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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모터사이클 시장의 몰락

2013.09.13GQ

국산 모터싸이클 시장은 변화를 두려워 하다가 스스로 몰락하는 자충수를 두었다.

지난 6월 혼다코리아가 슈퍼 커브를 국내에 출시했다. 비즈니스 모터사이클로 홍보했지만, 우리에겐 너무 낯익은 존재다. 배달용 모터사이클의 원조기 때문이다. 국내에 소개된 슈퍼 커브는 혼다의 태국 공장에서 만든다. 가격은 2백19만 원. 동급 국내 브랜드 제품과 별 차이가 없다. 대림자동차의 CT에이스 이코노믹 2가 1백90만 원, S&T 모터스의 에스코트 110이 1백79만 원이다. 골목상권 주름잡던 소위 ‘생활밀착형’ 모터사이클 시장마저 수입차에 빼앗길 전주곡일지 모른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 이륜차가 소개된 건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1962년부터였다. 기아산업이 차체 일부를 제외한 부품을 일본 혼다에서 수입해 1975년 6월까지 9만3천 대를 생산했다. 1975년 7월 기아기연이 별도 법인으로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생산이 늘었고 1979년까지 독점공급하면서 연간생산 10만 대를 넘었다. 같은 해 한국GM이 이탈리아에서 엔진을 수입해 페달 달린 모터사이클 ‘모페드’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엔 대림과 효성도 뛰어들었다. 별안간 5개 업체가 생겼지만 장사가 안 돼 자연적으로 도태됐고, 산업합리화 조치로 대림과 기아가 합쳐지면서 1981년엔 3개 업체로 줄었다.

국내 모터사이클 생산대수는 1975년 1만1천165대를 시작으로 1983년 17만1천91대까지 늘었다. 부품 국산화율은 1983년 당시 생산되던 6개 차종 평균 83.7퍼센트에 달했다. 하지만 100퍼센트 스스로 개발하고 설계한 독자 모델은 없었다. 베스파나 리드 등 오늘날까지 명맥을 잇고 있는 해외 브랜드의 모델을 주로 생산했다.

1983년 기준, 국내 모터사이클 보유대수는 52만8천여 대였다. 인구 1천 명 당 13대였다. 일본은 보유대수 1천640만 대, 1천 명 당 1백38대로 우리를 까마득히 앞섰다. 그즈음 인구 1천850만 명이었던 대만도 각각 5백50만 대, 2백97대로 우리보다 훨씬 큰 시장이었다. 30년이 지났다. 자동차 산업은 눈부시게 성장했지만 모터사이클 업체의 존재감은 자동차에 훨씬 못 미친다. 제조사도 대림자동차공업과 S&T 모터스 둘뿐이다. 대림자동차공업(대림모터스)은 1978년 설립됐다. 초기엔 혼다와 기술 제휴했다. 2004년 결별 후 홀로서기에 나섰다. S&T 모터스의 전신은 1978년 설립된 효성기계공업이다. 스즈키와 기술제휴하고 효성스즈키란 이름으로 생산해 왔다. 1997년 부도가 났고 2003년 효성 그룹에서 분리되었다. 2007년 3월 S&T 그룹에 편입됐다.

현재 국내 모터사이클 시장은 8만7천 대 규모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인 2008년의 14만5천 대보다 40퍼센트나 줄어들었다. 1990년대 중반의 30만 대 시절과 비교하면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 1990년대 중반, 대만은 이미 1백만 대 규모로 우리의 3배 이상이었다. 한국이륜차산업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가장 많은 모터사이클을 판 업체는 대림이었다. 5만2천3백82대로 이 협회 회원사(대림, S&T, 두카티, BMW, 할리데이비슨, 킴코, 스즈키, 혼다 등 총 8개사) 전체 판매 중 57.17퍼센트를 차지했다. 2위는 2만5천4백97대로 27.83퍼센트를 차지한 S&T 모터스였다. 통계만 보면 두국내 브랜드가 전체의 85퍼센트를 점유했다. 올해 수입차 점유율 14~15퍼센트를 바라보는 국내 자동차 시장과 비슷한 구성인 셈이다. 그런데 이 자료엔 맹점이 있다. 한국이륜차산업협회 회원사 이외의 판매는 집계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모터사이클 시장의 다크호스는 중국과 대만산 제품이다. 중저가 시장을 휩쓸고 있다.

