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의 잔디

7월 7일, 앤디 머레이는 2013 윔블던 챔피언이 되었다. 작년엔 악몽을 꿨지만, 이번엔 센터코트를 홀랑 불태웠다.윔블던이 열리기 직전, 앤디 머레이를 만났다.

수트과 셔츠는 모두 버버리 런던.
수트과 셔츠는 모두 버버리 런던.

“2012년 윔블던 결승이 끝나고, 앤디 머레이는 사상 최고의 테니스 선수라 불리는 로저페더러에게 거둔 승리를 만끽하고 있었다. 네 번의 도전 끝에 거둔 첫 번째 그랜드슬램 타이틀었다. 76년 만에 영국 선수가 윔블던에서 우승을 차지한 경기이기도 했다. 앤디 머레이는 여자친구 킴 시어스와 매기 메이, 러스티란 이름의 보더 테리어 두 마리와 함께 산다. 녹음이 우거진 서리카운트의 500만 파운드짜리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을 때, 비로소 그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다. 윔블던 챔피언.” 꿈이었다. 마치 일곱 살짜리 아이가 쓴 각본마냥, 그는 잠에서 깼다.

앤디 머레이는 실제 2012 윔블던 결승에서는 졌다. 로저 페더러를 또다시 넘지 못했다. 잔인한 꿈속의 축하 파티였다. 다행히, 최근 몇 달간 그는 자신의 테니스 경력에서 가장 성공적인 시기를 즐기고 있다. 올림픽 금메달에 이어 US 오픈에서도 우승했다. 고대하던 첫 번째 그랜드슬램 타이틀이었다. 올해 초엔 호주오픈 결승전에 오르기도 했다. 세계 랭킹은 어느새 2위. 그래도 그 악몽만큼은 마이애미의 고통스러운 여름 볕만큼이나 선명하다. “아직도 꿈속의 모든 부분이 하나하나 다 생각나요. 결승전에서 이기고, 손에 트로피를 들었을 때의 그 느낌…. 그리고 잠에서 깼을 때, 바로 꿈이었다는 걸 깨닫고 정말 실망했죠.” 앤디 머레이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말했다. 윔블던 패배는 그가 겪은 모든 패배 중 가장 고통스러운 경기였다. 그건 윔블던이 영국에서 열리기 때문이거나, 그랜드슬램 결승에서 네 번 연속 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코트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으며, 생에 최고의 경기를 펼쳤음에도 여전히 부족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영영 우승할 정도로 충분한 실력을 갖추지 못하리라는 생각은 그를 더욱 화나게 했다.

“2008 US 오픈에서 첫 번째 그랜드슬램을 놓쳤을 땐 고작 스물하나였어요. 여전히 배우고 있는 중이었죠. 그렇다 보니 크게 실망하진 않았어요. 결승을 치렀다는 게 기뻤죠. 하지만 그 다음부턴 좀 달랐어요. 대회의 역사, 재능 있는 선수들과 맞붙는 경기의 의미를 이해하게 됐죠. 자연히 내가 성취한 걸 어떻게 느끼는지도 바뀌었어요. 윔블던 같은 대회에서 지고 나면, 모든 사람을 실망시킨 것 같은 기분이 들죠.” 하지만 ‘그 꿈’ 이후 앤디 머레이는 오히려 새로운 동력을 얻었다. “그 꿈은 올림픽을 대비하기 위해 연습 코트로 돌아가는 첫날 아침에 꿨어요. 그리고 실제로 큰 자극이 됐어요. 그때 이후론 이제껏 해왔던 경기를 통틀어 최고의 테니스를 했죠. 공을 칠 때마다 느낄 수 있었어요. 그랜드슬램을 놓친 것에 대해 그렇게 긍정적으로 대응하게 된 건 처음이었어요.” 그렇게 앤디 머레이는 2012 윔블던 이후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성공을 요란하게 축하하는 성격은 아니다. “마침내 제가 받는 기대가 부담스럽지 않은 지점에 도달했다는 게 정말 좋아요. 경력의 두 번째 단계에 접어든 것 같아요. 끊임없이 뭔가를 성취하는 데 집중할 수 있는 단계요.”

