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로 가는 길

섹스는 벗고 한다. 몇 가지는 입은 채로 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뭐든 벗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옷을 입은 채로 섹스의 전초전은 이미 시작된다. 겉옷이든 속옷이든 상상력을 부풀게 하는 쪽이 섹스에 가까운 옷일 테다. 그럴 때 몸도 함께 부푼다. 하지만 그 상상이 꼭 삽입이나 알몸에 대한 것은 아니다. 그보단 어떤 기분에 가깝다. 애간장이 타든, 은근한 긴장을 즐기든 확실하게 기분을 환기시키는 옷. 얇고 짧고 파인 옷만 그런 건 아니다.

7년 차 학원강사 J에겐 나이트가운이 그랬다. “방에서 차를 마시든, 영화를 보든, 그냥 옆에 누워 있든 전희를 하는 기분? ‘레디 투 섹스’ 상태 같달까.” 가운 안엔 딱 한 장만 더 입는다. 허리끈 한 번 쭉 당기는 걸로 살을 맞댈 수 있다. 사정은 폭발적이지만 찰나에 그친다. 사정임박감을 오래 유지하는 것이 만족스러운 섹스를 위한 필수조건이라면, J는 가운을 그런 식으로 활용했다. 급했다면 굳이 가운을 입을 이유도 없다. “스키니 진이나 레깅스같이 꽉 끼는 옷을 벗길 땐 서로 몸이 멀어지는 순간이 생겨. 힘껏 당겨야 되니까. 게다가 바지가 뒤집어지거나. 발뒤꿈치에 걸리기라도 하면….” 브래지어 끈을 한 손으로 푸는 건 경험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두 손으로 낑낑대는 중에 흐름을 깨지 않기 위해서다. 어떤 이유든 J에겐 심리적인 긴장을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30대 회사원 K는 여자의 옷에서 ‘리얼리티’를 찾았다. “단색 면 속옷은 현실적이잖아. 레이스, 호피같이 요란한 건 내 여자 같지가 않아.” 내 여자라는 게 꼭 애인이나 파트너 같은 관계에 대한 얘기는 아닌 것 같았다. 면 속옷이 주는 현실성이야말로 K에겐 그 어떤 강렬한 이미지보다 섹스를 기대케 했다. 그는 제복 코스튬 같은덴 전혀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속옷이라면 침대에 오르기 전까진 모를 일. “스웨터. 두꺼운 거.” 얇은 셔츠를 입으면 어깨를 쭉 펴고 배에 힘을 콱 주기 마련. 스웨터라면 좀 맘을 놓기도 한다. 그런데 의외로 니트 소재는 몸의 윤곽을 잘 드러낸다. 빳빳하지 않을수록 더 그렇다. 두껍다 보니 조금 튀어나온 부분도 과장시킨다. 물론, 안에 더 입지 않았을 때. “옆구리 쪽이 살짝 돌출된다거나, 그런 게 보일 때가 있어. 어쩐지 자연스럽고 진짜 같아서 좋아. 안에 흰 속살이 숨은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짧은 톱엔 검은 피부가 제격이듯.” 과연 취향도 가지각색.

20대 후반의 대학원생 C는 기능적으로 접근했다. 주머니 몇 개가 달리고, 어떤 통풍 소재를 썼느냐의 기능이 아닌, 그 옷과 옷을 입고 할 수 있는 일과의 관계. “맨질하고 바람 잘 통하는 러닝복 하의. 멋 내는 거 말고, 진짜 운동복. 상의는 아마 톱?” 몸은 완벽한 자기 쾌감에 빠져 있을 때 무방비 상태가 되곤 한다. 게임이나 TV를 보며 종종 바보같이 입을 벌리는 건 그 게임이나 프로그램이 바보 같아서가 아니라, 완전히 몰두해서일 것이다. “바짝 조여진 허벅지 근육, 벌어진 입, 목의 땀 같은 거. 그 옷을 입었을 때만 볼 수 있는 거잖아. 여자는 그 옷을 입으면 운동에 더 몰입할 테고.” 이를테면 ‘리얼리티’를 찾는 K의 구체적이고 역동적인 형태랄까?

J, K, C의 주장 중 무엇이 가장 자극적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다만 반응하는 지점이 세밀하고 이유가 확실하다는 점에서, 세 남자에겐 확고한 취향이 있다. 가운을 사두거나 운동을 하는 건 어떤 의미에서 이들이 섹스를 준비하는 방식일 것이다. 단지 깔깔대고 얘기하는 즐거움일 수도 있다. 이래도 저래도 좋다는 식으로 기다리기만 하면 원하는 옷을 입은 여자가 불쑥 나타날까? 매일이 할로윈은 아닐 텐데. 벗길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섹스를 즐긴다는 건 침대 위의 일만을 뜻하진 않는다. 또 아나? “스웨터 입은 여자가요”란 말에 솔깃해 여자가 팔이라도 걷을지. 거기엔 흰 속살이 있을지.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