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돔 보고서

동양인의 머리카락 두께는 보통 0.05~0.15밀리미터 범위 내에 있다. 인간 세포의 평균적인 지름은 0.03밀리미터다. 들여다보기 위해선 현미경을 써야 한다. 그보다 얇은 0.02밀리미터라면 도무지 감을 잡기 어려운 숫자지만, 콘돔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요즘 웬만한 편의점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콘돔에는 ‘0.03’이란 숫자가 크게 쓰여 있다. 제품명이 곧 콘돔의 두께다.

잘 팔리는 콘돔은 얇다. 지금은 ‘0.02’까지 나와 있고, 편의점이나 약국보다 한발 빠른 콘돔 전문 쇼핑몰에선 그게 가장 인기다. 0.03가 0.02가 되는 데는 무려 29년이 걸렸다. 콘돔의 주원료인 천연 라텍스로는 0.03이 한계라고 알려져 있다. 0.02밀리미터 콘돔은 폴리우레탄으로 만든다. “완전히 신세계라고 할 수 있어요. 치아에 물리적 성질이 제일 비슷한 금을 씌우는 것처럼, 피부와 이질감이 가장 덜한 소재죠.” 콘돔 전문 쇼핑몰 콘도미스트의 최하영 대표가 말했다. 폴리우레탄은 라텍스보다 튼튼하다. 간혹 피부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는 단점도 보완했다. 무엇보다 열전도가 뛰어나 체온이 가감 없이 전달된다. 그리고 투명하다. 둘둘 풀어놓고 바람을 넣어보면 비눗방울을 길게 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단, 신축성이 떨어진다. 페니스 크기에 따라 쭉쭉 늘어나고 줄어들지 않다 보니 발기가 지속되지 않을 경우 낭패를 볼 가능성이 있다.

콘돔을 소비하는 방식은 한때의 전자제품 소비 행태와 꽤 비슷해 보인다. 최신형 텔레비전, 워크맨을 구입하는 데 경제력 과시의 측면이 있다면, 0.02밀리미터 초박형 콘돔을 사용해봤다는 것은 경험적 측면에서 다른 남자에게 우세를 점할 수 있는 요소로 사용된다. 섹스의 후일담은 집에서 들고 나올 수 없는 전자제품보다 훨씬 자랑하기도 좋다. ‘일제’를 선호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일본의 몇몇 브랜드에서 나온 전자제품이 제품의 등급이나 특성과 상관없이 브랜드 자체로 일단 좋다고 여겼던 것과 비슷하달까? “국산은 윤활성분이 미흡한 경우가 있어요. 일본 제품은 야한 동영상 같은 데서 제품을 보고 특정 브랜드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고요.” 13년 역사의 콘돔 쇼핑몰 조이 앤 조이 오봉근 부장의 분석이다.

두께 싸움이 고도의 기술력과 자본이 필요한, 성공만 하면 전세를 완전히 역전시킬 수 있는 판이라면 아이디어의 영역도 존재한다. 0.02밀리미터 콘돔이 나오기 전, 큰 반향을 일으킨 ‘스킨레스’란 제품이 좋은 예다. 이 콘돔엔 ‘정액받이’가 없다. 콘돔 앞부분이 뾰족하게 뜨지 않고, 귀두에 착 달라붙는다. 페니스의 끝부분이 실제 섹스를 할 때 얼마만큼이나 성감을 좌우하는지는 측정이 어렵지만, 일단은 시각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가끔 삽입 전에 페니스에 씌운 분홍, 연노랑색의 두꺼운 콘돔, 거기에 뾰족 튀어나온 부분이 유독 우스워 보일 때가 있으니까….

사정 지연 콘돔은 사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남자들에게 구세주가 될 수 있다. 콘돔 끝부분에 벤조카인이란 성분이 들어 있는데, 페니스를 마비시켜 사정을 지연시켜준다. 대신 성분의 양이 생각보다 많아 페니스가 촉각을 잃어 사정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치과에서 마취가 덜 풀린 기분 같기도 하다. 국산 콘돔이 선전하고 있는 틈새시장으로, 대표적인 콘돔은 ‘롱러브’. 취지에 잘 맞는 이름이다.

한편 0.03, 0.02이라는 숫자나 콘돔을 응용한 기발한 발상이라면 눈이 번쩍 뜨이지만, 보편적인 사이즈에 대한 얘기는 어쩐지 낯설다. 길이와 폭은 콘돔을 선택하는 데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조건인데도 그렇다. 콘돔 규격은 국제표준화기구(ISO)에 의해 소형, 중형, 대형으로 나뉘는데 한국에선 주로 중형이 팔린다. 폭은 각각 약 3밀리미터씩 차이 난다. 한국 라텍스는 남미, 중동을 비롯한
전 세계에 적극적으로 콘돔을 수출하는 국내 기업이다. 전온무 상무이사에게 생산지, 판매지 별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물었다. 막연히 낯선 브랜드의 콘돔을 쓰길 망설이는 데는 사이즈에 대한 불안감도 큰 이유를 차지할 테니까. 헐거워서 섹스하다 빠지면 어쩌지? 길이가 너무 많이 남으면 민망할 텐데, 같은 고민. “대형 콘돔을 원하는 시장이 있긴 한데, 일반적으로 거의 중형이 나가요. 남미? 중동? 마찬가지예요.” 묘한 자신감이 생긴다면, 생소한 콘돔에 도전할 만하다. “한 영국 브랜드의 콘돔은 같은 라텍스라 해도 재질이 상당히 부드러워요. 편한 콘돔을 찾는 사람들이 좋아해요.” 최하영 대표가 거들었다. 의외라면 의외인 사실이다.

다시 두께에 관한 이야기. 휴대전화는 점점 작아지다 스마트폰이 나온 이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콘돔은 꾸준히 얇아지는 추세다. 설마 소수점이 한 자리 더 늘어날 때까지도 가능한 걸까? “형태가 혁신적으로 바뀌는 건 어려워요. 콘돔은 의료용품이라 기준이 굉장히 까다롭거든요. 오히려 윤활유 같은 부분이 관건이 될 수 있어요. 실제로 ‘쿨’한 젤, ‘핫’한 젤을 비롯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 중일 겁니다.” 전온무 상무이사의 예측이다. 얇은 콘돔을 선호하는 것은 취향과 상관없는 절대 명제에 가깝다. ‘쿨’하고 ‘핫’한 것이라면 섬세한 취향의 영역으로 구분될 수 있을까? 그것이 페니스에 관련된 일방적, 기술적 진보가 아니라, 남녀 공히 해당하는 얘기라면 좀 더 흥미롭지 않을까? “여성 분들은 아무래도 젤 함유량이 많은 콘돔을 선호해요. 여성 고객이 한 40퍼센트?” “30~40퍼센트 정도. 점점 느는 추세예요.” 두 쇼핑몰 종사자의 증언은 이렇다. 일단은 ‘핫’한 쪽이 좀 더 유리하게 들리지만, 콘돔은 직접 껴보기 전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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