“2008 US 오픈에서 첫 번째 그랜드슬램을 놓쳤을 땐 고작 스물하나였어요. 여전히 배우고 있는 중이었죠. 그렇다 보니 크게 실망하진 않았어요. 결승을 치렀다는 게 기뻤죠. 하지만 그 다음부턴 좀 달랐어요. 대회의 역사, 재능 있는 선수들과 맞붙는 경기의 의미를 이해하게 됐죠. 자연히 내가 성취한 걸 어떻게 느끼는지도 바뀌었어요. 윔블던 같은 대회에서 지고 나면, 모든 사람을 실망시킨 것 같은 기분이 들죠.” 하지만 ‘그 꿈’ 이후 앤디 머레이는 오히려 새로운 동력을 얻었다. “그 꿈은 올림픽을 대비하기 위해 연습 코트로 돌아가는 첫날 아침에 꿨어요. 그리고 실제로 큰 자극이 됐어요. 그때 이후론 이제껏 해왔던 경기를 통틀어 최고의 테니스를 했죠. 공을 칠 때마다 느낄 수 있었어요. 그랜드슬램을 놓친 것에 대해 그렇게 긍정적으로 대응하게 된 건 처음이었어요.” 그렇게 앤디 머레이는 2012 윔블던 이후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성공을 요란하게 축하하는 성격은 아니다. “마침내 제가 받는 기대가 부담스럽지 않은 지점에 도달했다는 게 정말 좋아요. 경력의 두 번째 단계에 접어든 것 같아요. 끊임없이 뭔가를 성취하는 데 집중할 수 있는 단계요.”

요즘 앤디 머레이는 느긋하고 자신 있어 보인다. 단정하게 옷을 입고, 다정하며 편안하다. 심지어 종종 수다스럽기까지 하다. 우리는 레알 마드리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축구 경기를 보며 챔피언스 리그, 헤비급 권투(그는 데이비드 헤이의 절친한 친구다), 윌 퍼렐, 그리고 개들의 배변 훈련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매기 메이랑 러스티가 런던에서 마이애미로 날아오는 동안 한 번도 오줌을 안 쌌어요. 굉장한 능력이죠?” 앤디 머레이는 대화를 나누는 동안 자주 웃었고, 꽤 유머러스했다. 롤랑 가로의 클레이 코트처럼 건조한 한편 천연덕스러웠달까? 그가 무례하거나, 우울하거나, 따분한 남자라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었다. “제 목소리가 좀 단조롭고 지루하긴 하지만, 전 사람들의 말투나 옷 입는 방식이 그 사람의 성품과 관련이 있다고 보진 않아요.”

2005년 처음 그가 프로 무대에 데뷔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그 무렵 앤디 머레이는 불만 가득한 십 대처럼 보였다. 깎아놓은 듯한 광대뼈와 늘씬하고 잘 단련된 몸, 건강한 홍조를 띤 지금의 모습에 비하면 외모도 딴판이다. 당시엔 그저 깡마르고 창백한 호전적인 아이처럼 보일 뿐이었다. 앤디 머레이는 스코틀랜드의 작은 마을 던블레인에서 자랐다. 당시 그의 어머니 주디 머레이는 앤디 머레이의 테니스 실력을 형편없어했다. 심지어 “무용지물”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주디 머레이는 전직 프로 선수이자 성공적인 코치로 활동한 전문가다. 앤디 머레이는 형제 사이에서도 최고가 아니었다. 오히려 15개월 터울의 형인 제이미가 더 나은 선수였다. 하지만 앤디 머레이는 부족한 집중력과 운동신경을 사나운 성격으로 만회했다.

