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관상보다 심상, 백윤식

2013.09.13GQ

백윤식의 얼굴엔 주름보다 감정이 더 뚜렷하다.

흰색 셔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흰색 셔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회색 스웨트 셔츠는 디스퀘어드2.

회색 스웨트 셔츠는 디스퀘어드2.

오늘 폭염 특보가 내려졌습니다. 특별히 챙겨 드시는 것이 있나요? 챙겨 먹는 것도 없고, 가리는 것도 없어요. 체력적으로 괜찮아요.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생체 나이가 10년 젊대요.

서른 살의 영화 데뷔작 <단둘이서>를 직접 볼 순 없었지만, 대신 1백여 장의 스틸 사진을 찾아봤습니다. 활짝 웃고, 입을 삐죽 내민 모습이 지금의 모습과는 다른 것 같았어요. 크게 변한 건 없어요. 어렸을 때의 모습은 여전히 있을 거예요. 오로지 배우라는 직업으로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다만 이제는 인간 백윤식과 배우 백윤식을 구분해 얘기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겠죠. 배우 백윤식에 인간 백윤식이 농축되어 있어요.

사실 <지구를 지켜라!>는 어떤 의미에선 두 번째 데뷔작이기도 합니다. 아주 오랜만에 영화에 복귀한 작품이었고, 지난 10년 동안 여러 영화에 출연한 백윤식의 시작이었죠. 혹시 기회만 와 보라며 벼르시진 않았나요? 배우 생활 하면서 연륜이 쌓이고 눈이 뜨이면 시야가 넓어지죠. 탄탄해지기도 하고. 기회만 오면 “쏜다, 쏜다!” 하고 있었어요. 드라마는 문예물 같은 작품성 있는 걸 많이 했죠. 특히 KBS에서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TV문학관>은 거의 섭렵했어요. 내가 그쪽 PD들에게 캐스팅 0순위예요. 많이 하다 보니까 장르도 배역도 폭이 넓었죠. 누가 건드려만 주면 맛있는 뭔가를 보여줄 수 있었어요. 또 배역이 오면 계발을 했죠.

단단한 세계를 지닌 감독들과 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배우 백윤식의 어떤 점을 좋아했을까요? 그건 그럴 수밖에 없어요. 내가 갖추고 있으니까. 하하하하. 이런 말 있잖아요. 삼위일체가 돼 있다. 한 가지만 지닌 게 아니다. 그래서 그런 거겠죠?

세 가지가 뭘까요? 옛날 같으면 선남선녀 스타일의 육체적인 조건도 있겠죠. 그리고 연기를 계속 창작해낼 수 있는 마인드. 또 기회도 와야 하고, 운도 따라야 하죠.

운이 좀 있는 편이신가요? 나는 그렇게 운이 있는 배우는 아니에요. 젊었을 때는 참 힘든 작품을 많이 했어요. 나를 귀여워해주시던 감독들은 만만치 않은 분들이었죠. PD도 작품성 있는 드라마를 주로 하는 분들이었어요. 그분들이 나를 특별한 눈으로 보고 내 특성을 잡아내서 엑기스를 준 거죠. 또 내가 잘 활용했고. 하하하하.

50~60대 배역 중에는 백윤식이 먼저 떠오르는 캐릭터가 있습니다. 나이를 중요하게 생각 안 해요. 근데 자꾸 그런 틀에다 넣으면 곤란해요. 할리우드 봐요. 어디 나이라는 틀을 지니고 배우 생활을 하나요? 한국은 자꾸 주민등록증 개념이란 말이에요. 사실, 화면에 나오는 효과를 바탕으로 봐야 하는데 말이죠. 그런 편견으로 손해 보는 감독들도 있어요. 예전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가 “선생님은 좋은 캐릭터를 구축해서 여러 영화를 하실 수 있을 거예요” 했어요. 그래서 싸이더스에서 만든 영화로 시작했죠. 두 작품 연속으로. <지구를 지켜라!>, <범죄의 재구성>. 그 사람이 영화 보는 안목이 있더라고요.

차승재 대표는 좋은 감독을 많이 발굴했습니다. 나도 그 양반 굉장히 좋아했어요. 내 일도 많이 도와줬죠. 책(시나리오)도 많이 보여주고. 그때는 내가 매니저도 없이 혼자 일했는데, 그 양반이 책을 많이 골라줬죠. 골라주는 대로 하면 계속 역할이 온다는 거야. 그 말이 맞더라고요. 덕분에 계속 주연 개념으로 연기했잖아요. 물론 감독들이 캐릭터를 보는 감각도 있었고요. 최동훈 감독 같은 경우는 배우 피 빨아먹는 감독이라고. 아주 촉이 있어요. 정말 잘해요. 배우하고 술 한잔 하자며 이 얘기 저 얘기하면 싹 파악해요. 그러곤 완전히 빼먹어요. 내가 가끔 술 마시고 심하게 얘기할 땐 이렇게 말해요. 흡혈귀라고.

하하. 최동훈 감독이 동의하던가요? 당연히 인정하죠. 어떤 감독이라고 밝힐 수는 없지만 저한테 그래요. 선생님은 감독한테 영감을 주는 배우라고. 내가 가끔 이런 소리도 듣는다고.

