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부품들

전기의 시작인 증기 터빈, 발전기의 심장 스테이터, 그 심장에 뜨거운 피를 공급하는 증기 발생기, 굴삭기의 어깨인 붐, 선박용 대형 엔진을 감싸는 단단한 덮개, 배의 늘씬한 선을 그리는 예인전차, 헬리콥터 날개의 완벽한 각도를 만드는 훨타워, 40년 후 지구의 새로운 태양이 될 KSTAR까지. 오직 기술을 위해 만들었지만 그래서 아름답다. 지금 한국에서만 찾은 거대한 강철 기계들.



증기 터빈, LP 로터 두산중공업, 창원
비약하자면 인류는 물을 끓이면서 발전했다. 여전히 전기를 만드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증기를 이용해 터빈을 돌리는 방식이다. 발전소에서 석탄을 태우거나, 핵을 분열시키는 일이 꽤 거창해 보이지만 결국엔 물을 끓이기 위해서다. 물은 곧 증기가 되고, 그 증기의 압력은 세찬 바람이 되어 LP로터의 촘촘한 날개를 돌린다. 하지만 날개가 정교하지 않으면 증기의 힘을 온전히 이용하지 못할 일. 그래서 날개를 0.02밀리미터, 즉 머리카락의 4분의 1 두께 이상 오차가 나지 않게 세밀하게 깎아야 한다. 재질은 번쩍거리는 크로뮴 니켈 합금강으로 만든다. 부식이 되지 않고 열에 강하기 때문이다. LP로터는 열의 힘을 회전하는 힘으로 바꾸는 가장 첫 번째 부품이지만, 그 앞에 서면 빛을 발사하며 전진하는 외계 전차를 마주하는 느낌이다.



증기 터빈, HP 케이싱 두산중공업, 창원
증기 터빈 안의 로터는 1분에 3천6백 번 돈다. 엄청난 열과 압력의 증기 덕분에 75톤의 로터를 바람개비처럼 가볍게 돌릴 수 있다. 하지만 증기 터빈 안은 뜨겁고 세찬 바람으로 가득 찬, 거대한 칼날을 두른 로터가 정신없이 돌고 있는 지옥이다. HP케이싱은 그런 지옥을 단단히 감싸는 안락한 집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 무자비한 로터가 밖으로 탈출하지 못하게 실제 작용하는 압력보다 1.5배의 수압을 견뎌내는 실험을 한다.



굴삭기, 붐 두산인프라코어, 군산
과연 굴삭기는 가장 보편적인 로봇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처음부터 사람의 팔과 어깨를 보고 만들었다. 사람으로 치면 바가지(버켓)가, 바가지를 달고 있는 암Arm은 말 그대로 팔, 암을 들어 올리는 붐Boom은 어깨에 해당한다. 암은 일직선 양, 붐은 ‘ㅅ’자로 꺾인 모양이다. 붐과 암을 움직이는 근육의 역할을 하는 건 실린더인데 대부분 큰 힘을 사용하는 모든 곳에서 그렇듯이 유압 실린더를 사용한다. 굴삭기의 가장 핵심 부품인 만큼 내구성이 가장 중요하지만 단단하게 만들겠다고, 철판의 두께를 마냥 두껍게 만들 수는 없다. 무거워질수록 느려지고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대한 얇은 두께의 철판으로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다. 굴삭기는 굴삭기의 총중량으로 구분하는데 1톤부터 1백 톤까지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 이 붐은 50톤 굴삭기의 장착되는데, 자체 무게만 해도 10분의 1에 해당하는 4.4톤이다. 외부에 보이는 모든 부품은 이렇게 꼭 도색한다. 어두운 건설현장에서도 눈에 잘 띄기 위해서 주황색이나 노란색이 대부분이다. 재미있는 건, 야구팀처럼 회사마다 고유한 색을 지니고 있어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다. 밝은 당근색은 두산인프라코어를 뜻한다.



핵융합 연구 장치, KSTAR 국가핵융합연구소, 대전
태양과 별은 신성하다. 스스로 빛을 내기 때문이다. 항상 밝게 빛나는 행성은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비밀이 풀렸다. 1억도 이상의 초고온 플라즈마, 즉 고체도 액체도 기체도 아닌 상태에선 수소와 같은 가벼운 원자핵들이 융합해 무거운 헬륨 원자핵으로 바뀐다. 그때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고 질량이 감소하면서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방출된다. 사실, 40도도 더워 죽을 것 같은 지구에서 1억도의 온도는 가늠조차 어렵다. 그래서 자기장과 레이저를 이용해 태양과 비슷한 환경인 핵융합로를 안해냈다. 한마디로 지구 안의 인공 태양. 말은 참 간단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이 태양을 만든다니, 그야말로 신의 영역. 초고온 프라즈마를 자기장을 이용해 가두는 토카막Tokamak은 1950년대 구소련에서 탬과 사하로프가 처음 발명한, 가장 실용화에 근접한 핵융합 장치다. 그 방식을 이용해 국가핵융합연구소에선 KSTAR를 만들었다. KSTAR는 2020년 첫 작동을 목표로 프랑스 카다라시에 짓고 있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의 축소판으로 다양한 실험을 먼저 진행하고 있다. 인간이 만든 첫 번째 별의 고향은 대전이 될 지도 모른다.