그래도 앤디 머레이는 테니스 라켓을 놓지 않았고, 여덟 살에 처음으로 토너먼트에 출전해 우승을 거뒀다. 그리고 공중에 주먹을 휘두르며 욕을 하는 세리머니로 기쁨을 표현했다. 요즘에도 종종 보여주곤 하는 그 세리머니 말이다. 그는 코트 위에서도 상대 선수와의 충돌을 두려워하는 법이 없었다. 반칙을 하는 상대에게도, 목소리 큰 부모들에게도 당당했다. 앤디 머레이의 아버지 윌의 “누구에게도 당하지 말아라”는 조언을 미숙한 방식으로 실행에 옮긴 셈이다. 게다가 뾰족하게 세운 밝은 금발머리, 영리한 말재간, 건방진 미소는 그를 스코틀랜드식 바트 심슨처럼 보이게 했다. 바트는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한 적이 있다. “난 운동하긴 너무 멋진 운동선수 타입이라고.”

아홉 살 때 겪은 부모님의 이혼도 앤디 머레이의 성장을 막을 수는 없었다. 1996년, 지역 소년단을 이끌던 스카우트 단장이자, 머레이 가족과 교류하던 토머스 해밀턴이 앤디의 모교 교사와 학생 16명을 죽인 끔찍한 난사사건의 트라우마도 마찬가지였다. 앤디 머레이는 이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거의 입을 열지 않지만, 자서전 <성인이 되다>에서 드물게 사건에 대해 언급하며 그날에 대한 강한 인상을 갖고 있지도 않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물론 그 사건이 앤디 머레이의 던블레인 공동체에 대한 사랑을 시들게 하지는 못했다. 그의 외조부모는 아직도 그곳에 살고 있으며, 최근엔 형이 결혼한 던블레인의 크롬릭스 하우스 호텔을 1천8백만 파운드를 주고 구입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US 오픈 우승 이후 그가 가장 자랑스러워한 부분 역시 자신의 귀향에 대한 고향 사람들의 압도적인 반응이었다. 앤디 머레이는 던블레인이란 지역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상상도 못했어요. 그렇게 자주 가진 못했기 때문에 기분이 어떨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올지도 알 수 없었죠. 특히나 예전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을 많이 봤고, 얘기도 나눌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2만 명의 관중이 보낸 열렬한 환영에 대해 그가 말했다. “이 일을 시작할 때부터, 제가 자란 도시와 거기에 사는 모든 사람이 제 성과를 보면서 기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했죠. 사실 US 오픈에서 졌다고 해도 고향 사람들의 저에 대한 감정이 달라졌을 것 같진 않아요.”

인터뷰 내내 앤디 머레이가 가장 자주 언급한 정서는 실망감이었다. 패배했을 때 다른 사람들을 실망시킨다는 느낌. 그는 가족, 친구, 팀, 팬들, 고향, 심지어 썩 가깝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찬가지로 이겼을 때는 가장 먼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과 그 승리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그에겐 지금까지 받아온 주변의 지원이 없었다면, 오늘의 자신이 없었을 거라는 진심어린 믿음이 있었다. 테니스 같이 개인적인 스포츠에선 보기 드문 동시에 감탄할 만한 기질이다.

물론 2002년 열다섯 살의 나이로 스코틀랜드를 떠나 비용이 만만찮은 스페인의 산체스카잘 아카데미로 들어가겠다는 그의 결정을 부모님이 지원해주지 않았다면, 메이저 대회 우승자 앤디 머레이는 아예 탄생하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처음 10일 정도는 집을 떠나 있는 게 힘들었지만, 그 다음엔 아주 좋았어요. 저랑 참 잘 맞았고, 그 경험이 데뷔 초반의 힘든 시간을 넘기는 데도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제 경력에서 최고의 결정이었죠.”

영국 테니스의 희망으로 불리던 팀 헨만 역시 앤디 머레이의 말을 거들었다. “앤디를 만나기 1년 전쯤에 그에 대한 얘길 들었어요. 테니스를 잘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죠. 특별한 장점이 있는 건 아니지만, 게임을 읽는 눈이 뛰어나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샷을 날린다고요. 그리고 어린 나이에도 이기는 방법을 아는 선수라고도요. 코트에서 그가 보여준 보디랭기지나 태도엔 의문의 소지가 있었지만, 열다섯 살짜리 선수라면 그럴 수도 있죠.” 마침내 국가대항전인 데이비스컵에서 그들이 만났을 때, 앤디 머레이와 팀 헨만은 금세 친구가 되었다. 어린 스코틀랜드 소년은 영국 최고의 테니스 선수에게 경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헨만의 기억에 따르면, 앤디 머레이는 코트 안팎에서 모두 공손하고 매너가 좋으며,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큰 선수였다. 그가 팀 헨만으로부터 얻은 중요한 가르침 중에 하나는 언론을 대하는 기술이었다. 언제나 정직한 대답이 아닌 적절한 대답을 할 것.

