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 컷<2>

각 분야에 대한 에디터들의 짧은 크리틱들.

김윤식이 김윤식을 모든 책 분야에 걸쳐 ‘라이벌’에 대한 회고는 반복된다.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흥미로운데 야사와 묘사까지 더하면 사람들이 1대1 대전 게임에 열광하는 배경이 자명해진다.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 역시 선명한 갈등 구조를 바탕으로 긴장감 있게 읽힌다. 이어령과 김수영, 이문구와 박상륭처럼 이미 잘 아는 구도지만, 김윤식의 풍부한 실증 덕분에 모르는 것이 쪽지로 붙고, 아는 것의 행이 갈린다. 압권은 김윤식의 김윤식 비판이다. 김현의 라이벌로서, 자신을 ‘나’라고 쓰지 않고 ‘김윤식’이라고 썼다. 3인칭으로 적은 만큼 비판도 신랄하다. 김현이 그의 글쓰기를 가리켜 “그의 늘리기는 수수께끼의 놀라움이 없기 때문에 진부하고 지겹다”고 한 지적을 인정한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자백을 넘어 그의 비판을 통해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던 나의 참 모습을 투명체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밝힌다. 김윤식이 빤한 기획물의 격을 자신을 3인칭으로 쓸 수 있는가, 결국 자기 자신을 비판할 수 있는가. 비평적인 문맥을 담고 있는 책에서 내내 유용한 관점이겠다. 정우영

소니가 돌아왔다 요즘 소니는 질 좋은 파울 타구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면서 점차 맞아나가는 타자 같다. 잘 알려진 대로 워크맨이나 방송 영상 장비 분야의 선구자였으며, 최초로 미니 디스크를 적용한 MDR MZ-1이나 3.5인치 플로피디스크에 저장하는 초창기 디지털 카메라, 휴대용 TV처럼 이상한 제품을 잔뜩 만드는 게 그간의 소니였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니는 따분하게 변했다. 어쩌면 사람들이 먼저 변한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관심을 쏟는 기기는 MP3 플레이어와 게임기에서 스마트폰으로, 디지털 콤팩트 카메라에서 미러리스 카메라로, 노트북에서 태블릿으로 빠르게 옮겨갔다. 소니는 따라잡기에 급급했다. 하품만 나왔다. 그러나 눈부시게 빠른 시장을 어느 정도 따라잡은 지금, 소니가 돌아왔다. 소니에서 발매 예정인 신제품 라인업은 허를 찌르는 이상한 제품으로 가득하다. 스마트 렌즈는 디지털 카메라에서 렌즈와 센서, 배터리만 남긴 제품이다. 스마트폰과 결합해서 쓸 수 있지만, 단독으로도 쓸 수 있다. 최신 워크맨 기종인 NWZ-WH505는 헤드폰 형태의 MP3 플레이어로, 스피커로 쓰는 게 가능하다. 모두 미러리스 카메라에 주목하고 있을 때 내놓은 압도적인 하이엔드 디지털 콤팩트 카메라 RX 시리즈나, 2천만 화소의 이미지 센서에 G렌즈를 장착한 엑스페리아 Z1은 카메라 분야에서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대목. 태블릿을 노트북에 적용시키느라 LCD를 돌리고 꺾고 난리인 와중이지만, 소니는 아주 간단하게 또 안정적으로 LCD를 뒤집을 수 있는 바이오 핏 시리즈를 준비 중이다. 홈런도 머지않은 것 같다. 정우영

90년대의 금의환향 에미넴은 신곡 ‘Berzerk’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비스티 보이즈에게 존경을 표한다. 92년작 ‘So What’cha Want’ 뮤직비디오에서 비스티 보이즈의 멤버 마이크 디가 입었던 옷을 그대로 따라 입었다. 10월엔 TLC의 전기 다큐멘터리의 제작이 완료된다. 지난 7월엔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TLC는 92년 데뷔 음반을 발표했고, 지난해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크리스 브라운은 지난 6월 알리야의 목소리를 얹은 곡 ‘Don’t Think They Know’를 발표했다. 2001년 사망한 알리야의 전성기는 90년대 중반이었다. 요즘 가장 뜨거운 전자음악 듀오 디스클로저의 ‘White Noise’에 피처링한 알루나 조지의 신곡 ‘You Know You Like It’의 베보Vevo 페이지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댓글은 “그녀의 움직임은 알리야를 떠오르게 한다”는 말이었다. 올해 재기에 성공한 시애라의 ‘Body Party’는 마이애미 베이스를 대표하는 곡 ‘My Boo’를 샘플링했다. 96년에 나온 히트곡이다. 더불어, ‘Body Party’를 이용한 수많은 리믹스가 각종 장르로 재탄생했다. 백스트리트 보이즈는 올여름 8번째 정규 음반 <In a World Like This>를 발표했다. 마일리 사이러스의 공연으로 화제가 된 지난 VMA에는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엔싱크와 같이 등장했다. 엔싱크는 2000년에 정점을 찍긴 했지만, 새로운 형태의 그룹이라기보다 90년대 보이밴드의 연장선에 가깝다. 스트리트 브랜드 스투시는 90년대 초반 큰 인기를 누린 MTV의 음악 프로그램 <YO! MTV Raps>의 이미지를 활용한 티셔츠를 발표했다. 증거는 충분하다. 재탕이나 회상이 아닌 새로운 동시대적 흐름으로서, 90년대가 돌아왔다. 유지성

