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그 많던 중국영화는 어디로 갔을까?

2013.08.09GQ

주성치 팬 혹은 홍콩영화 팬의 입장에서, 흥행 못한 영화가 개봉 못하는 현실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더라도 < 일대종사 >나 < 서유항마편 >처럼 박스오피스를 들었다 놨다 하는 영화까지 개봉하기 어려운 현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왕가위 감독의 < 일대종사 >가 8월 말 개봉한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와 지난 6월 열린 중국영화제의 개막작이었으며, 올해 초 중국 개봉 당시 무려 5천여 개의 스크린에서 개봉하며 왕가위 감독의 작품들 중 역대 최고 흥행수익을 기록한 바 있다. 그런데 의아한 대목이 있다. 한때 < 중경삼림 >과 < 타락천사 > 등을 통해 젊은 관객층에게 ‘신드롬’에 가까운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영향력을 지녔던 왕가위의 영화가 CJ, 쇼박스, 롯데가 아닌 CJ 무비꼴라쥬 배급으로 개봉한다는 사실이다.

알다시피 무비꼴라쥬는 예술영화,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등 수많은 다양성 영화들을 개봉하는 CGV의 다양성 영화 전문 브랜드다. 2004년 CGV강변, 상암, 서면 3개관을 시작으로 2013년 현재 강변, 대학로, 압구정, 오리 등 10개관으로 확장했다. 영화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시네필’의 영화관으로 각광받고 있다. 무비꼴라쥬로서는 야심찬 시도겠지만, < 일대종사 >로서는 심한말로 굴욕적인 일이다. 중국이나 홍콩에서 흥행하지 못한 왕가위영화가 이런 식으로 국내에 배급된다면 몰라도. 박찬욱 감독의 < 올드 보이 >나 봉준호 감독의 < 괴물 >이 국내에서의 흥행결과와 무관하게 해외에서 ‘예술영화’로 받아들여져 소규모로 개봉하는 일은, 그 ‘인지도’의 부족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 한국에서의 개봉 시점보다 한참 더 있다 개봉하거나, 영화와 함께 감독을 ‘소개’하는 차원이다. 그들이 < 올드보이 >의 최민식이나 < 괴물 >의 송강호를 알리 만무하다. 하지만 < 일대종사 >는 경우가 다르다. 양조위와 장쯔이, 그리고 송혜교가 출연하는 왕가위 감독의 중화권 박스오피스 1위작이 국내에서 예술영화로 둔갑했으니 말이다.

반면 최동훈 감독의 < 도둑들 >은 올해 초 차이나필름그룹을 통해 중국 전역 3천여 개 스크린에서 개봉했다. 한삼평 대표가 이끄는 차이나필름그룹은 중국 본토의 대표적인 국영영화사로, 워너브라더스와의 합작회 사인 ‘워너 차이나’를 설립하기도 했다. 무비꼴라쥬를 통한 < 일대종사 >의 한국 개봉 규모와는 감히 비교할 수없는 수준이다. 게다가 < 일대종사 >에 한국 배우 송혜교가 출연하는 것처럼 < 도둑들 >에는 홍콩 배우 임달화가 나온다. 따지고 보면 두 영화는 같은 전략이다. 이 수출입의 불균형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중국이 무역수지 적자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대인배 혹은 호구란 말인가.

< 일대종사 >는 개봉 계획이라도 잡혀있지만 주성치의 < 서유기 > 3편인 < 서유항마편 >은 국내에서 개봉조차 못했다. 어딘가에서 수입했다는 얘기도 못 들었다. 알다시피 최근 < 소림축구 >, < 쿵푸허슬 >, < 장강7호 > 등 주성치의 영화는 빠짐없이 개봉했고, 무엇보다 왕가위 못지않은 두터운 팬 층을 거느리고 있는 감독 겸 배우다. 심지어 < 서유항마편 >은 < 일대종사 >보다 더한 흥행기록을 세웠다. 개봉 15일 만에 10억 위안(약 1천7백39억원)의 흥행수입을 돌파하며 중국어권 영화 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10억 클럽’에 가입했다. 주성치 팬 혹은 홍콩영화 팬의 입장에서, 흥행 못한 영화가 개봉 못하는 현실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더라도 < 일대종사 >나 < 서유항마편 >처럼 박스오피스를 들었다 놨다 하는 영화까지 개봉하기 어려운 현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한국에서 (이제는 구분법이 무의미해진) 홍콩영화 혹은 중국영화의 마지막 흥행작은 2002년 개봉한 < 무간도 >와 < 영웅 >이다. 당시 < 영웅 >은 190만 명의 관객을 동원, 역대 중국영화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다. 현재 국내 중국영화 최고 흥행기록은 2009년 < 적벽대전2: 최후의 결전 >이 세운 280만 관객이다. 하지만 ‘오우삼’과 ‘삼국지’라는 낯익은 키워드에 관객들이 반응한 것일 뿐, 이미 그 즈음 중국영화는 극장가에서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다. 이후 견자단이 직접 방한해 홍보활동을 펼친 < 엽문 >도, 주윤발이 모처럼 복귀해 만든 < 공자: 춘추전국시대 >도, 장국영의 향수를 떠올리게 했던 엽위신 감독의 리메이크 < 천녀유혼 >도 조용히 개봉하고 사라졌다. 중국 흥행기록과 비교하면 처참한 수준이었다.