“작년이랑 좀 다르네요.하하. 지난 윔블던은제 경력에서 가장 힘든순간이었어요.” 앤디머레이는 2013 윔블던결승에서 노박 조코비치를3:0으로 이겼다. 그리고관중 앞에서 이 말부터꺼냈다. 수트과 셔츠는 모두 리처드 제임스, 타이는 폴스미스, 테니스 라켓은 헤드.
“작년이랑 좀 다르네요.
하하. 지난 윔블던은
제 경력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어요.” 앤디
머레이는 2013 윔블던
결승에서 노박 조코비치를
3:0으로 이겼다. 그리고
관중 앞에서 이 말부터
꺼냈다.
수트과 셔츠는 모두 리처드 제임스, 타이는 폴스미스, 테니스 라켓은 헤드.

앤디 머레이는 마이크 앞에서 무척 신중하다. 어떤 질문에도 기꺼이 대답하지만, 정치인처럼 조심스럽다. 로더 페더러의 바보 같은 머리 모양에 대해 질문하거나, 라파엘 나달의 지나치게 발달한 오른팔에 대해 농담을 던지면, 는 다 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예의 있게 답할 것이다. 농담을 알아들었어도 거기에 동참하지는 않는다. 속마음을 슬쩍 내비칠 뿐 한결같이 논란의 여지를 만들지 않는다. 고생 끝에 얻은 교훈이랄까? “테니스는 개인이 받는 언론의 관심과 감시가 워낙 강한 종목이다 보니, 다른 데 신경을 팔 겨를이 없어요. 자기 일에 100퍼센트 집중해야 하죠. 앤디는 나보다 훨씬 더 호전적인 선수라, 몇 번은 시비가 붙고 싸움을 벌인 적도 있죠. 어릴 땐 실제로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고도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그게 다툴 가치가 없는 일이란 걸 깨달은 거고요.” 헨만이 웃으면서 말했다.

동시에 헨만은 <데일리 메일>의 데스 켈리가 진행했던 악명 높은 인터뷰를 떠올렸다. 앤디 머레이는 당시 열아홉 살이었다. 2006년 월드컵에 대해 장난스런 농담을 하는 도중, 앤디 머레이는 “잉글랜드 팀에 맞서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응원할 것”이라며 빈정거렸다. 앤디 머레이는 스코틀랜드 출신이지만 지금 잉글랜드에 살고 있는데다, 조부모와 여자친구도 잉글랜드인이다. 앤디 머레이는 이 발언으로 많은 비난을 받았고, 오랫동안 영국 대중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신하지 못한 채 경기에 나서야 했다. 이젠 영국인들이 자신을 좀 더 좋아한다고 생각할까?

“쉽게 답하기 어려운 얘기네요. 운동선수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한 한 가장 좋은 테니스 선수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에요. 그렇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꽤 오랫동안 기자회견이나 인터뷰에서 마음을 터놓고 재미있게 말하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어요.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저랑 진짜 제 모습은 좀 다른 것 같아요. 만약 제 주변 사람들이 제가 변했다고 말하기 시작하면 신경 쓰일 거예요. 그땐 그런 얘길 정말 심각하게 받아들이겠죠. TV는 사람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요. 늘 농담을 던지고 재미있게 행동하는 게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말하는 거야말로 훨씬 더 어렵죠.” 그보다 지난 몇 년간 앤디 머레이를 괴롭힌 유일한 사람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국가적 부담과 기대가 커져감에 따라, 그는 더욱 논란을 불러일으키거나 진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신경을 썼다. 물론 100퍼센트 뜻대로 되진 않았다. 승리와 패배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결국 그는 지난해 윔블던 센터코트에서 테니스 선수 출신 인터뷰어 수 베이커의 엄마 같은 추궁 앞에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인터뷰를 통해 앤디 머레이는 자신이 무뚝뚝한 로봇이 아닌,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품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오히려 그날 이후 많은 사람이 다시금 그를 지지했다.