수입 모터사이클의 점유율은 나날이 치솟고 있다. 2009년 6.8퍼센트에서 지난해엔 20.3퍼센트까지 올라갔다. 특히 지난해 수입 모터사이클 판매는 전년 대비 83.1퍼센트나 증가했다. 성장을 이끄는 기종은 배기량 125㏄ 이상의 모터사이클이다. 반면 125㏄ 이하의 ‘생활밀착형’ 모터사이클 시장은 잔뜩 위축돼 있다. 바로 그 지점에, 아직은 막강한 점유율을 뽐내는 국내 모터사이클 업체가 자리한다. 지난해 대림과 S&T의 판매 대부분은 스쿠터와 100㏄급 생활밀착형 모터사이클이었다. 대림의 경우 두 꼬마 바이크의 비중이 전체 판매의 89퍼센트에 달했다. 125㏄ 이하 모터사이클 시장의 위축이 곧장 국내 모터사이클 업체의 고전으로 이어지는 이유다.

게다가 125㏄ 이하 모터사이클 시장마저 수입차 브랜드에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혼다코리아 모터사이클의 경우 2009년 1천9백20대였던 판매가 지난해엔 6천1백77대로 급격히 늘었다. 일등공신은 스쿠터인 PCX였다. 그 와중에 혼다 슈퍼 커브까지 진출했다. 슈퍼 커브는 출시 한 달 만에 1차 수입분 3천 대가 다 팔렸다. 설상가상으로, 중국산은 아직 제대로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 실정이다. 중국산 모터사이클은 이미 주머니 가벼운 학생들의 첫 모터사이클은 물론 군용 ATV 시장에까지 진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품성도 수긍할 만하다. 업계관계자는 “중국 일부 업체의 소형 모터사이클은 성능과 품질 모두 국산과 별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고가의 수입 모터사이클 판매 또한 늘고 있다.BMW 모토라드는 지난해 1천1백7대를 팔았다. 500㏄ 이상 대형 바이크 시장의 30퍼센트 이상이었다. 할리데이비슨도 지난해 국내에서 1천72대를 팔았다. 두카티는 지난해 2백 대를 팔았다. 올해는 3백 대를 내다본다.

국내 업체의 현실은 암울하다. 고가의 대배기량 모터사이클은 ‘그림의 떡’ 혹은 ‘그들만의 리그’고, 생활밀착형 제품은 일본과 대만, 중국에 치인다. 각 업체는 무이자할부 등 금융사와 연계한 다양한 구매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가 고를 모터사이클은 너무나 다양해졌다. 눈높이도 성큼 올라갔다. 애국심에 호소하기도 어렵다. 지금도 모터사이클에 별 관심 없는 소비자는 국내 업체를 대림혼다, 효성스즈키로 기억한다. 기술제휴까지만 알고, 이후 국산화를 위한 노력은 잘 모른다. 실제로 독자 기술과 차종 개발 역시 더뎠다. 하물며 해외 브랜드와 뚜렷이 차별화될 장점과 개성은 더더욱 찾기 어렵다. 총체적 난국이다.

“국내 모터사이클 업체들은 현실에 안주했어요. 노력하지 않아도 잘 팔리는 소형 모터사이클에 집착했죠. 신제품 개발은 더뎠어요. 기존 부품 재활용할 궁리에 바빴죠. 지금의 위기를 스스로 자초했다고도 볼 수 있어요.” 온라인 모터사이클 미디어 <바이커즈 랩>의 박지훈 기자의 말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현재 상태로는 획기적 반전을 꿈꾸기 어렵다. 현실이 답답하니 상상만 늘어난다. 가령 현대기아차가 국내 모터사이클 업체 가운데 하나를 인수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기적’으로 보인다. 아우디가 두카티를 인수했던 것처럼. 하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국내 업체에겐 누구나 욕심낼 ‘무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물로서의 매력도 떨어진다. 흘려보낸 30년이 안타까울 뿐이다.

    에디터
    컨트리뷰팅 에디터/ 김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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