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망의 도시, 서울

요즘 서울 사람은 보다 평행적이고도 실제보다 세 배쯤 나아 보이는 세상을 접한다. 전혀 다른 세상으로의 접속이랄까. 코스모폴리탄의 희미한 기류랄까. 무엇이 훌륭한 도시를 만드는가는 정치 경제적 안건이기도 하다. 그런데 다른 시의 발달 단계를 정치하게 연구한 것 같지도 않은데, 어떤 가능성이 지금 서울을 가장 자극적인 도시로 만든 걸까?

누구는 암스테르담에 가면 예쁜 레이스가 달린 커튼과 창밖의 화분, 삶을 아름답게 운반하는 사람들을 만날 거라고 말했다. 그것만으로 마음을 춥게 만드는 날들에서 벗어나 잠시 몽환적일 수 있을 거라고. 그러나 거기 가보고 나서, 나는 왜 숱한 문학이 암스테르담의 세기말적 소란과 음울함에 관해 진술했는지 알았다. 심지어 내가 느낀 건 지루함이었다. 라스베이거스, 디즈니 월드, 두바이처럼 지구에서 가장 유난스럽게 만들어진 곳이나, 뉴욕처럼 무無에서 지은 젊은 제국이자 모두가 주시하는 도시에서도 이상한 지루함은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서울에서 느끼는 건, 다른 도시에선 통 맛보지 못한 여러 층위의 문화를 다루는 능력,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함이다.

서울은 생태학적이거나 독창적인 도시가 아니다. 미래를 향해 돌진하는 도시도 아니다. 성공적인 도시의 선순환도 문화 중심지로서의 탁월함도 없다. 하이 스트리트는 브랜드의 크기가 성공을 좌우하는 다른 복제 도시와 양태가 아주 비슷하다. 여기가 뭐 하는 덴지, 누굴 위한 건지 갸웃거려지는 장소도 숱하다. 얼핏 노상 카페 문화가 보이고 공연장도 흔해졌으나, 경제적 흥망의 회전에 따라 가차없이 반응해온 거리엔 교활하고도 침울한 공기가 감돌고, 애써 부여잡으려는 노스탤지어는 남루하기만 하다. 연중 확장 중인 도심의 백화점은 아시아 여행객들로 북적이지만, 디자이너의 비전이나 예리한 룩을 발명하려는 태도 없이 글로벌·내셔널 브랜드로 난잡한 매장을 보면 여기가 중동인지 뭔지 온통 헷갈린다. 이게, 서울의 지표가 진짜 글로벌해지는 방증일까, 아님 우아함을 갖고 싶은 싼티의 몸부림일까. 그런데 왜 불경기라면서 세계 유수의 편집숍이며 럭셔리 시계 제조사, 화장품이며 리빙 브랜드, 국제적 호텔 체인과 레스토랑까지 속속 서울을 기웃거리는 걸까. 왜 외국 본사들은 서울 마켓의 성공 사례를 섭렵하는 걸까.

세계에서 가장 개명한 도시로서의 서울에선 막 도래한 문화가 고착될 틈이 없다. 재유입된 자본이 또 다른 경향을 만들면, 바로 쌓인 경험을 통해 연이어 더 큰 자본이 움직인다. 그러니까 서울은 다양한 영향력이 섞였을 때의 감흥이 각별한 도시인 동시에, 다른 층으로부터 하나의 층을 벗겨내려는 시도로 충일한 도시인 것이다. 유행을 당장 받아들이고 금방 자기화하는 이 유일한 도시의 재능을 나는 무취향이라기 보단 굳이 민첩한 흡습성이라고 부르고 싶다. 너무 커서 취향의 과녁을 겨눌 수 없는 북경이나, 자기 기호가 너무 공고해 꼼짝도 않는 토쿄로선 상상도 못 할. 서울이 다른 도시에 중요한 전략적 시험지가 되고, 한국 소비자의 세련된 감각이 중국인들에게 존중받는 양상은, 이탈리아 시장이 유럽 트렌드에 영향을 주는 것과 얼추 비슷해 보일 정도다.

그러나 도시의 진짜 부흥은 한 진취적인 레스토랑으로부터 시작된다. 커피 한잔 마시자고 다들 얼마나 먼 데서 홍대까지 오는지 알면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대기업 베이커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몇 천 명을 끌어당기는 동네 빵집, 전 존재를 투신한 셰프의 콩알만 한 레스토랑, 오직 거기서만 살 수 있는 식재료를 파는 가게, 그 안에 모이는 예쁘고 활달한 사람들…. 어떤 때는 상점에 있는 그 자체를 사랑하게 된다. 스카이라인 밖의 것들을 끌어안는 몸짓으로 고안된 장소의 이야기와, 지금까지완 차원이 다른 거리의 억양은 서울의 어떤 결핍을 채워주는 전율과 같다. 그들은 서울의 미적인 흉터, 가시 박힌 회색 벽 뒤에 살지 않는다. 그들의 존재는 사람 위에 사람을 쌓고, 공중空中 위에 공중을 세우는 서식 환경 속에서 편협한 사고만 강요한 윗세대에 대한 경고이자, 이 강경한 도시의 새로운 치유법이 되었다.

서울의 진실은, 도시엔 가치 있는 것이 더 있으며, 우리는 서울이 주는 모든 것을 즐길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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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편집장] 2001년부터 GQ KOREA 편집장을 맡고 있음. 잡지를 통해 문화와 스타일을 다루어온 그 시간 동안, 정작 자신이 얼마나 세속적인지 허무하게 깨닫게 됨. 그래도 잡지 만드는 일을 너무 좋아해서 해보지 않은 ‘여타의 것’들에 대한 어떤 아쉬움도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