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비디오 제2라운드

저예산으로 만든 뮤직비디오는 거칠지만, 여지껏 한국에 없던 새로운 형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음악에 대한 이해가 높고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는 데 거리낌 이 없는 세대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뮤직비디오에 상을 주는 시상식은 몇 되지 않는다. 그중 가장 화제가 되는 시상식은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MAMA)일 것이다. MAMA는 1999년 엠넷 영상 음악 대상으로 시작해 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MMF), 엠넷 케이엠 뮤직 페스티벌(MKMF)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비디오’에 대한 언급이 이름에서 빠진 건 MKMF가 시작된 2006년부터다. 2009년엔 페스티벌 대신 아시안과 어워드란 말이 들어섰다. 자연스럽게 대상의 역할을 하던 최우수 작품상과 최고 인기 뮤직비디오상은 올해의 노래, 가수, 앨범에 대한 상으로 바뀌었다. 특히 총 14회 치러진 이 시상식에서 뮤직비디오 감독상 부문이 있었던 건 여섯 번에 불과하다. 서현승 감독의 2회 수상을 포함, 지금까지 이 시상식에서 뮤직비디오 감독상을 받은 사람은 5명뿐이다.

90년대 말 케이블 TV가 대중화되기 시작하며, 브라운관엔 그 어느 때보다 뮤직비디오가 자주 노출됐다. 스타 뮤직비디오 감독이 생긴 것도 이 즈음의 일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유명세를 탄 홍종호는 이후 H.O.T, S.E.S, 이정현 등 다양한 댄스 뮤지션들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그의 전매특허는 스티커 사진 자판기를 방불케 하는 ‘뽀샤시’한 화면으로, 많은 댄스 가수들의 얼굴에서 콧날 윤곽이 사라지게 했다. 홍종호 감독의 뒤를 이어받은 건 김세훈 감독이다. 그에겐 ‘드라마타이즈’란 장르가 있었다.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유명 배우들은 아시아 전역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전쟁을 하고, 조직폭력배의 칼에 맞으면서도 사랑을 찾는 순애보를 연기했다. 뮤직비디오 제작비로 억대의 돈이 쓰인 것도 이 시점의 일이다. 이때 탄생한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의 유행은 소몰이 창법으로 대표되는 한국형 미드 템포 발라드의 전성기까지 이어졌다.

뮤직비디오 신에서 뽀샤시와 신파의 시대가 지나는 동안 한국 음악계는 큰 변화를 겪었다. 음반 시장이 음원 시장으로 대체되며 음악을 통한 수익이 급감했으며, 음악 방송은 뮤직비디오를 틀지 않기 시작했다. 뮤직 비디오가 빠진 음악 채널의 빈자리는 리얼리티 쇼, 오디션 프로그램의 차지가 됐다. 그렇다면 뮤직비디오 신에 위기가 찾아온 걸까?

TV에선 뮤직비디오가 잘 나오지 않지만, 상황은 이전보다 나쁘지 않다. 오히려 기회에 가깝다. 전 세계인의 참여형 네트워크 스크린인 유튜브가 있어서다. 영상 장비가 디지털로 바뀌며 제작비용이 줄어든데다, 유튜브에서 자신의 지식을 나누는 멋진 친구들 덕에 기술도 쉽게 배울 수 있다. 이미 홍대 앞에는 10년 전만 해도 생소한 기술이던 모션 그래픽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청년 실업자가 넘친다. 음반이 국내에서 100만 장 팔리는 대신, 아시아 시장이 열렸다. 월드 투어를 하는 아이돌도 생겼다. 이제 한국의 스파이크 존즈를 꿈꾸는 영상 감독들이 유튜브를 지렛대 삼아 새로운 시대를 열 뮤직비디오를 세상에 던질 차례가 온 것이다.

이미 소녀시대의 ‘I Got a Boy’, 2NE1의 ‘내가 제일 잘 나가’, 빅뱅의 ‘Fantastic Baby’ 같은 곡의 유튜브 조회 수는 6천만에서 7천만을 넘나든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17억 조회 수를 기록했다. 비보 채널을 통해 독점으로 공급되는 라나 델 레이의 ‘Born To Die’나 카니예 웨스트의 ‘All Of The Lights’ 같은 곡의 조회 수가 7천만에서 1억 정도라는 걸 생각하면 세계적인 수치다. 굳이 과장하지 않더라도 케이팝이 세계 음악 시장에서 일정량 이상의 지분을 차지하게 된 건 사실이다. 이제 한류라는 식탁에 수저를 올린 이들이 그 이익을 나눠 먹을 차례지만, 거기에 뮤직비디오 감독의 몫은 적어 보인다. 사람들은 ‘강남스타일’을 두고 기네스 기록과 애국을 얘기 할 뿐, 뮤직비디오 감독에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케이팝은 한국 아이돌 팝의 다른 이름이다. 아이돌 팝은 시스템의 음악이다. 곡의 장르부터 의상, 안무, 뮤직비디오까지 수많은 스태프가 아이돌 스타라는 꼭짓점을 향해 달려간다. 뮤직비디오는 보통 가장 마지막에 자리한다. 여기서 뮤직비디오 감독이 자신의 창의력을 발휘할 여지는 많지 않다. 싸이의 ‘젠틀맨’ 뮤직비디오는 싱글 공개 직전, 3일 만에 촬영됐다. 보도 자료에는 감독의 작품 의도보다 뮤지션이 몇 벌의 옷을 갈아입고 몇개의 촬영 세트를 동원하는지가 더 비중 있게 실린다. 경쟁이 치열한 케이팝 시장에서 뮤직비디오 감독의 이름은 비교우위를 가늠하는 요소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뮤직비디오는 음악을 숙주로 삼는 작업이다. 일본에서는 뮤직비디오를 프로모션 비디오라 부른다. 음악을 홍보하기 위한 운명인 셈이다. 음악 제작자는 모든 걸 기획해 뮤직비디오 감독에게 의뢰하고, 감독은 요구하는 바를 들어줘야 한다. 미셸 공드리나 로메인 가브라스의 대표작은 영상뿐만 아니라 해당 곡 역시 시대를 대표한다. 뮤직비디오가 온전한 작품이 되려면, 그리고 감독이 올바른 대우를 받으려면 우선 음악이 뛰어나야 하며, 그 음악을 뮤직비디오 감독의 뜻대로 재구성할 수 있는 자유가 약속되어야 한다. 투자비용이 큰 현재의 아이돌 산업에서는 이를 보장하기 어렵다.

진보는 지난 음반 <Fantasy>를 만들며 영상제작팀인 디지페디의 자리를 마련했다. 디지페디는 진보의 음악에 걸맞은 농염한 영상을 연이어 연출하며 뮤직비디오는 물론 <Fantasy>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뮤직비디오 감독 ML은 싸이코반의 곡을 듣고 먼저 작업을 제안했다. 기존의 유튜브 영상을 콜라주해 저예산으로 만든 뮤직비디오는 거칠지만, 여지껏 한국에 없던 새로운 형식으로 주목받았다. MOXA 역시 유튜브 영상을 이용해 요한 일렉트릭 바흐의 뮤직비디오를 내놓았다. 음악에 대한 이해가 높고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세대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현재 국내 음악계의 시스템은 이들을 역할을 온전히 존중할 수 있는가?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그만큼 새로운 두 번째 막이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