시승기는 과학이 아닙니다. 여기 한 일간지 시승기의 문장 하나. “속도가 시속 80킬로미터 이상으로 올라가자 밟는 대로 나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고속주행의 가속력은 무리가 없었다.” 다른 문장 하나 더. “시동음은 거슬릴 정도로 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조용하지는 않은 정도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엔진은 쥐 죽은 듯 조용하고,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실내는 안락하다.” 각각 다른 자동차를 시승한 후, 각기 다른 기자가 쓴 기사에서 한 문장씩 발췌해봤다. 읽어도 알 수 없고, 추측할 수도 없는 표현. ‘밟으면 밟는 대로 나가는’, ‘거슬릴 정도로 크지는 않지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같은 표현은 자동차 시승기에 단골로 등장한다. 그 진부함에 대해서 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자동차 시승기의 속성을 먼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자동차의 성능을 증명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나란히 세워놓고 동시에 출발시켜 한 지점을 향하도록 달리면 출발 가속과 지구력을 볼 수 있다. 출발은 빠르지만 꾸준한 힘이 달리는 차가 있고, 출발은 느려도 지속적으로 치고 올라가는 차도 있으니까. 그로부터 차의 성격을 짐작할 수도 있다. 다양한 길을 달리면서 구간마다 소음기로 데시벨을 측정하기도 한다. 정숙성은 한국에선 유난스럽게 따지는 ‘좋은 차’의 조건이니까. 같은 트랙을 한 명의 프로 드라이버가 각기 다른 차로 돌면서 종합적으로 성능을 시험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여기서 질문. 빨라야만, 도서관처럼 정숙해야만, 트랙을 빨리 돌아야만 좋은 차일까?
자동차는 성능으로만 가늠할 수 있는 소비재가 아니다. 하지만 스피커를 고르면서 출력을 살펴보는 식으로 엔진 배기량이나 최대토크를 살펴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웬만큼 다양한 차를 시승한 경험이 없으면 수치를 보고 성능을 짐작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시승기는 기자가, 단기간 경험하고 쓴다. 그마저도 출시 직후에 집중적으로 이뤄지며, 시승 시간과 구간에도 제약이 있는 경우가 많다. 브랜드는 단기간에 최대한의 언론 노출을 목표로 기자와 블로거를 동시에 동원한다. 그건 국산 브랜드가 인지도를 높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시승기는 그 점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매체마다 자동차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다는 것도 인지해두는 게 좋다. 같은 매체라도, 기자마다 기준도 다르다.
부아가 날 수도 있다.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모를 수도 있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건 그 다음 단계다. 새 차를 사려는 마음이 생겼다면, 가능한 지출 한도에 있는 자동차를 마음의 목록에 적어놓고 그 차들을 반드시, 모두 시승해봐야 한다. 숱한 시승기에 적혀 있던 숫자들, 때론 진부하게 혹은 현란하게 표현한 자동차의 성격, 브랜드 가치와 철학이 하나의 느낌표로 수렴될 때까지. 이런 과정은 수트를 살 때와 다르지 않다. 진짜 내 옷처럼 느껴지는 한 벌을 고르기 위해서도 비슷한 맥락의 수고가 필요하니까. 대개의 자동차는 집 다음으로 비싼 소비재다. 그래서 신중해진다. 두루 조언을 구하고, 기사를 읽고, 블로그 포스팅을 뒤지고, 조금이라도 연줄이 닿는 딜러를 수소문한다. 이런 과정도 차를 고르는 즐거움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알아두는 게 좋다. 중요한 건 핸들을 잡는 당신의 느낌뿐이라는 걸.
‘밟는 대로 나가는’ 차는 많다. 대부분의 수입차, 웬만한 국산차도 그 정도는 달릴 줄 안다. 섬세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그렇게 가속하는 제가각의 느낌도 천차만별인데다 각자의 기계적 특성도 다르다. ‘거슬릴 정도는 아니지만 조용한 정도도 아니’라는 말은 또 어떨까? “밉상은 아니지만 귀여운 정도도 아니”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이런 말을 듣고 누굴 소개 받을 수 있을까? ‘깔끔하고 안락한 실내’에 대한 평가를 기자에게 맡길 텐가?
궁극적으로, 모든 평가는 당신 몫이다. 다른 모든 말은 풍성한 참고 대상일 뿐, 결정적인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시승기는 과학 혹은 사실로만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니까. 오히려 각자의 주관에 더 가까우니까. 이걸 정확히 인지해야 좋은 시승기와 무책임한 시승기를 구분할 수 있는 눈이 생긴다. 당신에게 꼭 맞는 차를 골라낼 수 있는 단호한 안목도 물론. 정우성

