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과 신음의 생태계

섹스가 얽힌 관계에서 남자는 언제나 ‘을’이었다. 아무리 공을 들여도 결국 최종 선택은 여자가 한다. 끓는점에 도달한 남자들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웹사이트에 들어가려면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야 했다. 몇 장의 여자 사진이 번쩍번쩍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망설이다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자 극장 커튼이 올라가듯 원래 보이던 화면이 아예 사라졌다. 새로운 창에 현재 접속 중인 남자 사용자와 여자 사용자들의 이름이 정갈하게 나왔다.

이런 게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누가 하는지는 몰랐다. “예쁜 여자와 잤다”거나 “어느 업소가 끝내준다”는 자랑을 하는 남자는 있어도, 화면에 나오는 여자에게 옷을 벗으라고 시키는 게 내세울 만한 일은 아니었다. 화상 채팅은 섹스와 돈이 얽힌 암시장이었다.

순진하게 ‘화상 채팅’을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대신 화상 채팅 웹사이트만을 모아 보여주는 전용 포털이 있다. 포털엔 각각의 웹사이트에 가입하면 얼마의 무료 포인트를 주는지, 방문자가 어느 정도 되는지 친절하게 쓰여 있다.

주민등록번호는 꽤 높은 진입장벽이다. 섹스에 실패했거나, 만족하지 못했거나, 어쨌든 몸이 잔뜩 달아 여기까지 흘러들어왔다가 그 벽을 넘지 못하고 그만두는 남자도 많을 것이다. 몇몇 웹사이트엔 “2013년 2월부터 주민등록번호 수집 및 사용이 금지되어 본인 인증 후 가입할 수 있다”고 쓰여 있다. 전화번호로 인증을 받아야 한다. PC방이 금연구역 지정 이후 매출 걱정을 하듯, 화상채팅 웹사이트에겐 꽤 큰 타격이 아니었을까?

입장 뒤엔 우쭐할지도 모른다. 여자로부터 “채팅에 초대합니다”라는 쪽지가 연이어 날아온다. 시스템은 간단하다. 가입하면 단체 채팅방을 3분 정도 둘러볼 수 있을 만큼의 포인트가 생긴다. 기본 사용료는 30초당 150포인트. 초대받은 채팅방에 들어가면 여자 한 명이 웹캠을 켜고 있다. 남자는 여럿이다. 그중 한 남자가 30초당 300포인트를 배팅하면, 여자와 1:1 채팅을 할 수 있다. 1:1 채팅 중인 여자의 방엔 빨간 불이 들어온다.

적극적인 남자들은 맘이 급했다. “얼굴 좀 보고 할까요.” “화끈하게 전신 다 벗죠.” 그런 얘길 해도 뺨 맞을 일은 없다. 무료로 받은 3분은 생각보다 길었다. 2만원을 결제하면 한 시간이 넘게 여자의 몸을 볼 수 있다.

한창 요즘 얘깃거리인 ‘갑을관계’에 빗대자면, 남자는 아마 그 공간 안에서 자신이 ‘갑’이라고 확신할 것이다. 여자에게 무슨 말을 해도 큰 제지를 당하지 않고, 벗을 준비가 된 여자들에게 원하는 것들을 요구한다. 맘대로 안 되면 나갈 수 있다. 어쩌면 여자를 만나 섹스를 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을까? 실제로 ‘번개&미팅’이라는 섹션이 있는 웹사이트도 있었다.

섹스가 얽힌 남녀 관계에서 남자는 언제나 ‘을’이었다. 아무리 공을 들여도 결국 최종 선택은 여자가 한다. 끓는점에 도달한 남자들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화상채팅은 욕망의 여러 부분을 채울 수 있는 도구 중 하나일것이다. 복종하는 여자를 보는 쾌감, 새로운 여자에 대한 기대, 들킬 일 없다는 안전함. 무엇보다 간편하고 싸다.

컴퓨터를 켤 여유조차 없이 급한 남자들을 위해선 ‘060 폰팅’이 있다. 휴대전화로 문자가 와도 애인이 의심조차 하지 않을 만큼 흔하다. 전화를 걸었다. “30초에 5백원의 정보이용료와 별도의 부가세가 부과됩니다.” 비싸다. 화상채팅에 비해서도 훨씬. 엄두도 나지 않아 전화를 끊었다. 화면도 아니고 목소리만 들릴 뿐인데….

의아했지만 곧 이해가 됐다. 급하고 절박한 만큼 액수는 올라간다. 서비스의 종류는 중요하지 않다. 남자에게 섹스 생각은 선발투수처럼 예고한 대로 찾아오지 않는다. 침대에 혼자 누워만 있어도 종종 위험한 순간이 온다. 060은 화상 채팅에 비해 편하고 빠르다. 부팅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침대에 누워 바로 전화를 걸 수 있다.

한편 060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화상 채팅보다 더 짐작하기 어렵다. 신음을 들을 수 있나? 혹시 녹음된 건가? 아니면 거기서 여자를 만날 수 있을까? 혹시 만났는데 삼촌들이 같이 따라 나오는 건 아니겠지…. 잘 몰라서 더 궁금하기도 할 터. 30초에 5백원이건, 30초의 1천원이건 욕정과 호기심으로 방아쇠를 당긴 남자들은 그보다 더한 돈도 충분히 낼 수 있다.

남자들은 틀렸다. 어떤 공간에서만큼은 ‘갑’이 될 수 있다는 공고한 믿음. 절박한 사람은 언제나 ‘을’일 뿐이고, 남자는 페니스를 달고 태어난 이상 꾸준히 절박하다. 주민등록번호 공개에 대한 경계가 풀리고, 30초에 5백원이란 숫자에 무뎌지는 순간 섹스의 유혹은 결제의 일상이 된다. 그렇다면 여자가 ‘갑’인가? 그렇다기엔 영상과 음성이 녹화, 녹음될 수 있다는 명확한 기회비용이 있다. 먹이사슬의 진짜 포식자, ‘슈퍼 갑’은 영상에 몸을 드러내지도,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지도 않는다. “결제 후 3분 내로 모든 입금금액을 확인한다”는 그 남자, 또는 여자 말이다. 그는 여자의 몸 대신 숫자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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