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코는 도대체

제임스 프랭코는 올해 열세 편의 영화에 출연하고 세 편의 영화를 감독했다. 적이 있다면 오직 잠 하나뿐.

시간을 거슬러 올라, 2010년 3월의 제임스 프랭코는 이랬다. 유타에서 대니 보일 감독의 <127시간>을 찍 으며 하루에 12시간 동안 팔을 바위 틈에 끼우고 있었다. 유타 계곡에서 생활할 당시 그는, 매주 월요일 딱 하루만 쉬었다. 대학원 수업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수업은 당연히 컬럼비아 대학이 있는 뉴욕에 가서 들었다. “네 번째 학기였는데 교수가 출석 관리를 철저히 했어요. ‘네가 대니 보일 영화를 찍든 말든 그건 우리랑은 상관없다, 글쓰기 워크숍이 있는 월요일 에는 매주 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쉬는 날이면 그는 협곡 지대 위를 4백 킬로미터 날아서 솔트레이크시티로 간 다음 비행기를 갈아타고 뉴욕으로 갔다. 뉴욕공항에서 50명이 수업을 듣는 강의실까지는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3시간 동안 “최소한 발언은 세 번 이상 하”고 다시 공항으로 갔다. 그 시간에는 LA로 가는 비행기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는 영화 <터미널>에 나오는 톰 행크스처럼 공항 게이트 옆 의자에서 밤을 보낸 다음,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유타로 돌아가 다시 12시간 동안 바위틈에 팔을 끼워 넣었다. “그 영화에선 초췌한 모습으로 나와도 괜찮았어요. 그런데 말이죠, 그 고생을 하고 그 비행기 푯값을 다 썼는데, 결석이 너무 많았다며 한 학기를 다시 듣게 시키더라고요!” 당연히 그는 재수강을 했고 결국 통과했다.
요즘같이 유명인들의 별꼴이 넘쳐나는 시대에 제임스 프랭코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하지만 진짜 궁금한 질문은 그것보다도 ‘그는 도대체 왜’에 가깝다. 자기 분야 외의 일에 강한 관심을 가지는 배우는 많고, 자기 분야 외의 직업을 가진 배우들도 많다. 하지만 이 두 가지를 다 가진 배우는 거의 없다. 레알 마드리드의 축구 선수 가레 스 베일이 프로 크리켓과 골프 선수를 겸하기로 결심하고, 가끔 테니스 에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다고 가정해보면 대충 비슷하다.
올해 그는 <스프링 브레이커스>에서는 오스카라도 노린 듯한 마약 딜러 역을, <오즈 그레이트 앤 파워풀>에서는 주연을, 담배를 피우며 보기 좋은 종말 코미디 <디스 이스 디 엔드>에서는 제임스 프랭코 역을 맡았다. 이건 주연작만 꼽은 것이다. 다 합치면 2013년에 그는 무려 열세 편 의 영화에 출연했다. 내년에 촬영이 예정된 영화도 이미 5편을 넘었다. 그리고 올해, 유명한 문학 작품을 영화로 옮긴 영화 세 편을 감독하기도 했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열광적인 반응을 얻은 코맥 맥카시의 <차일드 오브 갓>, 직접 출연도 한 윌리엄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그리고 작가 찰스 부코스키의 초창기 시절을 다룬(직접 부코스키를 연기했다) <부코스키>. 물론 영화 외에 미국 드라마 <제너럴 호스피털>에 다시 등장해 지나치게 현실적인 자기 자신을 연기하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본업 이야기다. 강의 경력으로 넘어가면 조금 더 숨이 찬다. 예전에 뉴욕 대학교에서 장편 영화 제작 강의를 한 적이 있고, 지금은 USC에서 단편 영화 제작을, UC에서 극작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현재 그는 예일 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디트로이트에서 <오즈 그레이트 앤 파워풀>을 찍을 때는 영상 회의를 이용해 수업을 들었다. 소설도 쓴다. 그의 첫 책 <팔로 알토>의 단편 중 하나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손녀인 스물여섯 살 지아 코폴라가 영화화했다. 지난 달엔 두 번째 장편소설 <익명의 배우들>을 출간했다. 시도 쓴다. 작년 11월 에 시집 <가장 강한 잡동사니>를 출간했다. 사진집도 있다. 자기 가족사진 을 모으고 시를 곁들인 <캘리포니아의 어린 시절>이 3월에 나왔다. 예술에 관해 쓴 책 <댄저러스 북 포어 보이스>는 그 다음 달에 나왔다.
