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라이프스타일의 미묘한 상관관계

‘라이프 스타일’이야말로 자동차 마케팅의 핵심이다. 자동차는 순결하고, 회사는 이미지를 판매한다.


자동차 회사의 행사는 과연 성대하다. 전 세계 언론을 대상으로, 가끔은 상식을 뛰어넘는다. 아랍의 어느 빌딩 꼭대기에 자동차를 올려놓고 전 세계에 생중계하는 식의 신차 출시 행사도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어느 호텔 옥상, 런던의 비밀스럽고 고풍스런 정원에서도. 이럴 땐 오감으로 읽을 수 있는 모든 세부에 회사의 의도가 반영 돼 있다고 보면 된다. 철저한 계산, 브랜드와 자동차의 정체성을 동시에 강화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도 즉각적인 마케팅 수단이다. 일상적으로 체험하기 힘든 차의 성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기회다. 주로 고객과 잠재 고객을 대상으로 한다. 아우디는 매년 핀란드의 얼음호수에서 ‘아이스 드 라이빙 익스피리언스’를 개최한다. 바닥까지 언 얼음호수 위, 거대한 트랙 위에서 아우디 사륜구동 시스템 콰트로의 성능을 체험하는 행사다. 올해 참가자도 모집 중이다. 포르쉐는 ‘드라이빙 아카데미’라는 이름의 행사를 전 세계에서 진행한다. 트랙과 오프로드 코스에서 포르쉐의 거의 모든 차량을 프로 드라이버의 지휘 아래 시승 할 수 있다. 미처 몰랐던 운전 기술을 배우고, 프로 드라이버가 운전하는 포르쉐에 동승할 수도 있다. 자동차를 즐길 수 있는 수만 가지 방법을 회사가 전파하는, 충실하고 기꺼운 방식이다.

벤틀리에는 ‘라이프스타일 이벤트’라는 이름의 마케팅 행사가 있다. 그들이 전파하고 싶은 건 벤틀리를 가진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 그 자체다. 굳이 번역하자면 ‘일상’이라는 그 흔한 말일까? 하지만 잔가지를 걷어내면 남는 건 결국 누군가의 하루다. 벤틀리를 가진 사람들의 하루는 흔치 않다는 것, 그들의 시간 자체에 품격이 있다는 걸 꾸준히 설득하고 알리려는 거다. 호화롭지만 요란하지 않게, 그들의 역사와 철학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그럴 자격이 있는 회사가, 잘 알려지지 않은 그들의 가치를 알리는 꾸준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서. 자동차를 가진 사람에게 집중하는 방식이라, 출시 파티의 외형이나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와는 성격이 좀 다르다. 피아트가 피아트 500 광고에 패션을 도구 삼거나, 자동차 회사들이 그들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홍보대사를 위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의 마케팅 활동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제품에 이미지를 더하는 과정, 당연하다면 당연한 활동, 어쩌면 마케팅의 본령.

사실상의 허무는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에게서 온다. 자동차 자체의 정직한 물성과 마케팅의 환상을 넘어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곳. 누구도 정확하게는 알 수 없는, 사실은 은밀한 세계. 거기선 이런 푸념도 들려온다. “어떤 고객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어요. 저희 차 제원을 묻기에 정확한 부분을 확인하고 알려드리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본인이 줄줄 읊어요. 그렇게 잘 알면서 왜 물어봤지, 생각했지만 고객한테 그렇게 물을 수는 없잖아요? 대신 웃으면서 ‘와, 대단하시네요’ 그랬더니 대답이 이랬어요. ‘나 포르쉐 타잖아~.’ 그런 분들이 가끔있어요. 아, 웃을 수도 없고.” 어떤 브랜드 매니저가 말했다. 그 대답에 깔려있는 무수한 상징, 그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유통되는 어떤 세계….

어느 여름밤, 거대한 클럽에서 성대한 출시행사가 열렸다. 정중한 드레스 코드가 양념처럼 곁들여졌다. 회사가 추구하는 수준의 격을 맞추기 위한 노력이 역력했다. 그날 밤이 지나자 이런 한숨소리가 들렸다. “의아할 때가 있어요. 이렇게 훌륭한 자동차를 타는 사람이…. 정중하게 초대에 응해주신 건 물론 감사해요. 그런데 반바지에 슬리퍼는 좀 아니었어요. 괜히 하는 말이 아니에요. 그런 식으로 행사 자체가 무시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 행사를 담당했던 브랜드 매니저가 말했다. 자동차를 파는 사람과 그걸 가진 사람의 관계, 정중한 행사장의 반바지가 상징하는 또 다른 상징. 매장에선 이런 일도 벌어졌다. 한 수입차 매장 앞에 쉐보레 스파크가 주차했고, 거기서 한 아주머니가 내렸다. 초라한 행색은 아니었지만 거기 전시돼 있는 차를 살 것 같지는 않다고, 어떤 영업사원은 판단했을 것이다. 그 아주머니가 억대의 슈퍼카 앞에 머물렀을 때도 물론. 하지만 같은 사람이 그 슈퍼카를 현찰로 결제하고 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런 식의 매장 무용담은 지치지도 않고 나온다.