통계를 보고 ‘그것밖에 흥행이 안 됐어?’라며 놀랐을 것이다. < 괴물 >이나 < 도둑들 >은 말할 것도 없고 < 아바타 >와 < 트랜스포머 > 같은 외화들이 1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요즘, 예전에 그토록 열광했던 홍콩영화나 중국 영화가 불과 300만 관객도 돌파하지 못했다. 과거 성룡의 < 취권 >이나 주윤발의 < 영웅본색 > < 첩혈쌍웅 >이 개봉하던 당시는 지금과 같은 집계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막연히 ‘< 취권 > 정도면 1천만 관객 이상 들었을 것’ 이라며 향수에 젖어 추측하는 정도다. 중국영화의 화려했던 전성기는 끝났다.

아마도 한국에서 소비되는 중국영화의 현재는 < 무간도 >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중국 본토와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스타들을 대거 모으다 보니 배우들의 막대한 개런티로 인해 편당 제작비 수준이 높아졌고, 총격과 액션 위주의 이야기 전개는 위장 첩보원이 등장하는 심리 스릴러로 변모했다. 그러다 보니 중국영화의 인기가 줄어드는 것과 별개로 수입 가격은 뛰어오르는 기현상이 빚어졌다. 또한 여전히 유덕화와 양조위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들만 각광받으니, 젊은 스타로의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 과거 유덕화의 영화속 연인이었던 오가려가 이제는 그의 장모로 출연한다. 여전히 젊은 여배우와 멜로드라마가 가능한 유덕화가 자기 관리를 잘한 것을 칭찬해야 할까, 아니면 그저 지겹다고 해야 할까. 그러니까 국내에서 주연급 남자 배우가 박중훈, 한석규, 송강호, 하정우로 점차 변모해가던 지난 20년 동안 홍콩은 늘 유덕화 아니면 양조위였다.

말하자면 국내에서 중국영화의 인기는 스타덤으로 인해 지탱됐다. 왕우와 이소룡과 적룡, 성룡과 주윤발과 이연걸, 장국영과 유덕화와 양조위. 아무리 요즘 견자단이 날고 긴다 해도, 사정봉이 선배들을 뛰어넘는 연기 변신을 선보였다 한들, 시쳇말로 아무 관심이 없다. 2000년대 들어 장국영의 죽음, 주윤발과 오우삼의 할리우드 진출로 대변되는 굵직한 변화 속에서 국내의 중국영화 팬들은 그저 지난 ‘화양연화’를 되새기며 의지할 곳 없이 길거리에 남겨졌다. 성룡이 <차이니즈 조디악>에서 모처럼 대역 없는 연기를 펼쳤다 한들 그저 공허한 메아리로 울려 퍼진다. ‘추억 팔이’의 시대마저 지났다.

반면 중국과의 합작은 늘었다. 김용화 감독의 < 미스터 고 >는 중국 화이브라더스로부터 전체 제작비의 4분의 1 수준인 500만 달러(56억원)를 투자 받았다. 중국의 3대 메이저 스튜디오 중 하나인 화이브라더스가 투자한 만큼 < 일대종사 >처럼 5천여 개의 스크린에서 개봉할 것이다. 앞서 개봉한 펑위옌, 바이바이허 주연, 오기환 감독의 < 이별계약 > 역시 만족스런 중국 내 흥행을 거두며 한중 합작 기류는 핑크빛이다. 당장 왕가위와 주성치 영화를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관객들은 난생처음 듣는 펑위옌과 바이바이허의 영화가 내걸린 극장가를 지나치게 됐다. 냉정한 현실은, 극장은 관객의 기호보단 산업의 기호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에디터
    글 / 주성철( 기자)
    일러스트레이션
    이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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