그는 물론 예술 활동도 왕성하게 한다.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림부터 히치콕과 죽음을 주제로 한 멀티미디어 설 치 작업, 배설물과 관련된 기괴한 작업에 이르기까지…. ‘딕노즈 인 파리’가 대표적인데, 사람들이 얼굴에 페니스 모형을 대고 찍은 사진들이다. 뉴욕의 클락 타워 갤러리에서 개인전까지 했는데, <뉴욕타임스>는 ‘길게 늘여놓은, 아이러닉한 퍼포먼스’라는 것 이외의 의미를 찾기 힘들어했다. 사실, 많은 사람이 제임스 프랭코에 대해 하는 생각이 바로 이것이다.
잠을 자기는 하는 걸까? “잘 때도 있어요. 그런데 전 잠이 필요 없어요. 이런저런 일들을 실컷 하다 보면 결국 어느 순간 곯아떨어지게 되죠. 아무 데서나요. 촬영장이든, 학교든.” 그가 페스티벌에 참석하기 위해 들른 토론토에서 아침 9시에 대화를 나누었다. 처음 5분 동안은, 그의 목소리는 아직 자고 있는 사람 같았다. 단어 하나하나가 누가 천천히 불어낸 커다란 비눗방울처럼 다가왔다. 방울이 솟아올라 둥둥 떠올 때까지 다음 방울을 불지 않고 천천히 기다렸다. 전 여자친구였던 배우 안나 오라일리와 헤어진 것 도 그의 다양한 일이 둘 사이에 방해가 되어서였을까? 질문을 던지고 또 기다렸다. “사교 생활이라면, 뭐,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일하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에 따로 사교 생활이…. 그러니까, 전 사람들과 창조적인 일을 하는 게 사람들과 취하는 것보다 훨씬 좋거든요.(프랭코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전 그냥 바에 앉아 있을 시간에 다른 일들을 하면서 보냈던 것 같아요.”
그의 어시스턴트이자 UCLA 동기인 데이나 모건은 프랭코가 술은 물론이고, 아예 일상생활 자체를 하지 않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제 임스에게 ‘어떻게 그걸 다 해요’라고 물으면 난 옆에서 제임스를 이렇게 놀려요. ‘다 못하잖아! 넌 보통 인간들이 하는 일은 안 하잖아.’ 제가 먹여주지 않으면 분명히 먹지도 않을 걸요. 손을 입으로 가져가는 정도는 자기가 하겠지만, 제가 정말로 음식을 손에 쥐어줘요.”
더 놀라운 사실도 있다. 프랭코가 예전엔 이 모든 일을 지금보다도 더 진지하게 했다는 것이다. “<트리스탄 & 이졸데>의 원래 시나리오에는 말을 타고 전투를 하는 장면이 잔뜩 있었어요. <브레이브하트> 같은, 말이 수 백 마리 나오는 서사시 같은 장면들이었죠. 그래서 저는 ‘오케이, 사상 최고의 승마 달인이 되어주겠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8개월 동안 매일매일 말을 탔어요. 그전에는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죠. 나에게 스턴트 장면을 시켜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단 1초도 하지 않고 온갖 기술을 다 익혔어요. 그리고 드디어 촬영을 하러 가보니 말 탄 사람 백 명이 나오기는커녕, 트리스탄과 친구 다섯 명 정도가 몰래 숲을 지나가는 정도가 고작이더라고요. 그렇게 준비한 게 다 헛짓이 되다니!”