정신적인 방어막을 쌓은 일이 의무적이었다면, 신체적 단련은 앤디 머레이가 긍정적으로 즐기고 있는 일이다. 처음 프로가 되었을 때부터 그는 스스로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왜 체력이 부족할까? 왜 경기 중에 쥐가 나지? 오늘은 너무 방어적이었나? 이런 질문은 게임의 모든 측면을 개선하려는 그의 열망과 맞닿아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몸을 완벽한 무기로 만들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 영국 테니스협회 코치 제즈 그린을 코치로 영입하고, 1년에 35주 이상을 그와 함께 보냈다. 제즈 그린은 앤디 머레이가 여전히 번개 같은 속도를 유지하면서 체력과 힘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슈퍼 미들웨이트급 정도의 체격에 불과하던 앤디 머레이는 요즘 우람한 크루저웨이트급 선수처럼 보인다. 제즈 그린은 앤디 머레이가 신체를 단련하는 모습을 “치열하고 격렬하다”고 묘사했다. “가능할 거라 생각지 않았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더욱 헌신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선수가 되었어요. 동시에 인간적으로는 더 여유가 생겼죠. 지난 1년간의 성공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

앤디 머레이가 결정적으로 변화하게 된 계기는 런던 올림픽이었다. 윔블던에서 로저 페더러에게 패배한 지 고작 몇 주 만에, 앤디 머레이는 같은 경기장으로 돌아와 승리를 쌓아 나갔다. 준결승에서 세계 1위 노박 조코비치를 이긴 뒤, 결승에선 기어이 로저 페더러를 완파하고 금메달을 땄다. 그리고 한 달 뒤엔 US 오픈에서 우승을 거뒀다. 첫 번째 그랜드슬램 타이틀이었다. 앤디 머레이는 숨 막혔던 그 몇 주를 떠올리며 자랑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마침내 그랜드슬램과의 불운을 떨친 그가 느낀 감정은 다름 아닌 안도감이었다. “4~5일 지나고 나서야 완전히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이기고 난 직후엔 그렇게까지 기쁘지 않았거든요. 결승이 끝나고 나선 잠을 잘 못 잤어요. 말 그대로 일어나 앉아 있었고, 거의 감각이 없었죠. 집으로 돌아와 제 침대에서 다시 잠을 자기 시작하니까 마침내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친구들, 동료들과 파티를 열었죠. 정말 좋았어요.”

이젠 그에게 슈퍼스타 팬들도 생겼다. 스코틀랜드의 왕족이나 다름없는 숀 코네리와 알렉스 퍼거슨이 뉴욕에서 열린 US 오픈 준결승 기자회견에 초대도 없이 나타난 것이다. “멋진 일이었지만, 솔직히 비현실적이었어요. 심지어 엄마는 좀 취한 것 같았어요. 하하.” 케빈 스페이시 역시 최근의 ‘앤디 머레이 붐’에 굴복했음을 인정했다. “앤디의 경력이 성장하는 걸 지켜봐 왔고, 런던에 사는 동안 그의 팬이 되었죠. 이제 앤디를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그가 신경 쓰는 건 오직 게임뿐이에요. 매 순간 필사적으로 가슴이 터지도록 싸우고, 공 하나하나를 쫓죠.” 자신의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스페이시는 머레이를 만났을 때 그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고 말했다. “그가 되레 장단을 맞춰야 하는 멍청한 유명인사가 되고 싶진 않았어요. 앤디는 정말 친절했고, 제가 해낸 일에 대해서도 존중을 표현했죠. 이후에도 몇 번 더 만났어요.” 이제 케빈 스페이시는 앤디 머레이의 가족 친지석에서 경기를 관람한다. “앤디는 코트에 서면 두 명의 적과 싸워요. 네트 너머의 상대 선수, 그리고 자신이요. 만일 그가 우울하다면 그건 스스로에 대한 울분이지, 세상 때문이 아니에요.”

