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몸 쪽 꽉 찬 추신수

2013.11.27GQ

올해 추신수의 기록표는 득점부터 볼넷까지 꽉 차 있다. 몸 쪽 공도 피하지 않았다.

수트와 셔츠는 모두 랄프 로렌, 보타이는 에르메네질도 제냐.

수트와 셔츠는 모두 랄프 로렌, 보타이는 에르메네질도 제냐.

지금 거긴 몇 신가?
밤 9시다.

밤엔 뭘 하나?
시즌 끝나고 뭐, 아빠의 삶으로 돌아갔다. 애들 씻기고 밥 먹이고 같이 놀고.

박지성은 비디오 게임, 류현진은 컴퓨터 게임. 추신수의 취미는 알려진 바가 없다.
한국은 시간 되면 학교에서 차가 와서 픽업해가지만, 미국은 부모들이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온다. 애들 학교에 가 있는 시간 말곤 못한다. 내일 여행 간다. 가족들이랑 디즈니 크루즈 타러.

시즌 끝난 지 한 달쯤 됐다. 몸의 멍은 다 없어졌나?
지금은. 근데 감기기운이 좀 있다. 시즌 중엔 많이 힘들었다. 몰랐는데 자꾸 맞으니까 쌓였다. 원하는 대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투수여서일까? 언론은 류현진에게 관심이 더 많았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처음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선수다. 현진이를 통해서 한국 선수들이 평가받기 때문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정말 잘했다. 그리고 가는 길은 같지만, 케이스가 다르다. 현진이는 이미 한국에서 최고였고, 난 마이너부터 올라왔다. 과정이 다르니까 그렇게 생각해도 괜찮다. 난 원래 뭐든 좀 조용히 하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가족도 있고, 잘살고 있다. 하하.

시즌 끝나기 전까지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와 FA 얘긴 전혀 나누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지금은 어떤가?
굳이 말하자면 난 보라스의 연락을 기다리는 입장이다. 여행도 그런 부분을 좀 잊고 싶어서 떠나는 거다. 여기 있으면 조급해지니까.

빨리 끝내고 싶단 마음은 없나? 메이저리그는 대형 FA가 시즌 시작 뒤 계약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렇긴 한데 값어치를 깎아가면서 하고 싶진 않다. FA는 내가 안고 가야 될 하나의 운명이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될 때 되면 다 된다. 올해 300출루, 20-20도 신경 안 썼던 기록들이다. 20번째 도루도 어떻게 보면 주루 플레이 미스한 거였고. 안 될 건 해봐야 안 된다. 계약도 사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신경 안 쓴다.

스캇 보라스는 어떤 에이전트인가? 선수가 잘나갈 때만 챙긴다거나,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시선도 있다.
사람이든 회사든 좋은 말만 있는 건 아니다. 시기하는 사람들이 루머를 만들 수도 있고. 내가 아는 스캇 보라스는 정말 똑똑하다. 자기 선수는 잘 챙기고. 선수를 위해 모든 걸 거는 사람이다. 믿고 고용했으니 잘 안 돼도 책임을 안 물을 거다.

11월 5일을 기점으로 FA 시장이 열렸다. 시카고 컵스와 화이트삭스, 뉴욕 양키즈와 메츠, 캔자스시티 로얄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이어 전 소속팀 시애틀 매리너스도 당신을 원한다. 맘이 가는 팀이 있나?
클리블랜드나 신시내티 모두 한인이 별로 없었다. 이번엔 장기 계약을 하게 될 테니 한인 커뮤니티가 큰 도시였으면 좋겠다. 한국 음식점이 많고 찜질방이나 미용실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곳. 가족도 있으니까.

신시네티 레즈의 새빨간 유니폼이 유독 잘 어울리긴 했다.
빨간색을 좋아한다. 아직 좀 이른 단계라서 뭐라 말하긴 어렵다. 들은 얘기도 전혀 없고.

FA 전 해라 확실히 각오가 남달랐나?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보다 꼭 신시내티에서 우승하고 싶었다. 아까 운명 얘길 하지 않았나? 집중하다 보니 개인 성적도 잘 나왔다.

신시내티는 1년밖에 못 뛸 수도 있는 당신을 우승청부사로 영입했다.
기대치에 얼마나 도달했는지는 모르겠다.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생각한다. 도움도 많이 받았고.

예상되는 FA 계약 총액인 1억 달러란 숫자는 그저 생소하다. 그 돈으로 뭘 할 건가?
뭐 할까? 하하. 사실 조언을 많이 구했다. 행복하게 사는 건 내가 받은 만큼 베푸는 거란 결심이 섰다. 어려운 분들을 도울 거다. 내 자신과 내 가족을 위해서 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고 싶은 건 없나?
없다.

턱시도와 셔츠는 에르메네질도 제냐, 보타이는 톰 포드, 포켓 치프는 클럽 모나코.

