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단언컨대 <1>

2013.09.03GQ

지금,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에 대한 <GQ>의 의견 혹은 참견.

오디션 심사위원의 진화 <슈퍼스타K 5>엔 여자 심사위원이 없다. 이효리, 엄정화, 윤미래가 있었던 자리다. 그들이 꼭 여자라는 이유로 거기 있었던 건 아니지만, 어쨌든 변화라면 변화다. 따뜻한 칭찬이나 섬세한 배려도 좋지만 “좋아서 좋아요” 식은 도무지 심사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보다 더 눈에 띄는 변화는 윤종신의 심사 관점이다. 무난하게 잘 불렀다 싶은 노래는 불합격을 줬고, 뭔가 비뚤거나 부족하다 싶은 노래엔 한번 밀고 나가보라고 격려했다. 덕분에 프로그램에도 탄력이 생겼다. 궁금한 건, 차차 진행되는 동안 그가 과연 ‘대중’과는 어떻게 맞서고, 설득하고, 조화를 도모할지 하는 점이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 끝난 <마스터 셰프 코리아 2>는 심사의 조화라는 면에서 과연 훌륭했다. 요리라는 게, 맛이라는게, 워낙 취향(입맛)을 예민하게 탈 수밖에 없는데, 김소희, 노희영, 강레오 세 심사위원은 그것을 가장 큰 전제로 하되, 평가를 내리는 순간만큼은 오히려 간결한 팩트에 입각한 얘기로 일관했다. 심사의 정석,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가 괜히 쌓이는 게 아니다.
요즘 가장 흥미로운 심사는 <댄싱 9>에서 들을 수 있다. 참가자가 무대에서 춤을 추는 동안, 심사위원들끼리 나누는 얘기를 그대로 들려준다는 점이 특별하다. 시청자는 춤을 보는 동시에 그 춤에 대한 해설이자 심사를 듣는다. 춤의 특성상 순간순간 지나칠 수밖에 없는 부분들을 전문적인 시각으로 속속들이 들추는데, 재밌는 건 그게 ‘수다’로 들린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살아 있다. 장우철

404와 쾅 프로그램 ,모두 둘이서 시작했다 ‘밴드’를 둘 이상이 모인 음악 공동체라고 본다면, 지난 1년을 돌이켜봤을 때 가장 뛰어난 앨범 두 장은 두 명으로 구성된 두 밴드에게서 나왔다. 또 기타와 드럼의 편성이었다. 두 밴드는 포스트 펑크로 분류할 수 있는 음악을 한다. 비등한 두 밴드를 통합시킬 수 있는 조건은 불 보듯 훤하지만, 합칠수록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쾅 프로그램은 확신에 차있고 밀어붙인다. 벅차오르고 끝내는 게 느닷없다. 404는 유장할 법한 사연을 식당에서 주문하듯이 꼭 필요한 말만으로 전하는 쪽이다. 눈치 채기 어려울 만큼 서서히 부서지거나 은근히 끓어오르면서. 두 팀을 젊음으로 가른다면 딱 떨어지는 부분이 있는데, 생각해보면 두 명만 있으면 나이나 경력이 어떻건 간에 밴드를 시작해볼 수 있다는 전언 같다. 정우영

<황금의 제국>의 회고적인 대사는 제한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황금의 제국> 14회. 최서연이 사촌 오빠 최민재를 위협하며 말한다. “어릴 때 난 정원 연못에서 물고기 잡다가 비싼 물고기 몇 마리 상하고, 오빠는 뒤뜰에서 폭죽 만들다가 꽃밭 다 망치고. 아무도 본 사람 없다고 우리 둘이 서로 비밀 지켜주기로 한 거 기억나지? 이번에도 그러자. 우린 사촌이잖아, 오빠.” <황금의 제국>은 대사에 회고를 김가루만큼 더한다. “고등학교 때였나” 류의 대사가 나오면 또 시작이구나, 한다. <추적자>로부터 이어지는 박경수 작가의 스타일을 폄훼하는 건 아니다. 다만 박근형처럼, 또 정한용처럼 지독한 능청이 없는 배우에게서 그것은 불필요한 사담으로 들린다. 대사에서 그 사담은 비유로 기능한다. 비유는 “자신이 말하려는 원관념을 보조관념을 통해 더 정확하게 표현해낼 수 있을 때, 원관념보다 작은 보조관념을, 제한적인 필요에 의해서 드러낼 수 있는 수사법”이다. 드라마에서 원관념은 대사뿐만 아니라 배우다. 정우영

커피 전문점의 정체불명 음료들특히 여름이 그렇다. 그중에서도 특히 국내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의 경우가 더욱 적극적이다. 커피가 아닌 논커피 음료 시장의 이야기다. 요즘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에 가면 온갖 제철 과일이나 식재료로 만든 음료들이 넘쳐난다. 이름도 맛 만큼이나 현란해서 스무디, 모히토, 버블티, 에이드, 그라나타 등의 음료가 떡하니 메뉴판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메뉴판의 또 다른 한 쪽엔 실험적이라 할 만한 특별 빙수 메뉴가 한가득이다. 커피 메뉴는 카운터 앞에서 열심히 눈알을 굴려야 겨우 찾을 수 있을 정도로 구석진 곳에 있는, 어쩐지 ‘천시 받는’ 메뉴가 됐다.
선택지가 많아지는 게 무슨 문제냐 싶겠지만, 사실은 많은 것이 문제다. 이름만 거창하고 국적은 불분명하고 비싼데다 맛은 그저 달다. 여름 한 철이 지나면 알게 모르게 메뉴에서 사라질 정도로, 꾸준한 인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만큼 커피에 집중할 수 있는 인력과 돈은 말라 붙는다. 갈수록 커피 맛은 밋밋해지고 카운터 뒤 메뉴판은 현란해져만 간다.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은 정말 음료계의 ‘김밥천국’이 되고 싶은 걸까? 손기은

