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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

2013.07.29GQ

매년 24번째 주말,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르망엔 밤이 오지 않는다. 56대의 레이싱카가 24시간 동안 도시와 트랙을 달린다. 여기가, 올해로 90주년을 맞은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 현장이다.

2013년 24시간 내구레이스에서 우승한아우디 2호차다.밤을 꼬박 세운 흔적그대로 트랙을질주하고 있다. 아우디 R18 e트론 콰트로 엔진 3,700cc V6 디젤 직분사 TDI 최고출력 510마력 최대토크 86.7kg.m 샤시 벌집 형태의 알루미늄과 카본섬유의 혼합 구동방식 후륜구동, 시속 120킬로미터부터 사륜구동 기어 6단 레이싱 기어박스 공차중량 900킬로그램 연료 탱크 용량 60리터 1 아우디 1, 2, 3호차가 나란히 트랙을 달리고 있다. 2 출발 직전의 로익 뒤발. 2호차를 운전했던 세 명의드라이버 중 가장 어렸다. 3 아우디 스태프들이 곧 경주에 나설 R18을 직접 밀고 트랙으로 나서는 결연한 순간.4 우승한 선수와 팀원 모두에게 주어지는 영광의 순간. 다 같이 만끽하되, 샴페인 세레모니는 없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올해로 르망에서만 8번째 우승한 아우디 드라이버 톰 크리스텐센은 시상대에서 샴페인을 터뜨리지 않았다. 대신 말했다. “이번에 우승하면 아버지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제게 운전을 가르쳐주고, 레이스를 계속할 수 있게 해준 아버지께요. 오늘은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동료, 알렌 사이먼슨에게 이 우승을 바칩니다.” 박수 소리가 고요했다.

2013년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는 파란만장했다. 언제나그렇다. 르망의 날씨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먹구름 아래에는 소나기가 내렸다. 금세 해가 났다가 다시 내렸다. 일기예보에는 해와 구름, 비와 뇌우가 같이 있었다. 피트스탑에 대기하고 있는 엔지니어들은 몰렸다가 흩어지는 구름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마른 땅에서 달리는 데 최적화된 드라이 타이어를 끼우고 달리다 그런식으로 소나기가 내리면 당분간은 속수무책이다. 물은 트랙과 타이어 사이에 엷은 막을 형성한다. 빙판과 같다. 이번 24시간 내구 레이스 트랙 한 바퀴를 가장 빨리 돌았을 때의 평균속도는 시속 241.4킬로미터였다. 굳이 비 때문이 아니라도, 어떤 일이 일어나든 이상하지 않은 경주. 애스턴 마틴 소속의 드라이버가 경기 시작 9분 만에 사고를 당했다. 병원으로 옮겨 치료했지만 3시간 만에 숨을 거뒀다. 56대가 출발했지만 완주한 차는 42대였다.

시상대 아래에는 6월 22일 토요일 오후 3시부터 23일 일요일 오후 3시까지 꼬박 트랙을 달린 아우디 R18 e트론 콰트로 2호차가 침착하게 서 있었다. 엔진의 열이 아직 식지 않아서, 벌레가 터진 자국과 그을음이 채 지워지지 않아서, 24시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또한 결연했다. 아우디 2호차를 운전한 톰 크리스텐센, 앨런 맥니시, 로익 뒤발은 동료들과 얼싸안고 웃고 울었다. 관중석에도 눈물을 훔치는 사람이 있었다. 24시간 내구 레이스에는 이런 감동이 있었다. 한계를 이겨내고, 정신력과 기술을 증명한 드라이버와 엔지니어, 아우디 R18 e트론 콰트로에 대한 북받치는 예의였다. 아우디가 초대한 VIP는 이 모든 광경을 아우디 레이싱 클럽에서 지켜봤다. 레이스의 시작과 끝을 그대로 관전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는 총 길이 13.629킬로미터인 트랙을 24시간 동안 달리는 경주다. 기존에 있던 트랙과 르망 시내의 도로를 합쳐 거대하고 긴 트랙을 새로 만든다. 몇 바퀴를 돌지 미리 정해놓고 빠름을 겨루는 게 아니라, 시간을 정해놓고 가장 많은 바퀴를 도는 팀이 우승하는 식이다. 아우디는 R18 e트론 콰트로 석 대를 출전시켰다. 우승한 2호차는 이 트랙을 3백48바퀴 돌았다. 총 4천7백42킬로미터다. 일반 승용차로 1년 동안 달리는 적산거리를 보통 2만 킬로미터 정도로 친다. 그러니 아우디는 3개월 동안 달릴 거리를 하루 만에 주파한 셈이다.

