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뭐예요? <2>

트렌드는 한쪽에서 불어와 한쪽으로 흘러가는 게 아니다. 어디서 어떻게 생겨나 어디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른다.
<GQ>가 정색하고 물었다. 지금 당신이 가장 주목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왜 그런가? 각 분야에서 첨예하게 촉을 세우고 있는 33인이 3명씩 말했다. 그랬더니 99개의 이름을 쓸 수 있었다.

34 김수현
그의 이름을 꼽은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 그는 연기를 잘하는 배우다. 20대 초반에 그런 배우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두 번째, 그는 관객을 동원한다. 그냥 동원하는 게 아니라, 확신이 들 정도로 많이. 지금 영화계에서 그런 확신을 주는 배우는 드물다. 김수현은 희소하다. 심재명(‘명필름’ 대표)

35 양효진
배구 센터는 키만 크면 단가? 양효진에게 이 말은 통하지 않는다. 그는 빠르고 창의적이다. 그의 등장으로 소속팀은 달라졌고, 한국 여자 배구가 달라졌다. 게다가 시시각각 변하는 그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진심으로 배구를 즐기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선수가 재미있으면 관객도 재미있다. 양효진 덕에 여자 배구를 보고 또 본다. 김대승(영화감독)

36 한병철
모두가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모두가 힘을 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도덕적이고 선의이고 건강한 삶이라고 말한다. 한병철이 쓴 <피로사회>는 거꾸로 묻는다. “성과주의는 우리를 어떻게 망쳤나?” 성과만을 워하는 사회에서 무위와 심심함의 가치를 덧붙인다. 피로한 사회는 없다. 피로하게 만드는 개인만이 있다는 사실을 그가 쓴 책을 통해 알았다. 한지승(영화감독)

37 손열음
이 젊은 음악가는 아마도 음악의 ‘플롯’을 찾아내는 일이 즐거운가 보다. 음악이 숨죽이는 순간 얄팍한 내 귀와 급한 성격은 오디오를 만지작거렸지만 끝내 볼륨을 올리지 못했다. ‘드라마틱’하거나 폭발적이거나 혹은 장난스러운 이야기. 듣고 있으면 그가 들려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조금만 참으면 어김없이 그의 피아노는 장편 영화 같은 감동을 선물한다. 김대승(영화감독)

38 정은채
누구든 그녀의 얼굴을 보면 예쁘다는 말로 모자란다고들 한다. 누구는 젊은 시절 이영애를 떠올리게 하는 얼굴이라고도 한다. 한 번도 촬영해본 적 없지만 이렇게도 궁금하게 만드는 얼굴이라면…. 장보미(<마리끌레르> 패션 에디터)

39 김건
게임 ‘다함께 퐁퐁퐁’을 만든 씨드나인게임즈의 대표다. 엄청난 성공을 했다. 이 게임은 두 달 동안 놀면서 만들었다. 이 게임 직전엔 ‘마계촌’을 내놓았다. 6년 동안 투자 받아 열심히 만들었지만 반응은 별로였다. 그는 요즘 열심히 하는 것이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음 게임은 재미있을까? 괜히 기대된다. 한지승(영화감독)

40 디구루(IDIOTAPE)
지금의 일렉트로닉 음악 붐은 거품이다. 누군가 거품을 묻히며 파티를 즐길 때 누군가는 거품이 걷힌 후를 걱정한다. 디구루를 축으로 결성된 볼트에이지는 거품 이후를 향한 고민이다. 윤민훈(영기획 대표)

41 김준호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적 있다. 배우 송강호가 연기력을 질투하는 개그맨이 바로 김준호라고. <개그콘서트>의 창단 멤버로서 이제 심현섭과 박준형을 잇는 최고참으로 성장한 김준호는 뭘 맡겨도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메소드 연기의 달인이다. 헤드 스핀을 구사하는 ‘봉숭아학당’의 이장님이나 그 무엇으로도 변신하는 ‘집으로’의 할머니, ‘같기도’와 ‘꺾기도’를 아우르는 황당무계한 사부, 그리고 프로야구장의 섹시 시구를 포기하지 않는 ‘뿜 엔터테인먼트’의 퇴물 여배우까지 그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당대 최고의 엔터테이너다. 주성철(<씨네21>기자)

