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을 찾습니다

고개를 갸웃할 때가 있다. 누군가 주장의 역할에 대해 물어올 때다.



고개를 갸웃할 때가 있다. 누군가 주장의 역할에 대해 물어올 때다.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뒤엉켜 한바탕 뛸 때는 주장이라고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데, 또 확실한 주장이 없으면 팀이 휘청거린다. 주장은 영어로 캡틴이라 표기한다. 사전적 의미로 선장이나 기장 등을 뜻한다. 정작 영국에선 캡틴보단 스키퍼skipper란 표현을 더 즐겨 쓴다. 선장이나 조타수란 뜻이다.

캡틴이건 스키퍼건 우두머리란 뜻을 품고 있는 걸 보면, 원론적인 주장의 역할에 대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대부분의 구기종목이 그렇겠지만 축구는 특히나 공동체적인 종목이다. 하지만 프로팀이든 대표팀이든 팀 구성원들은 축구를 시작한 학창 시절부터 팀의 스타플레이어였던 경우가 많다. 개성이 강할 수밖에 없다. 이를 한데 묶는 것이 주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경기장 밖의 지도자보다 안에서 함께 뛰는 주장의 역량이 필요한 대목이랄까? 선생님보다 선배의 일에 가깝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개성 자체를 싹둑 자르면 경기에서 뛰는 선수들의 움직임에 생동감이 없을 수 있다. 그래서 주장은 강한 동시에 섬세해야만 한다. 동시대 대부분의 주장들이 겪는 고충이다.

혹자는 주장의 중요한 역할로 심판에게 항의할 수 있는 권한을 꼽는다. 반칙 상황을 비롯해 경기 중 문제가 생겼을 때 팀을 대표해 심판에게 항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잘못 알려진 상식으로, 사실과 다르다. 주장을 포함해 경기 도중 심판에게 항의할 수 있는 선수는 아무도 없다. 규정상 허락되지 않는다. 주장이 경기 당일 대표성을 띠고 할 수 있는 일은, 도열한 동료 선수들과 관계자들의 인사를 돕는 것과 경기 전 동전 던지기에 참여해 공격 방향과 선축을 정하는 것 정도다. 그 외엔 주장이라고 해서 다른 선수들과 완전히 다른 특별한 권한을 부여받는 건 없다.

그렇다면 주장은 결국 나머지 10명의 선수와 똑같은 한 명의 선수일 뿐일까? 그렇게 선을 긋기엔, 우리는 강력한 주장의 존재감으로 당대 축구를 지배한 팀들을 다수 목격해왔다.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 네덜란드의 요한 크루이프, 브라질의 둥가, 독일의 로타르 마테우스, 이탈리아의 파울로 말디니,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 잉글랜드의 스티브 제라드 등이 그 좋은 예다. 시대를 압도한 개인적 재능과 더불어 강력한 리더십으로 팀을 최고의 위치로 끌어올렸다. 모두 팀 분위기를 순간적으로 제압하고 통제할 수 있는 선수들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주장의 힘이 특정한 권한과 규정에서 나오는 건 아니다. 명시적 권한을 뛰어넘는 묵시적 신뢰와 추종이 핵심이다. 그만큼 주장의 존재감과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여전히 좋은 주장은 선수들의 존경을 이끌어내지만, 그것이 꼭 카리스마에 의한 통제를 의미하진 않는다. 운동하는 사나이들 사이에서도 수평적 리더십이 서서히 인기를 끌고 있다. 물론 주장의 실력이 누구나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야 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변화는 박지성의 대표팀 은퇴 이후 생겨난 한국 축구의 고민과 맞닿아 있다. 홍명보, 김남일, 이운재는 모두 카리스마 있는 주장들이었다. 하지만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준비하며 주장을 맡은 박지성은 좀 달랐다. 묵묵히 선수들을 챙기고 지켜봐주는 ‘어머니 스타일’에 가까웠다. 그리고 달라진 시대의 새로운 주장 박지성은 한국 축구를 원정 최초의 월드컵 16강으로 이끌었다. 문제는 박지성 이후다. 2011년 1월 아시안컵을 마지막으로 박지성이 은퇴한 뒤, 박주영, 곽태휘, 차두리, 이정수, 하대성 등이 번갈아가며 주장에 임명되었다. 하지만 해당 선수들이 안정적으로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한데다 주장이 자주 바뀌며 확실한 리더십을 구축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최근 대표팀 관련 기사에 팀 분위기, 팀워크라는 표현이 유독 자주 언급되는 것도 이런 사정과 관계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 대표팀이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과정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을 전부 리더십의 문제로 치환할 순 없겠지만, 팀이 흔들리는 지금 확고한 주장과 확실한 리더십의 부재는 실로 뼈아프다. 사공이 꼭 한 명일 필요는 없다. 여러 명의 사공이 힘을 합치면 더 빨리 나아갈 수도 있다. 문제는 모두의 힘이 한쪽으로 향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구령을 외치고 강약을 조절할 조정자가 필요하다. 안 될 땐 나무랄 수도 있지만, 때로는 토닥일 줄도 알아야 한다. 맘에 안 든다고 소리만 지르는 시대는 지났다. 현대 축구가 바라는 이상적인 주장의 모습이다. 한국 축구계에 다급하게 물어야 할 때가 됐다. 이런 조정자 어디에 없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