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루니 없다!

조지 클루니는 지구에 없다. 우주에 있다.

더 이상 지구에서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을까? 조지 클루니는 우주 재난 영화 <그래비티>에 출연했다.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는 산드라 블록과 조지 클루니 단 두 명. 하지만 무게는 산드라 블록 쪽으로 기운다. 그러니까 조지 클루니는 이 영화에서 잠깐 등장하는 조연에 가깝다. 그는 우주 미아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스톤박사(산드라 블록)에게 자신에게 반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지휘관 맷 코왈스키를 연기한다. 긴박한 상황마다 유머를 던지는 맷의 역할은 단지 영화의 강약을 조절하기 위한 요소가 아니다. 결국 <그래비티>가 삶의 끝에 관한 이야기라면 맷은 최악의 상황에서 사람이 얼마나 경이로울 수 있는지 보여준다. 맷은 어떤 상황에서도 위트를 포기하지 않고, 긴박하고 중요한 결정을 할 때도 장엄한 듯 말하거나, 대의를 위한 선택이었다고 포장하지 않는다. 맷의 결정과 말 한마디 한마디는 남자라면 누구나 닮고 싶은 쪽이다. 한데 너무 이상적으로만 보여 누군가는 “저런 상황에서 어떻게 사람이 저러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맷은 꼭 존재할 것 같은 믿음을 준다. 맷이라는 캐릭터가 조지 클루니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만약 조지 클루니가 우주 비행사가 되었다면 분명 맷과 같았겠지, 하는 그런 신뢰. 우주를 유영하면서 아내가 바람난 이야기를 하며 자조하고, 그 와중에 컨트리 음악을 빼놓지 않으며, 조난 중에도 지구에서 보는 일출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말하는 건 조지 클루니 그 자체다. <그래비티>에서 맷은 조지 클루니의 다른 이름이다.
“조지 클루니는 우주와 상당히 비슷해요. 말하자면 클루니가 우주이고, 우주가 클루니죠. 우주는 <그래비티>에서 제일 크고 중요한 캐릭터지만, 촬영 중에는 우주라는 존재를 전혀 몰랐어요. 합성하기 전까지는 그 존재가 불분명했죠. 그렇지만 영화가 완성되고 나서 우주가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죠. <그래비티>는 우주가 주인공이니까요. 조지 클루니도 마찬가지예요. 영화가 완성되고 나서 <그래비티>의 우주처럼 그가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었어요.” 산드라 블록이 조지 클루니를 우주와 빗대 이야기했다. 그러나 조지 클루니는 “이건 완벽히 그녀의 영화”라며 잘라 말한다. “큰 부담이 없었어요. 샌디(산드라 블록)는 여섯 달 동안 로프에 매달려 있었지만, 저한테는 그런 문제가 없었죠. 단지 느리게 움직이는 게 좀 힘들었을 뿐이에요.” 조지 클루니는 항상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편이다. 아니면 차라리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 감추기도 하지만. “저의 성 정체성에 관해 이야기들이 많지만 게이가 맞다, 아니다,라고 확실하게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면 게이 커뮤니티에 있는 저의 좋은 친구들이 불편한 시선을 받을 수도 있잖아요. 저는 사람들이 게이라는 사실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편견이 있다면 그대로 두어선 안돼요. ”
그의 말과 행동엔 일정한 방향이 있다. 그 방향이 들쑥날쑥 하지 않고 매우 곧았기 때문에 클루니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었다. 누군가 그가 주장하는 방향에 동의하지 못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태도를 바꾸어왔다고 의심하긴 힘들다. 아주 오래전부터 클루니는 자신의 태도를 일관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15년 전, <쓰리킹즈> 촬영 장에서 영화감독인 데이비드 O. 러셀이 몇몇 엑스트라를 비웃었다는 이유로 조지 클루니는 크게 항의했다. 둘은 아주 크게 싸웠다. 러셀은 “누가 2천만 달러를 준다고 해도 조지 클루니와는 영화를 찍지 않을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했지만, 조지 클루니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미국 정부의 셧다운 문제에 대해서도 아주 단호하게 말한다. “사람들은 계속 이것이 중요한 협상이라고 이야기해요. 하지만 이건 협상이 아니라 법이죠. 우리는 다양한 주제를 두고 선거 전에 협상을 했고, 법으로 만들었어요. 그리고 그 법 위에서 선거를 했고 오바마는재선에 성공했죠. 만약 내키지 않으면, 선거에서 이기면 돼요. 그게 법이에요. 정부를 폐쇄하는 건 올바른 방식이 아니죠.”
한편 그의 일관된 방향은 작품을 선택할 때도 도드라진다. 자신의 가치관과 비슷한 이야기를 선택하고 혹은 직접 만들어왔다. 비약하자면 미국내 정치와 경제 문제(<킹메이커>, <마이클 클레이튼>), 전쟁으로 시작하는 미국 패권주의에 대한 경계(<초[민망한] 능력자들>, <시리아나>), 가족에 관한 고민이나 싱글 삶의 대변(<디센던트>, <인 디 에어>)까지 그가 실제로 동의할 수 있는 이야기만 골라 작품을 선택했다. (한 번 더 비약하자면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도 점조직으로 커다란 시스템을 전복하는 급진적인 정치적 태도를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심지어 평생 연극과는 거리가 먼 것 같던 그가, 동성애 결혼 금지법을 비판하는 내용의 연극 에까지 출연한 것을 보면,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작품을 선택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건 아닐지 추측하게 한다.
중요한 건 조지 클루니가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수단 대사관 앞에서 학살 반대 시위를 하다 체포되기 직전에도 경찰을 향해 먼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전 브래드 피트이에요!” 그 재치있는 말 한마디는 어떤 백 마디 말보다 훨씬 깊게 수단 문제를 마주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을 향한 조롱에도 유연하다. <사우스 파크>의 에피소드 안에서 여러 번 조롱당할 때마다 자신을 더욱 놀려달라고 요청하고, 자신도 출연을 부탁하기도 했다. 하필 이런 말을 꺼내본다. 철학자 베르트랑 베르줄리의 주장. “우리에겐 가벼움이 필요하다. 가벼움이 결핍될 때 땅은 하늘을 잃고, 밤은 낮을, 어둠은 빛을, 깊이는 표면을 잃게 된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무겁고, 어둡고, 난해하고, 침울해진다.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서 해방되어야 한다.” 조지 클루니는 그의 특유의 가벼움으로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은 배우로, 사회운동가로 남았다.
이제 12월이 되면 그가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작품 <모뉴먼츠 맨>이 개봉한다. 맷 데이먼과 케이트 블란쳇, 빌 머레이와 존 굿맨, 장 뒤자르댕까지 캐스팅의 면면이 놀라울 정도다. 하지만 캐스팅보다 기대되는 건 조지 클루니의 연출력이다. <컨페션>과 <굿 나잇 앤 굿 럭>과 같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시대물을 연출할 때 마다 그가 보여준 쫀득쫀득한 플롯 배치와 사실적인 화면 구성이 이번엔 얼마나 발전했을는지. 이번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예술작품을 지키던 군인들의 이야기다. 전쟁 속에서도 예술을 사랑한 남자. 말해 뭐 하나. 조지 클루니 말고 떠오르는 남자, 누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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