90년 전, 대회 초반에는 한 사람의 드라이버가 24시간을 달렸다. 1923년 최초의 레이스에는 33개 팀이 출전했다. 총 17.272킬로미터의 비포장 도로를 24시간 동안 달렸다. 30개 팀이 완주했다. 몇 년 후, 두 명의 드라이버가 한 대를 나눠 운전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1970년부터는 세 명이 한 대를 책임지고 달린다. 그렇다고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치가 낮아졌다고, 경기 초반보다 상황이 나아졌다고 산술적으로 생각할 순 없다. 세 명이 나눠 달릴 때의 체력 소모는 3분의 1 정도일 거라고 거칠게 나눗셈을 할 순 있겠지만…. 수치와 통계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간과해버리고 마니까.

경기 시작 전날부터 관객들은 트랙 주변 공터 곳곳에 텐트를 쳤다.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의 출발선과 결승점이 있는 부가티 트랙 주변에는 숙박시설이 여의치 않았다. 캠핑이 24시간 레이스 관람의 일부인 셈이다. 하루 관람권은 45유로(약 6만6천원), 이틀 관람권은 71유로(약10만4천원)였다. 2013년 입장권은 약 24만5천 장 팔렸다. 트랙 주변에는 먹을거리, 마실거리는 물론 각 자동차 브랜드의 공식 제품들을 살 수 있는 임시 상점도 빼곡하게 들어선다. 아우디가 곳곳에 마련한 라운지에서는 24시간 내내 맥주와 샴페인, 와인을 비롯한 먹을거리가 준비됐다. 추첨을 통해 헬리콥터를 타고 총 13.629킬로미터의 트랙을 훑어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했다. 라이브 밴드의 공연과 디제잉도 쉼 없이 이어졌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선 경기 중계가 끊이지 않았다.

밤 11시가 넘자 카메라가 피트스탑에 쪼그리고 앉아 쪽잠을 자는 엔지니어의 모습을 익살스럽게 비추기도 했다. 경기장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던 관객들도 거의 자리를 떴다. 아우디 라운지도 비어가기 시작했다. 바에서 맥주를 마시거나, 공연을 즐기거나, 숙소로 돌아가 잠을 청할 시간이었으니까. 경기 시작 후 8시간이 지난 때였다. 8시간 동안 숙면을 취하고 돌아와도 경기는 8시간이나 남아 있는 시간. 지금 1위로 달리고 있는 드라이버와 레이싱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직 트랙을 달리고 있는 수십 대의 자동차에게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시간, 모든 예상이 무의미한 시간.

르망 트랙의 낮과 저녁, 밤은 이렇게 다르다. 트랙 주변에 있는 대관람차는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의 상징이되었다. 모든 불빛과 배경이 그 자체로 예쁜데, 그 위를 달리는 건 한계에 도전하는 기백과 날 선 정신이다. 2013 르망 내구 레이스 우승차량과 극한의 체력과 정신력을 다시 한 번 증명한 아우디 소속 선수들. 왼쪽부터로익 뒤발, 앨런 맥니시, 톰 크리스텐센이다. 톰 크리스텐센은 올해로 르망에서만 8번 우승했다. 레이스를 시작하는 오후 3시 전, 르망 시내에서는 퍼레이드가 열렸다. 상점에선 자동차와 관련한 오래되고귀한 물건들을 팔았다. 온갖 클래식카와 슈퍼카, 2륜차가 도로를 달리고 관광객과 시민들은 제각각 즐겼다.

