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전설

요즘 같은 땐, 트렌치코트만 한 것도 없지.



1 UNIQUE
까만색 트렌치코트가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옆모습은 남다르다. 밤이 지나 불현듯 새벽이 오는 것처럼 옆선을 파란색으로 둥글게 장식했다. 전성기 때의 마르지엘라에 비하면 이 정도 세부의 특별함은 사실 간소하달 수 있다. 비슷비슷한 트렌치코트만 사 입는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거부감 없이 입을 수 있다. 색의 조합이 얌전하고, 레이온과 면이 섞인 폭폭한 안감을 써서 깊은 밤이나 추운 겨울에도 거뜬하다. 등길이 108.4cm, 팔길이 63.5cm, 2백63만원,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2 CLASSIC
로버트 테일러나 험프리 보가트의 영화에 나올 법한 가장 기본형 트렌치코트. 묵직한 인상은 칼라 위에 울과 캐시미어가 섞인 두툼한 칼라를 한 번 더 덧댔기 때문에. 어깨 견장을 떼고, 가슴 부분의 스톰 플랩과 손목의 커프스 플랩은 그대로 살려 산뜻하다. 기나긴 추위를 견딜 수 있도록, 안감 솜을 촘촘히 누빈 세심함. 키가 작거나 크거나, 다부진 체격을 가졌거나 풍채가 넉넉하거나, 모두에게 두루두루 잘 어울린다. 등길이 100.5cm, 팔길이 62cm, 94만6천원, 브룩스 브라더스.



RICH
풍성하고 넉넉하다. 다른 트렌치코트에 비해 길어서 작은 사람들이 입으면 형 옷을 물려 입은 것처럼 보일 수 있느니, 키 큰 남자에게 권한다. 그것 외엔 거침없이 쭉 뻗은 칼라나 있는지도 모르게 착 붙은 안감처럼 매력적인 세부가 잔뜩이다. 가슴 주변에 라펠의 둥근 선을 따라 쫙 그은 지퍼가 달려 있어 은밀한 물건을 넣기에 그만이다. 등길이 104cm, 팔길이 64.5cm, 가격 미정, 에르메스.



4 LIGHT
거추장스러운 게 싫은 사람에겐 싱글 트렌치코트가 제격이다. 가볍고 말끔한 면 소재에 길이도 짧고 단출해서 어디에 입어도 부담이 없다. 지금 이 계절,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에 감색 터틀넥과 머플러를 두른 채 입는다. 여기에 셀비지 데님까지 곁들이면 서점을 서성이는 지적인 학생처럼 보일 거다. 이렇게 가볍게 입는 것도 이달이 마지막이다. 등길이 84cm, 팔길이 64cm, 49만9천원, 바나나 리퍼블릭.



5 TWIST
가볍고 따뜻하다. 겉감은 광택 은은한 나일론이라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면 양감이 훨씬 풍부해진다. 안감과 칼라의 소재는 울과 캐시미어. 그래서 엄청 따뜻하다. 래글런 소매에 견장도 달렸고, 허리 벨트도 있지만, 단순히 트렌치코트라 부르기가 망설여지는 건 소매 끝자락에 벨트 대신 지퍼를 단 과감함 때문이다. 유연하고 현대적인 트렌치코트의 해석이랄까. 등길이 111.5cm, 팔길이 57cm, 1백18만원, 우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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