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틀리의 계절

벤틀리는 타협하지 않는다. 모두가 멈춘 곳에서 다시 시작한다. 벤틀리를 구성하는 요소마다 이런 마음이 깃들어 있고, 그걸 차분히 살펴보는 가을 문턱이야말로 가치 있는 경험이라고 믿는다.

왼쪽)BENTLEY MULSANNE 엔진V8 6.8리터 트윈터보 배기량6,750cc 변속기자동 8단 최고출력512마력 최대토크104.1kg.m 0->100km5.3초오른쪽)BENTLEY 8 LITRE 엔진직렬 6기통 8리터 배기량7,983cc 최고출력220마력 특이사항100대 한정 생산

벤틀리 모터스의 창업자 월터 오웬벤틀리와 벤틀리 차량에 쓰이는 두가지의 호쾌한 로고.

THE BEGINNING
이 오래된 사진 속의 남자가 벤틀리 모터스의 창업자 월터 오웬 벤틀리다. “당신 집에서 나는 엔진 소음 때문에 쉴 수가 없다”는 이웃의 불평에 “죽기 전에 이처럼 위대한 차의 소리를 듣는 걸 영광으로 생각하라”며 되받았던 천재이자 괴짜. 그가 설계한 알루미늄 피스톤은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항공기 엔진에 널리 사용됐다. 이 성공을 바탕으로 1919년 1월 18일 설립한 회사가 벤틀리 모터스다. 대공황의 여파로 1931년 롤스로이스에 합병됐을 때도 오웬 벤틀리는 여전히 개발 엔지니어로 현장에 있었다. 1971년 타계까지 벤틀리 드라이버스 클럽의 명예회장이었다. 양 날개를 펼친 로고의 의미는 직관적이다. 그 속도와 힘, 주행감각으로부터 마치 활공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거라는 자신감이다. 자세히 보면 좌우의 깃털 수가 다르다. 모방을 방지하기 위한 벤틀리의 장난기, 창업자 월터 오웬 벤틀리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이기도 하다. 양 날개를 뒤로 젖힌 로고는 더 빠른 속도, 더욱 넘치는 힘이다.

흑백 사진은 1927년과 1928년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에서 연달아 우승한 벤틀리 레이싱역사의 전설, 팀 버킨과 벤틀리 3리터. 컬러 사진은 2003년 우승 당시의 모습.

RACING HERITAGE
벤틀리는 지구에서 가장 고급한 자동차이면서 낮은 엔진 회전수부터 폭포 같은 힘을 꾸준히 쏟아내는 특유의 성격이 있다. 그 기술력을 바탕으로 1927년과 1928년, 벤틀리 최초의 모델 3리터로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에서 연달아 우승했다. 1928년 9월에는 6.5리터 엔진의 스피드 식스 모델을 발표, 이듬해 르망에선 1위부터 4위까지를 독식했다. 1930년 우승 이후 71년간 불참했다. 자금난을 극복하기 위해 레이스에 대한 투자를 잠시 접어두고, 꾸준히 신차 개발에 몰두했다. 벤틀리의 기함 뮬산의 시초이면서 1백 대만 만들었던 8리터가 이때 나왔다. 이후 2003년 6월에 열린 르망 레이스에서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끈질기고 화려한 복귀, 명성의 재확인이었다.

벤틀리와 벤틀리를 둘러싼 것들
우선 2010년의 레바논. 내전의 상처가 가시기 전이었고, 재건이 한창이었다. 베이루트 중심지 호텔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마다 벤틀리 플라잉 스퍼를 탔다. 때로는 운전석, 대개는 뒷좌석에 앉았다. 아침 식사와 점심 미팅, 저녁 만찬으로 이어지는 일정이 3일간이었다. 신호등과 차선이 마땅치 않아서 경적이 끊이지 않는 도시, 가끔은 쿵하고 자동차끼리 충돌하는 소리가 들리는 땅, 10대 군인들이 실탄을 장전한 채 어딘가로 이동 중이었다.

호텔에서 창문 밖으로 보이는 다른 건물 외벽엔 총탄의 흔적으로 보이는 상처가 아직 있었다. 하지만 재건 중인 도시 특유의 생명력, 중동 도시 특유의 이국적인 고급함…. 벤틀리 플라잉스퍼는 그 도시에 그대로 녹아 있었다. 문을 열고, 시트에 앉아서 다시 문을 닫으면 도시가 침묵하는 것 같았다. 가속페달에 힘을 주면 갈팡질팡 엉켜 있는 다른 차들을 순식간에 제치고 달렸다. 하지만 폭력적이지 않게, 다만 부드럽게. “아주 편안한 운전이네요. 벤틀리는 그렇게 아름답게 운전하는 차예요. 마음만 먹으면 도로 위에 있는 모든 자동차를 추월할 수 있는 차라는 걸 누구나 아니까요.” 벤틀리 영국 본사 홍보 담당자 줄리아가 속삭이듯 말했다. 과연, 힘은 2,000rpm 즈음부터 최대치로 쏟아져 나왔다. 좀 과장하면, ‘좀 밟아볼까?’하고 가속페달에 오른발을 얹는 순간 목이 뒤로 젖혀진다는 뜻이다.