42 기형도
그의 시를 몰랐던 건 아니다. 하지만 ‘빈집’을 얼마 전에 다시 읽었을 때 다르게 읽혔다. 기형도는 힘든 사랑을 했구나, 나도 그랬구나, 그런 생각을 새삼스럽게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여름이었으니까, 아마도 모두에게 그런 계절이 아니었을까? 가을에 읽을 ‘빈집’은 또 어떨는지, 막연한 기대도 하면서.박세준(스타일리스트)

43 나성범
9개의 홈런과 2할 6푼대의 타율만 보면 그냥 그런 선수라고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신생팀의 신인 선수라면 얘기가 좀 다르다. 게다가 그는 작년부터 타자로 전향했다. 우리는 1군이라는 큰 벽 앞에 움츠리고 기죽어 무너지는 기대주들을 많이 봐왔다. 하지만 나성범은 원래부터 1군의 주전인 것같이 타석에 들어선다. 그는 겸손을 명찰처럼 달고 살아야 했던 예전 세대의 선수들과 다르다. 나성범을 통해 다음 야구세대의 등장을 짐작한다. 김대승(영화감독)

44 소문정
댄스 스포츠를 전공하는 다부진 군산 소녀. 그녀가 시커멓게 칠한 눈두덩을 내리깔고 음악이 시작되길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서, 흥분을 넘어 어떤 경건함을 느꼈다. 그리고 마침내 시작된 춤은 형용사를 찾을 새도 없이 밀어붙이는 형편이었다. 춤이 원래 저런 거였나? 이제 열여덟 살, <댄싱 9>에서 원하는 우승자는 점차 윤곽을 드러내겠지만, 지금 가장 눈에 띄는 한 명을 고르라면 바로 소문정이다. 찰랑찰랑 드레스 장식이 흔들리는 동안 순간순간 포즈와 표정과 감정이 지나간다. 그저 빠져들 뿐, 아무 생각도 나질 않는다. 장우철( 피처 디렉터)

45 봉준호
<설국열차>에 대한 평가는 제쳐두고, 그의 영화가 성공했다는 점을 주목해야한다. 한국 자본과 할리우드 시스템으로 영화를 만들어 상업적인 성공에 이른 첫 영화이기 때문이다. 또다시 그의 이름과 성공이란 단어 사이에 부등호가 놓였다. 이제 다른 어떤 이름과 할리우드가 함께 놓일지 기대해야 할 차례다. 심재명(‘명필름’ 대표)

46 임성한
한국에서 산다는 것, 한국에서 쌍쌍이 눈이 맞는다는 것, 한국인의 밥상, 한국인 노래방에서 무얼 불러야 하나, 1분이면 돼요 건강상식…. 아 대한민국! 아 임성한! 김신형 (상상마당 영화 프로그래머)

47 손흥민
레버쿠젠으로의 이적 후, 첫 시즌, 첫 게임 데뷔 골을 보는 순간, 비교적 평범해 보이는 골이었음에도 그의 잠재력이 터졌다는 걸 직감했다. 두근거렸기 때문이다. 유희경(시인)

48 정찬민
<개그콘서트> 700회 때 ‘황해’라는 코너를 함께 한 적이 있다. 일단 웃기는데다가 감이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개인적인 인연도 있었다. 개그맨이 되기 전에 내가 했던 강연을 들으러 왔는데, 거기서 무턱대고 “개그맨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질문을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그 상황이 생각날 듯했다. 당시 내 대답은 “시험 보세요”였다고. 그 말을 듣는데 좀 멋쩍고 웃기면서도 왠지 이 친구가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 부쩍 들었다. 내 마음이 그렇거나 말거나 자기가 알아서 잘 뜨고 있는 것 같다. 김영철(코미디언)

49 에이셉 라키
개인적으로는 카니에 웨스트 다음으로 ‘지금’에 가장 가까운 아이, 이 시대 젊은이라고 생각한다. 패션,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모든 사람이 88년생 에이셉 라키를 보고 흉내 낸다. 얼굴은 못생겼는데, 패션 센스만은 세계 최고인 것 같다. 자기 스타일이 없어 보일 수도 있는데 찬찬히 뜯어보면 나름의 스타일이 있다. 귀엽고 과감하다. 절제할 줄도 안다. 음악보다는 이런 점이 먼저 눈에 띈다는게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일까. 김봉법(스타일리스트)