펫숍보이즈의 젊음
그들의 새 앨범을 대할 때마다, 혹시 닐 테넌트의 목소리가 늙었으면 어쩌나 걱정한다. ‘달콤쌉싸름’이라는 말의 청각적 정의와도 같은 목소리. 그래서 보컬부터 확인한다. 들어봤다. 문제없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어쨌든 이제 달릴 차례.
차갑고 우아했던 이후 1년 만에 내놓은 은 온통 전자음으로 채우고 오래된 클럽으로 향한다. 그건 우선 멜로디의 홍수에서 다 같이 춤추는 일이지만(‘Love is a Bourgeois Construct’), 클럽 출입구의 작은 유리문, 플로어의 빛, 복도의 맥주병들, 한 잔 더 시키는 큰 목소리, 화장실 거울, 맘에 드는 사람, 옛 애인, 한쪽 구석에서 이어폰으로 혼자 듣는 노래까지…. 그날 밤 거기서 있었던 모든 일이 다 들어있다. 데뷔 30년이 다 되어가지만 펫숍보이즈의 디스코그래피엔 머뭇거린 흔적이 없다. 이만큼이나 했으니 뭔가 다른 걸 보여주겠다는 의도나 강박도 없다. ‘동안’이 아니라 ‘젊음’이기 때문이다. 노력하며 추구하기보다 그저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장우철

김민구의 3점슛은 어떻게 통했나?
슈터가 돌아왔다. 한국 농구는 슛 하나는 매서웠는데, 어느 순간부터 프로에서 가장 귀한 포지션이 슈팅가드가 되어버렸다. 조성민을 제외하면 대표팀에 뽑을 선수가 드물다. 김민구는 포인트가드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김선형과 비슷하지만, 확실히 슈팅가드에 좀 더 가깝다. 골대로 돌진하는 성향보다는 횡으로 부지런히 움직이는 슈터라는 점에서 더욱 반갑다.
유재학 감독이 이끄는 농구 대표팀은 아시아선수권에서 3위에 오르며 농구 월드컵 진출권을 따냈다. 무려 16년 만이다. 대회를 통틀어 우승팀인 이란, 준우승팀인 필리핀에게 각각 한 번씩 졌을 뿐이다. 유독 아쉬웠던 필리핀과의 4강전에서 한국은 상대의 스크린에 고전했다. 필리핀이 넣은 대부분의 3점 슛은 빅맨의 스크린을 타고 가드들이 노마크 찬스에서 던진 슛이었다. 전략적이었다. 그와 반대로 김민구는 효과적인 스크린을 거의 받지 못했다. 유재학 감독이 2:2 플레이 자체를 거의 지시하지 않은 듯했다. 그가 넣은 3점 슛은 대부분 자기 발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보기 힘든 4점 플레이까지 나온 데는 그의 그런 성향이 큰 몫을 했다. 수비수가 달리며 도망가는 공격수를 막아야 하기 때문에 파울할 확률이 굉장히 높아진다. 4쿼터 승부처라면 더 그렇다.
원래 점프슛은 박빙의 순간에 더 위력을 발휘한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팀의 전술적 중심이 아니었지만, 제 힘으로 슛을 창조해 계획에 없던 게임을 만들었다. 슈터를 위한 전술 자체가 거의 멸종된 지금, 김민구의 농구엔 다시 판을 뒤흔들 수 있는 힘이 있다. 농구는 한 명의 슈퍼스타를 위해 전술을 마련하는 것이 기꺼이 용납되는 스포츠다. 유지성

올여름 할리우드의 승자는 <슈퍼배드2>
올해 할리우드에서 북미 박스오피스 3억 달러를 넘기기는 쉽지 않았다. <아이언맨 3>를 제외하면 <분노의 질주 : 더 맥시멈>, <월드 워 Z>, <론 레인저>, <맨 오브 스틸>, <퍼시픽 림>, <더 울버린>도 그 벽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슈퍼배드 2>가 3억 달러를 훌쩍 넘겨버렸다. 놀라운 건 변변한 애니메이션 시리즈라곤 <아이스 에이지> 밖에 없던 유니버설 픽쳐스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언제나 기본 이상의 흥행을 보여주는 픽사는 <몬스터 대학교>로 블록버스터 사이에서 선전했지만, ‘미니언(슈퍼배드 2의 노란색 악당들)’ 열풍에는 한참 모자랐다. 한편 드림웍스도 <터보>를 내놓았지만 흥행에선 고전을 면치 못했다.
<슈퍼배드 2>의 성공은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흐름이 등장한 건 아닐지 추측하게 한다. 픽사는 <카 2>와 <메리다와 마법의 숲>를 통해 디즈니와 공존하는 것이 어떻게 불안한지 보여주고 있고, 드림웍스는 <드래곤 길들이기>, <가디언즈>, <크루즈 패밀리>와 같이 점점 더 완성도 높은 서사를 바탕으로 한 ‘영화’ 만들기에 힘쓰고 있다. 이런 와중에 <슈퍼배드 2>는 오로지 캐릭터의, 캐릭터에 의한, 캐릭터를 위한 애니메이션이다. 사실, 애니메이션에서 제일 중요한 건 캐릭터다. 미니언은 근래에 등장한 캐릭터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다. 단순히 영화의 흥행 여부로 결정될 캐릭터가 아니라, 영화와 상관없이 살아남을 수 있는 캐릭터가 되었다. 양승철

    에디터
    양승철, 유지성, 정우영, 손기은, 장우철
    기타
    ILLUSTRATOR/ 김종호(KIM, JONG 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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