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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 구매의 함정

2013.08.23GQ

그들은 소비자가 안도하는 바로 그 지점에 함정을 판다. 상태 좋은 매물을 시세보다 퍽 저렴한 가격에 올린다.

어떤 분야든 프로와 아마추어가 맞붙는 경우는 흔치 않다. 승패가 뻔해서다. 중고차 거래는 예외다. 세상물정에 어두운 소비자가 제 발로 찾아가 먹이사슬의 희생양이 된다. 물론 이름과 명예를 걸고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어디나 그렇듯 소수의 양아치가 문제다. 닳고 닳은 심리전의 달인들. 패턴은 있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건 ‘일부’ 양아치 업자의 수법이다.

예전엔 중고차 시장을 찾는 것부터 마뜩찮았다. 이젠 집에서도 매물을 확인한다. 소비자는 안전하게 차를 고를 수 있게 됐다고 믿는다. 대기업 중고차 사이트라면 더욱. 하지만 일부 업자는 바로 그 지점에 함정을 판다. 상태 좋은 매물을 퍽 저렴한 가격에 올린다. 문의가 빗발친다. “걱정 마시고 일단 보러 오라”고 한다. 막상 찾아가면 상황이 꼬인다. “어쩌죠? 방금 팔렸는데.” 소비자는 당황스럽다. 먼 길 되돌아갈 생각에 갑갑하다. 이때 업자가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다른 매물 한번 보시죠. 좋은 게 있어요.” 바뀐 매물의 옵션과 연식, 상태를 다시 헤아려 적정 가격을 추정하는 건 소비자 능력 밖의 일이다. 준비와 전략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다.

그래도 직접 중고차를 사러 갈 정도면 최소한의 지식과 관심은 있는 경우다. 흠도 짚어낼 줄 안다. 타이어가 너무 닳았다든지, 판금이나 도색의 흔적이 있다든지. 슬그머니 용기를 내본다. “상태가 별론데요. 좀 깎아주셔야겠어요.” 업자는 엄살을 피우다 돌연 선심을 쓴다. “먼 길 오셨는데, 해드리죠.” 소비자는 경계의 수위를 낮춘다. 그럴 때 업자가 말한다. “원래 중고차 중개 수수료 붙는 거 아시죠? 차 가격의 2퍼센트.” 소비자는 몰랐던 사실에 화들짝 놀란다. 업자는 다시 안심시킨다. “화끈하게 다 빼드릴게요.” 이젠 고맙기까지 하다. 그런데 가만 보니 범퍼에도 도색한 흔적이 있다. 선팅 필름도 일부 찢어졌다. 선루프도 뻑뻑하다. 하지만 더 이상 흠을 잡지 않기로 한다. 양보하는 업자에게 미안하기까지 하다. 이거 팔아 얼마 남을까, 오지랖 넓은 걱정마저 든다. 결국 구매를 결정한다. 이 사람이라면 믿어도 좋을 것 같다.

둘은 계약서를 쓰러 사무실로 향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낯선 풍경이 시야 가득이다. 한쪽엔 새 번호판이 잔뜩 쌓여 있다. 책상마다 통화 중인 업자가 가득하다. 그러고 보니 내 담당은 왠지 나머지 업자와 달라 보이기도 한다. 이런 데서 일하기엔 너무 선한 사람 아닌가싶기도 하다. 잠시 후 계약서를 마주한다. 난해하다. 담당 업자는 빠르게 내용을 확인해준다. 그를 믿기 때문에 더 이상 신경을 곤두세우진 않는다. 시계를 보니 오후 5시가 되어 간다. 문득 이전 등록이 걱정된다. “시간이 너무 빠듯한 거 아닌가요?” 업자는 다시 안심시킨다. “오늘 그냥 몰고 가시면 돼요. 이전 업무는 제가 내일 다 해드릴게요.” 완전 감동 서비스다.

서명하고 찻값을 이체하면 거래는 끝난다. 업자는 번호판을 챙겨 배웅을 나온다. 업체에서 보관하던 앞 번호판을 달고, 방전을 염려해 빼놓았던 배터리 단자를 연결하면 돌아갈 준비가 끝났다. 소비자는 업자의 웃음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실제 몰아보니 예상과 많이 다르다. 잡소리도 심하고 움직임도 개운치 않다. “오래 서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소비자는 스스로를 위안한다. 대안도 없다. 이미 계약서에 서명했으니.

다음날 오후 전화벨이 울린다. 담당 업자다. “손님, 정말 죄송한데요, 계산이 좀 잘못됐어요. 30만원 더 부쳐주셔야겠어요. 원래 몇천 원 더 나왔는데, 이건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소비자는 혼란스럽다. 하지만 이 사람이 오죽했으면 다시 전화했을까 싶기도 해서 부쳐준다. 며칠 뒤 날아온 자동차등록증과 영수증도 이상하다. 업자가 요청한 금액이 지역 공채 매입금액과 같다. 대개 공채는 바로 할인해 되판다. 따라서 소비자는 차액만 지불하면 된다. 낼 필요가 없는 돈을 고스란히 냈다는걸 그때 알아챈다. 지역 공채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속았는지조차 모른다. 소비자는 바로 전화를 걸어 따진다. 업자는 전혀 새로운 화제를 꺼낸다. “원래 우리 같은 딜러들은 거래할 때마다 소속 중고차 상사에 납입금을 내야 하거든요. 그걸 내신 거라고 보면 돼요.” 뚜껑이 제대로 열린다. “아니, 차 가격에 포함된 거 아니었나요. 통 크게 깎아주는 척하고 이전 등록 핑계로 마진 다 챙겨 먹는 거 아니에요?” 업자는 정색을 한다. “손님,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중고차 거래 좀 해보셨을 텐데, 새삼스럽게 그러세요? 전 그런 양아치 아니에요.” 소비자는 상황은 이미 끝났다는 걸 문득 깨닫는다. 계약서에도 나오지 않는 비용을 전화 한 통 받고 선뜻 부쳐줬으니 하소연할 데도 없는 셈이다. 며칠 뒤 소비자는 카센터에 들렀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머플러는 녹이 슬다 못해 끊겨 있었다. 에어컨 가스는 완전히 바닥이 나 있었다. 이렇게 또 한 명의 아마추어가 프로에게 당했다.

한때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동영상이 있다. 중고차 딜러 강좌다. 강사는 “이렇게만 하면 백전백승”이라며 자신만만해한다. 불안과 안심의 냉온탕 전략으로 소비자의 심리를 쥐락펴락하는 단계별 대응 매뉴얼이 핵심이다. 강사는 강의 내내 속을 수밖에 없는 소비자를거리낌 없이 조롱한다.

중고차 거래와 관련해 몇 가진 꼭 명심하자. 업자에게 매물을 끌고 오게 하자. 아쉬우면 온다. 차를 볼 땐 지식이 풍부한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원래 보려고 한매물이 없을 땐 미련 없이 발걸음을 돌려야 한다. 등록은 반드시 직접 해야 한다. 영화 <식스센스>에서 죽은 이를 보는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가 죽었다는 걸 몰라요.” 일부 몰지각한 중고차 업자도 비슷한 경우다. 자기는 양아치가 아니라고 믿는다..

    에디터
    컨트리뷰팅 에디터 / 김기범
    일러스트레이션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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