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투타 겸업이라는 환상

2013.08.07GQ

“타점왕과 사와무라상에 도전하겠다.” 일본야구의 괴물 신인 오타니 쇼헤이가 지난해 12월 니혼햄 파이터스에 입단하면서 밝힌 목표다.

“타점왕과 사와무라상에 도전하겠다.” 일본야구의 괴물 신인 오타니 쇼헤이가 지난해 12월 니혼햄 파이터스에 입단하면서 밝힌 목표다. 사와무라상은 메이저리그의 사이영상처럼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투수에게 주는 상이다. 즉, 오타니는 투수와 타자로서 모두 성공을 거두겠다는 목표를 밝힌 것이다. 오타니의 투타 겸업 선언 이후, 장훈은 “프로야구는 동네 야구가 아니다”며 ‘돌직구’를 날렸다. 그 외에도 많은 전문가가 우려를 표했다. 타격이야말로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어려운 기술이라 칭했던 테드 윌리엄스 역시 지하에서 이 말을 들었다면 혀를 찼을 것이 분명하다.

오타니는 7월 2일 현재 투수로 4경기에 나서 1승 평균자책점 4.95, 타자로 29경기에 나서 타율 .308 출루율.341 장타율 .462에 5타점, 2루타 12개를 기록하고 있다. 오타니가 새바람을 불러왔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그는 고졸 신인 외야수 최초로 팬 투표를 통해 올스타에뽑혔다. 올스타전 두 경기 중 한 경기는 투수, 한 경기는 야수로 출전한다.

메이저리그에도 투수와 타자로 모두 경기에 나선 선수들이 있다. 가장 성공한 투타 겸업 사례는 베이브 루스다.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타자로 인정받고 있는 루스는, 투수로도 163경기에 나서 94승 46패 평균자책점 2.28을 기록했다. 루스는 당대 최고의 투수였던 월터 존슨과의 네 차례 선발 대결에서 모두 승리했으며, 월드시리즈에서 29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가 투수에만 전념했다면, 역사상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좌완이 됐을 것이라고 믿는 전문가도 있다.

베이브 루스는 원래 보스턴에서 투수로 데뷔했다. 그러나 방망이 실력까지 최고였다는 것이 당시 에드 배로 감독의 고민이었다. 1918년, 배로 감독은 루스를 20경기에 투수로, 57경기에 타자로 내보냈다. 결과는 놀라웠다. 베이브 루스는 13승 7패 2.22의 방어율이라는 투수 기록과 함께 .300의 타율, 11홈런, 66타점을 기록하고 홈런 왕에 올랐다. 이듬해 배로는 루스의 타자 출장을 더 늘렸는데(투수 17경기, 타자 106경기) 루스는 29개의 홈런을 날려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다. 시즌 후 루스는 양키스로 트레이드됐지만, 배로 역시 양키스의 새 단장이 됐다. 배로는 루스를 전업 타자로 만들었고, 타자 전향 첫해 루스는 54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루스만큼이나 큰 성공을 거둔 인물은 통산 7회 타격왕에 빛나는 스탠 뮤지얼이다. 좌완 강속구 투수이자 외야수였던 뮤지얼은 마이너리그에서 수비 도중 왼쪽 어깨를 크게 다친 이후 투수를 포기하고 타격에 전념했다. 루스에 앞서 투타를 겸했던 조지 시슬러는 타자보다 투수를 더 하고 싶었지만, 팀의 바람에 따라 전업 타자가 됐다. 구단이 투수보다 타자를 더 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매일 출장할 수 있는 타자가 5일마다 한 번씩 나서는 투수보다 팀의 성적과 흥행에 더 크게 기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실제로 메이저리그의 유니폼 판매 상위권 선수들은 대부분 타자다.)

그러나 베이브 루스나 스탠 뮤지얼 같은 투수 출신 타자의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명예의 전당 투수인 밥 레몬을 비롯해 마리아노 리베라, 트레버 호프먼, 켄리 잰슨, 제이슨 마트 등 타자 출신 투수가 더 많다. 흔한 야구 속설에 따르면, 투수는 조련할 수 있지만 타자는 타고나야 하기 때문이다. 제구 난조와 팔꿈치 부상으로 투수를 포기한 릭 앤킬, 투수 시절 최고의 타격 능력을 뽑냈던 마이카 오윙스 등은 타자로 전향한 후 기대만큼 활약하지 못하고 있다.

최고의 투타 겸업 시즌으로 각광받은 선수는 오히려 한국에 있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 시즌, 해태의 김성한은 .305의 타율, 13홈런, 69타점을 기록하며 홈런 4위, 타점 1위에 올랐다. 투수로도 26경기에 나서 10승 5패 2.88을 기록했다. 당시 평균자책점 6위, 다승 8위의 놀라운 기록이다. 베이브 루스와 김성한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투타 겸업은 일시적이었으며 결국 한쪽(타자)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아마추어 무대에는 투타 모두 뛰어난 선수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프로에 입단한 이후엔 그들 중 99.99퍼센트가 한 가지를 선택한다. 투수와 타자는 훈련법이 완전히 다르다. 경기할 때 쓰는 근육도 다르다. 메이저리그샌디에고 파드리스의 투수 제이슨 마키는 과거 경기 전 타격 훈련을 타자들과 똑같이 할 정도로 타격에 열의를 보였지만, 구단은 곧 마키의 타격 훈련을 금지시켰다. 타격 시 방망이를 통해 손에 전달되는 충격이 피칭 감각을 잃게 만든다고 분석했기 때문이다. 마키는 이후 내셔널 리그 투수로서 타석에 들어설 때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타격을 하고 있다.

투타 겸엄의 가장 큰 문제는 피로다. 메이저리그 선발투수에게는 보통 4일의 휴식이 주어진다. 2일 차 롱 토스와 3일 차 불펜 피칭을 제외하면 실제로는 이틀밖에 쉬지 못한다. 그 사이에 하루쯤 야수로 경기에 나서기라도 하면, 휴식 시간은 더욱 줄어든다. <야구란 무엇인가>의 저자 레너드 코페트가 베이브 루스의 투수 300승, 타자 800홈런을 상상했던 것도 지명타자제도를 전제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명타자가 있는 퍼시픽리그 소속이며, 선발투수가 최대 6일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일본 프로리그에서 뛰는 오타니 쇼헤이는 투타 겸업에 유리한 여건이라 말할 수 있다.

한편 메이저리그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타격 실력을 갖춘 투수라 해도, 덕아웃에 타자가 완전히 바닥나지 않는 한 대타로 나서지 않는다. 대타 타석만을 기대하며 경기 내내 벤치에 앉아 있는 후보 타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LA 다저스에서 내외야를 넘나드는 ‘유틸리티 맨’으로 활약하고 있는 스킵 슈마커는 지난달 29일 팀이 1-16으로 크게 뒤진 9회 초에 마운드에 올라왔다. 그리고 91마일의 빠른 공과 다양한 변화구를 섞어 던지며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하지만 야수의 투수 등판 역시 투수가 바닥났거나, 팬서비스 차원에서만 실시된다.

오타니 쇼헤이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실제로 오타니는 그가 쫓고 있는 타격과 투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일본의 야구팬들만큼은 오타니의 이 ‘무모한 도전’에 신선한 인상을 받고 있는 듯하다. 류현진이 9번 타자로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의외의 안타 한 방을 기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트 디자이너
    ILUSTRATION / KIM JAE JUNE
    기타
    글 / 김형준(야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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