50 닉 펜섬
타블로이드 형태의 <스니즈 매거진>에는 코스KAWS나 넥페이스 같은 아티스트, 에이샙 라키, 케이트 업톤, 전설적인 스케이터와 스트리트 브랜드가 공존한다. 이 잡지를 혼자 만드는 닉 펜섬은 언제나 스트리트 문화와 독립적인 감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가장 진보적인 사진과 잡지 구성을 전파하고 있다. 박민준(디제이 소울스케이프)

51 조르조 모로더
“대프트 펑크의 이번 앨범 중 당신이 첫 번째로 손꼽는 트랙은?”이라고 물었을 때 ‘조르조 바이 모로더’라고 대답해주면 좋겠다. 수많은 영화음악을 작곡하면서 디스코의 황금기를 다진 이 할아버지는 그 등장과 참여 만으로 누군가의 트랙명이 될 만큼 커다란 존재다. 문신애(<온 스타일> 프로듀서)

52 이종석
그의 얼굴에서 ‘판타지적인’ 자극을 받다니, 자체적으로 ‘누나’ 인증을 하는 셈인가. 몇 년 전 유행했던 말 ‘너는 펫’의 최신 버전이랄까? 모든 걸 떠나 여자들의 압도적인 지지율만으로도 2013년을 기념하는 가장 트렌디한 인물이 아닐까 한다. 김은신(문화공간 ‘무대륙’ 대표)

53 박혜련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박혜련 작가는 작은 사건들의 매듭을 지으며 중심 줄기로 이어가는 솜씨가 발군이다. 16부 이상의 긴 호흡을 끌어가다 종종 느슨해지는 한국 미니시리즈의 대안이 될 수 있을 테다. 유선주(TV 비평가)

54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를 읽으며, 명색이 언론에 몸담고 있는 나는 지금까지 대체 뭘 읽고 썼는지 부끄러워졌다. 문장의 밀도, 사유의 깊이를 따져볼 때 그는 단연 최고의 필자다. 백승찬(<경향신문> 기자)

55 이적
저작권료만으로도 설렁설렁 잘 먹고 잘살 줄 알았는데, 갑자기 이상민 흉내를 내더니 결국 존박만 훌쩍 띄워준 ‘바보’ 선배. 이적은, 오타쿠 예능(<무한도전>)의 못난이, 선정적인 케이블(<방송의 적>)의 속물, 그리고 주말 공중파(<일밤-아빠! 어디가?>)의 착한 목소리가 모두 가능한, 기이한 ‘슈퍼’ 뮤지션이다. 뮤지션? 물론이다. 누구나 좋다고들 말하는 무수한 노래에, 이따금 오디션 참가자들이 숨겨진 노래를 발굴해주기까지. 더구나 새 음반이 나오는 9월이 되면 어느새 후배들이 우러러 보는 아티스트로 이름값을 높일 것이다. 아무튼 ‘서울대 나온 또라이’를 싫어하는 사람? 글쎄, 한반도에 그런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나지언(<데이즈드> 피처 디렉터)

56 존박
<슈퍼스타K> 출신 중 유일하게 존 박만 살아남을 거라 호언장담했던 적이 있다. 오히려 허허실실 그가 음악으로는 허각, 예능으로는 서인국을 능가하며 적자생존 연예 생태계의 마지막 승자가 되리라고. 물론 그 혼자 살아남은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실현된 것 같다. 가수로서의 재능은 물론, <방송의 적>에서 두 눈 동그랗게 뜨고 보여주는 얼빵한 섹시함은 이미 주인공 이적을 압도하고 있다. 최근 ‘냉면성애자’로서 새로운 면모를 과시하고 있지만, 이적이 ‘긱스’ 시절 노래했던 것처럼 대중은 ‘냉면보다 더~’ 그에게 빠져들고 있다. 주성철(<씨네21>기자)

57 디오
장안의 화제인 엑소의 ‘으르렁’ 뮤직비디오를 보는데 대번 이런 말이 생각났다. “아이돌은 영원하구나!” 열두 명이나 되는 멤버 중 한 명이 맨 처음 눈에 들어왔다. 이름도 모르면서 또한 이런 말이 생각났다. “쟤가 바로 아이돌이구나!” 이름이 디오라고 했다. 어깨는 좁고, 키는 귀엽고, 눈동자는 또르르 굴러다닌다. 그리고 우렁차게 노래한다. 새로운 판이 시작될 조짐이랄까? 그야말로 새로울 뿐 전혀 지겹지 않다. 아이돌은 지겹고 말고 하는 아이템이 아니다. 그건 그냥 영원한 거다. 장우철( 피처 디렉터)