예능의 수명이 짧아진다. 예능 프로그램이 다음 날 아침 직장인들 사이의 중요한 수다거리가 되고, 다운로드 받기 전 커뮤니티의 리뷰를 보며 볼 만한 프로그램을 선택하고, MC의 자질이나 PD의 능력에 대해 모두가 평가하면서부터 예능은 서서히 ‘이슈’에 메이기 시작했다. 사전 홍보 자료를 내놓거나, 화제성 인물을 섭외하거나,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논란도 이슈로 활용한다.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이 등장하면 거기에 꽂히는 관심과 생산되는 이슈는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다. 그 속도 역시 엄청나게 빠르다. 처음 <꽃보다 할배>의 기획이 공개되고 난 뒤부터 지금까지 상황을 되짚어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나아가 요즘엔 화제가 된다 싶은 코드가 있으면 지상파, 케이블 할 것 없이 유사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가족이 등장하는 이른바 ‘가족 관찰 예능’은 지상파와 종편 채널까지 현재 10여 편의 비슷비슷한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다. 이렇게 뜨거운 이슈가 지나가고 나면 시청자는 빨리 식는다. 비슷한 포맷의 예능을 보면서는 피로감까지 느낀다. <무한도전>이나 <1박 2일> 같은 기존 장수 예능 역시 이슈의 폭풍에서 뒷전으로 밀려났다. 심야 예능의 시청률은 이미 10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졌다. 예능의 수명은 이렇게 점점 짧아진다. 안 그래도 작아진 파이를 잘근잘근 쪼개야 하는데다가 그마저도 선도가 빠르게 떨어진다. 만드는 이도, 보는 이도 모두 지쳐가는 형국이다. 손기은

공격형 포수의 실종 공격형 포수가 사라졌다. 공격형 포수는커녕 9개 구단 포수 중 롯데의 강민호만이 홀로 규정타석을 채웠다. 그마저도 타격 순위 최하위에 머무른다. 주전 포수 자리를 꿰찬 이래 가장 낮은 성적이다. 지금 9개 구단의 포수 중 3할 근처의 타율을 보여주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두산의 중심타선이던 양의지의 시즌 타율은 2할 6푼대다. 부상에 시달렸던 지난 시즌보다도 못한 성적이다. 이것을 각 개인의 기량이 떨어져 생긴 결과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요즘 한국프로야구가 선호하는 이상적인 포수의 모습은 급격하게 달라졌다. 일단은 무조건 수비다. 공격력은 좀 떨어져도 괜찮다. 심지어 포수를 투수처럼 운용하는 팀도 있다. 덕분에 ‘세이브 포수’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세이브 포수에게 타격을 바라는 팀은 당연히 없다. 수비가 좋은 포수는 어쨌든 1군에서 그런 식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역시 포수는 홈런 한 방”이라며 뻥뻥 배트를 휘두르는 포수는 드물 것이다. “안경 낀 포수를 조심하라”는 식의 우스갯소리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장승호