극찬인데요? 어떤 감독인가요? 누군지는 본인들이 알 거예요. 그거보다 더 좋은 칭찬이 어디 있겠어요? 더 이상의 표현은 없죠. 하하하하.

사기꾼, 타짜같이 독특한 배역을 많이 연기했지만, 일관되게 인상에 남는 건 여배우와 연기할 때의 묘한 긴장감이에요. 그래서 또 이런 얘길 하잖아요. 나보고 ‘섹시’하다고. 그것도 20대 초반 여성들이 그런 얘기를 한다니까요. 우리 회사 간부들이 그런 얘기를 듣고 와선 의외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럼 이렇게 말하죠. “딱 보면 모르냐?” 하하하하.

외람되지만 연애를 많이 해봐서 그런 건 아닐까요? 상대방의 마음을 아는 건 경험에서 시작될 텐데요. 그냥 있는 그대로 하는 거예요. 내 삶은 순리주의예요. 피해를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사는 거죠. 그게 사실 어렵죠. 가끔 “저거 손 한번 봐야겠는데?” 하다가도 인격과 도덕으로 참는 거죠.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에요. 하지만 내가 승자의 패턴을 갖더라고.

어떤 패턴이죠? 릴랙스하면서 표현을 안 하는 거죠. 나하고만 싸우는 거죠. 그게 더 중요해요.

참는 게 이기는 거다. 그렇죠. 하지만 정말 심할 때는 ‘부자자작’ 뒤틀릴 때가 있어요. 경우가 아닐 때. 그러면 진짜 혼을 내줘야 하죠. 가끔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개념이 있어야 생명을 부지하고 살아요. 은연중에 해야 돼요. 유치하지 않게.

말 그대로 싸움의 기술이네요. 그런 기술은 하루아침에 얻을 수 있는 게 아니고 나처럼 마음공부를 해서 도를 닦아야 되는 거지. 하하하하.

혹시 종교가 있으세요? 기독교예요. 워낙 생활이 불규칙하니까 주말에 나가기가 힘들어요.

이번에 찍은 영화 <관상> 시작 전에 관상을 보시진 않았나요? 하하. 그런 거 안 해요.

여쭤본 이유는 귀털 때문입니다. 장수를 상징한대요. 아, 요거. 어떤 감독은 깜짝 놀라요. 귀까지 분장하고 왔냐고. 한 번 깎았다가 요즘엔 그냥 둬요. 사람들이 이 귀털을 좋아해요. 젊어서부터 여배우들이 신기해하고 그랬죠.

젊으셨을 때 연극에 좀 출연하셨을까요? 연극영화과를 나오셨지만 연극에 출연하신 기록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내가 연극으로 시작한 사람이에요. 동인제 해서 조그만 극단도 갖고 있었고 학창 시절에도 열심히 했죠. 그동안 기회는 계속 왔는데 해보니까 피가 마르더라고. 하게 되면 TV나 영화하고 같이 출연해야 하는데, 지방 공연이라도 가면 시간 맞추기가 너무 힘들어요. 무대 연기를 안 좋아하는 배우가 어디 있겠어요? 연극을 안 해본 배우들은 잘 모르겠지만, 직접 관객들과 감정을 교류해보면 잊을 수 없어요. 최근에는 뮤지컬에서도 요청이 오는데, 내가 더블 캐스팅을 싫어해요. 내가 여러 활동을 하면서 해야 하니까 그쪽에서는 두 명이나 세 명을 캐스팅하는 거죠. 별로 달갑지가 않아요.

배우 생활을 하면서 어떤 한계를 느껴본 적이 있으신가요? ‘여기까지구나’ 하는 건 못 느끼면서 살아요. 삶의 패턴을 긍정적으로 봐요. 한계가 정해져 있고, 그 안에서 노력해야 하는 것도 일리는 있는 말이지만, 그렇게 살면 안 좋을 것 같아요. 언제나 사람의 힘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하는 게 좋죠. 마음먹는다는 게 무서운 거예요. 정신력, 이게 굉장히 무서워요. 열심히 하면 되더라고요. 기회가 몇 번 왔다 갔다 하는데, 그 기회를 먹느냐 못 먹느냐의 차이가 크죠. 물론 다 먹을 순 없죠.

아직 못 먹은 것 중 가장 탐나는 건 해외 영화제 남우주연상일까요?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혹시 그럴 만한 영화를 준비하고 계신가요? 그냥 해본 소리죠. 하하하. 그래야 또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햇살이 쫙 내려오지. 아! 남우주연상 수상이라, 그거 죽이지. 아주 좋지.

사진 찍으러 갈까요? 아, 오늘 묘한데.

남색 줄무늬 수트는 오라지오 루치아노 BY 란스미어.

남색 줄무늬 수트는 오라지오 루치아노 BY 란스미어.

    에디터
    양승철
    포토그래퍼
    장윤정
    스탭
    스타일리스트 / 윤은영, 헤어 / 이순철, 메이크업 / 이은선, 어시스턴트 / 정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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