아직도 이런 경우가 있다.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매장에 갔더니 거들떠보지도 않더라. 어떤 매장에선 ‘나가달라’는 얘기까지 들었다.” 수입차 매장에서 옷차림 때문에 멸시를 당했다는 얘기다. 이런 호소에 달린 댓글들은 이렇다. “아니다, 나는 반바지 입고 갔는데 잘해주기만 하더라”는 경험, “그건 영업사원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허름하게 차리고 간다. 그래야 진짜 착실한 영업사원을 만날 수 있으니까”라는 조언. 거기에 어떤 옷차림이 적절할 거라는 충고도 이어진다. 수입차 매장에 들어갔을 때의 그 분위기가 싫어서 국산 대형 세단만 산다는 어느 중소기업 대표도 있었다. ‟보통 이런 얘길 하면 다들 수입차 매장인 줄 아는데, 국산차 매장에가도 별반 다르지 않다. 괜히 더 짜증나는 경우도 많다”는 식의 브랜드별 평가도 줄을 잇는다.

한편, “제가 어려웠던 시절에 꼭 갖고 싶었던 자동차를 사러 왔습니다. 사업이 꽤 잘돼서, 이제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고는 바로 계약서를 작성한 뒤 가죽 가방에 들어 있던 현찰로 지불했다는 한 남자의 일화도 업계에서는 유명하다. 편견과 자격지심, 요령과 꿈이 유독 자동차를 중심으로 어지럽게 뒤섞인 판. 포르쉐는 흠 잡기 어려운, 그야말로 훌륭한 스포츠카다. 누군가 포르쉐를 가졌다는 말에도 당연한 상징이 있다. 그 사람은 자동차에 대해 더 많은 걸 알아갈 수 있다. 포르쉐 같은 자동차는 하나의 세계관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걸 가졌기 때문에 자동차를 잘 안다는 그 말만은 부끄럽다. 그럼 일말의 예의를 갖춰야 마땅한 자리에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간 남자는 어떨까? 그에게, 그 차림은 단순한 무례가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을 초대한 자동차 회사에, 고객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렇게 해도 괜찮다”는 권력의 시위였을 것이다. 너희에게 잘보일 이유가 없으니 내 옷차림에도 신경 쓰지 않겠다는 식이다. 결국 돈은 내가 주지 않았느냐는 ‘고객님의 갑질’은 피차 민망할 따름이다. 게다가 경차를 타는 사람이 슈퍼카를 살 리 없을 거라는 선입견, 아직도 손님을 마음대로 판단하는 일부 영업사원의 곁눈질….

한때, 롤스로이스는 고객을 심사했다. 아무에게나 차를 팔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들의 기준을 통과하는 사람만 롤스로이스를 가질 수 있었다. 한국의 한 재벌 총수가 롤스로이스를 사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게 어떤 대통령이라는 풍문도 있다. 롤스로이스는 이제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시장도 아니다. 롤스로이스도 위기를 겪었다. 결국 회사나 고객이나 돈이 중심에 있는 이야기, 돈이 사람을 가려 찾아가진 않는다는 퉁명스런 사실의 증명.

자동차는 가장 첨단의 현대 산업이 집결된 결과물이다. 그 자체는 치열하고 사실적인 기계다. 기계적으로 잘 만든 자동차는 순결하기까지 하다. 그게 탈것으로서 자동차의 본질일 수 있다. 하지만 자동차만큼 충실하게 환상에 의지하고 이미지에 봉사하는 소비재도 드물다. 그러니 관련한 동네마다 자동차를 둘러싸고 온갖 난장이 들어선다. 이런 판에, 자동차 회사들이 총력을 기울이는 라이프스타일 마케팅은 차라리 간절해 보인다. 이 자동차에는 사실 이렇게 멋진 이미지와 가치가 녹아 있으니 제발 알아달라는 읍소 같다. 가능하다면, 지금까지 이미 많은 것을 성취한 당신이 앞으로도 근사하게 살아나가길 바란다는 당부 같기도 하다. 하지만 고객은 차를 사는 순간 그 이미지까지 ‘원 플러스 원’으로 소유할 수 있다고 믿으니, 그건 과연 마케팅의 성공일까?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