지난여름엔 두달간 페이스 갤러리에서 그의 첫 런던 전시 <사이코 나 키레마>(American을 거꾸로 한 말)가 열렸다. 그는 영화 <사이코>를 주제로 한 위트있는 멀티미디어 작품을 선보였다. 리모델링한 베이츠 모텔로 관객을 초대해 어린 시절에 했던 역할놀이를 떠올리게 했다. 마리언 크레인으로 여장한 프랭코 본인을 볼 때쯤이면 변장놀이를 하는 아이를 보는 것 같을 정도다. 당시 그가 했던 설명은 이렇다. “롤플레잉이죠. 상상력의 힘. 노먼 베이츠가 자신의 상상 속에서 자기 어머니를 계속 살려두었던 것처럼, 자기 어머니의 옷을 입으면 평소 자신의 페르소나로는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결국 제임스 프랭코는 변장을 하듯, 이런 삶이 맞나 저런 삶이 맞나 시험 삼아 입어보는 걸까? 그는 살면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결심했던 두 번의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처음은 고교 시절 방과 후에 미술 수업을 받기로 한 때였다고 한다. 사생화, 정물화, 초상화 수업이었다. “한 가지에 얼마나 헌신할 수 있는지 처음으로 발견한 순간이었죠.” 그가 자신을 온전히 ‘강박적으로’ 바칠 수 있었던 첫 번째 일이었다. 다시 말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분장을 했다는 뜻이다.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대치를 했어요. 매일 오후 3시부터 10시까지 그렸어요. 정말로 뭔가를 하고 싶다면 온몸을 던져버릴 수가 있죠. 그리고 어찌 보면 충분할 만큼이란 건 없어요. 그리고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할 때도 그냥 그런 식으로 갔어요.” 하지만 그림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아서 그땐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두 번째는 스물일곱 살 때였다. <스파이더맨 2> 같은 주류 영화와 예산 만 까먹은 <트리스탄 & 이졸데>가 나온 시점이었고, 연기에 철저히 환멸을 느낄 때였다. “감사하는 마음이었지만, 연기만으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전부 다 할 수는 없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그는 학교로 돌아갔다. “결국 글쓰기를 진지하게 공부했어요.” 그리곤 영화를 배웠다. “그것도 진지하게 공부했어요.” 그 다음엔 미술을 배웠다. “그것도 진지하게 했어요.”
제임스 프랭코가 왜 이렇게 여러 가지 일을 하는가에 대한 단서는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에 그가 등록한 프로젝트에서 찾을 수 있다. 전도유망한 학생들이 ‘팔로 알토’의 단편을 영화화할 수 있도록 자금을 모으는 프로젝트다. 특이하게도 프랭코가 모은 돈은 학생들의 영화 제작에 만 쓰일 것이고, 모든 수익금은 자선 단체로 간다. “학생들을 위한 프로젝트에 제 돈을 많이 썼어요. 정말 많이 썼기 때문에 이젠 더 줄 것이 없어요. 기분이 좀 이상하긴 했지만, 이게 오직 예술만을 위한 거라면 사람들에게 돈을 달라고 해도 될 거라고 생각했죠.”
“전 나탈리 포트만, 제시카 체스테인, 크리스틴 위그, 밀라 쿠니스 같은 대배우들에게 제가 지원하는 학생들이 감독하는 영화에 출연해달라고 부탁해요. 그건 큰 부탁이죠. 그래서 나 역시 남들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이클 섀넌이 부탁해서 <아이스맨>에 딱 하루 출연했어요. <러브레이스>에서 휴 헤프너 역으로 하루 출연한 건 공동 감독인 롭 엡스타인과 제프리 프리드먼이 저의 오래된 친구들이거든요.”
아직 이루지 못한 야망이 있느냐는 질문으로 인터뷰를 마감하는 일은 흔하다. 그래도 물었다. 그는 즉시 대답했다. “음, 전 연극을 사랑해요. 사실 브로드웨이 연극 <생쥐와 인간>에 출연하기로 했어요. 곧 실현될 야망인 셈이죠? 아, 희곡도 쓰고 싶어요. 벌써 몇 개 써놨어요”

모든 의상은 구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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