다음은 2012년의 일본 오키나와. “벤틀리는 말하자면 ‘최후의 차’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일단 벤틀리를 가진 사람이 다음 차를 생각할 땐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일본 벤틀리 모터스 마케팅 매니저 츠카사 요코쿠라가 말했다. 벤틀리 컨티넨탈을 갖고 있는 사람이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같은 슈퍼카를 사는 건 말이 된다. 둘의 용도와 형식이 다르니까. 지붕이 열리는 GTC, 고성능 세단 플라잉스퍼를 사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롤스로이스를? 그 결정에는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고급함을 쫓는다면 벤틀리 이후의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오로지 정제된 취향, 과감한 결단, 진짜 사치는 돈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공감대만이 결정의 근거인 세계에서의 선택이다.

다시 2010년 2월의 서울. 벤틀리 컨티넨탈 슈퍼스포츠를 타고 춘천으로 달렸다. 베이루트와 오키나와에선 시속 100킬로미터 이상 달린 기억이 없다. 질서가 확립되기 전의 분주함과 휴양도시 특유의 느긋함 사이에 있어서였다. 경춘고속도로에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다. 소름과 전율, 몸속의 모든 수분이 머리로 몰리는 것 같은, 환각에 가까운 체험.

베이루트에서의 비현실적인 호사, 시간이 멈춘 것 같았던 오키나와 해변 도로의 평화, 공기도 얼어붙었던 날 강원도로 향하던 그 속도…. 그때마다 느낀 감정의 세부와 몸의 변화에 대해서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말할 수있을 것이다. 손에 닿았던 감촉, 오디오 볼륨을 높였을 때 장르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귀를 자극한 스피커, 차체 자체를 소리통 삼아 가슴까지 울리던 엔진 소리에 대해서도. 벤틀리와 는 앞으로 6개월 동안 그 비밀스러웠던 시간의 면면을 가감 없이 전할 예정이다. 벤틀리의 가장 은밀한 속살부터 벤틀리만이 갖고 있는 고집과 아름다움, 그로부터 파생된 모든 문화적 파장까지…. 벤틀리와 벤틀리를 둘러싼 여러 가지를 이해한 이후에, 조금 더 풍요로워질 모든 계절을 기대하면서.



DESIGN KEYS
왼쪽은 1925년에 태어난 벤틀리 최초의 자동차 3리터의 얼굴이다. 오른쪽은 8월 말 한국 출시를 앞둔 2014 벤틀리 플라잉스퍼의 얼굴이다. 이토록 짙은 핏줄이라니, 동그란 두 눈과 격자무늬 그릴은 89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져 내려왔다. 그때는 둘인데 지금은 넷이라고? 의심을 거두고 벤틀리 3리터의 얼굴을 좀 더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격자무늬 그릴도 정사각형에서 마름모꼴로 변했을 뿐이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맥락 위에, 최근의 벤틀리들도 몇 가지 디자인 언어를 공유한다. 지금 살 수 있는 모든 벤틀리의 에어컨 송풍구는 동그란 막대를 누르고 당기는 식으로 고전적이다. 인테리어는 맹금류처럼, 센터페시아를 중심으로 정확히 좌우 대칭이다. 그 안락한 실내에서, 벤틀리 로고의 크고 넓은 두 날개를 상상하면서 달리는 아침은 어떨까? 시트에 엉덩이와 등이 닿는 부분에도 격자무늬는 살아 있다. 명차의 가치는 이런 식으로, 세기를 거듭하면서 이어지는 법이다.



CRAFTMAN SHIP
벤틀리 인테리어는 모두 손으로, 장인이 만든다. 목공예 장인이 두꺼운 나무 둥치를 예리하게 저며서 그 무늬가 정확한 좌우 대칭이 되게 한다. 핸들에 가죽을 입히는 장인은 영화 <바흐 이전의 침묵> 포스터에서 악보를 그리는 방식으로, 식용 포크로 바느질의 간격을 가늠하는 장인도 있다. 그리고 손으로 꿰맨다. 모든 가죽은 울타리 없는 목장에서 자란 소의 것을 쓴다. 혹여 울타리에 소가 다쳐서 가죽이 상하는 것을 애초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스티치의 형식, 실의 색깔을 직접 고를 수도 있다. 전 세계 어디서 원하든, 영국 크루에 있는 벤틀리 공장에서 각 분야의 장인이 손으로 세공한다. 공산품이 아니라 예술품, 공장이 아니라 공방인 셈이다.

HISTORICAL MODELS


3리터(1921~1929) 최초의 벤틀리. 1919년 런던 모터쇼에 출품됐다. 거대하고 무거운 차체를 힘과 기술로 극복했다.

6.5리터(1926~1930) 3리터를 기반으로 만든 후속 모델. 고성능 버전인 스피드 식스는 1929년과 1930년 르망에서 우승했다.



4.5리터(1927~1931) 3리터의 후속. 슈퍼차저 엔진을 쓴 모델을블로워라 부른다. 1932년에 시속 223.03킬로미터를 기록했다.

8리터(1930~1932) 현재 생산되고 있는 벤틀리 뮬산의 시초.극도로 호화롭고 2년 동안 단 100대만 생산했다.

R타입 콘티넨탈(1952) 벤틀리가 폭스바겐과 손잡은 이후벤틀리의 부활을 이끈 벤틀리 컨티넨탈의 시초가 됐다.

S1콘티넨탈(1956) 벤틀리 S의 고성능 버전이자 직렬 6기통4.9리터 엔진을 쓰는 초호화 세단, R타입의 후속 모델이었다.

브룩랜드(1992~1998) 이름은 영국에 있는 서킷에서 따왔다.2008년에 다시 부활했다. 여전히 담대하고 또한 아름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