르망의 해는 밤 10시가 다 돼서 떨어졌다. 밤 9시에 마시는 맥주도 낮 술 같았다. 크고 작은 사고가 중계를 통해 전해졌다. 2층 라운지에서 맥주잔을 들고 내려다봤다. 10여 분 간격으로 수십 대의 레이스카가 ‘캉! 카아앙!’ 굉음을 내고 지나갔다. 아우디 R18 e트론 콰트로를 보려면 더 집중해야 했다. 속도도 속도지만 소리도 별로 안 났으니까. R18은 ‘슈우욱, 슈욱’ 비현실적인 소리를 내면서 지나갔다. V6 TDI 엔진과 전기 모터를 같이 쓰는 혁신적인 하이브리드 시스템 덕에, 다른 출전자들의 가솔린 엔진이 내는 소리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 소리가 몇 시간째 1위로 달리고 있었다. 앞으로 17시간 이상을 더 달려야 했다.

해가 졌고, 아우디 R18 e트론 콰트로는 침착하게 달렸다. 하늘이 주황에서 빨강으로 바뀔 때, 아우디 R18이 다시 ‘슈욱, 슉’ 지나갔다. 다른 차들은 ‘캉캉, 카아앙!’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런 장면을 트랙 곳곳에서 수십 번이나 지켜봤다. 시간이 흐를수록 경기는 숭고해졌다. 드라이버는 목숨을 건다. 때로는 시속 300킬로미터 이상으로 질주하고, 가로등도 없는 트랙을 헤드램프에만 의지해 달린다. 적어도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 트랙에서, 승패의 의미는 좀 희미해진다. 영광은 살아서, 이 레이스를 완주한 모두의 몫이 된다. 이토록 혹독한 경주에 굳이 출전하는 덴 이유가 있다. 최신 기술을 극한 상황에서 검증하고, 그 결과를 전 세계에 과시할 수 있는 최상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날 레이스는 TV로 약 5백47만명, 페이스북으로 15만, 트위터로 5만 5천 명이 지켜봤다. 아우디야말로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아우디는 지난 2000년 이후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에서 11회 우승했다. 올해로 12회를 채웠다. 2003년에 벤틀리, 2009년에 푸조의 우승을 제외하면 아우디의 독주인 셈이다. 르망 레이스의 우승컵은 다음 경기에 반납하는 것이 관례지만, 3회 이상 연속 우승하면 우승자가 영구 보존하게 된다. 아우디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3년, 2004년부터 2008년까지 5년, 2010년부터 2013년까지 4년 연속 우승했다. 2006년의 우승은 세계 최초로 디젤 레이싱카로 거둔 승리였다. 2010년에는 1, 2, 3위를 석권했다. 장내 아나운서는 “아우디! 아우디! 아우디!”를 외쳤다.

아우디는 르망에서 검증한 기술을 착실히 양산차에 접목시키고 있다. 2013년 르망 트랙에서 ‘슉, 슈우욱’ 지나가던 R18 e트론 콰트로의 기술력을 서울 도로에서 느낄 수 있는 날도 곧 온다는 뜻이다. 2001년 레이스에 쓰인 엔진은 아우디 가솔린 직분사 엔진 TFSI였다. 지금, 가솔린 엔진을 품고 양산되는 거의 모든 아우디 승용차에 쓰이는 바로 그 기술이다. 2003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출품했던 르망 콰트로 콘셉트카도 르망 레이스에서 검증한 기술력을 직접 적용한 차였다. 그대로 아우디 R8이라는 이름으로 양산됐다. 아름다움 자체로 시선을 사로잡는 바로 그 차다. 경기는 끝났고, 아우디는 1위와 3위를 차지했다. 2위는 토요타였다. 1위와 2위의 차이는 한 바퀴였다. 아우디가 3백48바퀴, 토요타가 3백47바퀴를 돈 셈이다. 같은 트랙을, 같은 경로로, 24시간 동안. 모든 선수는 올해도 영웅이 되었다. 축제는 이렇게 끝났다. 관중들은 빠르게 빠져나갔다. 출구로 는 길은 꽉 막혀 있었다.

    에디터
    정우성
    기타
    PHOTO / COURTESY OF AUDI, HANDY HAN, WOOS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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