가압경수로, 증기발생기 두산중공업, 창원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는 모두 가압경수로 방식인데, 그 핵심엔 증기발생기가 있다. 원자로에서 핵분열을 통해 열을 만들면, 1차 냉각수가 원자로를 지나며 열을 얻는다. 그 뜨거운 물은 전열관을 지나며 증기발생기 안의 깨끗한 2차 냉각수에 열만 전달해 물을 끓게 한다. 그러니까 1차 냉각수는 오염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물이 관을 지나며 새로운 물을 덥혀 깨끗한 증기를 만드는 원리다. 후쿠시마 원전은 이런 증기발생기를 사용하지 않고, 핵연료봉으로 직접 증기를 만드는 비등경수로 방식이라 방사능이 노출될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그래서 많은 국가가 가압경수로를 선호하는 편이다. 말하자면 증기발생기는 오염된 열로 깨끗한 증기를 만든다. 사람의 폐가 노폐물이 담긴 이산화탄소와 신선한 산소를 맞바꾸듯이. 현재 UAE에 납품할 한국형 신형경수로형 증기발생기를 두산중공업에서 만들고 있다.



발전기, 스테이터(고정자) 프레임 두산중공업, 창원
증기발생기가 폐라면, 스테이터Stator는 심장이다. 증기 터빈 안의 로터가 회전하면 그와 연결된 전자석 로터가 스테이터 안에서 함께 돌면서 전기가 발생한다. 쉽게 말해 코일 안에서 자석이 돌면 전기 만들어지는 원리다. 열로 증기를 만들어 증기 터빈을 돌리는 화력이나 원자력발전소, 바람을 이용해 커다란 날개를 돌리는 풍력발전소, 물을 떨어뜨려 그 힘으로 로터를 돌리는 수력발전소 모두 회전하는 힘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인데, 결국 스테이터 안에서 전자석 로터를 돌려 전기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우리가 쓰는 대부분의 전기는 스테이터 안에서 처음 만들어진다.



선박용 저속 엔진, 하부 몸체 두산엔진, 창원
어떤 선박은, 이를테면 50층짜리 빌딩이 움직이는 것과 같다. 그러다 보니 커다란 엔진이 종류별로 필요하다. 중속 엔진은 선박 안의 발전기다. 오랜 시간 항해를 해야 하는 큰 선박의 경우 많은 전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중속 엔진에서 전기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사용한다. 저속 엔진은 배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프로펠러를 돌린다. 대형 저속 디젤엔진의 경우 그 힘이 4만 8천 마력에 달한다. 엔진의 크랭크 축을 바치는 하부 몸체는 폭이 약 5.5미터, 높이가 약 4미터 길이는 약 19미터로 104제곱미터(33평) 아파트 크기와 비슷하다. 최근 두산엔진에서 중유와 LNG를 함께 사용하는 저속 엔진을 개발하면서 저렴한 연료로 선박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선박 선형 시험 수조, 예인전차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대전
. 배는 자동차와 달리 똑같은 크기로 만들어 실험할 수 없다. 제대로 된 선박을 하나 만드는 데 몇 백억부터 1조에 달하는 금액이 들기 때문이다. 대신 똑같은 모양으로 축소한 모형선을 이용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해 최적의 배를 만든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안에 있는 선형 시험 수조는 길이 2백 미터, 넓이 16미터, 높이는 7미터다. 이 대형 수조위엔 1초당 6미터, 즉 시속 21.6킬로미터로 움직일 수 있는 예인전차가 선박, 함정, 잠수정 모형을 끌며 여러 가지 자료를 측정한다. 배에 작용하는 저항, 프로펠러로 발생하는 추력, 회전수 등 잔잔한 수면 상태에서 배의 가장 기본적인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1978년부터 35년 동안 1천6백여 종의 배를 실험해 많은 자료가 있다. 모형 배의 가격은 8미터 기준 2천2백만원. 웬만한 자동차 가격이다.



헬리콥터 주 날개 조정장치 훨타워, 허브 고흥항공센터, 고흥
헬리콥터는 날개를 돌리며 하늘을 난다. 그 네 개의 날개는 흡사 자동차의 네 개의 바퀴와 같다. 타이어만 바꿔도 각 바퀴마다 납을 붙여가며 균형을 맞추듯이 헬리콥터도 각 날개마다 균형을 맞춰야 한다. 그 균형을 맞추는 장치가 바로 고흥항공센터에 있는 훨Whirl 타워다. 회전 날개를 구동 모터 위 허브에 달고 최대 1분에 450번씩 돌리며 각 날개마다 같은 모멘트(회전하려는 힘)가 전달되도록 여덟 개의 팁을 세밀하게 구부린다. 자동차는 바퀴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위험한 수준이지만, 헬리콥터는 날개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이륙 자체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한 헬리콥터 수리온과 여러 헬리콥터의 날개를 완벽한 각도로 조절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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