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글로 배웠습니다.

요즘의 연애는 문자와 이모티콘이 말과 표정을 대신한다. 그러니 추측은 기본, 오해는 옵션이다.



남 얘기가 왜 궁금할까? 오래된 질문이다. 첫날밤 치르는 방 창호지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는 게 이 땅의 풍속이었으니 더 말해 뭐할까 싶지만, 새삼 고개를 흔든다. 대체 그게 왜 궁금하지? 바야흐로 지금은 애인이라 불리는 두 사람이 탁자 앞에 마주 앉았어도 서로가 스마트폰으로 뭘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시대, ‘단절’이라는 낱말로 인문학적 입장을 취할 것도 없이, 그저 ‘안알랴줌’ 유행어로 웃고 마는 시대, 하필 그런 때에 남 얘기가, 그 중에서도 ‘연애’가 그렇게도 재미있고 궁금한 이유는 뭘까? 사실, 결론은 이미 나와있다. 모르니까 배우려고 그런다.
가만 보면, 온통 연애 타령이다. 아예 ‘연애컨설턴트’라는 새로운 직함도 생겨났다. 누군가 의뢰한 상담에 응하는 일에, 아예 사람을 불러모아 강연을 펼치기도 한다. 주로 흥하는 곳은 대학가다. ‘캠퍼스 연애 특강’은 뻔한 영화 제목이 아니라, 플래카드로 홍보하는 공식 행사가 됐다. 부제는 꼭 이런 식으로 붙는다. ‘연애의 전략과 소통의 기술’ 뭐든 배우고 익혀서 ‘자격’을 갖추는 것을 최대 효용으로 아는 요즘 풍토에 맞춘 것이겠다.
어디 대학뿐인가. 얼마 전엔 국무조정실 주최로 세종청사에서 연애특강을 개최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세종청사 이전 뒤 미혼 사무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정부가 ‘연애특강’을 개최하기로 했다. 일만 하지 말고 ‘고수’의 비법을 배워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라는 얘기다.”(<서울경제신문>) 연애를 해야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해야 애를 낳고, 애를 낳아야 비로소 국력에 보탬이 될 텐가? 일상이 이와 같다보니 대중문화는 벌써 노골적으로 이 문제에 뛰어들었다. 얼마 전 새롭게 시작한 JTBC <마녀사냥>은 남자 서넛이 모여서는 누군가의 사연으로부터 줄줄이 얘기한다. 남자와 여자,어떤 실랑이, 의문스런 감정들, 말하자면 연애. “어쩌구저쩌구 한데, 지금 이 여자가 유혹의 신호를 보내는 거 맞을까요?” 남자들은 그렇다, 아니다 얘기한다. 이때 ‘경험’은 곧 조언할 수 있는, 가르칠 수 있는 자격쯤 된다. 말하자면 ‘연애, 그거 제가 해봐서 아는데요’하는 거다. (지난 5년 동안 꽤나 들었던 말법이군.)
연인들의 연애뿐만 아니라 부부 사이의 입장 차에 관한 얘기도 줄기차게 등장한다. 예전엔 아침방송에서 ‘아줌마들이나’ 하는 얘기쯤으로 밀려났던 얘기들이 ‘예능’을 덧입고는 “아내와 함께 쇼핑센터에 가는 남편의 기분은 전장에서 총알을 피하는 상황과 비슷하다”느니 하면서 왁자지껄 한바탕을 이룬다. 남 얘기와 내 얘기 사이에서 그저 웃기 좋게 부풀려지기 십상인 얘기들. 그런가 하면, 아이돌스타 B1A4의 히트곡 ‘이게 무슨 일이야’라는 노래를 듣다가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가사의 내용인 즉, 평소 수상한 느낌을 자주 받던 애인이 결국 틈만 나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친다. “이게 무슨 일이야! 이렇게 좋은 날에!” 거짓말이라니, 그것도 상습적인. 이것은 연애에서 대단히 치명적인 일이 아닐까? 그런데 마지막 가사는 이렇다. “야, 너 나한테 잘해, 알겠지?”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식이다. 그저 ‘쿨’한가? 행여 자신도 들키지만 않았을 뿐, 내내 그러고 있다는 뜻일까? 어쨌든 그건 적어도 연애의 말은 아니었다. 차라리 놀이의 말이라면 모를까. 조금 과장하자면, 요즘 연애는 문자와 이모티콘이 말과 표정을 대신한다. 그러니 추측은 기본, 오해는 옵션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잇고 지탱하는 기운은 어디까지나 얼굴과 얼굴 사이에서 일어나는 육체적이며 정신적인 반응일 텐데, 그런 건 어색한 일이 됐다. 혼자만의 공간에 갇힌 줄도 모르고 갇힌 채, 유난히도 소통을 꿈꾸는 시대의 결과가 이렇게도 나타나고 있다.
카페에 들어갔다. 두 사람씩 앉은 테이블이 여럿 보였다. 그들은 연인이거나 친구거나 어쨌든 한 테이블에 마주 앉을 수 있는 사이일 것이다. 하지만 각자의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앞에 앉은 사람이 방금 트위터에 무슨 말을 남겼는지 확인하고,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누른 ‘좋아요’의 숫자를 센다. 그런 채 마주 앉고, 연애하며, 연인이라 칭한다. 그러다 문득 묻는다. 이런 감정이 뭔가요? 이런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봐야 하나요? 이게 사랑인가요? 자신에게, 서로에게 혹은 절친한 친구에게 묻지 않고, 텔레비전에 묻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묻고, 연애컨설턴트에게 묻는다. 그들은 물론 친절하게 대답해줄 것이다.
하지만 연애란 적어도 두 사람만이 나누는 아주 특별한 무엇이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내 감정’을 가장 뾰족한 지점까지 끌어올린 절정의 상태다. 그런데도 스스로 모르겠다며 강연이며 책이며 컨설팅이며 남얘기로 배운다. 배우지 않아 모른다고 변명하면서. 지금 우리는, 우리가 연애로부터 느껴야 하는 모든 것을 두 사람 사이가 아닌 남에게서 배우고 익혀야 하는 때를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