명사들과의 만남, 늘어나는 대중적 인기, 코트에서의 괄목할 만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앤디 머레이는 그 어느 때보다 진실하고 정중하다. 매사에 “계속 테니스를 치고 거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어떤 일도 하지 않는 것”을 우선순위로 둔다. 행복하고 편안해 보이지만, 여전히 투지가 넘친다. 테니스를 제외하면 그는 단순한 생활을 즐긴다. 여자친구와 어울리고, 개들과 산책하고, TV 시트콤을 좋아하며, 축구 경기와 고카트에 집착하는 정도다. “전 힙스 팬이지만, 잉글랜드에선 아스널을 응원해요. 고카트를 좀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건… 사실이고요. 하하. 경주용 신발이랑 헬멧도 있어요.”

그렇다고 다시 녹음 스튜디오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앤디 머레이는 전 테니스 복식 챔피언 브라이언 형제가 녹음한 ‘Autograph’란 곡에 랩을 한 적이 있다. “신시내티의 매리어트 호텔에서 작은 녹음기랑 마이크로 녹음한 거예요. 아직도 그것에 대한 질문을 받죠.”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모두 배우이자 코미디언인 제임스 코든 덕분이다. 스포츠 릴리프(영국의 운동선수, 코미디언, 연예인들이 참가해 벌이는 자선 쇼) 대본 작업을 위해 만난 이후 코든은 앤디 머레이와 친구가 되었다. “전 앤디를 사랑해요. 그렇다고 제가 그 트랙을 찾아낸 걸 용서해줄 것 같진 않아요. 누구나 살면서 실수를 하죠. 앤디라고 그걸 피할 순 없잖아요? ‘윔블던이 열리는 동안엔 모든 게 미쳐 돌아가지. 손에는 쥐가 나고 마음은 흐려지지.’ 대단하죠? 하하.”

민망한 랩 가사를 만천하에 공개하긴 했지만, 코든 역시 앤디 머레이에 대해선 좋은 얘기뿐이었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사람이에요. 앤디는 자존심을 전혀 세우지 않아요. 이제껏 만나본 엘리트 운동선수 중 가장 잰 체하지 않고, 정중하고, 정직하죠.” 과연 진짜 앤디 머레이는 어떤 사람일까? 정확한 대답은 스스로에게 맡기는 편이 가장 좋을 것이다. “인간적으론 꽤 여유로운 것 같아요. 사람들이랑 있는 걸 좋아하고요. 처음 선수 생활을 시작했을 땐 자주 외로움을 느꼈어도 이젠 아니에요. 테니스에 대해선 여전히 극도로 의욕적이고 투지가 넘치지만, 화가 나 있진 않고요. 전 평생 누구도 때려본 적이 없어요. 많은 부담을 떠안고 있는 건 사실이고, 경기에서 질 때마다 사람들을 실망시켰다고 느끼는 것도 사실이지만, 전 언제나 그래왔는걸요.”

윔블던을 목전에 둔 지금, 올여름만큼은 77년 만에 영국 선수가 윔블던 정상에 오르는 장면을 기대할 수 있을까? 팀 헨만은 긍정적인 답을 내놓았다. “올림픽에서 로저 페더러에게 거둔 승리가 엄청난 자신감의 원천이 될 거에요.” 케빈 스페이시는 확신한다. “모든 일이 뜻대로 되는 마법 같은 시기가 있죠. 앤디가 올해 윔블던에서 우승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냐고요? 물론이에요.” 제임스 코든 역시 앤디 머레이를 지지한다. “앤디는 매년 국가적 기대를 짊어져요. 멋지고 자연스럽게. 자신이 윔블던에서 우승하는 게 모두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를 잘 알고 있고, 그들을 위해 이뤄내고 싶어 하죠.”

마지막으로 앤디 머레이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이 잘 알아채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전 윔블던에서 뛰는 걸 정말로 사랑해요. 거기에서 승리하는 생각을 하죠. 승리하는 꿈을 꿔요. 그런 일이 일어날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제가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믿냐고요? 대답은 ‘네’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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