조연 이정재 영화 <관상>이 시작되고 1시간 후, 슬로 모션과 함께 수양대군(이정재)이 몸에 털을 두르고 나타난다. 그가 나타나자 개가 짖고, 이정재는 오직 아랫니만 삐쭉 내민다. 10분 후, 사냥하는 장면. 호랑이 새끼를 잡는덴 세 명이면 충분하다는 그의 목소리엔 욕심이 그득하다. 용포를 걸치고 왕 행세를 할 땐 걸음걸이부터 완벽한 악인이다. 한편, 이정재는 올 초, <신세계>에서 이자성을 연기했다. <신세계>가 정청(황정민)의 힘으로 이끄는 영화이기에 이자성은 도드라지지 않는다. 이자성은 경찰과 조직 사이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는, 나약해 보이는 인물. 어찌 보면 매력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이자성은 <신세계>의 핵심이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살고 싶은, 유약하지만 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복잡한 역할이다. 그러면서도 정청과 붙는 장면이 많기 때문에 연기를 잘 받아줘야 한다. 단지 앙상블뿐 아니라, 쇼트의 중심에서 벗어나서도 움직임이 중요하다. 흔들리는 이자성의 몸은 거슬리지 않지만, 끝내 살아남을 수 있는 선을 만들고 있다.
이정재는 처음부터 줄곧 주연만 했다. 그러니까 영화 포스터에서 가장 얼굴이 컸다. 하지만 최근의 이정재는 조금 물러나 있다. 한발 뒤로 간 이정재는 얼굴이 작아졌을지는 몰라도 오히려 확연하게 눈에 띈다. 그가 주연이었을 땐 어떤 배우인지 헷갈렸다. 사기꾼과 9급 공무원, 개그맨과 군인 등 다양한 역할을 했다. 모호한 외모 때문일까? 여러 감독이 자신이 생각하는 다양한 캐릭터가 이정재를 통해 ‘ 그럼에도 멋진 남자’로 그려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정재는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려고 굵은 선 하나를 긋지 못한 건 아니었을까? 반면 <관상>과 <신세계>에선 아주 깊게 파는 걸 작심하고 선택한 것 같다. 그는 넓어질 수도 있지만 한 번 더 깊게 찍는 걸 선택한다. 고백하자면 이젠 그의 다음 작품이 궁금하다. 양승철

<개그콘서트>의 새로운 얼굴들 <개그콘서트>는 개그 관련 방송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 프로그램이다. 당연히 인재가 몰리고, 이것저것 도전해볼 여유도 있다. 몇 회씩 유달리 재미가 없어도 팬 층은 다른 곳으로 달아나지 않는다는 것도 엄청난 특권이다. 그래서 이른바 ‘세대 교체’가 가능하다. 깃털이 땅에 떨어지듯 새 기수 개그맨들이 제대로 연착륙한 요즘, <개콘> 무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이문재다. ‘어르신’ 코너에서 어색한 병풍이 되지 않는 법을 익힌 그는 ‘나쁜 사람’과 ‘두근두근’을 통해 자신만의 ‘개그풍’을 만들고 있다. 이문재의 장점은 배우 같은 얼굴이다. 잘생겼다는 뜻이 아니라 미안하지만, 그의 얼굴을 영화 스크린으로 옮겨놓았다면 아마 서늘할 정도의 악역을 제대로 해냈을 테다. 그 얼굴로 감성이 풍부한 남자 캐릭터를 주로 맡는다는 것이 그가 보여주는 반전의 묘미다. 웃기는 얼굴도 아니고 어설프게 잘생긴 얼굴도 아니라서 오히려 묘한 드라마를 만든다. ‘두근두근’에서 그가 수줍게 고개를 돌릴 때, 닫힌 문 앞에서 부끄러운 혼잣말을 늘어놓을 때, 어쩔 줄 몰라 울 듯한 얼굴로 대사를 받아칠 때 유달리 돋보인다. 물론 연기도 발음도 훌륭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개콘>에 남은 거의 유일한 ‘뚱뚱한 여자’ 캐릭터인 김민경의 존재감도 확실하다. 그는 ‘뿜 엔터테인먼트’와 ‘로비스트’에서 완전히 다른 여자로 나오는데, 두 역할 모두 차지고 확실하다. 그건 힘이 ‘빡’ 들어간 웃음소리와 ’꽉’ 조이는 듯한 특유의 말투에서 나온다. 돌아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화통함과 프로펠러 같은 동력이 있다. 요즘 신인 여자 개그맨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날씬한 몸매와 뾰족한 얼굴에선 느낄 수 없는 강점이다. 표정 하나로 독특한 개그 지점을 찾은 서태훈과, 성대모사는 모든 개그의 원천이라는 걸 온몸으로 증명하는 이수지도 발군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유세윤, 최효종, 정범균처럼 기획에서부터 사례 수집까지 온전히 아이디어로 활개치는 듯한 인물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손기은

