서 저건 오로지 씨엘이야, 라고 할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좋겠어요. 무대나 노래, 화보에서는 씨엘로 스위치가 켜져요.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채린으로 남고 싶고요. 제가 어디서 왔는지 잊지 않고 싶어요. 균형이 있었으면 해요. 그래서 채린을 유지해요.

그래도 어떤 영향을 줄 것 같은데요? 채린과 씨엘이.
일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까 채린일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어요. 채린이가 어떤 앤지 까먹을까 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해요. 씨엘이 제가 아니진 않거든요. 제 안에 있어요. 제 안에 흑백이 있는 거죠.

소위 ‘센’ 사람들 중에는 누군가보다 세 보이려는, 상대적으로 강한 쪽이 있다면, 워낙 자기 자신이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초반에는 전자였다가 갈수록 후자가 되는 것 같은데, 어때요?
처음 데뷔했을 땐 제 의견보다는 주위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됐어요. 익숙해지고 경험을 보다 많이 하면서, 이제는 제 의견과 생각을 믹스할 수 있게 됐죠. 좀 더 자연스러워졌어요.

한국의 대중음악은 70년대까지는 동시대 세계 음악과 호흡했어요. 그때 세계에서 유행하는 음악은 한국에서도 유행했는데, 어느 순간 단절됐죠. 완전히 다른 길을 걷다가, 케이팝과 또 인디 신과 함께 다시 그런 때가 돌아오지 않았나 싶어요. 2NE1이 대표적이죠. 세계적으로 유효한 음악이요.
1집의 ‘Fire’부터, 한국 사람만을 위해 만들고 부른다는 의식이 없었어요. 프로듀서 테디 오빠도 마찬가지였고요. 좋아한 걸 한 거지, 한국에 맞는 걸 한 게 아니죠. 외국에서 생활해 저는 창피할 정도로 가요를 모르거든요. 아버지가 팝을 너무 좋아하시기도 했고, 한국에서 생활한 시간이 길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눈높이라는 게 있잖아요. 아무리 한국의 대중음악을 만든다고 의식하지 않아도 눈높이가 낮으면 빤한 걸 만들 수밖에 없죠.
높았다기보다 달랐던 거 같아요. 왜냐하면 제가 한국 가요의 느낌을 몰랐잖아요. 음악이나 옷 입는 거나, 그런 ‘바이브’를 모르기 때문에….

스윔 수트는 아장 프로보카퇴르, 트레이닝 팬츠는 CL의 것, 체인은 샤넬.
스윔 수트는 아장 프로보카퇴르, 트레이닝 팬츠는 CL의 것, 체인은 샤넬.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적인 음악을 하고 있다고 보나요?
저는 한국 사람이니까요. 되게 큰 거 같아요. 2NE1으로 여성을 대표하고 싶은 게 강했는데요,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아시아 여자는 ‘샤이’하다는 편견이 있단 걸 알았어요. 제레미 스캇이 ‘아시아에도 이런 사람이 있구나’한 것처럼요. 물론 칭찬이지만, 역시 편견이 있는 거죠. 한국에도 멋쟁이가 아주 많은데, 그런 편견에 가려져 있어요. 제가 아시아 여자라는 이미지를 깨보고 싶어요.

한국 여자가 아니라 아시아 여자를 대표하고 싶다고 말해요.
외국 사람들은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잘 모르잖아요. 그 정도로 아시아가 큰 거죠.

한국은 한국이잖아요. 이번에 ‘나쁜 기집애’로 1위를 했는데, 사실 그것보다는 ‘CL 팬티’가 더 화제였어요. 작년에는 ‘동물 학대 논란’도 있었고요. 어때요? 좀 답답하지 않아요?
미의 기준이 다른 걸까요. 저는 정말 예뻐서 입은 거거든요. 파격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예쁘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재밌고 새롭게 봐주시면 좋겠어요. 모든 분이 그렇게 봐주실 수 없다는 건 알아요. 그래서 속상하진 않아요. 바보같이 긍정적인 게 있어서, 왜 나한테 저러지, 보다는 재밌게 봐주시면 좋겠다 아니면 어쩔 수 없겠지만, 해요. 답답하다면 활동 안 해야죠. 그리고 저로 인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뀔 수 있다면 좋겠어요.

누구나 뭘 만들어가다 보면 부딪히는 문제잖아요.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다르다는 거. 잘 알잖아요?
제가 모르나 봐요. 하지만 파격적이라고 한다고 해서 안 파격적이게 나오면 재미없을 거예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굳이 제가 안 해도 사람들이 원하는 데를 긁어줄 분이 많고요.

결과물은 만족스러워요? 어느 때보다 원하는 방향으로 한 거잖아요.
제가 하고 싶은 것 중 100분의 1이에요.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보여드릴 것도 많아요.

좀 더 솔로로 활동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제 꿈이, 언젠가는 정말 나이가 들어서도 그 순간을 추억할 수 있는, 스물세 살이라면 제가 스물세 살이었을 때의 시대와 감성을 담은 앨범을 하나 내는 거거든요. 지금 당장은 2NE1에 집중해야겠지만…. 천천히 준비해서 씨엘이라는 이름으로 좋은 앨범을 내고 싶어요.

어디선가 이번 활동이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얘기했죠?
어, 맞아요. 이번 솔로 활동은 좋은 추억이에요.

근데 그 말은 수학여행의 추억처럼, 이제 지나간 일이지만…, 하는 뉘앙스로도 들려요.
아, 오해를 풀어야겠네요. 제 말은 나중에 생각해도 즐거운 기억일 것 같다는 뜻이었어요.

‘뜨거운 순간’이라면 어떨까요?
이번엔 정말 일 같지 않았어요. 평소에도 일처럼 생각하진 않지만, 저뿐만 아니라 승호도 그렇고, 테디 오빠, 서현승 감독, 사장님까지 같이 기뻐하고 응원해주는 분위기였어요. 다들 힙합을 좋아하니까요. 그 에너지를 잊지 못할 것 같아요. 한국에서 힙합 곡으로, 심지어 여자가 나온 건 오랜만이잖아요.

혹시 2NE1 활동을 하면서 하기 싫었던 부분은 없었나요?
하기 싫다, 는 아닌데, 솔로였다면 안 했을 건 있죠. 씨엘 혼자였으면, ‘I Don’t’ Care’는 못 불렀을 것 같아요. 2NE1에 있으면서, 조금 더 대중적…, 대중적이라는 말을 참 쓰기 싫어하는데, 조금 더 중화된, 그러니까 나머지 세 멤버가 가진 색깔과 섞이는 거니까 또 다른 매력을 보여드릴 수 있었어요. 재미있게 생각하고 있어요. 또 그렇게 배우는 것도 있고요.

‘새로운 걸 하고 싶다’는 말을 참 자주 하네요. 새로운 걸 추구하는 건 명백히 아티스트의 특권일 텐데, 아이돌도 아니고 아티스트도 아니라고 한 적 있죠?
전 단정 짓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나는 아티스트, 는 허세 같고, 아이돌은 너무…. 제가 아이돌 느낌은 아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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