58 피터 브로데릭
미국 출생,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87년생 뮤지션. ‘천재’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유일한 음악가. ‘음’을 인식하는 천성적인 감이 다른 음악가들과 확연히 다르다. 이로(책방 유어마인드)

59 고아성
고아성의 무구한 눈빛을 대한 순간, 설빙을 떠올렸다. 봉준호의 선택도, 송강호와 틸다 스윈튼의 칭찬도 이해됐다. 더는 그녀의 팬이 아닐 수 없게 되었다. 유희경(시인)

60 양영희
한국, 북한, 일본의 이념 사이에서 내몰린 자신의 가족사를 다큐멘터리, 극영화, 에세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세상에 선보이고 있다. <디어 평양><굿바이 평양><가족의 나라>의 관람을 추천한다. 김신형 (상상마당 영화 프로그래머)

61 스티븐 밀하우저
최근에 스티븐 밀하우저의 책을 읽고, 살면서 그다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꼈다. 그저 신비로운 경험으로서 ‘경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다. 특히, <황홀한 밤>의 74장에 등장하는 그 밤들은…. 밤을 참 좋아하는데, 이 책 속의 밤을 경험하고 나서는 밤이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도 떨렸다. 밀하우저가 전하는 밤은 보존되어 마땅한 ‘장소’다. 이승연(사진가)

62 원덕현
원덕현은 블랭코브의 디자이너다. 그는 상품을 만들어놓고 이야기를 붙이는 게 아니라, 확고한 문화적, 시대적 소재를 바탕으로 상품을 디자인한다. 기능적인 부분도 확실하게 챙긴다. 만약 독일에서 엑스포가 열리고 그래서 포스터를 만든다면, 그의 디자인과 비슷하지 않을까? 크라프트베르크의 초기작 음반 커버를 떠올려도 좋다. 모양은 ‘미니멀’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실용적으로 상징화시키는 기술이 탁월하다. 2013 F/W의 콘셉트는 ‘모던 타임즈’다. 블랭코브의 가방을 들면 옛날에 좋아하던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그래서 이번 컬렉션을 더 기다린다. 무드슐라(뮤지션)

63 에디슨 첸
지난달 상하이에서 열린 스트리트 패션 박람회 ‘Yo Hood’는 한 사람이 얼마나 큰 시장의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니고의 휴먼메이드부터 뉴욕의 후드바이에어 파리의 클럽75까지 지금 전 세계의 스트리트 패션 마켓과 그 기획자, 디자이너들은 직간접적으로 에디슨 첸과 협업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박민준(디제이 소울스케이프)

64 이보영
이보영의 연기가 이렇게 세심한지 몰랐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보면, 단순한 대사 하나를 소화할 때도 상황에 따라 호흡과 표정이 변하는 게 보인다. 꽤 복잡하고 사연 많은 캐릭터를 맡고 있는데, 거기 담긴 성향을 전부 놓치지 않고 잘 이해해서 장면에 맞게 풀어낸다. 오랜만에 연기를 통해 사람을 들여다보는 경험을 했다. 30대 여자 배우가 굳이 어려 보이려 애쓰지 않고 멋지게 나이 들고 있는 인상도 받았다. 연기도, 성장하는 방식도 자연스럽다. 최서연(Verythings 기획자)

65 황교익(맛 칼럼니스트)
매일 생기고 사라지는 맛집을 사냥꾼처럼 돌아다니는 맛집 블로그는 많다. 하지만 맛의 근원을 탐구하는 맛 칼럼니스트는 그가 유일하다. 우리가 맛의 기준을 논할 수 있는 건 모두 그 덕분이다. 윤민훈(영기획 대표)

66 404
꽤 큰 공연장에서 404의 라이브를 볼 기회가 있었다. 남자 두 명이서 달랑 기타와 드럼만 갖고 그 공간을 꽉 메워버렸다. 데뷔 음반 커버를 보면 음파 같은 모양의 뭔가가 그려져 있는데, 그게 피부에 콱 와 닿는 느낌. 압도당했다. 멤버들의‘비주얼’도 꽤 독특하고 근사하다. 새 미니 앨범 도 나왔으니, 이제 공연을 좀 더 자주 했으면. 최서연(Verythings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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