홍명보호에 새로운 공격수보다 확실한 미드필더가 더 절실한 이유 홍명보 감독은 아이티, 크로아티아와의 평가전을 위해 처음으로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을 불렀다. 아이티전은 4대1로 이겼다. 하지만 심판의 판정이 애매했고, 후반엔 상대 선수 한 명이 퇴장당한 경기였다. 크로아티아전에서는 1대2로 졌다. 원톱으로 조동건이 나왔지만, 수비를 등지고 볼을 간수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공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원톱이 부진하자 후반엔 ‘제로톱’ 전술을 사용했다. 스트라이커 없이 경기를 치른 것 이다. 원톱이 빠진 중원에 공간이 생기자 윙어들이 적극적으로 페널티박스를 파고들었다. 특히 손흥민과 이청용이 활발했다. 문제는 텅 빈 중원이었다. 미드필더들이 골문으로 모두 달려드니 중원이 헐거워졌고, 금세 내리 두 골을 내줬다. ‘제로톱’은 일반적으로 스트라이커가 중원 싸움에 가담하기 때문에 미드필더가 두꺼워지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대표팀은 그 반대였다. 오히려 제로톱 전술을 사용한 이후 중원과 상대 골문 사이의 거리가 벌어졌다. 기성용이 빠진 미드필더진은 황폐했다. 제로톱 전술은 스페인 축구의 전성기와 함께 유행을 맞았고, 최근엔 독일도 제로톱을 사용한다. 하지만 단지 스트라이커가 없으니 제로톱을 시험해보는 식이라면 위험하다. 스페인 축구는 제로톱 전술에 최적화되어 있다. FC 바르셀로나 선수들 위주로 구성된 스페인 미드필더들의 팀워크는 완벽한 수준이다. 한 명이 골문으로 돌진하면 누군가 그 뒤를 확실히 받친다. 독일엔 슈바인슈타이거란 뛰어난 중앙 미드필더가 있다. 현재 대표팀은 공격진을 실험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드필더 중 붙박이 선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득점이 가능한 공격전술을 찾는 게 지상과제라면, 상대적으로 자원이 풍부한 미드필더진부터 안정시킨 후 다른 모험을 걸어보는 게 순서다. 직소퍼즐도 모서리부터 맞춘 뒤 서서히 중앙을 정리하는 것이 상식아닌가. 둘을 한꺼번에 하려다간 판을 아예 엎어야 할지도 모른다. 유지성

우디 앨런의 리듬 올봄 개봉한 <로마 위드 러브>는 올이 풀린 램스울 니트 같았다. 하지만 작년에 개봉한 <미드나잇 인 파리>는 얼굴을 부비고 싶은 캐시미어 카디건 같았다. 바로 전 작품인 <환상의 그대>가 죄다 싱거운 칠첩반상 같았다면, <내 남자의 여자도 좋아>는 짭짤한 간장게장 같았다. 말하자면 우디 앨런은 최근 5년간 ‘강약강약’이었다. 그럼 이번에 개봉하는 <블루 재스민>은 ‘강’의 차례일까? 우선은 2000년 이후 우디 앨런의 어떤 작품보다 만듦새가 옹골차다. 사실 우디 앨런 영화의 강약 사이엔 캐릭터 수의 차이라는 것도 도드라진다. <로마 위드 러브>나 <환상의 그대>처럼 에피소드 형식으로 많은 캐릭터가 펼쳐진 영화보다, <미드나잇 인 파리>나 <내 남자의 여자도 좋아>처럼 큰 줄기의 플롯 안에 적은 수의 캐릭터가 이끄는 영화가 더 뛰어났다. 이를테면 이슬비와 소낙비의 차이? 혹시 우디 앨런은 항상 같은 양의 에너지를 영화에 담는데, 캐릭터들이 각각 수 대로 나눠 갖는 건 아닌지. <블루 재스민>도 마찬가지다. 우디 앨런의 정성이 케이트 블란쳇 한 사람에게 제대로 몰리니 훨씬 조밀한 묘사가 나온다. 그리고 새삼 놀라운 건 <블루 재스민>의 설정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슬쩍 생각나게 한다는 점이다. 몇 년 동안 항상 어리눅은 척했던 우디 앨런이 작심하고 잘난 척을 하니 이렇게나 반갑다. 양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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