턱시도와 셔츠는 에르메네질도 제냐, 보타이는 톰 포드, 포켓 치프는 클럽 모나코.

 

수트는 클럽 모나코, 셔츠와 포켓 치프는 에르메네질도 제냐.

수트는 클럽 모나코, 셔츠와 포켓 치프는 에르메네질도 제냐.

올 시즌은 초반의 상승세에 비해 중반이 좀 아쉬웠다. 올스타나 MVP도 생각했나?
올스타는 생각했다. 5월부터 부진하면서 안 되겠구나 싶었지.

시즌 말미에 다시 살아났다. 특히 1할대의 좌완투수 상대 타율을 2할 1푼 5리까지 올렸다. 비법이라도 생겼나?
그런 건 아니다. 일단 통상적으로 좌투수보다 우투수를 상대할 일이 훨씬 많고, 약하다고 해도 아예 못 치는 정도는 아니다. 예전엔 문제를 찾아서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흘러가는 대로 놔둔다. 좌타자 중 좌투수에게 강한 선수는 별로 없다. 안 좋은 부분만 보고 많이 얘기하시는데, 일단 이해를 못할뿐더러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좀 더 잘하고 싶은 부분이 있나?
사실 똑 부러지게 잘하는 건 없다. 3할 5푼을 치는 것도 아니고 엄청 빠르지도 않다. 아무래도 이 자리까지 올라온 건 전부 중간 이상쯤은 하기 때문일 거다. 난 이제 20대 초반이 아니다. 아무리 운동을 많이 해도 눈에 보일 정도로 바뀌진 않는다. 갖고 있는 것들을 조금씩 발전시키면서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작년에 비해 안타는 적었지만 볼넷과 삼진 비율은 두 배 가까이 뛰었다. 거의 1:1에 가깝다. 공을 보는 방식이 바뀌었나?
아무래도 그렇다. 1번 타자라 공을 기다린 건 아니었다. 초구를 때린 적도 많다. 예전엔 풀카운트에서 삼진을 많이 당했는데 올해는 꽤 걸어 나갔다.

감독이라면 당신을 몇 번 타순에 넣겠나?
아무 데나. 타순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래도 심리적인 영향이 크지 않나?
음… 올해 본격적으로 1번을 해봤는데, 매력적이었다.

한 인터뷰에서 “야구를 보는 것과 하는 것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걸 아셨으면 합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로, 세이버 매트릭스(기록의 통계/수학적 분석)에 대해선 다소 부정적인 걸로 알고 있다. 올해 달성한 20-20, 100득점, 100볼넷, 300출루, 4할 출루율 중 무엇이 가장 맘에 드나?
4할 출루율은 한 번 해봤고, 100볼넷이 좀 새롭게 다가온다. 100득점도 처음이고. 올해는 3할 못 친 것 말곤 다 만족한다. 처음에 중견수로 포지션을 바꿨을 땐 긴장되고 부담스러웠는데 나중엔 수비도 편해졌고.

역설적으로, 기록을 분석할수록 더욱 가치가 올라가는 선수다.
너무 깊게 들어가셨는데, 그런 것까지 하나하나 생각하고 야구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야구는 몸으로 한다. 연습 배팅할 땐 공이 어디로 오는지 아는 데도 다 못 친다. 실제 게임은 더하다. 잘 맞은 타구라고 전부 안타가 되나? 이론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야구장에 가면 얼마나 잘하는지 묻고 싶다.

그렇다면 어떤 선수가 좋은 선수인가?
예를 들어 정말 어이없는 실수를 하는 선수가 있다고 치자. 그러면 관중석이나 중계석에서 “프로 선수가 저걸 못 잡나”라는 말이 나온다. 난 그런 얘기 못한다. 왜? 해봤으니까. 사람이기 때문에.

첫 전성기라 할 만한 2009년, 2010년의 기록이 판박이 같다면, 올해는 다른 유형의 선수가 된 듯 새롭다. 뭔가 바뀌었나?
마음가짐?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많이 내려놨다. 사람들의 말도 신경 안 쓴다. 인터넷도 안 한다. 결과가 어땠든 내려놓고 다시 야구장으로 간다.

내년에도 타석에 바짝 붙어서 설 건가?
난 바짝 붙는 게 아니다. 안 피할 뿐이다. 많은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내가 잘 밀어쳐서 투수들이 몸 쪽 승부를 하는 거다. 몸 쪽은 실투하면 장타가 나오니 확실히 안으로 붙인다. 나보다 가까이 서는 선수들도 잘 안 맞는다. 피하니까.

추신수에게 몸 쪽 공이란?
뭘까? 돈을 벌게끔 투수들이 도와주는 것 아닐까?

    에디터
    유지성
    포토그래퍼
    홍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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